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16): 신앙으로
변화 -
‘하나님께
헌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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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협
임원단,
회장
최훈,
총무
문은식,
서기
장성우,
회계
허송 |
노먼
빈센트 필 박사의 ‘적극적인
사고의 힘’은
베스트셀러이다.
‘어떤
시련에 봉착한다 할지라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 맡기면 축복으로 변해질 것이다’
1925년에
노벨문학상 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20세기
비극은 인간이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미래가 열려진다.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시련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시련
속에 성공의 열쇠가 있다.
나는
어릴 때는 내성적이고 말도 잘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 별명은 ‘끄싱이’
이였는데
‘바보’라는
뜻일 것이다.
중학교
때 신앙을 가지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내
별명이 대학교 다닐 때는 ‘도깨비’가
되었다.
이리
번쩍 저리 번쩍한다는 뜻이다.
“장성우는
산 위에 교회를 세워도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거야,
친화력이
대단하거든...”
하고
말했다.
침울하고
내성적이던 내가 활발한 학생이 되고 구석에 숨어 있던 내가 신앙으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활보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도서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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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젊은 시절 사진 |
젊은 시절의 김대중 선생님은 정말 매력적인 점이 많은 분이었다.
약간
고집스럽지만 심기가 굵고 옳다고 믿는 것은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는 보기 드문 정의의 행동가였다.
그리고
명석한 두뇌와 독서를 무척 좋아하는 대단히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분이었다.
가장
큰 장점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1961년
강원도 인제에 재보궐 선거가 있었다.
그는
민주당 소속으로 지구당 위원장을 하고 있었다.
강원도
출신이 아닌 호남 출신이었는데,
1959년에
있었던 인제군 재보선에 출마했지만 한 번 고배를 마셨고,
이듬해인
1960년
총선에 출마했다가 또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앞서 당선된 사람이 물러나면서 치르진 1961년
재보궐 선거에서 드디어 금배지를 달았다.
그런데
인생은 그에게 상당히 가혹했다.
마치
그에게 다가올 훗날 인생에 대한 복선과 같았다.
1961년
그해 재보선은 5월
14일
날이었다.
그가
국회의원 당선을 확인하고 기뻐한 날은 5월
15일,
그리고
그 다음 날인 5월
1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고 국회는 해산됐다.
의정활동을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그렇게 끝났다.
당선
이틀 만에 금배지가 날아가 버렸지만 어쨌든 그의 첫 국회의원 입문은 1961년
5월
14일,
5.16 쿠데타
이틀 전에 치러졌던 강원도 인제 재보궐 선거였다.
하루
후를 내다 볼 수 없는 인간이다.
인제
보결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어서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축하 겸해서 조직문제로 각 대학교 대학생들과 만나게 되었다.
나도 바로 김대중의원 옆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는
어려운 학생들을 두루 살피는 폭 넓은 분이었다.
이렇게
만난 김대중 선생으로 인하여 동대문경찰서에 잡혀가는 고초도 겪었지만,
인동초처럼
고난을 겪으며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게 되었다.
“장성우
동지,
앞으로
나와 함께 일을 해야겠어.
남북통일연구소
사무총장을 맡아줘야겠어”
하고
부탁을 했고,
목회를
하기 전에는 그분을 오랫동안 따라 다녔다.
김대중
선생님이 대통령에 출마를 했을 때 비서관을 우리 신학교로 보냈던 일이 있다,
고향에서
지구당위원장을 맡을 수 있겠느냐고 했으나 “과거에는
정치에 꿈을 가졌으나,
이젠
예수를 믿고 교수로 후진양성에 매진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하고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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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에서
사역하시는 김찬영 목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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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신 한경직 목사님이 남한산성에 계실 때,
최훈
목사님과 같이 방문했는데,
검소하신
생활에 감동을 받았다.
그때
붓글씨로 쓴 ‘너
어디에 있느냐’(창3:9)
하는
글씨를 주셔서 평생 교훈으로 걸어 놓았다.
“한국교회는
신앙의 힘을 잃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한국에 공헌했으니 더욱 열심히 사회를 위하여 봉사해야 합니다.”
하시는
말씀이 생생하다.
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도록 신학교로 이끌어 준 김찬영 박사에게도 감사하다.
김찬영
박사는 훈춘과 북한에서 장애인과 유아,
어린이들을
위하여 값진 생애를 보내고 있다.
미국인
부인 패츄리사 여사는 신앙으로 모범을 보이는 훌륭한 내조자이다.
그들이
키운 양자녀는 8명이
된다.
모두
훌륭하게 자랐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정확하고 치밀하다.
공부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면서 학문에 대해 많은 것을 연구하게 되었다.
신학적
토대를 튼튼히 쌓고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동서대학교
이사장으로 계신 장성만 목사님은 국회부의장으로 계시면서 그리스도의교회 목회자들을 국회로 초청해서 담소를 나누는 도중에 나와 이름이 같다고
의형제를 맺자고 해서 평생 형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래서
총회장 취임식에 와서 설교도 해주시고,
둘째
딸 주례도 서주시고,
자주
부산 대학교에 초청도 해주셨다.
정말
귀한 만남이다.
장성만
목사님이 나를 동서대학교 교목으로 청빙코자 했으나 우리 신학교 이사장이 반대하여 가지 못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정년을 마치게 되었다.
돌아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내
가슴에
찬란한
사랑
내
가슴에
빛나고
있는
사랑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생명
주님은
나의 사랑이십니다
내가
슬프고
외로울
때도
내가
방황할
때도
주님께서
사랑하시니
나는
행복
합니다
주님께서는
자비롭고
따뜻한
눈길로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대하는
주시기에
나는
행복
합니다
하늘에
빛이
그리고
별이
빛나고
있기에
주님이
만든
우주에서
호흡하기에
나는
주님의
사랑으로
행복
합니다
이
땅의
삶
속에서
불러
주시고
나를
찾아
오셔서
주님께서
끝없는
사랑을
주시기에
가슴에
가득한
사랑
때문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모든
충성으로
뜨겁고
깊은
사랑을
보내며
영원한
나라의
주인
되시는
당신을
나의
구주로
만났기에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