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우 목사는 1939년
1월 28일 충북태생이다.
청주 고둥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
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경제학사(B.A)를
받은 후에 대한 기독교
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하여 1969년
12월 13일에 졸업하였다.
1983년부터 한성신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실천신학과 환원신학
분야를 맡아 가르치고
있으며, 뜨거운 열정으로
교단과 환원신학
발전에 헌신하고
있다.
장성우
목사는 학문에 남다른
열정으로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M.Ed)와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제이론의
관점에 의한 한국교회의
분석"이란 논문으로
행정학 박사(Ph.D)을
취득하였으며, 미국
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Min) 학위를
취득하였다.
청소년시절
청주에서 장로교회에
다녔는데, 장손인
관계로 집안의 박해가
심했지만, 이에 굽히지
않고 신앙생활을
지속하였다. 광주에서
제대 후, 서울 영천에
있는 교회에서 집사로
일하던 중, 모 교파의
교단 중앙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담임
전도사를 해임하는
중앙집권적 횡포에
분노를 느끼고, 민주방식인
환원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1969년
필운동 그리스도의
교회에 출석하면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하였다. 1970년에는
침례가 성서적인
것임을 깨닫고 재침례를
받았다.
1971년에는
성낙소 목사의 아들
성수경 목사의 {그리스도의
교회 신학요강}을
편집하여 출판하였다.
1975년에 집사안수를
받았으며, 교회 재정부장으로
임명되어 봉사하던
중에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협의회 회계로
피선되었으며, 1976년
2월 15일에는 장로안수를
받았다.
1967년
9월 30일에는 김순옥
여사와 결혼하였다.
김순옥 여사는 필운동
그리스도의 교회
출신으로 대한 기독교
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였고, 오빠
김종기 목사(만목
그리스도의 교회),
김종부 장로(영동
그리스도의 교회)와
동생 김정인 목사(미국
산타모니카 그리스도의
교회), 김종현 목사(강남제일
그리스도의 교회)의
5남매 중 외동딸이다.
1976년
전남 해남 동리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으로 1978년
10월에는 서울 강남구
신월동에 강남 제일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여 1979년
2월 11일 창립예배를
드렸다.
1979년
10월 목사안수를
받은 이후에는 협의회
서기, 총무, 이사,
부총회장 등 여러
직책을 맡아 수고하였고,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잘 소개되지
못한 시기에 활발한
매스컴 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홍보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1981년에는
12개 교단 대표로
구성된 사단법인
한국 기독교 교역자
협의회의 서기로
활동하면서 신문,
방송 등에 홍보활동을
계속하였다.
왕성한
저술활동을 통하여
{환원교리와 역사}를
저술하였고, {21세기
교회개혁의 이상},
{왜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인가} 등을
번역하여 출판하였으며,
{일곱 촛대의 비밀},
{고독한 승리} 등의
설교집을 출판하였다.
단편소설 {정글 천년왕국},
{병실의 유산}, 장편소설
{혼쭐}(2021), 시와
에세이집 {명상의
길을 걷다}(2019),
시집 {카이로스의
만남에서}, 번역시집
{Some Remote Day}
등이 있다. 이밖에도
여러 편의 그리스도의
교회관련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그는
또 미국, 호주, 필리핀
등지의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긴밀한
협조를 이루면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교류를 추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77,2,1-1980,7,3
서울무디신학교설립운영,
1980,3,1-1983,2,28
한민대학교(한성신학교)시간강사,
1983,3,1 전임강사로
임명받아 1989,2,28까지
전임강사, 1983,3,1-1988,2,28
신학부장, 1989,3,1
조교수로 승진했다,
1988,3,1-1992,5,30
학생처장, 1992,6,1-192,28
사무처장에 보직,
1992,6,1-1992,8,30
학장 직무대행, 1993,3,1
부교수로 승진하고,
1993.3,1-1994,8,5
교수및 교무처장,
1994,10,1-2000.12.30
사단법인한국교역자협의회
서기및실행위원,
1995,3,1-2000.3.1
도서관장, 1997,8,25-2000.3.1
교목실장 겸보로
발령, 2000.3.1-2001.3.1
한민대학교 교학처장,
1994,3,5-1995,3,10
전국신학대학협의회
기획위원, 2001,3,2-2001,
12, 4 한민대학교
총장재임, 2002,
10,1-2004년 2월28
교수로 21년간 봉직한
학교를 정년퇴직,
2002.4.7-2009.4.7
중부그리스도의교회
설립, 노숙자사역
7년, 2009.10.28-2010.10.14
그리스도의교회총회장,
2011년 6월 1일 명성그리스도의교회를
창립하여 별세하기
수 개월 전까지 사역.
2024년 5월 15일
0시 57분에 소천.
장지: 충북 괴산군
청안면 선영.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장남 장혁은 서울의
그리스도 신학 대학과
한신 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고
장성우 목사 입관예배 설교(2024년 5월 16일 오전 11시)
조동호
목사(빛과 생명교회)
장성우
목사님의 삶은 자전적 에세이 제목에서처럼 ‘은총의 순례길, 신앙과 문학의
삶’이었습니다. “어떤 흔적 남았는지, 발자국 찍힌, 선명한 깊이, 크기를 재고 살아온
길을 시처럼 쓰고자 한다. 돌아보니 발자국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당신의 삶을
평가하셨습니다. 청주고, 성균관대, 고려대와 동아대 대학원을 거쳐 대전대에서 행정학
박사를 취득하셨고, 신학은 서울기독대와 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하셨으며 목회학 박사를 취득하셨습니다. 인생의 전반기에 가장 잘
하신 일은 김순옥 사모님을 만나 결혼한 것과 필운동 그리스도의 교회를
출석하여 장로안수를 받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반면에 하시던 사업에는 실패를 하셨는데,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 곧 목회자와 신학자가 되어 교수의 길을
21년간 걷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사업실패 후 목회를 시작하여 강남제일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한 것을 목사님은 “생애에 획을 긋는 날”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후반기가 찬란하게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목사님은 세 개 교회의
개척자로서, 신학교 교수로서, 저술과 번역가로서, 시인과 소설가로서, 또 그리스도의
교회 총회와 중부지방회를 세운 행정가로서, 신문, 방송 등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소개한
홍보가로서의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셨습니다. 교수직에서 은퇴하신 후에는 개척하신
중부교회를 통해서 7년간 노숙자 사역을 하셨습니다. ‘장성우 張聖愚’란 이름은 베풀
장, 성스러울 성, 어리석을 우입니다. 이름 그대로 ‘베풀면서 성스럽지만 어리석게
사셨습니다. 말년에는 은퇴목회자들을 위해 명성교회를 개척하여 얼마 전 기력이 쇠할
때까지 사역하셨습니다.
장성우
목사님이 남기신 두 개의 시를 읽어 드림으로써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나의 길,
주의 길
평생을 걸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 고뇌와 슬픔이 통곡처럼 밀려와도
모든 아픔
가슴에 안고 순례의 길 떠나네. 구름이 둥둥 떠 있는 하늘을 향해
설레는 가슴에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 손길 찾아 나 떠나네.
적자처럼,
눈동자처럼 사랑의 손 놓지 않는 아버지시여,
영원으로
향하는 천국 문에서 찬송소리 신기한 나라 내 어이 잊으리.
....
죽음, 다시
사는 영광으로
사람은 왜
죽는 것인가? 사람은 왜 "고통"을 경험해야만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리고 다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죽음과
고난에는 자기 폭발과 자기 해체의 아픔이 따릅니다.
역사적 사실
앞에 최대의 고민이요 고뇌입니다.
죽음과 고난은
영광과 새 생명을 창조하기 위한 필연적인 전제조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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