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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27 08:53
윌리엄 커닝햄 선교사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203  

커닝햄 Cunningham, William D. 1864.7.19.~1936.6.24. 미국 그리스도의교회(Church of Christ) 목사, 선교사.




















미국 펜실베니아주 트론 타운쉽(Lower Tyrone Township)에서 농사짓는 메튜 커님햄(Matthew Cunningham)과 리디아 뉴커머(Lydia Newcomer Cunningham)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농사일을 하며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는 기독교 분위기의 가정에서 보냈다. 어린 커닝햄의 장래 희망은 대학을 졸업하여 교사가 되는 것으로 1887년 여러 해 동안 일하며 저축한 돈으로 캘리포니아 주립사범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4년 후 그의 나이 27세 돌연 목회에 대한 소명을 받고, 그리스도의교회의 정신으로 세워진 베다니대학(Bethany College)에 2학년으로 편입하였고 이곳에서 그의 미래 복음사역에 유익한 많은 경험을 쌓았다.

베다니대학 졸업 후 1894년 7월 29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성 도마교회(St. Thomas Church)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였다. 목회 시절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동일한 관심을 갖고 기도하던 에밀리 B. 보이드(Emily Blackstone Boyd)를 만나, 1898년 6월 2일 결혼하였다. 갓 결혼한 커닝햄 부부는 신혼여행 기간에 해외그리스도인선교회(Foreign Christian Missionary Society, 1875년 창립)에 지원하여 합격한 후, 일본 선교를 제안 받고 준비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커닝햄의 몸에 이상이 생겨 선교사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후 커닝햄 부부는 총 4년에 걸쳐 네 차례 더 지원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매번 불가 판정을 받았다. 결국 커닝햄 부부는 독립선교사 신분으로 일본에 가기로 결정했다.

커닝햄 부부는 1901년 9월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차이나(China) 호에 승선하여, 10월 1일 일본 요코하마(橫濱)에 도착하였다. 도쿄(東京)에서 생계를 목적으로 시간제 교사로 영어를 가르쳤고, 얼마 후 일본 귀족대학에 영어 강사로 채용되었다. 도쿄에 도착한 지 한 달 만인 1901년 11월 1일 선교기금 모금의 방편으로 월간 선교소식지 「그리스도인 표준」(Tokyo Christian)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1902년 선임 선교사들로부터 요츠야(四谷)선교부를 인수받고, 이곳을 선교본부로 삼고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커닝햄의 지도 아래 수행되는 요츠야 선교부의 선교사역에는 분명한 선교정책, 즉 선교 목적과 전략이 있었다. 선교 목적은 선교지에 자립(자전, 자치, 자급)하는 토착교회를 설립하는 것이고, 선교 전략은 여러 분야의 사역들 가운데 복음전도(교회개척)와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교육에서는 성경교육이 강조되었다. 성경교육은 초신자 교육과 본토인 사역자 교육으로 구분되었다. 초신자 교육은 주일과 주중 개설된 성경 관련 교육이고, 본토인 사역자 교육은 교회와 관련 기관에서 사역할 본토인 사역자를 양성하는 교육이었다.

커닝햄은 선교 초기부터 일본인 젊은 교인들을 가르쳐 오다가, 1905년부터 사역자반(Workers' Class)을 개설하여 지도하였다. 이후 요츠야선교부는 선교부 교회의 담임 사역자가 자체적으로 젊은 교인들을 사역자로 가르치고 훈련할 수 있게 했다. 요츠야선교부의 일차적 선교대상은 일본인이었으나 1923년부터 그 대상을 한국인으로 확대하였다. 요츠야선교부가 한국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커닝햄이 1907년 중국 상해에서 열리는 '모리슨100주년기념국제선교사대회'(Morrison Centenary Missionary Conference)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경유하면서 부터였다. 당시 한국은 평양대부흥운동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로 커닝햄은 이때 1,200명의 교인들이 모여 통성으로 기도하는 부흥회를 목도하고 큰 감동을 받아, 한국에 그리스도교회를 개척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요츠야선교부의 본격적인 한국인 선교는 1923년 이후 도쿄와 요코하마에 사는 재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동 선교부는 선교부에서 훈련을 받은 신실한 한국인 교인들을 도쿄와 요코하마에 파견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여, 도쿄에 2개, 요코하마에 1개의 한국인 교회를 세웠다. 1931년 9월 선교부 제7교회의 담임 사역자 김상준이 한국인 사역자를 훈련하는 학교(Bible Training School for Korean Workers)를 개설했으나 그의 조기 사임으로 중단되었다. 개척된 한국인 교회들은 빠르게 성장하였지만 사역자의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인 교회의 사역자들 중 요츠야선교부에서 훈련을 받은 사역자들은 극히 소수였고, 대부분은 타 교단에서 훈련받은 목회자들로 이들은 선교회로부터 급료를 받고 사역하였다.

1924년 요츠야선교부는 한국인 사역을 한국으로 확장하고, 이원균, 박흥순 등을 사역자로 임명하여, 선교기지(포교소)를 개설하고,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1930년 서울에 첫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선교사역은 한강 이북(평안북도)과 제물포(현재 인천) 그리고 한강 이남(마산 대구 등 주요 도시)으로 확장되었다. 1930년대 후반 제물포에서도 교회가 설립되었다. 제물포 제1교회(담임 사역자 신신근)는 1936년 9월 교회 자체적으로 한국인 사역자 교육 야간성경훈련학교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서울에서는 1938년 초 서울 제1교회(담임 사역자 이인범)가 커닝햄이 생전에 계획했던 한국인 사역자 교육 성경훈련학교를 개설하고, 2월 중순 입국한 요츠야선교부의 선교사 힛치(Thomas G. Hitch)의 지도 아래 운영하였다. 한국인 사역자를 훈련하는 서울의 성경훈련학교는 힛치의 조기 귀국 후에도 한국인 사역자들에 의해 운영되었으나, 요츠야선교부가 한국 선교의 재정 지원을 중단한 1941년 3월 이후 문을 닫았다.

한국인 사역자 수급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요츠야선교부 교회들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선교부 교회의 빠른 성장에 고무된 커닝햄은 1935년 4월과 1936년 3월 한국을 방문하여 교회들을 시찰하고, 이후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선교여행을 시작하였다. 5월 중순 캘리포니아주를 출발하여 애리조나주와 콜로라도주를 거쳐 미네소타주 로체스터(Rochester)에 도착한 다음날, 암 진단을 받고 때늦은 치료를 시작하였으나 6월 24일 별세하였다.

커닝햄이 사망할 당시 요츠야선교부는 한국인 교회 15개(한국에 12개, 일본에 3개)를 세우고, 한국에 12명, 일본에 있는 한국인 교회들과 유치원 및 주일학교들에 다수의 한국인 사역자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유해는 펜실베니아주 파예트 카운티 코넬스빌(Connellsville Fayette County)의 힐그로브 묘지(Hill Grove Cemetery)에 안장되었다.

부인 에밀리 보이드 커닝햄(Emily Boyd Cunningham)은 커닝햄 사망 이후 요츠야선교부를 이끌었고, 스틸 부인(Mrs. Owen Still)과 공동으로 윌리엄 D. 커닝햄(William D. Cunningham)의 전기 The Flaming Torch(1939)를 저술했다. 1953년 12월 25일 별세하였고 유해는 그녀의 요청에 따라 도쿄 도시마구(豊島?) 조시가야(?司ヶ谷) 묘지에 안장되었다. 자녀로는 엘로이즈(Eloise, 1899년 9월 4일 미국 출생), 도리스 엘렌(Doris Elaine, 1902년 8월 29일 일본 출생), 룻(Ruth, 1906년 5월 7일 일본 출생), 커닝햄 2세(William D. Cunningham Jr. 1912년 4월 12일 일본 출생)을 두었다. 차녀 도리스 엘렌은 1928년 7월 일본 선교사로 파송되어 요츠야선교부의 사역을 보조하였다. 요츠야선교부 제1교회(후에 와카바<若葉>기독교회)의 자리에 커닝햄기념교회가 설립되어 1938년 11월 20일 헌당되었다.

[주요저술]

[참고문헌] TC 1901~ 1936; Mrs. W. D. Cunningham and Mrs. Owen Still, The Flaming Torch: The Life Story of W. D. Cunningham, Tokyo: The Yotsuya Mission, 1939; Mark Maxey, "Christians in Japan 100 Years(1883-1983)", http://www.bible101.org/japanmissions/page01.htm; Board of Ministerial Relief of the Church of Christ: Application for a Pension Certificate; “Our Forth Anniversary", TC vol. V no.1 Nov. 1905; "Miscellaneous", TC vol.ⅩⅩⅩ no.12, Oct. 1931; Yotsuya Mission Calender, vol. 38 no.1, Nov. 1938; “Yotsuya Mission Annual Report: Timothys", TC vol.XXX no.4, Feb. 1932; https://www.findagrave.com/memorial/90192802/william-d-cunningham; 김찬영,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초기 역사』 , 한성신학교, 1991; 백종구, “윌리엄 D. 커닝햄과 한국인 선교-동경 요시야선교회를 중심으로,” 「신학논총」 (2012); 백종구, “도쿄 요츠야선교회와 재일 한인교회: 미카와시마(三河島)조선기독교회의 개척과 성장 (1901-1947)”, 「한국교회사학회지」 53(2019);  백종구, 조동호, 『한국 그리스도의교회의 역사』, 쿰란, 2018; 오수강, 『基督의 敎會와 성낙소와의 관계』, 쿰란, 2007.

TC: Tokyo Christian

백종구(전 서울기독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