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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9 16:47
초기 천주교와 한국의 유교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434  
초기 천주교와 한국의 유교
http://kccs.pe.kr/misc06.htm
 
7세기경에 경교가 신라에 전래되었을 가능성 말고도 임진왜란 당시 왜군 기독교인이나 군종으로 출전했던 예수회 신부에 의해서 조선인들은 부정적인 시각에서나마 천주교를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부산에 상륙한 왜군 25만 여명 가운데 최소한 10% 이상이 기독교인들이었다는 통계가 나와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예수회 신부들을 만나 명과 조선을 정복하여 전역에 교회당을 세우고 그들 백성들을 천주교인으로 만들겠다고 호언하였다 한다. 그러나 침략자들이 군기와 십자가 형상을 담은 교기를 휘날리며 침략과 약탈과 살상을 일삼았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기독교는 조선인들에게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들 가운데에는 기독교에 개종한 자들이 다수 있었고, 도요토미 이후 도꾸가와(德川家康)의 박해 때에는 순교자가 21명이나 되었다[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대한기독교출판사, 40-49쪽]. 그리고 기독교가 조선인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받아 드려지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이 있는지 200년 후에 이루어졌다.


다음의 글은 이 성배 신부의 학위논문({유교와 그리스도교: 이 벽의 한국적 신학원리} 분도출판사)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성배 신부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회 창립자인 광암 이 벽의 한국적(유학적) 신학사상을 그가 남긴 {천주공경가}와 {선교요지}(聖敎要旨)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연구하였다. 그는 초대 한국 천주교회의 신학자요 개종자인 이 벽의 신학 사상을 유교와의 토착화란 포괄주의적 관점에서 살피고 있고, 한국 기독교의 자생적 특성을 피력하였다.


이 벽은 1754년에 태어나서 1786년에 33세를 일기로 요절한 인물이 였으나, 이 승훈을 설득시켜 북경으로 영세를 받으러 보낸 장본인이며, 실학의 대가 다산 정 약용에게 자신의 해박한 유학과 기독교 진리를 전달한 인물이다. 이 벽은 서구 기독교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 드리지 아니하고, 그것을 한국의 유학적 문화 유산에 알맞게 표현함으로서 한국 최초의 신학자가 되는 동시에 토착화 신학의 발판을 놓은 인물이다.


1583년 10월에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중국 광동지방에 거주허가를 받고 선교를 시작한 이래 수많은 교회서적이 한문으로 출판되었다. 이들 번역서적들은 {천주실의}와 같은 기독교 교리뿐만 아니라, 과학, 윤리, 천문, 지리, 종교, 철학 등 모든 분야를 포함한다.  이러한 서적들이 북경을 왕래하였던 조선의 사신들을 통하여 입수되어 많은 유학자들 사이에 읽혀지게 되었고, 실학운동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유몽인(1559-1623), 이 익(1682-1763), 신후담(1702-1761), 안정복(1712-1791), 이헌경(1719-1791), 그리고 홍정하 같은 이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맹렬히 비판하기도 하였지만, 남인(南人) 시파(時派)에 속한 이 벽, 권철신, 이가환, 이기양, 이승훈, 정약전 그리고 정다산과 같은 이들은 이를 받아드려 한국적 천주학으로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이 벽의 사상과 그 시대 상황에 관한 자료는 이 벽이 직접 쓴 {천주공경가}와 {성교요지} 그리고 달레(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와 정약용의 {정다산 전집} 그리고 {황사영 백서} 같은 몇몇 저서와 초기 천주교회를 박해하고 공격하던 소위 공서파(恐西派) 이만채의 {벽위전}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벽의 {천주공경가}는 1779년(혹은 1777년) 권철신과 그의 제자들의 모임인 강학회에 참석하여 남긴 내용이라고 한다. 이는 정약전의 {십계명가}와 함께 백성들을 신앙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승훈의 {만천유고}(蔓川遺稿)에 실려 있다고 한다. 이 {만천유고}에는 이 밖에도 이 익의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과 정약전의 {십계명가}, 이 벽의 {성교요지} 그리고 이가환의 {경세가}(警世歌) 등이 실려 있다고 한다.


유학자인 권철신은 제자들과 함께 일종의 강학회를 천진암 주어사에서 열고, 유교의 경전을 바탕으로 철학문제와 인생의 제반 문제를 연구하며 토론하고 있었다는 데, 이 벽은 1779년 이 강학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강학회를 마치고 그는 {천주공경가}를 썼는 데, 이는 그가 이 강학회에 참석하기 이전부터 기독교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1784년 2월, 이 벽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가져온 많은 책을 수표교 근처의 조용한 집에서 연구한 후, 곧 이승훈과 함께 정약전과 정약용 두 형제를 설득하여 천주교에 입교시켰고, 계급을 초월하여 중인 계급인 최창현, 최인길, 김범우, 그리고 김종교 등에게도 전도하였다. 같은 해인 1784년 9월 권철신 권일신 형제도 전도하여 이들과 함께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 후 곧 이존창, 유항검, 윤지창 등 십여 명도 세례를 받고 수표교에 있는 이 벽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집회를 가졌으나, 그 다음 해인 1785년 봄에는 장소 관계로 중인 계급인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 해 3월에 역관인 김범우는 체포되어 고문당하게 되고, 2년 후에는 첫 순교자가 된다. 그리고 이 벽도 다음 해인 1786년 봄에 흑사병에 걸려 요절하고 만다. 1791년에도 심한 박해로 양반계급의 천주교인들이 많이 처형당하였으나, 1794년 한국에는 약 4,000여명의 신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정조대왕의 사후 다음 해인 1801년 이지연과 김대왕대비의 박해로 이승훈과 최초의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가 순교하였고, {주교요지}를 써서 출판한 정약종도 준비하고 있던 {성교전서}를 마치지 못하고 체포되어 순교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아들 정하상이 1839년 변증서인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쓰게 된다. 그리고 1836년에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첫 선교사가 한국에 발을 들어 놓게 된다.


이 벽의 저서 {천주공경가}는 4, 4조 음보로 계산해서 33구절밖에 되지 않는 짤막한 글이다. 여기서 이 벽은 분명히 유학적인 냄새를 피우는 내용과 문맥 가운데서도 그가 읽고 터득한 교회용어를 쓰고 있다. 실제로 천주, 영혼, 불멸, 죄, 지옥, 천당 등은 천주교회의 고유한 용어이면서도 한문으로 표기될 때 어쩔 수 없이 동양사상과 관련되는 용어들이다. 천주 공경을 호소하는 이 노래는 부드럽고 통일성 있는 논리와 호교론적인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이 노래에서 여섯 번 사용된 '천주'라는 용어는 이미 독자들이 잘 알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며, 당시의 학문인 유학의 영향이 짙게 깔려 있는 노래이다.


{성교요지}는 만천유고의 28페이지를 차지하는 한시(漢詩)로서 중간 중간에 그 한시의 내용과 어려운 글자에 대한 주석이 약간 작은 글씨로 표기되어 있다. 여기서 이 벽은 한시로 유교와 기독교의 깊은 신학사상을 표현했다. 이 한시는 4자씩 운을 맞춰 4개씩 들어있어 16자의 한자가 한 절을 구성한다. 주석은 본문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놓여 있다. 본서에 사용된 장과 절 그리고 제목은 이 성배 신부의 것이다. 전체가 3편 49장인 이 저서는 그 내용상 1장부터 15장까지는 주로 성서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인격, 행적, 그리고 가르침을 보여 주고 있어 이 벽의 성서적인 이해가 나타나 있고, 16장부터 30장까지는 동양의 윤리와 수덕생활에서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사상이 기독교 사상 안에서 설명되고 있어 이 벽의 유학경서에 대한 지식이 드러나 있으며, 마지막 31장부터 49장 끝까지는 하늘, 땅, 시간, 사람 등 우주만물의 갖가지 사물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속성과 나라가 고대 동양의 성인성군(聖人聖君)의 치세처럼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이 벽은 의식적으로 동양의 전통적 경서인 사서삼경의 내용을 마음대로 구사하여 천주교의 교리를 전개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많은 내용이 유교의 성현이나 군자 또는 어진 왕의 인품과 업적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나타나 있다. 좀더 상세하게 그 내용을 분석하여 보면, 우리 인간실존과 우주만물의 바탕이며 근본원리가 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고(1장), 구체적인 역사의 사실로서 비참한 인간실존을 그리고 있으며(2장), 이러한 인간조건에서 구세주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서내용에 따라 기술하되 동양의 군자나 성왕과 같은 모습으로 내세우고 있고(3-15장), 이 구세주를 통해서 또 그 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인간완성이 전통적인 유교의 가르침인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교육과정을 거쳐 정점에 이르는 중용의 성(誠)의 사상 안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며, 그리스도를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완성자인 성인(誠人)으로 보고 기독교인은 이 성(誠)을 받아들이고 모방하려 애를 쓰며 새로운 인간완성을 모색해 나가는 사람으로 본다(16-30장). 마지막으로 우주만물이 모두가 그 자연의 고유한 법칙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감추어진 신비를 드러냄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갖가지 그리스도 교회의 가르침과 윤리적 교훈을 아름다운 자연시로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31장-49장).


이제까지의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한국 최초의 신학자인 이 벽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기독교를 이해하고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그의 {천주공경가}나 {성교요지}는 유교문화에 뿌리를 박은 기독교의 가르침의 한 예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서구의 신학방법을 따르지 않고 그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기독교의 사상에 유교의 옷을 입혀 표현했던 것이다. 그의 {천주공경가}는 집안, 나라, 삼강오륜 등 기본적인 유교의 가르침을 주제로 해서 구체적이고 가까운 사실에서부터 멀고 추상적인 내용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전형적인 동양인의 논리로 전개하고 있고, {성교요지}도 공자 이전의 서경에서 하나님 또는 절대자에 대한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 전형적으로 사용되던 용어인 상제(上帝)란 말로 시작해서 상제란 말로 끝나고 있다.


이 벽의 신학적 바탕은 유학의 기본적인 사상인 하늘(天)의 개념과 인간성을 밝히는 군자의 도리로서 인(仁)의 개념, 또 참다운 생활의 진리로서 깊고 심오한 마음과 행동의 성실성을 드러내는 성(誠)의 개념이다. 이 세 가지 서로 연결된 개념은 이 벽의 기독교와 그의 메시지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천주교회의 천주는 하늘이란 구체적이고도 현상적인 개념에서 출발하여 점점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천(天)의 개념과 그 위격적 표현인 고대 경전의 상제란 말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마테오 리치가 천주 또는 상주(上主)라는 말을 상제란 말과 관련하여 사용한 이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하늘과 상제란 말은 사용이 금지되기도 하였지만, 이 벽은 상제란 말을 자유로이 그의 글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 벽이 접촉한 당시 조선의 철학적 배경과 기독교를 해설한 신학이론이 스콜라철학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자학과 스콜라철학의 개념을 서로 비교하는 일은 흥미 있는 일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로마 교황청의 하늘과 상제 용어를 금지한 일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도 가름할 수 있다.


동양의 사상가들에게 있어서 인간경험 안에서 파악된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개념은 기(氣)이다. 이 기는 일종의 에너지로서 흔히 우리가 동양화에서 볼 수 있듯이 움직이는 것도 같고 살아 있는 것도 같은 안개 비슷한 것인데, 공간, 하늘, 공기, 숨, 에텔, 불, 물 등으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존재를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콜라 철학 개념에서 움직임으로 현실적 존재 원리가 되는 현실유(現實有)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고 사라지고 한정되고 발전하고 그침없이 변하는 등 갖가지 활동적인 현상의 존재인 기(氣)의 경험에서 생각은 거슬러 올라가 가장 원초적인 기(氣)인 태기(太氣)의 개념을 형성하게 되어 모든 존재와 모든 변화의 원천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궁극적인 원리와 존재로서의 태기는 유교에서 태극(太極)이라고 불리었다. 이 태극은 헬라철학 개념으로 순수현실유라고도 불릴 수 있는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최고의 존재이지만 인간이 자신의 생활 자체 안에서도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물질적인 존재로 간주되기도 했다. 서양 스콜라 신학에서 순수현실유를 하나님으로 보았기 때문에 유교의 태극을 하나님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테오 리치의 생각이 반박되고 있다.


천체만물의 모든 현상과 지상의 모든 요소는 태극의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의 유출인 음양이론에 의해서 설명된다. 이 음양은 중세 서양철학 원리에서 현실유와 가능유에 비교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음양의 이치가 바로 이(理)와 기(氣)로서 서양철학에서는 질료와 형상, 본질과 존재 그리고 우유와 실체처럼 우주 즉 모든 존재의 공동원리가 되고, 이 다음에 자연만물계에서는 다섯 가지 기본요소, 즉 오행(五行)인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나 윤리계의 오륜(五倫)인 인(仁), 의(義), 예(禮), 지(知),신(信)을 구별하고 천문과 점성술에서는 4괘나 8괘 등으로 운명과 미래를 점치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적 표상은 서구 사상계에도 갖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비교의 효용성은 이 벽이 주자학의 복잡하고 애매한 개념들을 통해서나마 서구문화의 소산으로 생겨난 스콜라신학의 기독교 교리 내용들을 성경 내용과 더불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 준비가 충분히 마련될 수 있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는 유교의 하늘에 관한 세 가지 절대 개념인 자연천과 상제천 및 역리천(易理天) 중에서 단 한가지 상제천만을 하나님의 개념으로 인정하였다. 그는 중국 사람들이 이(理)도 태극도 공경하지 않는데 상제만은 공경한다는 사실에 의거해서 위격적 존재인 상제만을 하나님 개념으로 받아 들였다. 이 벽 자신은 하늘이란 말 안에서 단 한 분의 절대적이고 위격적인 존재를 보고, 서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를 상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교요지}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지칭하기 위하여 그냥 하늘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이것은 이 벽이 일반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는 서로 혼동되어 쓰이고 있지만, 하늘이란 말 안에서 자연천과 상제천 및 역리천을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벽은 상제천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기독교의 참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다.


이 벽의 그리스도는 공자의 가르침에 나오는 성인 군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말씀과 행동과 인격으로서 이 벽에게 가장 완전한 인물로 나타나는데,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는 성인 군자, 즉 고대 중국의 하늘 개념이 공자 이후 인본주의가 되면서 인간의 궁극적 도리인 인이 될 때 그 인을 실현하는 인물인 인인(仁人) 또는 인자(仁者)로 나타난 것이다.


이 벽의 영향을 받은 정약용이 말하는 인(仁)이란 사람 人과 두 二가 결합된 것으로서 두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 인은 첫째 인간실존으로서의 인 즉 인간 상호간의 소통이 이루어짐에 따라 선과 악이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둘째, 인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걸어야 할 길 즉 삼강 오륜을 제시한다. 인간관계로서의 인은 윤리적 절차 즉 인간 상호관계의 근본규범이 된다. 셋째, 인은 인간관계에서 실현된 덕과 중용 또는 효도와 자비를 말한다. 넷째, 인은 성취로서의 사랑을 말한다. 인간관계에서의 서로 사랑함을 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섯째, 인은 인인(仁人)과 성취된 사랑의 길을 말한다. 이 벽에 의하면, 이러한 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과 인격 안에서 실현되었다. 이 인은 실천적이고 충실한 사랑 안에서 그 충만한 의미가 드러나며 주 희와는 대립되는 정약용의 이 인의 해석은 복음에서 말하는 사랑과 무척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벽은 대신(對神) 및 대인(對人) 상호관계의 장벽에서 발생되는 온갖 죄악들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구세주의 예표로서 노아를 소개하고 있다. 이 벽은 중국 고대의 전통 가운데서도 인류는 성왕인 순임금과 우임금에 의해서 대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았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이 벽은 인류가 한 사람의 의인에 의해서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의인이란 말은 인륜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의 의를 생각하게 하는 데, 인인(仁人)은 자신의 덕으로 모든 사람과 온 사회 전체를 구원하게 된다. 그리고 완전하고 의로운 사람 즉 인의인(仁義人)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정점을 이룬다. 따라서 이 벽의 예수는 성인군자의 예수이다. 그리고 동양 문화의 유산인 오륜사상과 결부시켜 성삼위의 제 2위 천주 성자께서 오륜 가운데 강생하시었다고 하였다. 이는 우주원리로서의 오행이나 윤리도덕의 근본인 오륜(親義別序信) 또는 오달덕(五達德)에 완전히 젖어 계신 분이라는 의미로서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가리킨다.


윤성범의 성(誠)의 신학이 이미 200여년 전에 천주교회의 선구자인 이 벽과 정약용에 의해서 발전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중국 고대 경전의 사상에서는 공자의 인이 삼강오륜의 기본 윤리를 넘어서서 성에 이르러 완성된다고 본다. 그래서 성인(誠人)은 성인(聖人)이며 공자 자신도 이러한 성인(聖人)에는 감히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성의 사람을 보았던 것이다.


성(誠)자는 말씀 言자와 이룰 成자가 결합된 글자이다. 여기에서 지시하는 말씀은 참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성(誠)은 진실무망함을 뜻한다. 정약용은 천주교회의 신앙의 대상은 바로 강생하신 말씀인 성이라고 하고, 일생동안 성이란 말과 그 의미를 묵상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정 약용에게 기독교를 가르친 이 벽은 성이란 말 아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과 인격을 집중시키며 이 말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 또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다. {성교요지}는 바로 이러한 성의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폭넓게 입증해 주고 있다. 따라서 성이란 말이 말씀이란 말과 이루어짐이란 말의 결합으로서 육으로 이루어진 말씀이란 요한복음의 의미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의 사람을 일치시켜서 본 것은 바로 이 벽이라고 말한다. 최초로 성의 개념을 그리스도론적으로 본 것은 한국 천주교회의 선구자인 이 벽이기 때문이다.

중용(中庸)에 나타난 성은 지혜를 뜻하는가 하면 덕을 뜻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가리키는가 하면 완전한 인간, 성인군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하늘과 그 무한한 공간을 의미하는가 하면 땅과 그 땅속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천리(天理)인가 하면 구체적 인간생활, 인간본성인가 하면 윤리원칙, 귀신에게 제사 드리는 정성된 마음인가 하면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최선을 다하는 지극한 성실성을 뜻한다. 가까이는 평범한 인간생활의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를 뜻하는 데서부터 멀리는 지극히 높고 고귀한 절대자 하나님의 본성과 그 속성에까지 연결이 닿는 개념이다.


이 성(誠)을 이해하는 데는 천(天), 인(仁), 성(誠)의 상관관계 속에서 그 참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서경에서 하늘은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 상제로 이해될 수 있다. 공자는 인의 개념을 끌어들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로서의 하늘 개념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인간관계에서 그 가치를 찾고자 했다. 이어서 성이라는 말은 갖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채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이란 말의 뜻, 즉 절대적 존재를 받아들이면서도 인의 의미를 강조하여 절대적 존재로서의 종교적 의미는 천리(天理)의 이론 속에 함축적으로 흡수되고 만 것이다. 사실 주자학자들은 성이란 말을 유물론적 방향으로만 해석하여 그 안에 포함된 영적 의미와 신적 표시는 밝히지 않았는데 그것은 모든 종교적 색채를 지워버리고 인간중심적 해석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 최초의 기독교인인 이 벽과 정약용 같은 사람들은 중용의 성이란 말 안에서 하나님의 참 말씀이시며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공자가 가르친 어진 사람(仁人)과 완전한 사람(誠人)의 인격을 구비하셨는데, 이 인인이나 성인은 공자 자신도 스스로 받아들이기에 벅찬 인격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주자학의 영향 밑에 놓인 중용의 철학적 바탕은 언제나 이기(理氣) 또는 음양 같은 기계론적 이론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음양이기(陰陽理氣)는 본래 자연현상의 변하는 이치에서부터 파악된 것이기 때문에 자연현상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여 헬라철학의 원리들처럼 궁극적 존재의 실상을 파악하는 형이상학적 원리로 분명하고 영구불변하는 진리의 척도가 되지못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물질의 형상적 변화 속에서 변증법적 순환을 되풀이하는 유물론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기에 중용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조의 주자학자들과 기독교의 관점에서 중용을 이해한 정약용의 차이가 있다. 정약용은 이 벽에게 사상적 전달을 받은 사람이다.


유학의 중심사상이 하늘, 인, 성의 순서로 발전되어 왔으며, 이 벽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시를 해설하기 위해서 이 세 개념을 자기 기독교 신학의 본질적 요소로 삼았던 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이 벽의 신학적 해석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결부되는 성의 해석학으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신학적 해석학이란 본래가 주어진 역사상황과 전통에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살아 있는 의미로 풀이하느냐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 벽의 신학에서 저자는 정치신학적인 요소를 지적하고 있고, 이 벽의 시대에 논쟁이 되었던 하나님의 호칭문제와 제사 문제를 종교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정치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테오 리치나 이 벽의 신학적 방법에서 토착화의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서양의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동양의 역사와 사고방식으로부터 새로운 신학의 가능성을 여기에서 찾고 있다. 이 벽의 {성교요지}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하늘, 인 및 성의 사상에 중심을 둔 유교의 사서삼경과 기독교의 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천주교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연구에서 하나의 문화가 올바르고 적극적인 발전과정을 거쳐서 완성으로 향해 나간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진리에로 인도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결론적으로 이성배는 이 벽의 신학사상과 그 당대의 역사 속에서 한국 천주교의 자생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서 한국 천주교의 출범이 중국이나 일본에 예속되지 아니하고, 더욱이 서양의 기독교를 맹목적으로 입수하여 받아드리지 아니하고, 선교사들에 의해서 전래되지도 아니한 기독교 사상을 이 벽이 순 독학으로 배워 전통적인 유학의 바탕 위에서 토착화된 한국적 신학을 세우게 됨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저자는 포괄적인 입장에서 천주교의 보편성을 피력하고 있고, 이 벽에게서 토착화의 가능성과 심지어는 정치신학의 가능성까지도 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