욤 키푸르(대 속죄일)는 티쉬레이(Tishrei)월 10일 하루 축제이다. 해질 때 시작해서 다음 날 해질 때 끝난다. 이스라엘의 설날인 로쉬 하샤나로부터 열흘째 날에 지킨다. 이 날은 모든 사람들의 심판의 날이며, 죄와 황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사함 받는 속죄일이다. 이 날은 24시간 금식기도하고, 욤 키푸르가 시작될 때와 끝날 때에 쏘파르(양각나팔)를 분다. 그리고 5일 후인 티쉬레이 15일부터는 8일간 초막절을 지킨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제외한 모든 축제일들을 음력날짜로 지키기 때문에 오는 해들의 욤 키푸르는 다음과 같은 날짜에 닿게 된다.
2005년 10월 13일(윤달이 들어 있어서 늦어졌다.)
2006년 10월 2일
2007년 9월 22일
욤 키푸르에 대한 성서의 기록은 레위기 16장에 있다. 이날 엄숙하게 금식하되, 어떤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되며, 어떤 일을 해서도 안 된다. 이날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희생제사가 바쳐졌다.
욤 키푸르는 유대인의 회개의 날이며, 연중 가장 거룩하고 가장 엄숙한 날로 알려져 있다. 욤 키푸르의 핵심 주제는 대속과 화목이다. 먹는 것, 마시는 것, 목욕하는 것, 화장하는 것, 가죽옷을 입는 것, 가죽신을 신는 것, 부부행위를 금한다. 기도회는 ‘콜 니드레’(Kol Nidre)로 알려진 ‘기도’로 시작된다. ‘콜 니드레’는 해지기 전(역자 주: 유대인의 하루는 해질 때 시작되기 때문임.)에 암송이 시작되어야 하며, 아람어로 “모든 맹세”란 뜻이다. ‘콜 니드레’는 신년(新年)에 하게 될 모든 맹세를 공개 폐기하는 것이다. 유대인 백과사전과 무료 백과사전인 위키페디아(Wikipedia/역자 주 : 위키페디아는 ‘콜 니드레’를 욤 키푸르, 곧 대 속죄일에 회당에서 저녁예배 시작 때 암송되어지는 유대인의 아람어 기도이며, 그 기도문의 시작문구인 “모든 맹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한다.)에서 기도에 관한 영문을 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는 이 대 속죄일로부터 그 다음 날(우리가 기다리는 행복한 도래의 날)까지 우리가 맹세하고, 서약하고, 약속하는, 또 그것들로 인해서 우리가 억매이게 될, 모든 맹세들, 의무들, 서약들, 저주들, 코남(konam), 코나스(konas), 등 기타.”라고 설명되어 있다. 몇몇 저자들은 이것이 오로지 “개인적” 맹세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욤 키푸르는 로쉬 하샤나(신년)로 시작되는 열흘간의 회개기간(회개와 기도의 시기)을 완결시킨다. 겸손한 기도를 언제나 받으신다할지라도, 그때에 하는 기도는 각별하게 효험이 있다고 생각된다. 아침 기도회는 세리코트(selichot)라 불리는 용서의 탄원과 청원으로 시작된다. 대 속죄일에는 많은 세리코트가 의식서에 포함된다. 마이몬니데스(Maimonides)에 따르면, “모든 것은 인간의 장점이 그의 기록에 적힌 단점보다 더 많은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려있다.” 그래서 그러므로 대 속죄일에 최종적인 기록이 확정되기 전에 선행을 배가시키는 것이 요구된다(ib. iii. 4). 하나님에게 자격을 얻는 자들은 생명책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생명책에 들어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때문에 또한 “복된 새해를 위해서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인사한다. 신년과 대 속죄일 사이에 기록된 편지들을 보면, 저자는 항상 수신자에게 하나님께서 행복을 위해서 그의 운명을 인봉하시기를 기원하는 것으로써 끝을 맺는다. 최근의 유대주의에서는 원래 신년에 국한되었던 양상들이 대 속죄일에로 옮겨졌다. 대 속죄일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희생제사가 사라진 후에도 살아남았다. “비록 희생이 바쳐지지 않더라도, 그날 자체는 속죄를 가져온다”(Midrash Sifra, Emor, xiv.). 유대교 본문들을 그날에 회개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효험이 없다고 가르친다. 회개는 모든 다양한 속죄를 위한 수단에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회개의 고백은 사형이나 체형을 통한 대속에 필수적이었다. “대 속죄일은 하나님을 거슬린 죄를 속하지만, 피해자의 용서가 보장되지 않는 한 동료 인간을 거슬린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Talmud Yoma viii. 9). 때문에 모든 불화와 논쟁들은 금식일 이전 저녁까지 끝을 내는 관례가 있다. 심지어 죽은 자의 영혼들조차도 대 속죄일에 용서받은 자들의 공동체에 포함된다. 자녀들이 세상을 떠난 그들의 부모들을 위해서 회당에서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그들의 영혼들을 위해서 자비로운 선물을 하는 것이 관례이다. 대중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욤 키푸르는 슬픈 날이 아니다. 세파르디 유대인들(Sephardic Jews/스페인, 포르투갈, 북아프리카 유대인 후손들)은 이 축일을 “화이트 금식”(the White Fast)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많은 유대인들이 이 날에 오로지 흰옷만을 입는 관습을 지키고 있다. 천사에 가까운 죄 사함을 통해서 얻은 그들의 백색 순수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예식서(The Liturgy)
탈리트(Tallit/네 모서리 기도의복)는 저녁 기도들을 위해서 - 일 년 중 이것이 행해지는 오로지 저녁예배를 위해서 사용된다. 네이라(Ne'ilah)예배는 대 속죄일에만 거행되는 특별한 예배이며, 축제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대 속죄일에 행하는 금식의 종결은 쇼파르를 불어서 알린다. 대 속죄일은 전 유대인 세계에서 하루만 지켜지는 축제이다, 회당에서의 예배는 콜 니드레의 암송으로 저녁에 회당에서 시작된다. 대 속죄일의 예배묵상들은 그 다음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속된다. 성전의식이 상술된 예전적인 단편들이 상당히 탁월하다. 탈무드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연두에 세 권의 책을 펼치신다. 한 권은 철저하게 악한 자들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한 권은 철저하게 경건한 자들을 위한 것이고, 세 번째 책은 거대한 중간계급을 위한 것이다. 철저하게 악한 자들과 철저하게 경건한 자들의 운명은 즉석에서 결정되지만, 중간계급의 운명은 모든 이들의 운명이 인봉되는 욤 키푸르 때까지 연기된다. 예전적인 단편인 유네탄네 토케프(Unetanneh Tokef)는 말하기를, 세계를 심판하기 위해서 보좌에 앉으시고, 동시에 심판자이시고, 변론자이시며, 전문가이시고, 증언자이신 하나님이 그 기록서를 펼치신다. 그것은 읽혀지는데 모든 사람의 사인이 그곳에서 발견된다. 커다란 트럼펫이 울리고,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천사들이 떨며 말하기를, “이 날은 심판의 날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자가 그의 양떼를 모이게 하고, 그의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하듯이, 하나님은 모든 살아있는 영혼들을 그분 앞으로 지나가게 하시고, 모든 피조물의 생명의 한계를 정하시고, 운명을 결정하신다. 설날(신년)에 선포가 기록되고, 누가 살고 누가 죽을 것인가 등이 대 속죄일에 인봉된다. 그러나 회개와 기도와 자비의 행위는 가혹한 선포를 피하게 할 것이다. 이븐 가비롤(Ibn Gabirol)의 “충성의 왕관”이 저녁예배를 위한 세파르디 예전에 추가되고, 또한 몇몇 아쉬케나지(Ashkenazic/역자 주 : 독일과 동유럽 유대인들) 회당들에서 읽혀진다. 오래된 예전의 중심부에 죄의 고백이 있다. “왜냐하면 저희는 의롭고 죄를 범치 않았다고 말할 만큼 뻔뻔한 낯짝과 굳은 목을 갖고 있지 않고, 저희가 죄인들이라고 진실을 감히 말씀드릴 뿐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제가 더 이상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기꺼이 저의 지난날의 죄들을 정화시켜 주시데, 당신의 큰 자비로 하시고, 엄한 체벌로 하지 마옵소서.“ 그들은 애처로운 톤으로 전통적인 노래들을 부르며, 운명의 불확실성 앞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두려움과 떠나버린 영광들로 인해서 백성들이 내는 신음소리와 같은 표현을 하려고 애를 쓴다. 대 속죄일에 경건한 유대인은 육체와 그것의 욕구들을 잊고, 증오와 나쁜 감정과 모든 야비한 생각들을 추방하여 전적으로 영적인 것들로 채워지기를 추구한다. 공개적인 회개의 행동들이 명령으로 주어져 있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교정적인 것들은 성경의 예언자들이 기술해 놓은 것들이며,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일은 경건과 친절과 회개의 영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유대인의 기도서들은 적고 있다. 대 속죄일이 제정된 시기로부터 그 축일에 감명을 준 엄격한 특성은 오늘날까지 보존되어지고 있다. 아무리 많이 쇠퇴했을지라도, 유대인 양심에 각인된 것이 매우 강해서, 그들이 회당과 철저하게 단절하지 않는 한, 그들은 일상사들로부터 쉬고, 회당예배에 참석하기 때문에 대 속죄일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개혁주의 유대교 회당에서조차도 축일을 지키는 행위는 온종일 지속된다.
속죄양(The scapegoats)
성서시대에서 가장 독특한 예식은 “밀사 염소”(emissary goats) 또는 “속죄염소”를 바치는 것이었다(레 16:8-10). 이 염소는 아사셀(Azazel)로 보내어졌다. 아사셀은 히브리 성경 다른 곳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는 불명확한 단어이다. 그 단어는 두 가지 어근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는 염소를 의미하는 ‘아제’(aze)이고, 다른 한 가지는 ‘떠남’을 의미하는 ‘아젤’(azel)이다.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해 보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희생염소가 살해되는 절벽의 이름으로 간주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악령의 이름으로 간주하였다. 이 이름의 영은 외경 에녹서(the Apocryphal Book of Henoch)에 언급되었고 나중에는 유대인 문학에 나타났다. 이 해석에서 의식의 개념은 죄들이 악령에게 돌려보내지는 것이다. 죄악의 기원은 악령의 영향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비슷한 속죄 의식들이 이방나라들에서 유행하였다는 것이 기록되어있다. 현대성서비평가들 가운데 상기한 레위기 구절이 제사장 문서로써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아사셀로 염소를 보내는 것을 존재 이전 의식의 채택으로 간주하려 들지 않는다. 몇몇 더 보수적인 성서학자들은 염소가 취해졌을 장소는 도시바깥 “광야”일 뿐이며, 아사셀이라 불린 장소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의 의견은 “떠나보낼 염소”(goat of departure)는 단지 “보내라”(let go)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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