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 본 김동열 목사님

조동호 목사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를 운영하는 자의 입장에서 2002년 11월 22-23일 양일간 몇 분의 목사님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교회의 초창기 목회자이시고, 연세가 80 고령이신데도 총명한 두뇌와 청력과 안력을 가지고 계시며, 청산유수처럼 한번 입을 열면 지치지 않고 말씀하시는 정력적인 목사님을 찾아가 뵙고 그분에 대한 주변의 의심들을 확인코자 하였다. 아래의 내용은 김동열 목사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녹취한 내용과 금요일 저녁 기도회에 참석하여 느낀 점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먼저 김동열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교회 총회나 협의회 또는 교역자회에 소속된 그리스도의 교회 소속 목사가 아님을 밝혀 둔다. 목사님께서 주신 명함을 보면, “그리스도님의 교회교역자회 광주 그리스도님의 교회(Kwang Ju Church of Christ)”로 되어 있다. 이는 김동열 목사님께서 ‘그리스도님의 교역자회’란 모임을 오랫동안 따로 주도해 오셨고, 또 그들만의 모임을 따로 갖고 있었으며, 1940-50년대를 제외하고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 소속된 목사로서 활동하지 않고, ‘그리스도님의 교역자회’ 소속으로 활동하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둘째, 김동열 목사님의 부친 김용수님은 장로회 소속 목회자이셨으나 세례를 매우 중요시 하여 김동열 목사님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1990년 12월 26일자로 건국훈장을 받으셨고, 2002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애국지사의 가족에게 드리는 감사의 편지를 받은바 있는 뼈대 있는 집안이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셋째, 김동열 목사님은 두뇌가 명석하시고 과학과 수학에 뛰어나 젊어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원고 없이 자유자재로 강의하셨으며, 한학과 한자에도 박식하시고, 예술적인 감각을 겸비하셨을 뿐 아니라, 취미활동으로는 수석과 괴목을 수집하고 계셨고, 성석회(聖石會)란 모임의 회장직도 맡고 계셨다.

넷째, 과학과 수리적인 논리에 밝으신 만큼 합리적이고 귀납적인 성경이해를 추구하셨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문시대를 거쳐 오신 분이므로 많지 않은 그분의 저술과 직접 가사를 쓰시고 편집한 성가집, 「주 예수님을 찬양하세」에는 한문과 한자로 된 부분이 많았고, 오늘날의 청장년들에게는 이질적인 부분들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김동열 목사님께서는 성경말씀을 가감할 우려가 있고, 기록은 율법과 같이 죽이는 의문에 해당되는 것이며, 마음을 피곤케 한다는 솔로몬의 말처럼 기록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더 사모하고 그 명령을 실천하고자 저술을 삼가셨다고 말씀하셨다. 성경 66권에 더 보탤 책이 없고, 주님의 말씀만 말하고 전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품고 계신 것이다. 설교도 강연도 강의도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야하는 방송설교에서조차도 항상 원고 없이 성령님의 감동만으로 행하여왔음으로 저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섯째, 김동열 목사님은 당신께서 펼쳐온 환원운동을 성령님의 영감을 통한 운동이라고 확신하셨는데,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었다.

1)주님의 책에로의 환원 - 주님의 책의 말씀만 말하고 전하자.

철저하게 성경의 말씀대로만 가르치고 행한다는 신념이 강하셨다. 해석상의 차이와 실행의 차이, 곧 견해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성구를 줄줄 인용하실 뿐 아니라, 철저하게 성경대로만 주장하고 강조한다는 느낌이었다.

2)하나님에게로의 환원 -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3)주님의 권위에로의 환원 -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의 권위에로의 환원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권위를 높이고자한 운동으로써 ‘그리스도님’의 사상이 이에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 그리스도님,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으로 높여 부르며, 명함이나 간판 또는 교회이름에도 동일한 높임말로 쓰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광주 그리스도님의 교회’라는 명칭이다.

그리스도님의 권위가 강조되면 될수록, 4세기 이후 가톨릭교회가 오늘날까지도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스도님의 사도이자 보냄을 받은 종인(김동열 목사님은 작은 종이란 뜻의 소복小僕이란 한자용어를 쓰심.)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간극(間隙)이 생기게 되어 있다. 그 간극은 목회자의 절대적 권위로 인해서 비롯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교회 내에서 성도들의 목소리가 목사의 목소리보다 더 커진 상황에서는 나름대로 정당성이 확보되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현시대의 조류와는 많은 부분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광주 그리스도님의 교회에서는 예배가 짧고 일사분란하고 질서정연하며 고요하고 순종적이며 성도들이 밀물처럼 거의 동일한 시간에 입당했다가 거의 동시에 질서정연하게 썰물처럼 예배당을 빠져나간다. 잘 훈련되고 교육된 풍경이었지만, 이 역시 구경꾼들에게는 낯선 모습일 것이다. 광주 그리스도님의 교회에서는 매주일 예배 때에 주님의 만찬을 거행하며, 거의 매일 한번 꼴로 일주일에 여덟 번 30분씩 모여 예배드린다고 한다. 보통 교회의 새벽예배 또는 저녁 기도회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저녁에 집회가 있는 날이면 새벽 모임은 생략된다.  또 성도들이 일상생활에서 피곤하지 않도록 밤 9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모임에 나오기까지 최소한 일곱 시간을 수면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헌금이나 구제 사업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은밀히 하도록 가르친다. 헌금과 금전에 관한 설교는 일 년에 한번 성경의 말씀대로만 가르치고, 일체 언급치 아니한다고 강조하셨다. 헌금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곧 해놓고도 잊어버려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헌금 시간을 따로 두지 않고 헌금기도도 하지 아니하며, 헌금 바구니를 앞줄에 놓고 예배를 시작하면 찬송하는 시간에 헌금바구니에 가까이 있는 이들 가운데 바칠 분들이 헌금을 하고 다른 자리로 옮겨 놓으면 또 다른 사람이 바치고 하는 방식으로 헌금한다고 한다. 따라서 광주 그리스도님의 교회에는 예산이 따로 없다. 그러나 교회에는 아무 빚도 없고 운영에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라한 말씀을 철저하게 실천하며 성도들에게는 일체의 헌금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기도는 혼자 은밀히 있을 때 자유롭게 마음껏 기도하고, 또 기도를 많이 하도록 가르치지만, 집회 때에는 길게는 3분, 짧게는 1분 정도 묵상으로 기도하게 한다. 평소 기도를 많이 하는 자들은 예배시간에 길게 할 필요가 없으므로 중언부언하지 말 것과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의를 드러내려 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고 하셨다.

광주 그리스도님의 교회는 매사에 말씀으로 철두철미하게 가르치고 지키기를 가르치나 성도들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일체의 강요나 간섭을 하지 아니한다고 한다. 따라서 매우 자유로운 교회라는 것이 김동열 목사님의 주장이다.

또 한 가지 광주 그리스도님의 교회는 행정에 있어서 민주주의란 방식을 도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님의 권위가 강조되고, 그분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종들에 순종하는 것이 성서적인 것이므로 교회 내에서는 민주적인 방식이나 제도를 거부한다. 민주주의는 복음에 역행하는 거짓된 소리라 하셨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민(民)이고, 오직 한분 예수님만이 주(主)님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에 ‘예’만하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가 일군들에게 지시내린 대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이 성서적이라 하셨다. 주(主)와 민(民)의 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므로 주님의 권위는 더욱 높여야 하고, 백성은 더욱 민화(民化) 내지는 노복화(奴僕化)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국복음 안에서는 민주화가 용납되지 않고, 교회에 주님 이외의 주인이 있을 수 없으므로 제직회가 있어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신다.

김동열 목사님은 일찍이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신앙은 보장받을 수 없다”는 주장을 초교파적으로 많은 교회들에 다니며 설교하셨고, 초창기에는 그 길이 막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목사님만의 독특한 색깔을 드려내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일선의 교회들로써는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들이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서조차 수용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남들이 이단이라 하는 경우에는 성경풀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치명적이거나 잘못된 교리를 가르칠 때도 있고, 단지 그 주장하는 바가 기존의 고정관념과 다르거나 독특하여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예수님의 신성과 성령님의 인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호와증인들이 해당될 것이고, 후자는 다수의 횡포로 볼 수 있는 것으로써, 예를 들면, 대다수의 목사들이 전천년설을 주장하는데, 그 가운데 한 두 목사만이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을 주장한다면, 반드시 이단이란 소리를 듣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김동열 목사님은 후자에 속한다. 

 김동열 목사님의 평소 소신은 실천에 있었다. 귀로 들을 때 눈으로 보는 듯 하고, 눈으로 볼 때, 귀로 듣는 듯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백문불여일견, 백견불여일사, 백사불여일행”(빌 4장 9절 -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즉 백번이나 되풀이해서 들어야 한번 보게 되고, 백번이나 되풀이해서 보아야 한번 마음에 생각하게 되고, 백번이나 되풀이해서 생각해야 백번씩이나 듣고 보고 생각한 것을 행하게 된다. 그만큼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성경대로 실천하기를 힘써야한다고 강조하셨다.

김동열 목사님은 양력으로 1922년 9월 5일 생이시며, 김태희 사모님은 목사님보다 여섯 살 아래이시다. 김환 목사를 비롯해서 4남 3녀의 자녀들이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고 모두가 김동열 목사님 내외분과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사모님은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가 대대로 이어온 고향이며 부친 김용수 목사님께서 일제 때 투옥되어 계시는 동안 일본에서 성장했으며,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학력이나 경력 등에 대해서 기억도 않고 말도하지 않는다 하셨다. 침례는 1945년 겨울 혹은 46년 초에 받았고, 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 잠시 다녔으나 신앙이 맞지 않아 그만 두시고, 보수적인 다른 신학교를 마쳤다.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하신 후에는 송월동 성서신학교와 서울성서신학교 등에서 성경을 가르쳤으나 테일러 선교사 등과 뜻이 맞지 않아 부강총회이후 신탄진에 잠시 머물다가 광주로 내려와 독자적으로 사역하셨다.

김동열 목사님의 언행에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가정할지라도, 크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교계 일각에서 김동열 목사님을 “자칭 보내신 자”라고 주장하는 이단자로 본다는데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오해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광주 그리스도님의 교회에서 만든 책자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는 제목의 B5사이즈의 49쪽의 책자가 있는데, 이 책자의 제목은 요한복음 6장 29절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며, 이 성구에 대한 해설을 2003년 4월에 “주 예수님의 소복 김동열”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책자 목차 중 4장 4절의 제목이 “예수님은 주님이시며 자기는 종이요. 예수님은 그리스도님이시며 자기는 민(民)이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준행함이라.”로 되어 있고, 본 책자 30-31쪽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2.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성령님의 말씀을 들으면.
    3. 믿게 되는 바이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드님이시오 그리스도님 되심을 알고 믿는 바이다.
    4.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님으로 믿는 만큼, 자기는 예수님의 종이요 예수님의 백성이 되어 무슨 말씀 하시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준행하니, 이 사실이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님과 함께 하는 것이요, 결국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친증(親證)하신 바이다. 

그리고 49쪽의 결론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八)결론컨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고 하심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고 하신바 이 두 말씀은 몽침(夢寢)에도 망각해서는 아니 되는 구원의 진리이시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김동열 목사님은 자신을 항상 일컬어 “주 예수님의 소복 김동열”이라 한다는 점이요, 한 순간도 예수 그리스도를 ‘님’자 없이 “그리스도”라 호칭하지 않고 언제나 “그리스도님”으로 호칭하여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으며, ‘님’자 없이 “그리스도”라 호칭하는 것을 선생님에게 “선생”이라 호칭하는 것처럼 상스러운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자칭 보내신 자” 곧 자칭 메시아로 주장한다는 비판가들의 주장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누가복음의 비유를 설명한 {실상(實相)과 비유(比喩)의 오의(奧義)}라는 시리즈 책자들이 있으며, {문오언이행지자(聞吾言而行之者)}란 A4사이즈 20쪽의 글이 있는데, 이 한문 제목은 마태복음 7장 21-27절의 일부인 중국어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란 뜻이다. 여기서도 먼저의 책자에서와 같이 평소의 소신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보기만 하지 말고, 생각만 하지 말고, 그대로 옮겨 실천하자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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