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육체상(肉體上) 생활(生活) 제1조 자신상(自身上) 생활(生活) 목회자는 무엇보다도 신체 건강을 요(要)할지니, 신체는 만사(萬事)의 본(本)이다. 그런데 더욱히 격렬(激烈)한 목회사업에는 보통의 인성(人性)으로서는 할 수 없고, 오즉 육체의 정욕(情慾)과 차생(此生)의 과장(誇裝)을 십자가에 정(釘)하야 상제(上帝)의 성지(聖旨)대로 행(行)하는 자(者)는 건전(健全)할지니라(요일 2:16-17, 갈 5:24). 그럼으로 주의 말삼 중에 “천국(天國)을 위(爲)하야 자엄(自閹)된 자도 유(有)하도다. 차언(此言)을 수(受)할만한 자(者)는 수(受)할지니라”<태(太) 19:12)하시였음으로 사도 바울은 독신(獨身)생활을 한듯도 하다. 목회자는 주야(晝夜)로 기도(祈禱) 생활(生活)노 인(因)하야 부부(夫婦) 분석(分席)이 다(多)함으로(고전 7:5), 31세로 40세까지는 1개월 중(中)에 1회 부부(夫婦) 동방(同房)하되, 약(若) 신양(身養)이 부족(不足) 우(又)는 과로(過勞) <전도회 급(及) 사경회> 신양(身樣)이 노곤(勞困)하거나 본시(本是) 신체가 약(弱)하면 1개년 2-3회 가합(可合)하며, 41세로 50세까지는 2개월 중에 합방(合房) 1회가 가적(可適)하며, 51세 이상에는 1개년 중 1-2회가 가(可)하고, 60세 이상은 단방(斷房)이 가야(可也)니라. 연즉(然則) 신체가 건전하야 천국 사업에 다대(多大)한 유익(有益)이 될 것이다. 이상(以上) 소언(所言)은 필자 자신이 약한 관계로 일생을 조심한 결과 63세에 차언(此言)을 서(書)하는 중(中) 무병(無病) 건전(健全)의 체험적인 동시(同時)에 조혼(早婚)의 악폐(惡弊)로 조색과도(皁色過度)하야 쇠약부족증(衰弱不足症) <폐병자여(肺病者如)함>으로 자각적(自覺的) 단방(斷房) 3년에 신체는 회복되고 기후(其後) 31세까지 10년간을 혹 일 년 단방(斷房) 반년 단방(斷房)함으로 유(由)하야 건전한 생활이여서 교역에 지장이 별무(別無)한 것을 주님께 감사함니다. 이상과 같이 한 자는 신앙심이 견고한 동시에 나와 같이 약자라야 하지, 신앙심이 부족<부부 중(中) 일(一)이라도>하거나 건재하면 이행(履行)키 불능(不能)하나 할 수 있는 데로 정욕(情慾)을 금(禁)하면 신체가 건전하고 장수(長壽)도 할지니라. 우리 교역자는 주님의 것이다. 고전 6장에 대(對)하야 삼종(三種)의 교훈이 유(有)하니, 15절에 신(身)은 그리스도의 지체(肢體)요, 19절은 성신(聖神)이 거(居)할 전(殿)이오, 20절에는 신(身)으로 상제(上帝)를 영화롭게 할 것을 교훈하였다. 혹(惑)은 영적(靈的) 치중(致重) 편견(偏見)하는 동시(同時)에 육체를 경멸시(輕蔑時) 하는 폐(弊)가 불무(不無)하나니, 차(此)는 대(大) 오해이다. “이등(爾等)의 신혼신(神魂身)을 완전히 보존하사”(살전 5:23) 하였다. 신(身)을 완전히 보존하사 건강케 함은 신앙이 성경적 생활의 표현(表現)이다. 1.조기(早起) 매일 하절(夏節)은 5시, 동(冬)에는 5시 반에는 기상(起床)하야 일(一) 시간 밀실기도와 가배(家拜)를 필(畢)하고, 정리하고, 산상(山上) 혹은 교외(郊外)에 청정(淸淨)한 공기를 호흡하고 산보(散步) 급(及) 체조(體操)하며, 자연계의 미관 중(中)에서 심신(心身)을 유쾌하게 할지니, 일일(一日)의 사무(事務)할 건전한 정신과 유쾌한 심신으로서 감당할 만치 준비가 되야 한다. 고어(古語)에 일년지계(一年之計)은 재어춘(在於春)이오, 일일지계(一日之計)는 재어신(在於晨)이라 하였다. 2. 교역자(敎役者)의 주의(注意)
- 1)공상(空想)과 우수(憂愁)이다. 미신자는 육체상 공상과 우수이나 우리 교역자는 신령상 공상과 우수는 교회가 부진(不振)하던지 교역상 자기 장래를 추측(推測)하던지, 하사(何事)던지 공상(空想)은 보건상(保健上) 불가(不可)하니, 주의할 것.
- 2)교역자는 신자 중(中) 허다(許多)한 병자를 근접 기도한 동시(同時) 전염병도 불구하고, 의사와 같이 소독법을 학습 준비함이 필요하다. 자신도 위할 뿐만 안이라, 타인을 위함이오. 예컨데 전염병자의게 기도하고 타신자의 가정에 기도한 후에 자기는 요행히 무관하나 신자의 가정에 전염(傳染)식히면 책임이 어더할가? 그런즉 특별 주의할 것.
- 3)교역자로서는 아무리 친우(親友)던지, 친척(親戚)이던지, 신우(信友)들이던지, 여하(如何)한 일이던지, 보증인 급(及) 연대인의 관계 날인(捺印)치 말 것.
- 4)시간관념을 특별 주의할 것. 가정생활에서나 직무상에서나 대인약속이나 시간을 엄수할 것.
- 5)성서중에 경계한 말삼은 특별히 주의할지니라.
제2조 가정생활 1. 자녀가 부모의게 대하야 동양 도덕의 중심은 자녀가 부모의게 대한 효도로서 시작하였다하여도 과언이 안이다. 상제(上帝)의 계명 중에 인간의 대하여는 초계(初戒)가 부모를 공경하라 함이다. 차(此)는 허락(許諾)이 있는 첫 계명이니, 지상에 창성(昌盛)하고 장수(長壽)한다 하였다(엡 6:1-3). 부모를 시봉(侍奉)하는 교역자는 의당(宜當)히 효행(孝行)으로서 일반 신자의게 모본(模本)이 되어야 한다. 심지어 조부모 사후 기일에도 무심히 과(過)치 말고, 추도식으로 유가(儒家)의 봉제사식(奉祭祀式)과 부동(不同)이나 기념(記念) 봉사(奉事)는 동일(同一)하니, 경엄(敬嚴)히 할지니라. 고어(古語)에 구충신어효자지문(求忠臣於孝子之門)이라 함은 부모에게 효(孝)하는 인(人)은 군(君)의게 충성(忠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연즉(然則) 부모의게 효양지성(孝養之誠)을 봉행(奉行)하는 인(人)이라야 상제(上帝)께 대(對)하여도 충성을 진(盡)할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을 잘 공경(恭敬)한다는 인(人)이 부모의게 불효한다면 신용할 수 없는 신앙이다. 교역자는 교우들로 하여금 부모봉양을 효성으로 하되, 성서로 설교보다 자신이 친히 효행으로 모본이 되야만 할지니라. 2. 부모가 자녀의게 대하야 부모가 되시는 이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경계(敬戒)와 교훈으로서 양육하라(엡 6:4). 자녀를 주께 헌(獻)하야 교역자를 만든 부모는 행복스러운 부모라고 한다. 서양 언어(諺語)에 목사의 부모는 인간의 의무를 다 하였다고 한다. 얼마나 귀(貴)한 사(事)인가 고로 교역자의 부모되신 분은 범사(凡事)에 그를 도와 밀실(密室) 도고자(禱告者)가 되지 않으면 안이 된다. 자녀의 교역을 위하야 석일(昔日) 이색열(以色列)의 승리를 위(爲)하야 산상(山上)도고(禱告)한 모세와 같이 부단(不斷)의 성의(聖意)로서 축복(祝福)할지니라. 제3조 부부간의 관계 1. 목사가 부인의게 대하야 목사는 부인을 애호(愛護)할지니라. 대개(大槪) 부인은 천성노정(天城路程)의 동행자요, 성역(聖域)의 동역자이다. 목회상 부인의 공로가 다대(多大)하나니, 목사는 부인을 일(一) 가정(家庭) 주부(主婦)로만 사(思)할 것이 안이라, 성역(聖域)을 돕는 동로자(同勞者)로 지(知)하고 친애(親愛) 후대(厚待)할지니라. 웨 그리할 것이야 하면, 성서중에 “여자는 이(爾)보다 연약한 기(器)오, 또 영생의 은혜를 해향(偕享)할 자(者)가 됨이라(벧전 3:7). 교역자가 부부생활에 화순(和順)치 못하고 불화(不和)하면 목회생활에 실패원인이 되나니, ”대개(大槪) 인(人)이 자가(自家)를 선치(善治)할 줄 지(知)치 못하면, 엊이 상제(上帝)의 교회를 찰(察)하리요(딈전 3:5). 목사는 너무 부인을 괴롭게 하지 말지니, 차(此)는 부부(夫婦) 일신(一身)의 원리를 위반함이오, 연약한 기(器)를 무리 사용한 과오가 되나니라. 우(又)는 부인의 사(事)를 너무 간섭치도 말고 압제(壓制) 하지도 말지니라. 남자는 거외이불언내(居外而不言內)라는 말이 있다. 가정살림을 부인(婦人)의게 일임하고 후원 고찰(考察)할지니라. 목사의 가정은 교회(敎會) 축도(縮圖)이니, 신자 가정의 모범이다. 만일 목사의 가(家)의 불화(不和)하다던가, 부부간에 충돌(衝突)이 빈번(頻繁)하면 차(此)는 목사 내적(內的) 생애(生涯)의 실패니, 목회성공을 기대하지 말지니라. “부(夫)된 자(者)여 부(婦)를 애(愛)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애(愛)하사 신(身)을 사(捨)하심같이 하라.”(엡 5:25). 그렇다고 무조건 애(愛)하기만 하야 가정문란이 되던지 목회상 부인의 말만 듯고 하던지, 가정 살림에 부인의 요구만 듯고 허화(虛華) 낭비(浪費)의 생활을 하거나 내 주장(主掌)의 비법적(非法的) 가정이 되면, 외인(外人)의게도 수치(羞恥)니, 목사 위신(威信)의 타락(墮落)으로 목회불능야(牧會不能也)니라. 2. 부인이 목사의게 대하야 세상에 목사의 부인된 자(者)처럼 행복스러운 여자는 무(無)하나니, 신앙상으로는 교회의 모(母)요, 정신상으로는 부목사이다. 보통 가정부인과 같이 생활문제 치산문제(治産問題)에만 몰두할 것이 안이라. 성역방조자(聖域幇助者)라는 각오를 불망(不忘)할지니라. “부녀(婦女)된 자(者)여, 부(夫)에게 순종하기를 주(主)께 순종하듯 하라(엡 5:22). 부화부순(夫和婦順)은 성도 부부생활의 비결이다. 현량(賢良)한 남편과 유순(柔順)한 부인은 이상적 가정을 조성한다 하나니, 목사의 부인은 보통부인에서 초월한 현숙한 덕행과 온아(溫雅)한 자태(姿態)와 독실(篤實)한 신앙으로서 일반 신도의게 모범이 되아서 교회의 영적(靈的) 모(母)가 될 만하여야 한다. 목사를 도웁난 것은 교회를 도움이요, 교회를 도음은 주(主)를 도음이요, 주(主)를 도음은 즉(卽) 자기를 도음이다. 실로 목사 부인의 역사(役事)가 다대(多大)하다. 루터의 개혁운동에도 기(其) 부인의 보조와 공훈이 다대(多大)하였다 하며, 뿌두의 구세군 창립에도 기(其) 부인의 활동과 공로가 역시 다대(多大)하다고 한다. 목사의 교역성공의 력(力)이 10이라면, 부인의 조력(助力)이 5가 되어야 한다. 종일 전선(戰線)에서 열력(熱力) 고투(苦鬪)하고 도라오는 목사를 위하야 교회일로 주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나머지 안식(安息) 위로(慰勞)하여줄 이는 기(其) 부인밖에 없다. 목사의 부인 되신 분은 깊은 각오(覺悟)와 심절(深切)한 동정(同情)으로 보조(補助)할지니라.
- 1)목사 부인의 자각(自覺)할 것이니, 자기는 목사 부인이라는 것을 잊이 말 것. 담임한 교회의 대표적 부인이라는 것을 알고, 사언행(思言行)을 조심하야 목사부인다운 미덕을 발휘할지니, 자기는 일(一) 가정의 주부가 안이고 주(主)의 여복(女僕)임을 심각(深覺)할 것.
- 2)고난을 각오할지니, 교역자의 영육생활은 십자가를 부(負)하고 갈보리 산정(山頂)으로 향상(向上)하는 생활이다. 제일 당면 문제는 생활고(生活苦)이니, 가정(家庭) 치산상(治産上) 주밀(周密)한 아량(雅量)으로서 적당한 생활을 하야 목사로 하여금 교회 일에만 전념케 하고 가정염려를 생략하야 좋을지니, 가빈(家貧)에 사현처(思賢妻)는 목사의 부인(婦人)의게 우호(尤好)한 격언(格言)이다.
- 3)동정심이니, 목사의 부인은 몬저 교역사업이 얼마나 곤란하다는 것을 각오하고 동정함이 필요하니라. 그러나 동정심이 무(無)한 부인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배(倍)나 고통을 주나니, 목회의 성패(成敗) 원인(原因)이 부인의게 막대한 책임이 유(有)하니라. “현(賢)한 여인은 기부(其夫)의 면류관이 되고 욕(辱)을 이(貽)하는 여인(女人)은 기부(其夫)의 골수(骨髓)를 썩힘과 여(如)하니라”(잠 12:4). 현량(賢良)한 부인은 목사의 금세 면류관이 되고, 천국의 동반자가 될지니라.
3. 자녀 양육상(養育上) 책임 1)목사가 자녀(子女)의게 대(對)하야 목사의 자녀는 기(其) 가족 중(中)에 상제(上帝)의 선물이오, 제2세 천국 역군(役軍)이다. 교육의 책임이 중대(重大)하다. 세평(世評)에 목사 가정 불완전이라던지, 자녀교육상 결함의 문제가 다(多)하나니, 기(其) 원인(原因) 중(中)에는 동정할 점도 유(有)하거니와 책임문제도 불무(不無)하다.
- (1)목사는 교역상 다망(多忙)함으로 자녀문제를 등한시함도 불무(不無)함이요.
- (2)영적 일에 편중(偏重)함으로 육(肉)의 사(事)를 경시(輕視)함이요.
- (3)생활난의 관계로 자녀교육이 불충분함이요.
- (4)무조건 애육(愛育)은 종교예의상 결함이요.
- (5)신앙이 정적화(情的化) 되지 못하고 의식화(儀式化)함이요.
이상 조건(條件) 외(外)에 책임문제가 유(有)하니, 대개 자녀는 부모 교양 여하(如何)에 의하야 선불선(善不善)이 판정(判定) 되나니, 목사는 영적 사업 뿐 안이라 자녀 교육 방면에 등한시 하지 말고 심심(甚深) 유의(留意)하야 실패가 무(無)할지니, 자녀 중에 일차 실광실덕사(失光失德事)가 유(有)하면 목사 자신을 매장하고 전도문을 막고, 강단에 입(立)할 용기가 무(無)할지니, 결국 실패니라. 교양상(敎養上) 주의 사항(事項)은 이하(以下)와 여(如)함.
- (1)가정생활 경건이니-자녀의게 대(對)하야 불경건한 생활과 언실(言實) 부동(不同)의 태도는 부모 위신(威信)을 상실(喪失)함.
- (2)편애(偏愛)-자녀 양육에 편애는 아동 심리를 악화(惡化)케 함이니, 남중여천(男重女賤) 여귀남증(女貴男憎) 제애형모(弟愛兄侮) 등(等)이니, 특히 조심할 사(事)이니라.
- (3)상벌(賞罰)을 명백히 할 것-무조건애(無條件愛)와 무조건(無條件) 엄격(嚴格)은 금사(禁事)니, 태애즉무례太愛則無禮)하고 태엄즉무기(太嚴則無氣)하고 임시(臨時)체변(體辯)하야 선악(善惡)의 별(別)을 명시(明示)할지니라.
2)자녀가 목사의게 대하여 세상에 목사의 자녀된 인연(因緣)처럼 행복스러운 일은 없다. 신령한 아버지와 신애(信愛)하시는 어머니에서 신앙과 진리 중(中)에 성장하게 되었으니, 무상(無上)의 축복이다. 자녀된 자(者)는 의당(宜當)히 상(上)으로는 상제(上帝)께 감사하고 부모(父母)의게 지성봉효(至誠奉孝)하여야 한다. 아동들아 부모를 공경하라 함은 일반 아동(兒童)의게 대한 교훈이지만은, 목사의 자녀된 자 더욱 차(此) 성언(聖言)을 근수(謹守)하야 중아(衆兒)의 모범(模範)이 되어야 한다. 그레서 부친(父親)의 뒤를 따라 제2세 천국민(天國民)이 되지 않으면 안이 된다. 연(然)이나 목사 가정에 목사 계승하는 것이 아주 희귀(稀貴)하니, 기(其) 이유(理由)는 여하(如下)함.
- (1)자녀된 자(者)가 부친의 목사 생활의 고난사를 목도(目睹)한 고로 헌신키를 원치 않음이오.
- (2)부(父)된 목사가 교역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녀들이 교역자 되는 것을 요망(要望)치 안이 한다.
- (3)목사 자녀들이 대개는 진실한 신앙이 무(無)한 까닭이다.
그러나 목사의 자녀된 자(者) 심절(深切)한 각오하(覺悟下)에 부친의 사업을 동정(同情) 보조(補助)하며 자녀로 인(因)하야 고통을 당치 않고, 신령한 사업에 성공하도록 기도할지니라. 제4조 의식주(衣食住) 1. 의복(衣服) 의복(衣服)은 폐신지물(蔽身之物)이라. 각인(各人)이 기분(其分)에 적합하도록 의(衣)할지니, 약(若) 신분(身分)에 상응치 않케 의복을 의(衣)하면 차(此)는 외식(外飾)과 허영(虛榮)에 근(近)하니라. 현세교회에 출입하는 남녀청년들이 동서(東西)의 신풍조(新風潮)를 수입(輸入)하야 의복사치가 사회보다 우심(尤甚)하야 종교적 기분(氣分)이 없고, 너무나 화려하여서 빈핍(貧乏)한 신자의 고통거리가 되야 의복문제로 교회출석까지 기피하는 사(事)가 다(多)하야 교회마다 공석(空席)이 다(多)하니, 차(此)는 입(入)하여야 할 빈자(貧者)의 좌석이다. 목사는 의당히 교회에서 과도한 사치를 숙정(肅正)하여 검소(儉素) 미려(美麗)하게 정결(淨潔) 미덕(美德)을 현출(顯出)할지니라. 목사 자신이 차사(此事)에 모본이 되야서 지도 교훈에 수괴(羞愧)치 않게 할지니라. 대개 교역자의 생활은 본자(本資)가 없는 자(者)로서 여유가 별무(別貿)하나니, 사치(奢侈) 미복(美服)은 감내(堪耐)키 난(難)할지라. 결국은 부채(負債)케 된다. 부채생활은 강단에 권위를 손실케 한다. 의복(衣服)미치(未侈)의 수치(羞恥)보다 과분(過分)의 사치(奢侈)로 부채생활의 수치(羞恥)가 우심(尤甚)한 것을 지(知)하여야 한다. 목사 자신은 검박(儉朴)하나 부인과 가족 사치로 인(因)하야 자급 부진(不振)의 결과가 되나니라.
- 1)목사 자신의 의복은 성역상(聖役上) 위신에 손(損)되지 않도록 집중(執中)할지니, 너무 사치(奢侈)치도 말고, 너무 추(醜)하지도 말고 중도(中道)를 취(取)할지니라.
- 2)가족의 의복은 신자 상하를 표준하야 중용(中庸)을 취(取)할 것.
- 3)청결은 의질호불호(衣質好不好)에 재(在)한 것이 안이니, 자주 세탁하여서 청결할 것.
- 4)의복제도는 너무 신식(新式)을 취(取)치 말고, 구식(舊式)도 말고 보통식(普通式)으로 할 것.
- 5)의복은 협소(狹小)하게 하지 말고, 장광(長廣)이 비교적 넉넉하게 할 것.
- 6)의복이 경제적으로 실질(實質)을 취(取)할 것.
- 7)의관(衣冠)은 단정(端正)을 주(主)로 하고 무례(無禮) 실격(失格)을 근신(謹愼)할 것.
2. 음식(飮食) 음식은 인간생활 삼요소중(三要素中) 일(一)이 되나니, 일일(一日)이라도 불가결(不可缺)이다. 그러나 인(人)이 음식을 위하야 있지 않고, 음식이 사람을 위하야 재(在)하나니, 그런고로 인(人)이 음식에 노(奴)가 되여서는 안이 된다. 음식 역시 의복과 같이 신분에 상응(相應)하여 할지니, 미미(美味) 호식(好食)의 욕(慾)은 인지상정이되, 과분하면 무모(無謀) 허위(虛僞)의 생활이니, 건과(愆過)이다. 해와의 먹음직한 생각은 식욕이 발생함이니, 결국은 죄를 산출(産出)하였다. 인생의 타락의 원인 중에는 음식으로 위시하야 대부분을 점(點)하고 있다. 마귀의 호기회(好機會)이다. 태초에 아담을 음식으로 타락케 하던 마귀는 제2 아담 되는 예수를 음식으로 시험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인(人)이 병(餠)으로만 살 것이 안이오. 하나님의 도언(道言)으로 산다”는 것은 마귀에 대(對)하야 폭탄적 선언인 동시에 신자의 생활원칙이다. 목사는 음식에 대하야 모본이 될지니, 탐식자(貪食者)가 되지 말 것. (음식을 노래 부르지 말 것.) 음식에도 검소(儉素)하되, 너무 절식(節食)하야 영양부족으로 성역에 지장이 무(無)케 하고 너무 호식하야 적자생활을 하지도 말지니, 생활보수에 의(依)하야 적합하도록 조절할지니, 차역(此亦) 신자의 생활정도에 비(比)하야 거기중(居其中)을 취(取)할지니라.
- 1)선(先)히 생활(生活) 예산표(豫算表)를 정(定)하야 해예산(該豫算)에 초과치 말 것.
- 2)자량(資糧)에 대(對)하야 현금주의(現金主義)로 하고 외상(外上)하지 말지니, 외상은 부채의 모체(母體)이다.
- 3)음식은 청결을 요(要)하고 위생적 합리화로 할 것.
- 4)음식 하는 것보다 적당히 감식(甘食)할지니, 위량(胃量)의 칠분(七分)음식은 최(最)건강 장수법이니라.
- 5)육식보다 채식(菜食) 과식(果食)주의(主義)를 요(要)할지니, 차(此)가 위생상 적합할 것.
- 6)음식은 최(最) 청렴(淸廉)할지니, 음식은 인격고하를 점(點)하는 수준기(水準器)가 되나니라.
- 7)간식(間食)을 폐(廢)할지니, 소아(小兒) 장년(長年)을 막론(莫論)하고 위(胃)에 손상(損傷)을 주고 관습이 되면 난기(難棄)의 악습(惡習)이 되나니라.
3. 거처(居處) 거처(居處)는 즉(卽) 주택(住宅)을 말함이니, 목사의 주택은 교회가(敎會家)요, 목사의 가(家)가 안이니, 일반적으로 논(論)하면 주택은 외양(外樣)의 미려(美麗)하는 것보다 내부적으로 생활상 편리케 할지니, 주택 역시 실질주의하(實質主義下)에서 분수(分數)에 과(過)치 않도록 함이 가(可)하고, 만일 주택을 건축할 시(時)에는 몬저 제직과 상의 양해를 득(得)하야 합의적으로 할 것이요, 독단적으로나 또는 교회보다 화려하게 하지 말지니라. 하(何) 교파(敎派)에는 교회당은 미려하게 하고 교역자 주택은 보잘것없다. 또 다른 하(何) 교파에서는 차(此)와 반대로 선교사, 목사의 주택은 훌융한 양옥이요, 교회당은 초가(草家)로 두는 것은 대불가(大不可)인 대수치(大羞恥)의 사(事)이다. 목사가 교회 주택에 거주할 동안은 자기가(自己家)와 같이 잘 보관하고 청결케 하고 파손은 즉시 수리할지니라.
- 1)목사의 주택은 교회당에서 최(最) 근처를 요(要)할 것.
- 2)주택은 언제던지 청결 정숙을 요(要)할 것.
- 3)목사는 정원, 소제(掃除), 분재(盆栽) 정리 등사(等事)는 타인의 수(手)를 번로(煩勞)치 말고 자수(自手)로 친로(親勞)할지니라.
- 4)목사 부인은 의복, 음식, 거처, 등사(等事)에 신자의 모본이 되어야 할 것.
- 5)목사의 주택은 수도(修道)의 낙원(樂園)이여서 매일 승리의 생애로 보낼 것.
- 6)물품매입은 일정한 처(處)에서 배달식으로 하고 목사 부인이 가로상(街路上)에서의 재물(載物)은 피할 것. (비상(非常) 전시(戰時)에서는 할 수 있음).
- 7)해월(該月) 생활은 월초(月初)에 준비할 것.
제2절 영적(靈的) 생활(生活) 제1조 밀실(密室) 생애(生涯) “이등(爾等)이 기도할 때에 동방(洞房)에 입(入)하야 문을 폐(閉)하고 은밀한 중(中)에 재(在)하신 이부(爾父)의게 기도하라. 은밀 중(中)에 감(鑑)하시는 이부(爾父)가 보(報)하시리라”<태(太) 5:6>. 목사 사무(事務) 중(中) 제일 귀한 시간은 밀실에서 기도하는 시간이다. 목사는 타인과 달라서 그의 생애 전부가 기도 정신이 안이면 안이 된다. 일동일정(一動一靜)과 일언반사(一言半詞)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기도로 화(化)하여야 한다. 교회는 신자 모집인 동시에 기도회실(祈禱會室)이다. “아실(我室)은 기도하는 실(室)이어늘”<태(太) 21:13>. 교회당이 기도실이라면 목사는 기도인(祈禱人)이다. 여차(如此)하여야 기(其) 교회는 초대(初代)와 같이 흥왕(興旺)할 것이다. 상제(上帝)는 은밀(隱密) 중(中)에 재(在)하시며 감(鑑)하시니, 기도코저 하는 자(者) 은밀처(隱密處)를 심방(尋訪)하신다. 그곧이 밀실(密室)이다. 목사는 최소한도로 매(每) 이차식(二次式) 밀실에 있어야 한다. 사다즉(事多則) 기도(祈禱)도 다(多)하여야 다사(多事)를 주(主)의 성지(聖旨)로 처리(處理) 된다. 기도(祈禱) 중(中)에는 주신(主神)과 교제(交際)하야 감동과 감화의 능력과 지혜가 충만한 까닭이다. 제2조 서재(書齋) 생활(生活) 목사가 성경을 상고(詳考)하지 안하면 영생의 도리를 알지 못할지니<약(約) 5:39>, 매일 서재(書齋)에서 성경을 독구(讀究)하며 묵상하야 목사 자신이 진리의 오묘(奧妙)를 각득(覺得)하야 영적 양식이 풍부함으로 군양(群羊)의게 포양(飽養)할 수 있도록 하며, 또는 선배 교역자들의 명저서(名著書)와 기타(其他) 도학(道學) 서적과 종교철학 및 과학 등등을 숙독공부하야 성서를 상고(詳考)하는대 개금(開金)이 될 뿐 아니라, 설교요리에 양염이 되도록 하는 동시에 매일 2-3시간은 서재생애를 하여야 한다. 목사가 서재에서 공부하는 것은 야장(冶匠)이 무딘 부인(斧刃)을 연단(練鍛)함과 같이 모든 지식과 성지(聖旨)의 현묘(玄妙)를 학습연구 수양하는 야장(冶匠)과 요리(料理)의 주방(廚房)이다. 내부실력을 충분히 준비의 시기가 늘 있어야 할지라. 제3조 반성(反省)의 생애(生涯) 목사는 신(神)이 안이오 인(人)이다. 신(神)의게는 반성(反省)이 무(無)하려니와 인(人)은 반성으로서 완전케 되나니,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인적(人的) 완전이오, 신적(神的) 완전은 안이다. 목사 역시 신(神)과 같이 전지전능이 아닌 이상에 무시(無時)로 반구제기(反求諸己)로서 고상한 생애를 유지할 수 있나니, 반성이 무(無)하면 타락(墮落)이요, 낙오(落伍)케 된다. 사도 바울이 아신(我身)을 격복(擊服)한다 함은 반성의 의(意)를 표시(表示)함이다. 대개 인간이 반성이 무(無)하면 진보와 개량이 무(無)하나니, 유성증자(儒聖曾子)는 일일삼성오신(一日三省吾身)이라 하였다. 자고(自古)로 성현군자와 의인(義人) 성도(聖徒)가 초인(超人)의 고상(高尙)한 생애를 보내는 비결은 추호의 과실이라도 발견하는 동시에 즉시 반성하였나니, 반성이 민속(敏速)할사록 진보력이 속(速)하나니라. 교역자의 생애는 진보가 되어야 한다. 의사가 타인의 병은 잘 집증(執症)하면서 자신의 병증(病症)은 등한시 함같이 목사가 타인을 교훈하는 것만큼 자기를 교훈하지 안으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자기 사언행(思言行)에 병적이상을 발견하는 시(時)에는 즉시 겸비한 심(心)으로 자반성(自反省)하야 신(新) 경험(經驗)으로써 이(移)할지니라. 제4조 영적(靈的) 향상(向上)의 생애(生涯) 인지성(人之性)이 유수(猶水)하야 유하(流下)하기는 이(易)하나 향상(向上)하기는 난(難)하니, 역류(逆流)에서 주(舟)를 끌고 상행(上行)함과 같으니, 역상(逆上)함은 유하(流下)함보다 다량(多量)의 력(力)을 요(要)하나니, 최선의 노력이 안이면 향상(向上)의 생애를 보낼 수 없다. 교역의 사업이 곤란한 것만큼 각양(各樣) 고난이 부닥쳐 올 시(時)에 낙망하기 이(易)하니, 교역자 태반이나 고난(苦難) 이자(二字)로 인(因)하여 낙제한다. 원래 곤란 그것이 인(人)을 타락케 하랴함이 안이라, 인(人)으로 하여금 완전 향상케 하랴함이다. 역풍(逆風)을 이용하지 못하면 침몰하는 주(舟)도 있는 동시에 역풍(逆風)을 이용만 잘하면 향상의 귀범(歸帆)이 속(速)하게 하는 주(舟)도 유(有)하나니라. 이용 여하(如何)에 재(在)한다. 곤란(困難)을 잘 이용하면 성공하고 잘못하면 실패하나니라. 자고(自古)로 고상(高尙)한 생애(生涯)를 보내는 성도사(聖徒史)를 보면, 비상(非常)한 시험(試驗)을 경(經)하였나니, 아부라함, 모세, 요셉, 다니엘, 주 예수, 바울, 실(實)로 매거(枚擧)키 불능하니 차(此)는 향상이라는 그것은 고난을 경(經)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교역자는 향상의 은사(恩師)되는 고난을 피(避)하려고 하지 말고 권영이용(勸迎利用)하야 소기(所期)의 목적을 달성할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