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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11-14 23:04
초대 로마 황제들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166  
예수의 탄생, 생애, 기독교의 출범 그리고 초기 박해가 초기 로마 황제들의 재위 기간에 이루어졌다. 특히 이 기간 동안에 신약성서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들 황제들에 대한 지식은 신약성서의 이해를 도울 뿐아니라, 초기 기독교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 플라비우스 왕조를 제외하고는 황제의 직위는 대부분 세습되지 아니하고 양자(養子) 피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1)아우구스도(Augustus/63 B.C.-A.D. 14):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주전 27에 황제가 되어 주후 14년에 사망하였다.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이다. 주전 34년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제 2회 삼두정치(三頭政治)를 시작하여, 그 이듬해에 브루투스와 케시우스 등의 공화파를 빌립보 전투에서 물리쳤다. 레피두스가 실각한 뒤에는 안토니우스와 대립하였고, 주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하였고, 그 다음해에 이집트를 정복하여 천하를 평정하였다. 주전 28년에 원로원의 제 1인자가 되었고, 주전 27년에 아우구스투스(존엄자)의 칭호가 주어졌다. 그가 죽은 후에 원로원에 의해서 신(神)으로서 제사가 받들어졌다. 예수는 주전 6년경 아우구스도 황제 때에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다.

(2)티벨리우스(Tiberius/42 B.C.-A.D. 37): 로마 제국의 제 2대 황제이다. 재위 기간은 주후 14년에서 37년까지이다. 질식사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예루살렘에 교회가 창립된 주후 30년이 티벨리우스 황제 때였다. 티벨리우스는 초기에 선정을 베풀었으나 후기에는 공포정치를 펼쳤고, 고립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주로 키프로스 섬에서 지냈다.

(3)칼리굴라(Caligula/A.D. 12-41): 로마 제국의 제 3대 황제이다. 재위 기간은 주후 37년에서 41년까지이다. 본명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이다. 칼리굴라는 소년시절 애용했던 어린이용 군화(칼리굴라)에서 나온 별명이다. 그의 치세는 당초 명문의 가문을 존중했기 때문에 인망을 모을 수 있었지만, 중병으로 쓰러진 다음에는 정신분열증을 나타내었다. 시기심으로 유력자를 처형했는가 하면 원로원을 무시했으며 자신을 신처럼 숭배할 것을 강요하는 등 전제군주정치로 기울어졌다. 특히 황제 자신에 대한 예배 강요는 예루살렘이나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유태인들의 저항의 원인이 되었다. 41년 1월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궁정 안에서 암살 당했다.

(4)클라우디우스(Claudius/10 B.C.-A.D. 54): 로마 제국의 제 4대 황제이다. 재위 기간은 41-54년까지이다. 교양이 풍부했으나 몸이 쇠약했으므로 혁혁한 무공을 세운 형 게르마니쿠스의 그늘에 가리워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생질 칼리굴라 황제가 암살된 후 근위대에 의해서 추대되어 51세에 황제가 되었다. 견실한 정치를 하여 브리타니아, 트라키아, 아프리카를 속주로 삼았다. 그러나 측근으로서 점점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 해방노예와 황후에게 억눌리게 되었다. 세 번째 황후 메살리나를 그녀의 애인과 함께 암살 혐의로 처형했으나, 다음 황후 아그리피나에 의해서 54년에 독살 당했다. 아그리피나는 자기가 데리고 들어온 아들 네로를 황제로 세우기 위해서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했다고 한다.

(5)네로(Nero/37-68): 로마 제국의 제 5대 황제이다. 재위 기간은 54년에서 68년까지이다. 본명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헨노바르부스이다.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권력욕 덕분에 16세에 황제로 추대되어 초기 5년 동안은 철학자 세네카, 근위장관 브루스의 보좌로 해방노예의 중용, 매관(賣官) 폐습의 시정 등 선정을 베풀고 어머니의 정치 개입을 억제하였다. 이 때 그녀가 동생 브리타니쿠스를 지원하자 네로는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고, 이어 59년에는 그의 어머니도 죽였다. 이 무렵 브루스가 죽고 세네카도 떠나 네로의 폭군적 행동은 날로 심해졌다. 네로는 어려서부터 예술에 관심을 가져 시를 짓고, 특히 대중 앞에서 키타라(하프)를 연주하며 노래하여 갈채 받는 것을 즐겼다. 64년 7월 18일 로마의 대경기장 관중석 밑에 들어찬 가게들에서 발화하여 강풍을 타고 불이 크게 번져 9일 동안에 걸쳐 로마시 3분의 1이상을 태웠다. 항간에서는 네로의 악취미에서 나온 유희적 방화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네로는 간신 티게리누스 등의 진언을 듣고, 당시 사회에서 혐오를 받고 있던 기독교인들에게 책임을 전가시켜 대학살을 감행했다. 체포된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거나 짐승 가죽을 뒤집어 씌워 맹견에 물려 죽게 하는가 하면, 소위 '인간 횃불'로서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도 이 때 순교 당했다고 전한다. 이 때의 처참했던 상황은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수에토니우스는 {네로 전기}에서 기독교인들이 수난을 당한 것은 그들의 유치한 미신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다음해인 65년에 원로원 의원 피소가 주동이 된 음모가 발각되었다. 세네카도 이 음모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네로로부터 자결 명령을 받았다. 66년 네로는 그리스에 가서 그리스의 자유를 선언하고 올림피아의 경기에 참가하여 미리 짜고 하는 시합으로 많은 영관(榮冠)을 차지하였다. 68년 갈리아에 이어서 에스파냐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원로원과 군대에게 버림받아 로마를 탈출했다가 추격을 받고 68년 6월 9일(30세 5개월 20일) 자살하였다. 폭군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며 그가 죽은 후에도 네로가 다시 나타났다는 풍설이 도는가하면, 중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전설이 이어졌다.

☞ 이상 5명은 율리우스 왕조(Julius family) 출신의 황제들이었다.

(6)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9-79): 로마 제국의 제 6대 황제로써 정복자이며 플라비우스 왕조의 시조이다. 재위 기간은 68년부터 79년까지이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용장으로써 66년 말 네로 황제로부터 유태인 독립전쟁을 진압하라는 명을 받고 팔레스틴에 파병된 로마 군대의 총사령관이었다. 그는 전쟁 중이던 68년에 네로가 죽자, 군단의 지지를 얻어 황제에 즉위하였다. 그는 내정에 주력하여 실추된 국가 위신을 회복하였고, 내란으로 인한 파괴를 복구하는 데 진력하였으며, 재정을 정비하여 신전과 콜로세움 등을 건설하였다. 또한 그는 정복한 나라들의 식민지화를 추진하여 왕조의 기반을 공고히 다졌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사후에 신(神)으로 숭배되었고, 그의 아들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가 차례로 황제의 위에 올랐다.

(7)티투스(Titus/39-81): 로마 제국의 제 7대 황제이며,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이다. 재위 기간은 79년부터 81년까지이다. 아버지의 유대지방 원정에 동행 중 68년 네로가 죽자, 황제에 즉위하기 위해서 로마로 개선하는 아버지로부터 유대 전쟁의 전권을 위임받아 70년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이 때의 전공은 티투스 개선문에 기록되어 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부터 통치를 도왔으며, 아버지가 죽자 그 뒤를 계승하였다. 재위 중에 발생한 베스비오 화산의 대폭발(79년 8월 24일), 로마의 대화재(80년), 페스트의 만연 등 각종 사고가 잇따르자 적극적으로 이재민을 구호하고 시설 복구에 진력하는 등 관대하고 인도적인 정책을 써서 민중의 인기가 높았다. 유명한 콜로세움은 그의 치세 동안에 완성된 것이다. 사후 신격화되어 그의 선정은 길이 칭송되었다.

(8)도미티아누스(Domitianus/51-96): 로마 제국의 제 8대 황제이며,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이다. 형 티투스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재위 기간은 81년부터 96년까지이다. 기독교를 박해하고 원로원을 제압하였으며 비판자를 탄압하는 등 공포정치를 실시하였다. 86년부터는 자신을 신격화시켜 신(神)으로 부르게 하였다. 다른 한편, 그는 방만한 국가 재정을 개혁하였고, 80년에 발생한 로마 재화재를 급속히 복구시키는 등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였다. 만년에는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하여 신하들을 모반죄로 학살하였다. 이에 불안을 금치 못하던 황비 도미티아에게 암살되었다.

☞ 이상 3명은 플라비우스 왕조(Flavius family) 출신의 황제들이었다.

(9)네르바(Nerva/30-98): 로마 제국의 제 9대 황제이다. 재위 기간은 96년에서 98년까지이다. 오현제(五賢帝)2)의 한 사람으로 71년과 90년에 두 번 집정관이 되었고,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된 후에는 원로원에서 선출되어 고령으로 즉위하였다. 관대하고 정의감이 풍부한 훌륭한 사람이었으나 행정, 군사의 경험이 없어, 황제를 삼기 위해서 양자(養子)로 피택된 트라야누스에게 전권을 맡김으로써 양자 선택이라는 황제 세습의 선례를 남겼다.3) 그의 재직 중에는 빈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였다.

(10)트라야누스(Trajanus/52-117): 로마 제국의 제 10대 황제이다. 재위 기간은 98년부터 117년까지이다. 에스파냐의 이탈리카 출신이다. 117년 킬리키아에서 병사하였다. 트라야누스는 112년경 소아시아 비두니아 지역의 감독이었던 플리니(Pliny the Younger)와의 서신 왕래에서 기독교인들의 처벌에 관한 지시를 남기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친애하는 플리니 총독, 그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발된 사람들의 사례를 심문함에 있어 정당한 과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실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확정된 법은 없습니다. 그들은 발본색원해내야만 할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발되고 그들의 혐의가 입증된다면 다음의 유보사항을 참조하여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즉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부정하고 그것이 실제로 증명되면 그가 비록 과거에 그리스도인이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할지언정, 말하자면 우리의 신들을 예배함으로써 스스로 배교한 그 결과에 따라 사면해야 할 것입니다. 익명의 투서들은 어떤 내용의 고발이라 할지라도 큰 비중을 차지해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은 매우 나쁜 전례가 있으며, 또한 이 시대에 어울리는 것도 아닙니다.4)

(11)하드리아누스(Hadrianus/76-138): 로마 제국의 제 11대 황제이다. 재위 기간은 117년부터 138년까지이다. 오현제(五賢帝) 중 3번째이다. 에스파냐의 이탈리카 출신으로써 트라야누스의 먼 친척이다. 트라야누스가 117년 킬리키아에서 병사할 때에 양자로 피택되었다. 132-135년에 발생한 유대 전쟁 말고는 태평성대를 보냈다. 하드리아누스가 예루살렘에 신 로마도시(Aelia Capitolina)를 설립코자 하였을 때에 바르 코크바(Bar Kochba)를 중심으로 열심당원들이 반발하여 전쟁이 일어났다. 유대인들은 이 전쟁의 패배로 팔레스틴에서의 종교적 민족주의를 잃게 되었고 예루살렘은 신로마시가 되고 말았다. 이후 하드리아누스는 할례를 금하고, 예루살렘을 재건하여 일리아(Aelia)로 개명하였으며, 성전 터에 주피터 신전을 건축하고 유대인 출입을 사형으로 금하였다.

각주

1)Carl Roebuck, The World of Ancient Times(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66) pp. 560-638; {학원세계대백과사전}(학원출판공사, 1994);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6-9권, 김석희 옮김(한길사, 1997-2000).

2)로마 평화 시기의 다섯 황제들을 말한다: 네르바(Nerva/96-98), 트라야누스(Trajanus/98-117), 하드리아누스(Hadrianus/117-138),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161-180).

3)양자 선택의 황제 세습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아들 코모두스(Commodus/180-192)를 황제로 선택함으로써 끝나고 말았다. 이로써 오현제가 육현제로 이어지지 못했다.

4)H. Bettenson, Documents of the Christian Church, pp. 5-7; Norman Perrin and Dennis C. Duling, {새로운 신약성서개론}(An Introduction of the New Testament), 박익수 옮김(한국신학연구소, 1991), 189-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