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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27 08:55
오웬 스틸 선교사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182  

스틸 Still, Owen 1892.12.3.-1973.7.12. 미국 그리스도인 환원협회(Christian Restoration Association) 전도자, 선교사.

존슨성서대학(Johnson Bible College)과 신시내티성서신학교(Cincinnati Bible Seminary)를 졸업하고, 환원협회의 전도자로 사역했다. 커닝햄 부인(Emily Boyd Cunningham)의 선교사 동원으로 1937년 10월 24일 일본에 도착하여 커닝햄 부인의 사역을 보조했다. 1938년 1월부터 선임 선교사 힛치(Thomas G. Hitch)가 맡았던 월간 선교소식지 「도쿄 그리스도인」(Tokyo Christian)의 편집과 선교부의 회계를 인계받고, 선교부 교회들을 순방하여 교회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사역의 문제들에 대해 목회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인 셜리 스틸(Shirley Swetnam Still)은 선교부 제3교회에서 주일 오전 성경반을 개설하였다.

스틸은 1938년 3월 학생 설교자 훈련반을 시작하고 이어서 일본인 목회자반, 영어성경반을 열고, 주일에 1개 반을 가르치고, 2개 교회에서 설교했다. 또 7월 주일 오후 자신의 거처에서 선교기지 성경학교를 열었다. 1939년 봄 힛치의 사역을 도우려고 한국을 방문하여, 힛치 관할 아래 있는 서울과 제물포(현재 인천)에서 선교부 교회들을 순방하며 사역들을 시찰하였다.

스틸은, 힛치가 1939년 8월 말 호주로 돌아간 후, 서울 성서훈련학교(Bible Training School)에서 가르치고 이끌어갈 한국인 사역자 홍종숙, 이인범, 신신근을 「도쿄 그리스도인」에 자세히 소개하였다. 또 새로운 선교사가 한국에 올 때 까지 요츠야선교부는 6개월에 한 번씩 선교사를 파견하여 한국의 복음사역을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스틸은 한국의 복음사역 관리 차원에서 1940년 6월과 9월 각기 거의 한 달씩을 한국에서 보냈고, 1941년 초 일본에 일어난 변화(종교단체법과 교회합동)로 인해, 요츠야선교부의 한국의 복음사역 지원이 3월 이후 끝날 경우를 대비한 사후 대책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인 셜리 스틸과 자녀들은, 오웬 스틸 2세와 막내 딸 룻의 건강문제로, 미국 대사관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1940년 10월 31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스틸은 1941년 6월 초 안식년으로 미국에 들어갔다가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 중 스틸은 미국에 머무르면서 재미 일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1941년 9월(40권 11호)~1943년 3월(43권 2호)까지 「도쿄 그리스도인」을 계속 편집했다.

전쟁 종료 후 1947년 2월 중순 일본에 돌아와 요츠야선교부의 재건에 힘썼다. 그러나 부인의 건강이 악화되어 최소 1년간 건조하고 따뜻한 지역에서 보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1948년 6월 재차 안식년으로 미국에 들어가 당분간 아리조나주 피닉스(Phoenix)에 머무르면서, 사우스웨스트기독신학교(Southwest Christian Seminary)에서 선교를 가르치고, 새로운 선교교회(Mission Church)를 개척했다.

스틸은, 부인의 건강 때문에 의사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950년 5월 4일 사역지를 옮겨 하와이로 떠났다. 하와이의 오하우(Oahu)섬에서 7개 그리스도의교회의 설립을 돕고, 팔롤로 밸리(Palolo Valley), 칼리히(Kalihi), 카네오헤(Kaneohe), 하우울라(Hauula), 와하이아(Wahiawa), 마이레(Maile), 선세트 비치(Sunset Beach)에 있는 교회들에서 목회했다. 1973년 7워 12일 오하우 섬 와하이아종합병원(Wahiawa General Hospital)에서 별세하여 하와이 호놀룰루 와이파우(Waipahu, Honolulu County),  밀리라니추모공원(Mililani Memorial Park)에 안장되었다.

부인 셜리 스틸(Shirley Swetnam Still)은 글솜씨가 있어 환원협회의 월간지 「환원전령」(Restoration Herald)에 기사를 많이 썼고, 커닝햄 부인과 공동으로 윌리엄 D. 커닝햄(William D. Cunningham)의 전기 The Flaming Torch(1939)를 저술했다. 별세 후 유해는 스틸의 묘지에 합장되었다. 자녀로는 아들 스틸 2세(Owen Still Jr.)와 딸 엘리너(Eleanor Sprankles), 레베카(Rebecca Kerby), 룻(Ruth Powell)이 있었다.

[주요저술] "First Impressions Of The Yotsuya Mission" (CS 15 Jan. 1938); “Member of Yotsuya Mission to Japanese on West Coast"(CS 25 Jul. 1942).

[참고문헌] "Mr. & Mrs. Owen Still", TC vol.XXXVII no.1, Nov. 1937; “Editorial”, TC vol.XXXVII no.2, Dec. 1937; "Mission News", TC vol. 37 no.3, Jan 1938; “Things Of Interest", TC vol.37 no.5, Mar. 1938; "Mission News", TC vol. 37 no.7, May 1938; "The Newest Out-Station Bible School", TC vol.37 no.9, Jul. 1938; "A Visit To Korea", TC vol.38 no.7, May 1939; “Account of A Tour of Yotsuya Mission Churches in Korea", TC vol.38 no.12 Nov. 1939; “Tour of Yotsuya Mission Churches in Korea", TC vol.39 no.1, Dec. 1939; "A School In Tokyo", KM Dec. 1939; "Tokyo Night School for Christian Workers", TC vol.39 no.2, Jan. 1940; “Mission News", TC vol. 39 no.9, Aug. 1940; "Why We Work in Korea", TC vol.39 no.10, Sep. 1940; "My First Trip To Korea", TC vol.39 no.12, Nov. 1940; “Mission News", TC vol.40 no.2, Dec. 1940; “Our Korean Work", TC vol.40 no.7, May 1941; "Brother Still to Spend Summer in America", TC vol.40 no.8, Jun. 1941; "Yotsuya Mission Entering New Field", TC vol.41 no.4, Feb. 1942; "Yotsuya Mission Entering New Field", TC vol.41 no.4, Feb. 1942; "Yotsuya Mission Executive Committee Meets", TC vol.42 no.1, Dec.1942; "Stills Get Health Furlough", TC vol.47 no.3, May-Jun. 1948; Eva Green, “Best Wishes to Stills”, TC vol.49 no.3, May-Jun. 1950; Mark Maxey, "Christians in Japan 100 Years(1883-1983)", http://www.bible101.org/japanmissions/page01.htm; Nora Rebecca Kerby, In Word Or in Deed: The Story of Owen Still, Sr, Mission Services Press, 1970; https://www.findagrave.com/memorial/220401949/owen-stil; 백종구, “윌리엄 D. 커닝햄과 한국인 선교-동경 요시야선교회를 중심으로”, 「신학논총」 (2012); 백종구, 조동호, 『한국 그리스도의교회의 역사』, 쿰란, 2018.

TC: Tokyo Christian, CS: Christian Standard, KM: Korean Messenger: Korea For Christ

백종구(전 서울기독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