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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9-12 07:35
그리스도의 교회운동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665  


그리스도의 교회운동(히 4:16, 10:19-20)

교회를 국가조직에 비교해 볼 때, 교회의 대통령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헌법은 신약성서이다. 백성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존재목적은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머리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라 호칭한 것이고, 구성원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Christian Church’ 혹은 ‘그리스도인의 교회’라 부른다. 또 헌법이 신약성서이기 때문에 ‘신약성서교회’라고 부른다. 교회에 관한 호칭은 이렇게 머리가 중심일 때, ‘그리스도의 교회,’ 구성원이 중심일 때, ‘그리스도인의 교회,’ 헌법이 중심일 때, ‘신약성서교회’라 부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에 의한, 그리스도를 위한 교회를 회복하자’(Restore the Church of the Christ, by the Christ, for the Christ).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에 의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회를 회복하자’(Restore the Church of the Christian, by the Christian, for the Christian). ‘신약성서의, 신약성서에 의한, 신약성서를 위한 교회를 회복하자’(Restore the Church of the New Testament, by the New Testament, for the New Testament).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회복하자'(Restore the Church of the Gospel, by the Gospel, for the Gospel of Light and Life). 이 네 가지 가치 있는 회복운동을 펼쳐나가는 교회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이 네 가지 회복운동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를 원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은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에 의한, 그리스도를 위한 교회를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시다. 교회란 그리스도께서 피 값으로 사신 공동체이다. 그리스도께서 눈에 안 보인다고해서 목사가 주인행세를 해도 안 되고, 장로와 집사가 주인행세를 해도 안 된다. 계시록이 분명하게 주는 교훈은 구원의 능력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께 있다는 것이다. 이 능력을 찬탈하고 모방하면서 자기를 높여 숭배케 하는 자를 계시록은 ‘짐승’ 또는 ‘적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다. 또 이 짐승을 앞세우고 높이는 일에 앞장서는 우매한 자들을 일컬어 거짓선지자 또는 666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 주님의 것을 주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은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에 의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회를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분열의 벽, 인종의 벽, 남녀의 벽, 신분의 벽, 계급의 벽을 허물고 ‘그리스도인’이라는 큰 용광로에서 녹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분열을 획책하는 인종의 벽, 남녀의 벽, 신분의 벽, 계급의 벽은 허물어져야 한다. 그때 비로소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유롭게, 히브리서 4장 16절의 말씀대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은혜의 보좌’란 성막 지성소의 법궤 뚜껑을 일컫는 시은소를 두고 한 말이다. 히브리서 6장 19-20절을 보면,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라 하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휘장을 찢고 앞서 지성소로 들어가셨고, 성도의 희망도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그리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을 보면, 그 길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이요,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다”고 하였다. 또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을 지상 성막의 법궤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설명한 이유는 지상 성막이 하나님의 지시로 지어진 하늘 성막의 모형과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 막는 성막휘장은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인위적인 장벽을 상징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찢기신 것은 ‘휘장’이란 장벽이 허물어진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예수님 당시 성전은 네 개의 뜰과 두 개의 성소가 다섯 개의 벽으로 구별되어 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크고 넓은 ‘이방인의 뜰’이 있었고,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유대인 여성의 뜰,’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유대인 남성의 뜰,’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인 ‘제사장의 뜰’ 또 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등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놓인 ‘성소,’ 다시 휘장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법궤가 놓인 ‘지성소’가 있었다. 이 유대교 성전에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인종의 벽’이 있었고, 유대인 여성들과 남성들 사이에 ‘남녀의 벽’이 있었으며, 유대인 남성들과 제사장들 사이에 ‘신분의 벽’이 있었고, 제사장들과 대제사장 사이에 ‘계급의 벽’이 있었다. 그런데 원래 벽은 하나님의 영역인 성막 안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뜰의 장벽들은 다 유대교가 만들어낸 인위적이고 권위적인 벽들이다. 이 모든 벽, 심지어 신성의 상징인 성막휘장까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그 육신을 깨뜨리심으로 다 허물어졌다. 따라서 이제는 민족, 남녀, 신분, 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나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 법궤 앞 시은소 앞으로 나갈 담력을 얻게 되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방인들인 우리조차도 아무런 거리낌이나 방해물 없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 지성소 은혜의 보좌 앞으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더 이상 대제사장도, 제사장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차별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신분이 있고, 계급이 있겠는가? 우리만이 유일한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인만이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 이상이기를 바란다면, 매우 심각하게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은 신약성서의, 신약성서에 의한, 신약성서를 위한 교회를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대우전자의 탱크주의 광고로 화제를 모았던 전 정보통신부 장관 배순훈 박사의 평소의 지론이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였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여러 선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신 목사님은 그림에 재능을 가진 미국 밴더빌트(Vanderbilt) 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신 분이신데, 종이에 무언가를 끌쩍일 때면 언제나 ‘근본’이라는 글자를 적어놓고 그 다음 글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정신이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던 것이다. 이 ‘기본’ 또는 ‘근본’이 바로 교회가 서야할 기반이고, 그 기반이 바로 신약성서이다.

사람들은 새것, 특히 실용적인 것에 가치를 둔다. 그래서 인기 있는 것, 큰 것, 잘 되는 것, 세상에서 통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잘 되지 않는 것에는 뭔가 모를 잘못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속적 가치일 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다. 19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알렉산더 캠벨 목사님이 ‘옛 질서를 회복하자’(Restoration of the Ancient Order of Things)는 운동을 펼쳤다. ‘옛 질서’란 예수님께 배운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말한다. 그들의 가르침을 전하는 책이 신약성서이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의 가르침을 회복하자고 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교파를 초월해서 많은 신학자들이 신약성서교회로 돌아갈 것을 외치고 있다. 교회가 왜곡되고 잘못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믿음에 상관없이 구약성서를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구약성서와 연관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약성서 저자들은 모두가 구약성서의 해석자들이다. 그분들이 해석하고 이해한 방식을 떠나 제멋대로 구약성서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의 가르침이 될 수 없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아주 다른 종교이다. 그 이유는 구약성서에 대한 이해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유대교인들은 신약성서가 구약성서를 이해한 영적인 방식과 모형적인 해석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유대교인들의 문자적인 구약성서이해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유대교를 인정할 수 없다. 바울은 유대교적 기독교를 분명한 어조로 ‘다른 복음’이라고 정죄하였다.

바울은 교회들에 보낸 서신들에서 ‘배운 것’과 ‘전한 것’이란 말을 여러 차례 썼다. 복음을 누구한테서 배웠는가와 누가 전하였는가가 그만큼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1-12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고 하였다. 또 고린도전서 11장 23-25절에서 바울은 주의 만찬의 전례를 전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주님께 배워서 사도들이 전한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올바른 계보요, 전통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주께 받아서 사도들이 전한 것 이외의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정의하였다. 갈라디아서 1장 8-9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6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요한도, 사도의 가르침 이외의 것을 가르치는 자를 일컬어, 거짓선지자요, 적그리스도이라고 단정하였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사도들이 가르치고, 사도들이 행한 예배전통대로 하지 아니하는 것을 일컬어 이단이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교회가 주님께 배워서 사도들이 전한 올바른 복음, 즉 사도전통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약성경 27권은 주님께 받은 것을 사도들이 전한 올바른 복음이요, 전통이요, 계보란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은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크다고 참된 교회인가?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참된 교회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과 같은 개혁가들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펼친 때에 이미 기독교는 1,500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고, 지중해와 흑해 연안의 온 동?서방 세계가 천주교회와 동방정교회를 국교로 하는 거대한 교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시급히 요구됐던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 참된 교회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구원을 받고 받지 못하는 열쇠가 교회의 크기나 역사의 길고 짧음에 있지 않고, 빛과 생명의 복음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서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또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 7절에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고 하셨고, 8절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킨다.”고 하셨으며, 13절에서는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사람의 유전’이란 말은 바리새인들이 만들어 세운 랍비들의 전통을 말하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사람들이 만들어 세운 교회전통을 말한다. 예수님은 율법을 아는 지식과 행하는 일에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기대했고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들,’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진정한 의미와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기보다는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과 전통을 더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그 분을 일컬어 ‘귀신들린 자’(요 7:20; 마 12:24)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요 7:24)고 하셨고,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주인이신 교회, 신약성서가 표준인 교회, 오직 그리스도인뿐인 교회, 빛과 생명의 복음이 전파되는 교회가 이 땅에 충만해질 때까지 개혁운동을 쉬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