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진(1921.2.28- ) 목사
 


심영진 목사는 유교와 불교를 전전하며 10여년을 방황하다가 계시를 통해서 개종하였고, 대전에서 장로교회를 하던 중에 김은석 목사를 만나 환원하였다.

성경을 읽고 세례에 대해서 연구하다가 그가 받은 약식세례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일로 고심하고 있던 차에 마침 김은석 목사가 대전 은행동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저물도록 세례에 관해서 토론하였으며, 그후 일주일간 매일 만나 성경을 놓고 토론하던 중에 더욱 침례를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되었다.

같은 주간에 방서리교회에서 김은석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가 있었는데, 함께 가자는 권유를 받고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돌아와서는 김은석 목사로부터 심영진 목사내외가 대전 유등천에서 침례를 받았다.
심영진은 이 사실을 교회에 알리고 양심상 장로교회를 할 수없다고 설득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시켰다. 당시 섬기던 교회이름이 성화교회(聖火敎會)였는데, 이 이름은 기독교장로회가 성신의 불이 내렸다고 해서 오순절날 총회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영진은 이 이름을 폐기하고 대전의 기독교회로 고쳐 불렀다.

이 당시 예배당은 두 번째 신축하였던 것이었는데,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한 이후 더욱 발전하여 세 번째 신축하였고, 네 번째에는 100평으로 늘렸다. 그후 5년만에 현재의 건물인 500평 규모의 예배당을 짓게 되었고 이름도 도마동 교회로 바뀌었다.

심영진은 도마동교회에서 30여년 동안 사역하면서 {계시록연의}, {계시록서기}, {성막조성론}, {선지자의 사명}, {창조와 섭리}를 저술하였고, 은퇴하고 서울 돈암동교회를 담임하다가 다시 대전으로 내려와 개척교회를 섬겼다. 사모 박영자로 더불어 일곱 남매를 두었다.

심영진을 중심으로 대전에서 일어난 환원운동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누가 하자 말자해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경대로 하겠다는 무리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대전에 있는 성화 그리스도의 교회는 심영진 목사와 함께 도마동 그리스도의 교회를 일군 오재건 장로가 도마동교회를 나와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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