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02-06-29 16:34
최초의 조선 기독교인들 - 고쯔시마(神津島)의 오다 쥬리아 묘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255  


최초의 조선 기독교인들 - 고쯔시마(神津島)의 오다 쥬리아 묘
http://kccs.pe.kr/karch01.htm

오다 쥬리아는 한국인 최초의 기독교인들 중의 한 사람이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적장이었던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 세례명 아우구스티노)가 전쟁고아가 된 조선인 어린 소녀 한 명을 일본으로 보내어 부인 유스티나에게 기르게 하였다. 이 때부터 이 소녀는 고니시 집안의 양녀가 되어 일본에서 학문과 기독교 신앙을 익히게 되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天家康)에게 패하면서 히데요시의 부하였던 고니시 유끼나가가 1600년에 처형되었고 집안도 몰락하였지만, 쥬리아의 미모와 총기가 이에야스의 눈에 띄어 측실로 간택되었다. 그러나 쥬리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귀영화를 버리고 하나님만을 따랐다. 이 점에 대해서 일본에서 활동했던 아론죠 뮤뇨스 신부는 '1606년에 발생한 가장 주목할만한 사실'이란 제목의 예수회 연례보고서에서 "쥬리아 자신은 한국 태생의 포로출신인데 고니시 장군의 양녀로서 신앙을 갖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쥬리아 자신도 "만일 이에야스 장군이 여인들을 자주 불러 가는 것처럼 나를 자기 침실에 들라 하더라도 내가 거기서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 . . .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고 하였다.

이에야스는 1611년 천주교를 박해할 때에 쥬리아를 회유하였으나,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 버릴 수 없다."며 거절하였고, 1612년 4월 20일에 오오시마(大島)로 유배당하였다가 다시 니이시마(新島)를 거쳐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은 고쯔시마로 옮겼다. 쥬리아가 고쯔시마에까지 오게 된 이유는 그녀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감화를 받고 기독교에 귀의함으로 지방의 관리들이 상부에 진정한 까닭이었다.

쥬리아는 고쯔시마에서 서너 세대밖에 되지 않는 섬 주민들에게 글과 사랑을 가르치며 기도로 생활하다가 1651년 경에 자유인이 되었다. 섬 사람들은 쥬리아가 죽은 뒤로 330년이 넘도록 그녀를 섬의 수호자로 받들며 지금도 생화를 바치고 있다고 한다[{절두산 순교 기념관 개관 20주년 기념 화집}, 28-29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