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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5-02 16:14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의 당위성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883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의 당위성
On the Validity of the Korean Christian Church and Church of Christ Movement

글 조동호 목사

1. 이 운동의 뜻풀이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자로 ‘기독교회’란 뜻으로써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교회(Church of Christ)란 뜻이고, 둘째는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을 주체로 삼는 교회(Christian Church)란 뜻이다. 이렇게 교단명칭을 정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전 세계 모든 주님의 교회들이 이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란 통일된 이름아래서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전 세계 모든 주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통일된 이름아래서 일체가 되는 모범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범을 바르게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는 올바른 행동지침이 필요한데 그것이 신약성경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두 가지 운동을 펼친다. 첫째는 ‘그리스도인 운동’(Christian Movement)이요, 둘째는 ‘신약성경교회 운동’(New Testament Christianity Movement)이다. 우리는 이러한 운동을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믿어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이라고 부른다. 200년전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미국과 캐나다에는 2만3천여 교회와 4백만 성도들이 있고,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켄터키 주 루이빌 시에 있는 주일평균 2만 명 이상 최고 3만 명까지도 모이는 ‘사우스이스트 그리스도의 교회’(Southeast Christian Church)가 대표적인 교회이다. 우리나라에는 5백여 교회가 전국에 흩어져 있고, 교육기관으로는 서울에 그리스도대학교와 서울기독교대학교, 등촌 중학교, 대전에 한민대학교(구 한성 신학교), 부산에 동서대학교와 경남정보대학 등이 있다.

2. 이 운동의 시작과 발전

이 운동에 소속된 자로서 한국에 첫 발을 디딘 사람은 일본주재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커닝함(William D. Cunningham)이다. 그는 1907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열린 선교사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한국을 거쳐 간 것이 전부지만, 이후 한국 선교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최초의 인물이다.

1911년 일본인 성도가 요츠야 선교부(Yotsuya Mission)에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설립을 위해서 15엔 70전을 맡겼고, 카닝햄은 일본 거주 한국인을 한국에 보내서 이 돈을 쓰게 하였다. 1916년 동경주재 커닝햄 선교부가 한국 선교의 거점 확보를 위해서 힘썼고, 1923년에 일본 요코하마시 미야다죠 조선인 교회(橫浜市 宮田町 朝鮮人 敎會)를 설립하였으며, 1924년 10월에 이완균을 한국에 파송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구세군 사관 출신의 성낙소 목사가 1927년 1월 1일에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 처가(妻家) 사랑방에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를 자발적으로 세웠고, 기독지교회 출신 일본 유학생의 소개로 커닝햄과 연결되어 1930년 5월에 미야다죠 조선인 교회에 부임하였으며, 1931년 9월 하순에 귀국하여 1932년까지 일 년여 동안 커닝함 선교부의 조선포교책임자로 일하였다. 이후로는 이인범이 조선포교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35년에는 최초로 미국인 제이 마이클 쉘리(J. Michael Shelley)가 선교사로 입국하여 일 년 남짓 머물렀고, 1936년에는 커닝함 선교부에서 일하던 죤 채이스(John T. Chase) 선교사가 입국하여 4년간 머물면서 선교의 기반을 다졌으며, 1939년에는 힐 요한(John Hill) 선교사 부부가 입국하여 채이스 선교사의 뒤를 이어 1971년까지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다른 한편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이자, 후에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동석기(무악기)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와 게레트 신학교를 졸업한 후 감리교 목사로 귀국하여 활동하다가 재차 도미하여 1929년 신시내티 기독대학교를 졸업한 후 1930년에 귀국하여 그해 11월부터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역시 감리교 출신이자, 일본 관서학원 신학부와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한 강명석(무악기)이 1936년 귀국하여 합세하였고, 연희전문학교 제1회 졸업생이며, 한 때 <신학세계>의 편집을 맡아보았던 최상현 목사가 채이스 선교사의 동역자로 가세하였다.

50년대 이후에는 감신대학교와 밴더빌트 대학교 신학부를 마친 이신 박사가 합세하여 활동하였으나 왜정말기의 어려운 정세와 6.25사변으로 선교사들이 철수하는 등 발전하지 못하다가 50년대에는 장로교 목사였던 김은석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지방의 교역자들이 합세하여 남부지방에 큰 부흥의 역사를 자생적으로 이뤘으며,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힐 요한(John Hill), 해롤드 테일러(Harold Taylor), 최수열(L. Haskell Chesshir, 무악기), 말콤 파수리(Malcolm E. Parsley, 무악기), 배도은(Gorden Patten), 미국에서 공부한 최윤권 목사, 이신 목사, 장성만(전 국회부의장) 목사 그리고 70년대에는 역시 미국에서 공부한 김찬영 목사 등이 가세하여 대학들을 세우고 목회자들을 배출함으로써 비로소 발전의 기회를 타게 되었다. 70년대에는 또한 수많은 유능한 목회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세우기도 하였다.

3. 타 교단에서의 이 운동의 흔적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이 상기한 인물들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이밖에도 여기에 열거하지 못한 수많은 인물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 밖에서, 곧 한국의 타 교단에서 이 운동이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이미 이 운동에 눈을 뜬 소수의 선각자들이 있었다.

국내에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란 이름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1889년 7월에 입국한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이었다. 펜윅은 침례교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자신은 교파의식을 떠나서 사역하였으며 그가 관계한 교회들은 ‘대한기독교회’로 알려져 있었다. 다음은 펜윅이 쓴 자서전(The Church of Christi in Corea)의 일부 내용이다.

하나님은 나를 어떠한 교단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르셔서 사역을 맡기셨고, 이 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주님께로 돌아오는 영혼들이 많아지자 감독자들을 임명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고,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간결한 교회 이름을 지었는데, 한국어로는 ‘대한기독교회’(Dai Han Kitock Kyouhay)였으며, 그것은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The Church of Christi in Corea)란 의미였습니다(허긴, <대한기독교회사: 펜윅 선교사의 자서전적 이야기>).

1891년 마펫에게 세례를 받고 장로교회 목사로 시무했던 한석진은 ‘교파주의’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자생적 환원운동가였다. 한석진 목사는 기회만 있으면 교파구별이 없는 ‘하나의 교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는 1909년 일본 도쿄에 유학생들의 한인교회를 설립할 때에 초교파적인 연합교회로 세울 것을 주장하였고,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로 세우기를 원하는 학생들과 본국교회를 설득하여 “일본에서만큼은 장로교나 감리교가 아닌 연합교회로 운영한다.”는 원칙을 만들어냈고, 1915년에는, 물론 부결됐지만, 자신이 속한 경기충청노회에 ‘조선예수교장로회’란 교단명칭을 “조선기독교회로 바꿀 것”을 헌의하였으며, 1930년 금강산에 세워진 2층짜리 돌집 수양관의 이름을 ‘장로교 수양관’이 아닌 ‘기독교 수양관’으로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여 관철시켰다(이덕주, “한국교회의 자존심, 한석진 목사”).

10대 후반 수원농림학교 재학시절 기숙사에서 처음 기독교신앙을 접한 최태용은 어느 날 침상에 누우려 할 때에 홀연히 광명한 빛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복음을 위하야 네 몸을 바치라”는 가슴에 울리는 소리를 듣게 되고, 20대에 “그리스도는 생명이다!”는 묵시를 얻게 되었다. 27살에 박동완, 전영택, 송창근, 강명석, 최상현, 채필근 등이 동인지처럼 펴내던 <신생명>(新生命)에 글을 발표하다가 28살에는 스스로 <천래지성>(天來之聲)을 펴냈다. <저자 주: 강명석(관서학원과 밴더빌트대학 졸업)과 최상현(연희전문과 협성신학 졸업, ??신학세계?? 편집)은 본래 감리교 목회자들이었으나 1930년 중반부터는 그리스도의 교회 발전에 공헌함.> 그는 이 신앙지에서 “사람은 다만 그리스챤이란 일흠 외에 무삼 딴 일흠으로써 신자를 부르기 십허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리스챤 이외의 일흠으로써 여배(余輩)를 부르랴거든 여배(余輩) 또한 한 일흠을 제공하리라.... 여배(余輩)는 교회주의라는 것이 비진리오 악마의 오묘(奧妙)임을 주창한다.”(“비교회주의자”, <天來之聲>) 17호, 1926. 10)고 하여 ‘오직 그리스도인!'(Christian Only!)을 주창하는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의 한국인 선구자가 되었다. 36살이던 1933년 9월 어느 날에는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물살이 센 큰 강을 건너는 꿈을 꾸고서 “소(小)하고 순(純)한 교회”를 세우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여 1935년 12월 22일 ‘기독교 조선 복음교회’를 창설하였다. 이 때 그가 제창한 표어가 “1)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여라. 2)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여라. 3)교회는 조선인 자신의 교회어여라.”(“우리의 표어”, <영과 진리> 81호, 1935. 12)였다.

성낙소(成樂紹) 목사는 1890년 5월 16일에 태어나 1964년 11월 30일 74세로 소천 하였다. 그는 일찍이 구국의 일념으로 홍주성 의병군에 가담하여 왜적을 물리치려 하였으나 기회를 놓치자, 구세군에 가입하여 이를 실현하려 하였으며, 기미년 독립만세운동 때에는 영동지방의 유지와 청년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왜경에게 쫓겨 다녔던 애국지사였다. 이 시기에 처가가 있던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 2구 290번지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곳 사랑채에서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를 시작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성낙소 목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27년 정월 초에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에서 성낙소 자신이 기독교계를 시찰한바 기독교 각파가 기독 정신의 골자인 박애(博愛)로 속죄구령의 목적을 충각(忠覺)하고 각기 자파(自派)의 교세만 확장하려는 동시에 자파가 아닌 교회는 이단시할 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심이 농후함으로 상대하는 입장에 소원(疏遠)함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성서 중 에베소서 4장 3~6절 말씀과 같이 칠종(七種)을 통일하자는 신앙으로, 첫째 몸도 하나요 하였으니, 몸은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리킴이라(엡 1:23; 골 1:24). 교회의 명칭을 기독의 교회라고 통일하기 위하여 기독의 복음으로 동민에게 전하였다(성낙소, ??자서전?? 제2장).

4.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의 당위성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리스도의 교회는 두 가지 운동을 펼친다. 첫째는 ‘그리스도인 운동’(Christian Movement)이요, 둘째는 ‘신약성경교회 운동’(New Testament Christianity Movement)이다.
‘그리스도인의 운동’은 교회가 ‘하나 되자’는 운동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성도들의 이름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인’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교회’인 것이다. 다른 모든 이름들을 버릴 때 지상의 주님의 교회들은 한 이름 아래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약성경교회 운동’은 진리 운동이며,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표어의 올바른 표현이다. ‘성서로 돌아가자’는 표어에는 수많은 교회들을 이단에 빠지게 하는 함정이 있고, 실제로 이단교회들이 즐겨 쓰는 표어가 ‘성서로 돌아가자’ 또는 ‘성서가 표준이다’와 같은 표어들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이미 200년 전부터 이 운동을 펼쳐왔지만, 침례와 성만찬과 마찬가지로 이 운동 역시 오늘날에는 타 교단의 많은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이슈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구약성서에 대한 신약성서 저자들의 입장은 유대교의 입장과 명백하게 다르다. 유대교에서는 구약성서의 말씀들을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모든 계명을 문자적으로 지킬 뿐만 아니라, 모든 예언의 말씀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포함한 모든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구약성서를 모형론 또는 유형론(Typology)으로 이해했고, 영적으로 해석하였다. 이것을 일컬어 구약성서에 대한 ‘구속사적 성서이해’라고 말한다. 이런 해석의 차이 때문에 유대교와 기독교는 결코 같을 수 없는 아주 다른 종교인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서의 해석을 유대교 랍비들과 달리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전통에로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운동인 것이다. 이점을 16세기의 종교 개혁가들이 바르게 지적하지 못한 채 ‘성서로 돌아가자’고 했기 때문에 교회들이 수없이 많이 찢어졌고, 문제점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이나 분열의 아픔이 치유되지 못했고, 유전병처럼 후대에까지 대물림되어 왔던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종말관과 메시아관에서 나타난다. 기독교가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을 믿고 있는 반면, 유대교는 미래에 이루어질 종말론(futuristic eschatology)을 믿고 있다. 유대교에는 영적구원이 없고, 오직 육적구원만 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구원과 그의 재림 때에 육적 완성이 이뤄질 것을 말하는데, 유대교에서는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大)구원이 이뤄졌고, 제2의 출애굽사건을 주도할 메시아(왕)가 오심으로 그 구원이 완성된다고 본다. 기독교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 이미 실현된 구원의 확신, 곧 재림(종말) 때에 주어질 축복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 땅에서 미리 맛보고 누리는 영적 축복이 있는 반면, 유대교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데, 유대교인은 메시아가 나타날 때까지 미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인들은 2500여 년 전부터 두 가지를 희망하고 있었다. 첫 번째가 메시아가 나타나는 것이고, 두 번째가 그 메시아가 가져올 ‘올람 하바’(Olam Ha-Ba)이다. ‘올람 하바’란 ‘메시아 시대’ 혹은 ’다가올 세계‘(World to Come)를 뜻한다. 이 ’올람 하바‘ 곧 ’다가올 메시아 세계‘는 흔히 말하는 ’종말시대‘ 또는 ’마지막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 ’다가올 마지막 세계‘가 2천 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인류의 대속을 위한 것이었고, 그분이 승천하시고 대신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의 활동은 다가올 마지막 세계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다. 성령님의 활동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가 ’올람 하바‘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힘입어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과 성령님의 ’중생과 씻음과 거룩하게 하심‘을 받은 사람은 이 ’올람 하바‘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500여 년간 몹시 고대하던 그 마지막 세계 혹은 종말시대가 성령님의 활동을 통해서 ’교회‘라는 새 언약 공동체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영적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 시대를 교회시대, 혹은 성령시대라고 부른다. 또 이 시대를 다른 말로는 시작된 종말시대 또는 실현된 종말시대라고 부른다.

시작된 종말이나 실현된 종말이란 말은 영적인 종말을 뜻하는 것이고, 종말의 완성을 뜻하는 것은 ‘아직’ 아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말, 혹은 ‘칭의’나 ‘중생’이란 말은 종말이 완성되는 때에 주어질 완전한 구원의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고, 성령님으로 보증 받고, 인침 받고, 그 축복들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과 보호하심과 변호하심과 치료하심 속에서 맛보고 누리며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대표적인 축복은 하나님의 평강이다. 마음의 평화, 가정의 평화, 이 평화가 있는 곳에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지, 끝은 아니다. ‘끝’ 곧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이뤄진다. 그리스도인들이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23절에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이 유대인들에게는 없다. 그들에게는 시작된 종말이나 실현된 종말의 축복이 없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조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뿐이고, 성령님으로 보증 받고, 인침 받고, 그 축복들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과 보호하심과 변호하심과 치료하심 속에서 맛보고 누리며 경험하는 것이 없다. 유대인들에게 시작된 종말의 축복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다가올 시대‘란 그들 민족만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올람 하바‘는 유대인의 제2의 출애굽 사건, 곧 유대인의 대 구원 사건을 말하는데, 이 사건은 영적인 사건이 아니고, 육적인 사건이다. 문자적인 이스라엘 왕국의 완전한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 국가가 건국되었는데, 건국된 지 60여년이 흘렀어도 이스라엘 왕국이 완전하게 회복되었다고 믿는 유대인은 없다. 아직 메시아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세계를 통합할만한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큰 차이점은 메시아관(觀)에서도 나타난다. 유대교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기독교가 말하는 ‘구세주’(救世主)도 아니고, 죄가 없으신 삼위일체 신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을 되찾게 해줄 다윗과 같은 영웅이자 제2의 출애굽 사건을 이끌 모세와 같은 인물이라고 본다. 그 같은 인물이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을 회복시킴으로써 정치적 영적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며, 이스라엘에 한 정부를 세울 것이고, 그것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전 세계 정부의 중심에 세울 것이며, 성전을 재건할 것이고, 성전예배를 다시 세울 것이며, 이스라엘의 종교법정 체계를 회복시킬 것이고, 나라 법으로써 유대법을 세울 것이라고 믿는다. 메시아에 대한 이런 큰 차이 때문에 오늘날의 유대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메시아’란 말을 쓰지 않고, ‘모쉬아크’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펼치는 ‘그리스도인 운동’과 ‘신약성경교회 운동’은 가장 시급하고 적절한 운동이자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는 운동이다. 기독교 신앙은 계시의 신앙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는 신앙이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내리 사랑으로 항상 먼저 인간을 찾으신다. 인간을 위해서 대안을 갖고 찾아오시고 손수 문제해결의 길을 마련하신다. 인간이 이렇게 저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시겠다는 판단에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법으로 예배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내용으로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지시하신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순종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시고 복을 주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신약성서의 지시대로 하는 교회가 참 교회이고, 그대로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이다. 인간이 좋아하는 방법과 인간의 생각에 좋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드려서는 안 된다. 그런 예배는 인간의 감각과 즐거움을 위한 예배이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와 뜻을 따라 이 땅에 바로 세워지는 교회들이 많아질 그날을 위해서 우리는 이 운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