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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9 16:46
한국 기독교 성장에 미친 미륵신앙의 영향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873  
한국 기독교 성장에 미친 미륵신앙의 영향
An Influence of the Faith in Amida Buddha on the Growth of Korean Christianity
http://kccs.pe.kr/misc04.htm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된지도 천주교를 기준하여 200년, 개신교를 기준하여 100여 년이 넘었다. 짧은 선교 역사이지만, 남한의 기독교 인구를 1천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단한 성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기독교가 우리 나라에서 성장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학을 전공하는 선지생도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중국이야 공산국이기 때문에 신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같은 동양문화권인 일본과는 몹시 대조적이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성령의 역사, 한국 기독교인의 선교열, 한국인의 종교적 호기심 등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한가지로 한국의 민중신앙인 불교의 미륵신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종말론적인 미륵신앙이 성서의 묵시문학적 종말사상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직접적인 이유는 될 수가 없겠지만, 적어도 상황적 또는 사회학적인 이유는 될 수 있을 것이다.


1956년 경주에서 신라시대의 돌십자가, 동제 십자가와 마리아 관음상 등 경교(Nestorianism: 콘스탄틴노플의 감독이었던 안디옥 출신의 Nestorius/428-431가 신수태설/神受胎說/Theotokos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수태설/ Christokos를 주장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였다.)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어 기독교의 한국 전래를 멀리 통일 신라시대로 올라가 생각케 한다. 기독교의 한 교파였던 경교가 당나라에 전래된 것은 이미 A.D. 635년의 일이 였으며, 이 당시 삼국은 당과의 교류가 빈번하였다[{기독교대백과사전} 기독교문사, s.v. "경교"]. 이 당시 경교가 불교의 영향권내에 들어가 미륵신앙의 영향을 받아 발전되었을 것이라는 흔적을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에 실린 메시아의 한자음 미시사(彌施詞)나 부처와 유사한 메시아 상이나 교회당을 대진사(大秦寺), 전도자를 경교승(景敎僧)이라 한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김광수. {동방기독교사, p. 145]. 여기 미시사(彌施詞)는 미륵(彌勒)을 염두에 둔 한자음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미륵이 불교의 메시아불(佛)이란 점에 서 찾을 수 있다.


미륵신앙이란 구세주 불(佛)인 미륵과 불국토(佛國土) 또는 정토(淨土)의 도래를 고대하는 민중신앙으로서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에 나타난 일종의 종말론적 메시아 사상이다. 이는 이미 삼국시대에 널리 수용되었고, 특히 백제에 많이 유포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국가가 어지럽고 민심이 혼란 되었을 때일수록 미륵신앙과 성서의 천년왕국과 유사한 정토 또는 용화세계(龍華世界)를 기대하는 신앙이 성행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견훤이나 궁예가 미륵을 자칭하고 나섰던 자들이며, 이들은 기독교의 문선명이나 박태선과도 비교가 된다. 고려시대에 서경천도론을 주장하였던 승려 묘청이나 몽고군과 맞서 싸웠던 승려 우본과 김윤후,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던 승려 신돈 등이 미륵신앙에 근거하였고, 조선조의 임꺽정의 난, 정여립의 난, 이몽학의 난, 홍경래의 난 등의 발생도 미륵용화세계라는 지상 낙토(樂土) 또는 정토(淨土)를 실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민중불교인들은 말한다. 특히 전봉준이 이끈 갑오년 동학농민전쟁과 삼일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법성 외. {민중불교의 탐구} 민족사, pp. 73-87].  또 "왕씨가 송도에서 500년을 도읍하고 이씨가 한양에서 500년을 도읍한 뒤에 정씨가 계룡산에 800년의 새 시대를 열고, 다시 조씨가 가야산에서 1000년의 시대를 연다"는 정감록(鄭鑑錄)도 미륵사상에 바탕을 둔 한국의 묵시문학적 예언서라는 점을 부언코자 한다[정다운. {정감록: 정감록 원본 해설} 도서출판 밀알].

그러면 미륵신앙이란 무엇인지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에 나타난 종말론적 메시아 사상을 중심으로 검토코자 한다.[청신거사 성진제열 편역, {미륵삼부경}(불서출판 보련각, 1985).] 여 서의 과제는 미륵경(彌勒經)에 나타난 불교의 미륵신앙이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과 유사한 점이 있는가를 검토하는 데 있다. 먼저 신 구약성서를 통해서 나타난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을 간략하게 적고, 이어서 미륵상생경(上生經)과 하생경(下生經)에 나타난 미륵신앙을 검토하여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쓴 {미륵상생경종요}라는 글도 있으나 내용은 다 같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1. 성서를 통해 본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

구약성서의 역사이해는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메시아 사상에 근거한 역사이해요, 둘째는 후기 유대교의 묵시문학적인 역사이해이다. 전자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세계통치를 꿈꾸는 정치적 지상 메시아 왕국에 근거한 민족사이며, 후자는  세계사 전체를 포괄하는 우주적 회복과 세계심판에 근거한 묵시문학적 역사이해이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수용함으로서, 구약성서가 예언한 메시아적 종말론적 사건을 예수의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 속에서 성취된 것으로 믿고 현재화 시켰으며, 후기 유대묵시문학적 역사관과 결합하여 주의 재림과 새 세계의 도래를 기대함으로서 미래화 시켰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바벨론 포로 직전 직후에 활동한  예언자들이 종말론적 사건으로 메시아 출현, 성령강림,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에 의하면, 미래의 메시아 왕국은 문자적으로 회복된 정치적 다윗왕국을 뜻하며,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통치하게 될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사건과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초대교회 공동체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정치적 메시아 왕국으로 믿었던 기대를 멈추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영적 메시아 왕국 즉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예수의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서 시작되었다는 시작된 종말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 초대교회 공동체는 구약성서를 영적으로 풀이하였다. 한편 시작된 메시아 왕국이라는 현재적 종말론과 후기 유대묵시문학적인 미래 종말론이 결합되어 임박한 주의 재림과 세계종말 신앙이 싹트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서 종말은 세계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신천신지의 메시아 왕국의 시작을 의미하였다.  이로 인해서 성도들은 교회를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지 아니하고, 임박한  주의 재림과 부활 신앙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을 기대하였다. 이로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을 통해서 선취(先取)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된 삶을 종말론적으로 누리고 맛보는 현세에 실현된 종말 혹은 시작된(현재적) 종말론과 몸의 부활과 우주의 회복을 기대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라는 미래종말론이 병존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선교에 전념하게 되었다.

2. 미륵경을 통해 본 불교의 메시아 사상
  1) 상생경
이 세계가 생겨 없어지는 동안을 현겁(賢劫)이라 하는 데, 이 현겁에 천분의  부처가 나온다고 한다. 미륵불은 석가모니불 다음에 나오는 다섯 번째 부처이다. 미륵은 일찍이 석가모니와 함께 보살도를 닦아 보살의 최후의 몸인 보처(補處)보살 즉 다음 생에 부처가 되는 신분을 가지고 현재 도솔천주(도率天主)로 있으면서 하늘권속을 교화하다가 다음 우리 인간에 출현하여 부처가 되면 삼회(三會)의 설법으로 무한 중생을  구원하게 되며, 그 세계를 용화세계(龍華世界)라 한다. 따라서 미륵보살은 오는 세계에 살게  될 중생들의 귀의처(歸依處)가 되며, 만일 그에게 귀의하면 미륵이 성불할 적에 부처의 광명을 보고 장차 부처가 된다는 증언인 수기(授記)를 받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미륵경은 예언서와 같은 책이다. 상생경(上生經)은 보처보살인 미륵의 도솔천의 삶을 적은 글이요, 하생경(下生經)은 미륵의 지상에서의 삶을 적은 글을 말한다.


상생경은,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있은 어느날 법회 때, 우바리(優波離)존자가 미륵의 장래에 대해서 묻고, 부처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미륵의 장래를 예언하는 글로 시작된다. 이때 부처는 미륵이 도솔천에 왕생할 것과 하늘의 천자(天子)들이 그를 위해서 아름다운 보배궁전을 지어 바칠 것과 뇌도천신이 법당을 지어 바칠 것과, 범천 하느님들의 공양과 다섯 신(神)의 조화를 보게된다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도솔천의 대표적인 법문은 고공무상무아(苦空無常無我)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괴롭고(苦), 삼라현상은 인연으로 모였을 뿐, 헛된 것이며(空), 만유는 그 실체가 없으므로 무상한 것이요(無常), 온갖 것이 다 헛되어 실재가 없으므로 나(我)와 나의 소유(我所)가 없다"는 것이다.


미륵이 지상에서의 삶을 끝낼 때, 몸 그대로 다 사리(舍利)가 되어 변화며, 도솔천 칠보대(七寶臺)에 있는 마니전(摩尼殿) 사자좌에 홀연히 화생(化生)하여 연꽃 위에 가부좌(跏趺坐)하고 앉게 되는 데, 그 모습이 사금같이 빛나고, 키가 16유순이며, 서른 두 가지 거룩한 상과 여든 가지 미묘한 모습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정수리 위에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살 상투가 있고, 머리털은 검붉은 유리빛깔이며, 머리에는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여의주와 백 천만 억 견숙가 보석으로 만든 하늘관을 쓰고 있게 된다고 하였다. 이런 모습으로 미륵보살은 오십 육억 만년 동안을 도솔천에서 설법하여 밤낮으로 수 없는 하늘 사람들을 교화한 뒤에 뭇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 다시 환생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알고 미륵에 대한 신앙을 갖고 그를 공경 예배하는 자와  나쁜 업을 깨끗이 하고,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과 승가(僧伽)와 도솔천과 계(戒)와 보시(布施)를 생각하는 여섯 가지 수행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도솔천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나보게 되고, 또 미륵보살을 따라 환생하여 미륵이 성불할 때에 제일 먼저 법문을 듣고 수기를 받게 된다고 하였다. 또 다만 미륵보살의 이름만 들은 자라도 뒷세상에서 받게 될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고 하였다.

  2) 하생경
하생경도 역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있은 어느 날 법회 때, 아란이 미륵부처의 제자들의 수와 그의 세계가 얼마나 풍족하고 안락하며 또 그 법은 얼마 동안이나 세상에 머물게 되는지에 대해서 묻고, 부처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미륵부처가 세울 계두성(鷄頭城)이라는 큰 수도에 관한 예언으로 시작된다.


부처가 말하는 이 미래의 수도는 동서의 길이가 12유순이고 남북은 7유순인데, 땅이 기름지고 풍족하여 많은 인구와 높은 문명으로 거리는 번창하게 된다. 그 때 수광이라는 용왕이 있어서, 밤이면 향상 향수를 뿌려 거리를 윤택하게 하고, 낮이면 성중을 화창하게 한다. 또 모든 것을 법에 따라 행동하고 정교(正敎)를 어기지 않는 섭화라는 나찰귀신이 있는데, 이 나찰은 밤중이면 더러운 물건을 치워주고 향즙을 땅 위에 뿌려서 온 도시를 지극히 향기롭고 깨끗하게 한다. 또 세상의 넓이는 동서남북이 십만유순이나 될 것이며, 산과 개울과 절벽은 저절로 무너져서 다 없어지고, 사대해의 물은 각각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진다. 대지는 평탄하고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며, 곡식이 풍족하고 인구가 번창하고 갖가지 보배가 수없이 많으며, 마을과 마을이 잇달아서 닭 우는 소리가 서로 들리게 된다. 아름답지 못한 꽃과 나쁜 과일 나무는 다 고갈되고 더러운 것은 다 없어지며, 감미로운 과수와 향기롭고 아름다운 풀과 나무들만이 자라게 된다. 기후는 아주 알맞고 좋으며, 사시의 계절이 순조로워서 백 여덟 가지 질병이 없고,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은근히 잠재해 있을 뿐 크게 드러나지 않으며, 사람들의 마음도 어긋남이 없이 평탄하여 만나면 즐거워하고 착하고 고운 말만 주고받으며, 뜻이 틀리거나 어긋나는 말이 없어서 울단월 세계에 사는 것과 같다. 또한 사람들은 몸 크기에는 대소가 있지만 목소리는 차이가 없이 다 같으며, 대소변을 보고자 할 때는 땅이 저절로 열려지고, 마친 후에는 땅이 다시 합하여 진다. 또 이때는 벼를 심지 않아도 저절로 생겨 나오는 데 껍질이 없고 향기로우며 먹은 뒤에 병들어 고생하는 일이 없다. 또 각종 금은 보석이 땅 위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지만, 하나도 주워 가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그 때 사람들은 이 보석을 들고 말하기를, "옛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서로 싸우고 죽이며 잡혀가고 옥에 갇히는 수없는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것들을 흙이나 돌처럼 여길 뿐, 아끼거나 탐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라고 할 것이라고 부처는 예언하였다.


이러한 살기 좋은 나라에서 미륵부처는 뭇중생들에게 불법의 미묘한 이치를 설법하게 된다. 그 내용은 남에게 베풀어주어야 한다는 보시와 깨끗한 계행을 닦아야 한다는 계율과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일과 욕심을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게 된다. 또 그는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설파하여 현실은 그저 모습만으로 나타나 있을 뿐, 기실 괴로운 것이라는 진리(苦諦)와 괴로움의 원인은 애욕과 업 등의 번뇌라는 진리(集諦)와 괴로움의 세계를 벗어난 절대의 세계가 열반이라는 진리(滅諦)와 열반경지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 방법에 대한 진리(道諦)를 설법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미륵부처의 세상에서는 천년동안 모든 승려가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나, 천년이 지난 뒤에는 계를 범하는 사람이 있게 되어 계율을 다시 세우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미륵부처의 수명은 팔만 사천 세이고, 열반에 든 뒤에 그 불법(佛法)이 세상에 남아 있는 기간도 팔만 사천 년으로 잡고 있다. 그 이유는 팔만 사천 년 이후의 중생들은 아주 뛰어난 자질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3. 비교

원래 미륵은 인간으로 출발하지만, 그가 보처보살이 되어 도솔천주(天主)로 있으면서 하늘권속을 교화하다가 인간세계에 출현하여 부처가 되면 삼회(三會)의 설법으로 무한 중생을 구원하게 되며, 또 용화세계(龍華世界)를 세운다는 내용과 인간 미륵이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도솔천 칠보대(七寶臺)에 있는 마니전(摩尼殿) 사자좌에 홀연히 화생(化生)하여 연꽃위에 가부좌(跏趺坐)하고 앉게 되는 데, 그 모습이 사금같이 빛나고, 키가 16유순이며, 서른 두 가지 거룩한 상과 여든 가지 미묘한 모습을 다 갖추고 있으며, 정수리 위에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살 상투가 있고, 머리털은 검붉은 유리빛깔이며, 머리에는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여의주와 백천만억 견숙가보석으로 만든 하늘관을 쓰게 된다는 이야기는 기독교의 기독론에 비교될 만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독교는 로고스이신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해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지상에 오셔서 삼년 반기간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고, 십자가의 수난을 받으셨으며, 부활승천하셔서 낙원에 이르러 영화로운 주님으로 잠시 머물러 계시다가 때가 되면 천년왕국 혹은 신천신지를 이 땅위에 세우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계시록 1장의 하늘 인자의 모습과 도솔천에 환생한 미륵의 모습에 많은 유사점이 있다.


또 미륵경이 말하는 용화세계는 기독교의 천년왕국과 유사한 점을 많이 갖고 있는 듯하다. 용화세계에서도 천년기간동안에는 불법(不法)이 없고, 인생팔고 백팔번뇌의 고통이나 슬픔이 없으며, 부족한 것이나 욕심이 없는 세계라고 말하고 있다. 표현만 다를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계시록 21장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불교의 미륵경에는 기독교의 종말사상과 유사한 내용이 많이 담겨져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륵삼부경 서문을 쓴 법운거사 이종익씨는 오늘날을  일컬어 "석가모니불법의 말법(末法)시대로서 오탁(五濁)의 홍수가 온 세계를 휩쓸며, 20세기 기계문명의 유산인 원자로케트는 세기의 운명을 싣고 천공을 향하여 이를 갈며 지구의 파멸, 인류의 종말을 노리고 있는 역사의 막다른 골목"이라고 표현하였고, 또 "우리 인류는 모름지기 말세중생의 의지이시고 인류의 어머니이신 미륵성존께 귀의하여야 되겠다"고 말하고 있다.[{미륵삼부경} pp. 12-13.] 그  이러한 표현이 종말론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격히 말해서 불교의 가르침에 종말론이란 역사이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신앙하고 또 그분이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섭리하심을 믿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정해진 목적을 향해서 전진하고 있다는 일직선적인 역사이해를 가진 반면, 불교는 생사의 윤회를 믿는 끝없는 원의 역사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취된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적으로 맛보고 누리며 살고 있다는 시작된 종말 사상을 갖고 있는 반면, 미륵경에서는 수십 억만년을 생사윤회하면서 성불수행을 해야 하는 미래의 용화세계가 있을 뿐이다. 또한 이러한 기회를 얻고자 할 때에는 미륵에 대한 신앙을 갖고 그를 공경 예배하며, 나쁜 업을 깨끗이 하고,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과 승가(僧伽)와 도솔천과 계(戒)와 보시(布施)를 생각하는 여섯 가지 수행을 통하여 도솔천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나보고, 또 미륵보살을 따라 환생하여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신앙과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신앙으로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맛보며 누릴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신천신지의 백성이 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더욱 적극적인 면에서, 기독교는 개혁과 변혁을 통해서 개인과 가정과 사회 공동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일에 참여한다. 그러나 불교는 현실 자체를 허무한 것으로 본다.


물론 불교 가운데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는 미륵정토신앙의 일종인 진정토(眞淨土) 또는 정토진종(淨土眞宗)에서는 기독교식으로 철저하게 미륵신앙만을 정토에 환생할 수 있는 구원의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쉰란(Shinran)이란 사람이 1224년에 미륵신앙에 기독교식의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바탕으로 세운 종파이다. 여기서는 불교의 특색인 수행을 거부하고 오직 아미타불(Amida 혹은 Amitabha)을 믿는 신앙만으로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믿음조차도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종파는 기독교의 대속의 교리를 갖지 않는다. 죄인에 대한 구속의 피흘림, 대속의 피흘림이 정토교에는 없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죄 값에 대한 율법의 요구가 정토교에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와 크게 다른 점이다. 기독교가 인간의 문제를 관계의 단절에서 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원수되었던 관계가 회복되는 것으로 구원을 말하는 반면, 불교는 인간의 문제를 욕심이나 애욕과 같은 집착 또는 집념에서 생긴다고 보고 이를 멸하는 것으로 수행의 방법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수행도 통하지 아니하고, 피흘림의 희생도 없이 구원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J. Isamu Yamamoto, "The Grace of Amida Buddha," SCP Newsletter. Oct.--Nov. '82, p. 6. Sir Norman Anderson, Christianity and World Religions: The Challenge of Pluralism(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Press, 1984, pp. 63-103.]


마지막으로 기독교와 미륵신앙은 세계관에서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기독교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흑암에서 창조, 죽음에서 부활, 그리고 타락에서 재창조를 말하고 있고, 성서 전체의 내용이 기독교인들의 궁극적인 승리를 가르치고 있는 데 반해서, 불교에서는 끝없는 생사의 윤회와 허무를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의 재림주는 적극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심판하고 상벌을 내리며 악을 징치하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만, 미륵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고공무상무아(苦空無常無我)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괴롭고(苦), 삼라현상은 인연으로 모였을 뿐, 헛된 것이며(空), 만유는 그 실체가 없으므로 무상한 것이요(無常), 온갖 것이 다 헛되어 실재가 없으므로 나(我)와 나의 소유(我所)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스스로 득도케 할뿐이다. 또 그는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설파하여 현실은 그저 모습만으로 나타나 있을 뿐, 기실 괴로운 것이라는 진리(苦諦)와 괴로움의 원인은 애욕과 업 등의 번뇌라는 진리(集諦)와 괴로움의 세계를 벗어난 절대의 세계가 열반이라는 진리(滅諦)와 열반경지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 방법에 대한 진리(道諦)를 설법할 수 있을 뿐이다.

4. 민중불교 

최근에 한국에 민중신학과 같은 맥락에서 민중불교가 소장구룹에 의해서 발전되고 있다. 이들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정토를 건설할 것을 주장한다. 억압받는 민중이 자신을 억압하는 일체의 굴레를 철폐하는 해방의 주체로 등장할 때만이 이 땅에 용화정토가 이루어지고 해방된 민중은 그대로 미륵불이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내생에 도솔천에 태어나 미륵과 함께 살다가 미륵이 이 세상에 출현할 때 함께 오겠다는 생각은 현실도피적인 내세만을 추구하는 정토=도솔천적인 발상이요 또 지상=정토를 신봉하는 사람도 무소불능한 미륵에게 그 소망을 둠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중불교는 일차적으로 정토의 실현을 이 땅에 한정시키고 호국불교라는 기존 가치관과 단절하며, 메시아불교라는 종말의 실현을 앞당겨 누린다는 종말론적 정토실현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정토사회는 계급없는 사회요, 민중이 주체가 되고, 민중이 행방되고, 인권이 회복된 사회를 말한다.[{민중불교의 탐구}  pp.84, 149.]


결론적으로 잦은 외세의 침략과 정치 경제 사회적 불안으로 굴종과 한을 품고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은 미륵신앙으로 살기 좋은 정토 또는 용화세계를 소망하였고, 민중신앙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밭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미륵신앙이 기독교의 묵시문학적 미래종말사상과 유사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이런 유사한 종말사상이 근 1400여년간 한국인의 민중신앙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기독교가 쉽게 수용될 수 있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근에 1992년 10월 종말을 주장하는 신앙인이 많은 점도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불안의 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진정한 기독교의 종말사상은 현실도피적인 염세주의도 아니요, 그렇다고 내세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비신화화 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빠른 도래를 소망하면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부단한 개혁과 변혁의 추구는 물론 사회의 제반문제에 걸쳐서 개혁과 변혁의 의지로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기꺼이 그분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