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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04 21:41
‘비움’과 ‘채움’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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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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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의 하모니◀
비움은 채움을 위한 것이고, 채움은 비움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비움과 채움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고, 채우지 않으면 비울 수 없다. 그래서 비움과 채움은 역설적이지만 동질성이다. 비움은 채움의 또 다른 모습이다. 비움은 채움을 위한 것이지만, 채움에는 비움의 지혜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채울 때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을 채울 것인가, 어디에 놓을 것인가, 어떻게 놓을 것인가, 절제와 통제가 필요하다. 이것을 잘 하는 사람이 예술가이다. 동양예술에는 단순함과 품격 있는 절제미가 있다. 이것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예술가이고, 신앙인이고, 성인이다. 소유욕에 사로잡혀서 채우기에 급급하면 추해진다. 조잡한 그림이 되고, 싸구려 조각이 되고, 헐값의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러나 비움과 채움의 적절함이 배어있고, 비움과 채움이 절제된 모습으로 정제된다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이것을 경북 봉화의 천량사 주지 스님 지현은 ‘여백의 미’라는 글에서 ‘꽉 차지 않고 조금 비어 있는 듯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서양에서는 볼 수 없는 동양 고유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여백의 미는 산수화나 풍류를 즐기는 삶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 안쪽에 자리 잡은, 서두르지 않고 넘치지 않는 여유로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지현은 또 사진작가인 서명 스님의 말을 인용하여 사진이 사진답게 나오려면 과감한 ‘트리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트리밍’이란 잘라낸다는 뜻이다. 이발사가 웃자란 머리칼을 잘라내어 깔끔한 모습을 연출해내고, 조경사가 웃자란 나뭇가지들을 잘라내어 조경의 멋을 연출하듯이 사진사가 사진의 아랫부분이나 윗부분의 중요치 않은 부분을 잘라냄으로써 완벽한 미학을 연출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트리밍이 필요하다. 채움 속에서 비움의 미학이 들어나는 것이 아름다운 그림이고, 바이올린과 장구의 통이 비워있을 때 내는 소리가 바로 소리의 향기요 맛이다.
강북제일교회 황형택 목사는 「최경주의 비움과 채움」이란 제목의 국민일보 칼럼에서 프로 골퍼인 최경주의 삶의 철학을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다. 잔을 비워야 또 다른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 버리는 것이 기적을 만들어 낸다.”는 말로 소개했다. 그는 또 버림은 손실이 아니다. 버릴수록 채워지는 역설의 진리는 우리를 부요하게 만드는 풍요의 끈이다. 비움의 끈을 잡으면 채워진다. 자기를 비우는 일은 무력한 자의 어쩔 수 없는 삶의 발자취가 아니다. 능력으로 무장된 자만이 할 수 있는 강력한 하나님의 무기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비움으로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사건이다. 빌립보서의 고백대로 “오히려 자기를 비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하시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신 것이다. 비움은 채움이다. 채움으로 부와 명예가 유지되지 않는다. 비울수록 인생은 수많은 아름다움으로 장식될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잘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요, 잘 다듬어진 조각 작품이며, 명품이다. 예수님처럼 멋진 명품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비움과 채움의 조화를 부릴 줄 아는 삶의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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