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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5 01:43
청소년문화의 최근 경향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000  
1961년에서 1981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일컬어 X세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1999년에 만 18살이 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서 X세대가 끝납니다. 그 대신 2,000년에는 새 천년 세대(Millennial Generation)가 시작됩니다. 내년으로 끝날 X세대의 경향과 생각 그리고 문제들의 특성은 무엇이며, 이들 특성들 가운데 과연 얼마만큼이 새 천년 세대로 이어질 것인가? X세대와 새 천년 세대를 구별할 수 있는 무슨 기준은 있는 것인가?


새 천년 세대는 이제 막 시작될 세대라서 이 세대가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될지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세계에 기여하기 시작했고, 그들만의 독특한 길을 찾고 있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멋과 유행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새 천년 세대가 갖게될 모습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몇 가지로 예측은 해 볼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새 천년 세대는 기성 X세대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입니다. 그런 이유로 X세대를 알지 않고서는 새 천년 세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새 천년 세대의 일부 특징들은 X세대의 것들과 전혀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다른 일부 특징들은 그대로 답습될 것입니다.

새롭지 아니한 것들

새 천년 세대가 그대로 답습하게될 X세대의 특징들 가운데 첫째는 '시각세대'(visual generation)입니다. X세대를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한 가지가 MTV라고 말할 수 있는데, 새 천년 세대도 그렇게 간주될 것입니다. 만약 뮤직 비디오나 콘서트, 비디오게임, 또는 영화에 빠른 템포의 동작이나 기술적 기교가 넘쳐나지 않는다면, 새 천년 세대는 금방 흥미를 잃고 말 것입니다. 새 천년 세대 역시 '시각 중독자들'(visual junkies)입니다. 그들은 빠르게 바뀌는 영상에 길들어진 세대입니다. 또 그들은 지속적인 '히트'(hits)를 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입니다. 오늘의 재미(thrills)가 어제의 것을 능가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지겨워합니다.


시각에 대한 이런 욕구가 그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영상은 모든 것이다"(Image is everything)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많은 젊은이들은 보기에 좋기만 하면 질적인 내용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X세대와 맞물려 있는 새 천년 세대의 시각적 자극에 대한 욕구는 변화에 대한 욕구입니다. 그들은 빠른 템포의 세계에서 안정감을 갖습니다. "리모콘"(remote control)이 그들의 실재를 상징합니다. 변화는 지속적인 반면, 집중은 단편적입니다"(Wendy Murray Zoba, "The Class of 00," Christianity Today, February 3, 1997).


X세대는 현재를 위해서 삽니다. 중요한 결정들이 순간에 좌우됩니다. 그들은 미래에 닥칠 앞일에 대해서 생각지 않고, 단순히 "하고싶다"(feel like doing)고 느껴지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장기적인 결과들에게 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쾌락을 근거로 결정합니다.


그들은 "그곳에 갔었다---그것을 해봤다"(been there---done that)식의 태도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있습니다. 아무 것도 그들에게 충격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이 극단적인 스포츠가 생기고 인기를 얻는 부분적인 이유입니다. 새 천년 세대들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고 싶어합니다. 오늘 재미있어하던 것도 내일 싫증내버립니다. 로날드 달(Ronald Dahl)은 {뉴스위크}(Newsweek)지에서 이 점을 잘 설명하였습니다. "빠른 템포의 삶은 아이들로 하여금 끝없이 더 큰 재미를 찾게 하지만, 만족은 끝없이 줄어들게 합니다. . . . 부모들은 무관심한 아이들을 위해서 새로운 재미를 찾는 데 심각한 억압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본인은 이런 양상을 본인의 자녀들한테서도 보았고, 친구들과 이웃들의 자녀들에서도 보았고, 행동이나 감정의 문제를 갖고 있는 많은 환자들한테서도 보았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끝없이 더 큰 자극을 찾느라 고통을 받는 동안, 그들의 자녀들은 실망해하고 싫증내는 표정이었습니다"("Burned Our and Bored," Newsweek, December 15, 1997).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컴퓨터를 통한 가상공간에서 양육된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전자메일(e-mail)을 즐겨 사용하고, 그들 자신의 홈페이지(Web sites)를 갖고 있으며, 금지된 인터넷 사이트들을 검색합니다. 그들은 기계기술에 매우 편안해 합니다. 부모들은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방법을 배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젊은이들에게는 그것들이 자기들의 분신이나 다름없습니다. 새 천년 세대의 구성원들이 그들의 선배 X세대와는 상당히 다른 방법으로 세상에 왔고 또 환영을 받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냉소적이고 불신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그들의 선배 X세대로부터 물러 받았습니다. 공공기관이나 제도가 불신을 당하고, 충성은 친구나 가족에게 먼저 바쳐집니다.


새 천년 세대가 물려받은 X세대를 둘러싼 가장 심각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도덕적 근거의 상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결정이 옳거나 옳지 아니한 것에 근거해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효과가 있는가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X세대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도덕적 가치들이나 진리들의 보편적인 체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상황과 사견의 문제일 뿐입니다. X세대에 사는 7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절대진리와 같은 것은 없다고 믿고 있으며, 그래서 삶 속에 있는 모든 것은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도덕적 근거를 상실한 자연적인 결과가 범죄와 잔혹성의 증가입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그들의 젊은 자녀들에 대해서 불평을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불평은 예전의 불평과는 다릅니다. 옳은 길을 벗어나 못된 짓만 골라하는 거칠고 반항적인 아이들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 옳은 길이 있고, 무엇이 나쁜 일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많은 젊은이들은 그런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동정심이나 뉘우침도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강도질하고, 사지를 절단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X세대에 속한 사람들은 절대성을 분명히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마치 절대성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바르나 조사 그룹(Barna Research group)은 미국과 카나다에 산재한 13개 교단에 속한 3,795명으로부터 설문조사를 받았습니다. 이 조사에 응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을 다짐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놀랄만한 수의 젊은이들이 부적당하고, 부도덕하고, 심지어는 불법적인 행동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것들

새 천년 세대는 "베이비 온 보드"(Baby on Board)라 쓴 간판들이 등장했을 때에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을 향한 일종의 새로운 "수용"(welcome)태도를 의미하였습니다. 대중문화는 아이들을 돌보지 아니한 부모의 삶의 태도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특별하게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동학대와 안전이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자동차의 에어백이나 어린 아동들의 안전에 관해서 조사하는 것은 아동들의 복지에 관한 관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20년 전 X세대들 같았으면 이런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리 없습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아동들에게 미칠 그들의 영향이란 입장에서 (세금삭감에서부터 적자에 이르기까지) 성인들의 이슈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동복지를 위한 관심과 관련해서 또 다른 사회적 지표는 케이블 TV와 인터넷이 "아이들이 즐겨보는"(child-friendly) 채널과 사이트(havens)를 차단하였다는 것입니다. V칩의 발명은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시청해서는 안될 프로그램을 막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영화등급제도도 청소년들을 보호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이 해로운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시키는 인터넷 프로그램들이 시중에 나와 있어 사용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교육에서의 몇 가지 변화는 고무적입니다. 교육가들이 다시 "기준"(standards)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핵심가치들을 배우고, 선한 일들을 하며, 기준대로 행하고, 못된 행위들을 철저히 처벌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새로운 R들은 규율(rules), 존경(respect), 그리고 책임(responsibility)입니다. 교복 착용이 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살피고 있고, 자기 자녀들의 교육에 활발한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 아이들의 시험성적은 다른 여러 나라와 비교해서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도시 4분의 3에서 청소년 통금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 범죄를 현저하게 줄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주의회는 아동보호법을 아동복지로 변경하였습니다. 이전 세대와 같이 부모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법정은 아동의 잘못에 대해서 부모를 벌하는 경향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움직임에 대한 근본적 이유는 부모들에게 자기 자녀들이나 청소년들의 삶에 좀더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X세대는 (출산억제나 낙태의 증가가 보여주었듯이) 가장 원치 않았던 세대였던 반면, 새 천년 세대는 불임치료와 조숙아 육아와 같은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의학발전의 일부를 상징합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불임관련 의사를 찾은 횟수가 4배로 커졌습니다. 1970년에는 2파운드(0.9kg)의 조산아가 살아남을 확률은 5퍼센트에 불과했지만, 1990년에는 90퍼센트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이 일인당 평균 10만불(1억3천만원) 정도 듭니다.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들에서는 부모 중의 한 사람이 가정에 남아 살림과 아이 키우는 일이 인기 있는 선택으로써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기록적인 수의 남편들이 가정주부(家庭住父)로써 즉 가정에 남아 집안 살림과 자녀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미스 키퍼즈(Promise Keepers)나 다른 비슷한 운동들은 남편들로 하여금 더 좋은 아버지와 남편들이 될 것을 다짐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3명 가운데 2명의 부모가 수입을 줄이고 가정에 돌아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일자리 나누기나 재택근무(telecommuting), 또는 성과급(career sequencing)과 같은 새로운 일자리 경향으로 많은 부모들이 집에 오랜 시간 머물 수가 있어서 방과후 집에 돌아온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교회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그것은 가정에 바탕을 둔 청소년 목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정 문제들에 관한 세미나나 훈련 또는 조언 프로그램을 반드시 제공해야 합니다. 엄청난 역기능 속에서 성장한 세대에게는 결혼과 가정생활에 관한 경건한 원칙들에로 그들을 인도할 건전한 모델이 필요합니다. 청소년 프로그램은 가정을 도와주는 것이어야지, 경쟁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의 문화 속에 사는 많은 젊은이들은 어떤 교회배경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회전통과 예배에 전혀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일종의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에 익숙지 아니한 손님들은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조금은 알게 될 것이고,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교회식"(churchy)용어 사용을 피해야 하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말로 회중을 이끌어야 합니다.


예배, 청소년집회, 주일학교 학급들은 수정되어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비디오, 드라마, 또는 멀티미디어의 사용이 가능하다면 언제나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질적으로 수준 높은 예배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예배가 끌려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의식적인" 성격보다는 더 "축제적인" 성격이 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의 청소년 문화는 복식에 있어서도 분명히 격식이 없고, 자유롭습니다. 젊은이들이 블루진이나 티셔츠 차림을 했더라도, 교회가 그들을 환영하고 있고, 평안하게 해준다는 느낌을 갖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토니 캠폴로(Tony Campolo)는 {청소년 목회의 사회학: 미국에서의 성장}(Growing up in America: A Sociology of Youth Ministry)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을 위대함에로 영감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이들에게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소명을 맡기신 에이전트란 사실을 볼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우리는 그들이 삶을 위해서 비교할 수 없는 열정을 만들어내는 소명감을 가진 젊은이들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 . . 청소년 사역에서 우리는 젊은이들과 관계하는 최고의 방법은 여러 가지 형태의 오락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 . . 아마도 우리는 오히려 우리의 젊은이들이 도전을 받아드려서, 영웅들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그들을 초청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소개: Gary B. Zustiak is professor of youth ministry at Ozark Christian College, Joplin, Missouri, and author of The Next Generation(College Press,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