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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3-27 07:48
배신자들의 대표 가룟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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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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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들의 대표 가룟 유다◀
지난 6백여 년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라와 로마제국에 차례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채 살아온 유대인들에게 유월절 축제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가슴 설레는 날이었고 긴장이 감도는 날이었다. 유월절은 제1출애굽사건을 기념하는 동시에 지난날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고통과 역경과 방랑의 세월을 되씹으며, 이방민족에게 유린당한 약속의 땅의 회복을 염원하는 축제였다. 따라서 8일 동안 열리는 이 축제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왠지 모를 흥분과 기대에 휩싸였고, 몸과 마음이 부풀어 오른 풍선과 같아서 누군가가 찔러만 주면 당장이라고 폭동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유월절은 민중봉기의 가능성이 연중 가장 높은 시기였고, 권력층의 사람들이 결코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숨 가쁜 한 주간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그의 행동을 예의 주시해왔던 사람들이 봉기의 때가 왔다고 믿게 할 만한 오해의 불길 속에 몸을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기대에 찬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터뜨려 줄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제자들은 그간의 고생을 끝내고 명예와 권세와 재물을 얻게 될 순간이 눈앞에 왔다고 생각했고, 민중과 권력자들은 “이번 명절에는 과연 예수가 메시아임을 밝히 드러낼 것인가?”라는 기대와 우려를 갖고 있었다. 메시아의 출현을 막아야할 정치권에서는 예수님을 체포할 구실을 찾으려고 정보원들을 붙여 감시하면서 적절한 때를 기다리며 긴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부터 민족해방과 다윗왕국의 영광재현을 위해서 반란을 일으켜 줄 것을 바라는 민중의 세속적인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사랑의 복음을 전하려 했기 때문에 민중의 환멸이 극에 달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일찍부터 자신이 폭력을 수반하는 세속적인 메시아가 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랑의 메시아로 왔지,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민중의 영원한 반려자이기를 바랐지, 통치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민중은 처음부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갖고 싶은 것만 갖고자 했다. 따라서 민중은 예수님의 사랑의 교훈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고의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현실문제에 눈이 어두운 무력한 사내 또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예수님께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민중의 환멸은 순식간에 증오로 바뀌었다. 그들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어설픈 혁명가였을 바라바를 놓으라고 외친 것도 다 이 증오심 때문이었다.
제자들 가운데는 가룟 유다만이 예수님이 사랑의 하나님을 가르치기 위해서 민중의 기대를 저버린 채 분노의 불길 속에 몸을 던지려한다는 것을 알고 고뇌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마음은 정을 줬던 여인에게 환멸을 느껴 헤어지려 해도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사내의 마음과도 같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배신은 예수님에게서 환멸을 느낀 모든 이들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가혹한 현실에 사랑의 하나님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랍비여, 당신은 사랑보다 큰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보다 지금 당장 효과가 있는 것을 원합니다. 현실에 쓸모 있는 것밖에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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