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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17 16:57
성경공부(왕상 18-22장)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7  
   2019년그리스도의교회성경공부교재_열왕기상하.pdf (385.0K) [0] DATE : 2019-07-17 17:13:05

성경공부(열왕기상 18-22장)

제1과 여호와는 참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상 18장 1-46절

찬송: 67장(통31장), 68장(통32장)

간직할 말씀 :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왕상 18:21)

주제 : 여호와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서

엘리야 시대의 북왕국 이스라엘은 국제적으로 위상이 가장 높았던 때였습니다. 반면에 여호와(야훼) 신앙이 가장 위태롭던 때였습니다.

솔로몬이 주변국들과 결혼동맹을 맺고, 그들의 신들을 예루살렘에 불러들였으며, 왕비들이 주관하는 신당축제들에 배석하였는데 아스다롯 축제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이로써 솔로몬의 결혼동맹정책은 남북분열의 여러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왕국 분열 후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태롭게 만든 것도 역시 결혼동맹이었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1-15절)

이스라엘의 여호와(야훼) 신앙은 때로는 한강처럼 도도히 흐른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지하수로만 명맥이 유지됐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 지하수로만 명맥이 유지됐던 즉 여호와 신앙이 가장 위태롭던 시기가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였습니다. 당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은 오므리(885-874 BC)의 아들 아합(874-853 BC)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린 오므리는 아합을 가나안의 최고신 엘(El)의 자녀인 바알(Baal)과 아스다롯(Ashtoreth) 숭배에 심취된 시돈 출신 옛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동맹을 맺게 하였고, 간교한 이세벨은 유약한 아합을 조종하여 여호와 신앙을 철저히 유린하였습니다.

아합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왕으로서 마음이 여리고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이세벨은 아합을 조정하고 부추긴 사람이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때에도 아합은 정당한 값으로 사기를 원했지만, 이세벨은 간계를 부려 사람들로 하여금 나봇을 돌로 쳐 죽이게 하고 탈취했습니다. 이처럼 이세벨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악독함으로 이세벨은 여호와 신앙을 말살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 신을 섬기도록 무력으로 강요하였습니다. 이세벨은 이를 거부하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습니다.

이 난세에 아합의 왕궁을 맡았던 오뱌다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로서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나눠서 굴에 숨기고 빵과 물을 먹었고,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북왕국 이스라엘 땅에서 제거하였으며, 단 한명의 바알 사제도 남지 않게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예후를 기름 부어 왕으로 삼고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예후의 쿠데타 때 오므리 왕가의 후손이 멸족을 당하였습니다.

2.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16-40절)

북왕국 이스라엘에 3년 넘게 비가 내리지 않던 어느 날 엘리야는 아합에게 한 가지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갈멜산에 모여서 아합이 섬기는 바알이 참 신인지, 엘리야가 섬기는 여호와가 참 신인지 한판 붙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아스다롯의 모친 신이지만 동일시되기도 함)의 선지자 400명, 도합 850대 1로 참 신을 가리는 대결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대결장인 갈멜산에 모였습니다. 엘리야는 몰려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대결방법은 각각의 팀 앞에 송아지(황소) 한 마리씩 잡아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각자의 신을 불러 열납의 표시로 불이 붙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26절)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정오 때부터는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여 피를 흘리며 바알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끝내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앞서 백성들로 하여금 가까이 오게 하고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게 하였습니다. 열두지파의 수효대로 돌을 취하여 단을 쌓고 단 주변으로 도랑을 파고 송아지를 각 떠서 나무위에 올린 다음 도랑에 물을 길어다 채우게 하였습니다. 준비를 마친 엘리야는 오후 3시경에 단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37절).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말려버렸습니다. 엘리야와 살아계신 여호와(야훼)의 승리였습니다. 바알은 흑암에 처한 인간들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거짓 신이었기 때문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 번제물을 태울 수가 없었습니다.

3. “큰 비가 내리는지라”(41-46절).

대결직후 엘리야는 백성들과 함께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붙잡아 기손 강가로 끌고 가서 모두 처형시켰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정상에 올라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비가 내리도록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무려 일곱 번까지 기도하였고, 일곱 번째에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일자 큰비가 올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절을 보면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고 통보하고 있습니다. 아열대 사막기후에다 수리시설이 없던 2,850여 년 전에 3년 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기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아침과 저녁으로 빵과 고기를 공급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가뭄이 지속되자 최후의 가루와 기름방울로 빵을 빚어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불쌍한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엘리야는 이 여인에게 빵을 구어 가져오게 하였고, 과부는 불평한마디 없이 최후의 가루와 기름방울로 빵을 만들어 여호와의 종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 하는 큰 표적이 일어났습니다(왕상 17:16).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한” 이 표적은 장차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실 오병이어의 표적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였습니다. 오천 명을 다 먹일 때까지 보리빵 다섯 개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물고기 두 마리가 없어지지 아니했던 오병이어의 표적은 예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 표적을 행한 모세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한” 표적을 행한 엘리야보다 더 뛰어난 장차 오실 자 메시아였음을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유일하신 하나님의 옛 언약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는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우상은 흑암에 처한 인간들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거짓 신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게다가 우상숭배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안식처인 약속의 땅을 빼앗기고 떠돌이와 노예로 전락하는 무서운 범죄였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성삼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끈을 놓는 일이 결코 없어야합니다.

말씀을 새기며

1.  오뱌다는 선지자 백 명을 굴에 숨기고 빵과 물을 먹인 북이스라엘의 쉰들러였습니다. 위험과 손해를 무릅쓰고 선행을 베풀었던 경험들을 함께 나눠봅시다.

2. 어떤 경우에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는지, 살아계신 여호와(야훼) 하나님의 승리를 언제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봅시다.

3.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고, 사랑받는 자녀인 것을 입증하셨는지 그 경험들을 함께 나눠봅시다.

 

제2과 여호와는 응답하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상 19장 1-21절

찬송: 442장(통499장), 446장(통500장)

간직할 말씀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8)

주제 : 여호와 그분은 응답하는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 여로보암이 세운 분열왕국입니다. 여로보암은 처음부터 북쪽 단과 남쪽 벧엘에 황금송아지 성소를 세워 예루살렘 성전의 법궤를 대신하여 여호와의 발등상 혹은 여호와의 임재장소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930년부터 주전 722년 멸망 때까지 이 황금송아지 신앙을 유지하였습니다. 모세와 히브리인들이 시내산에서 만난 하나님은 ‘여호와’(야훼, ‘나는 있는 나다.’)였는데, 그들의 후손이 가나안땅에 정착하면서부터 가나안의 최고신인 ‘엘’(El, 황소의 아버지 신)을 여호와와 동일시함으로써 점차 ‘엘=여호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페르시아제국 때 수메르의 신 벨(Bel)과 바벨론의 신 마르둑(Marduk)이 벨=마르둑이 된 것과 같고, 헬라제국 때 그리스의 신 제우스(Zeus, 번개)와 이집트의 신 아몬(Ammon, 산양)이 아몬=제우스가 된 것과 같습니다. 이는 나라와 민족이 통합되면서 생긴 현상이었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일어나서 먹으라”(1-8절).

가나안의 최고신은 엘(El)이었습니다. 엘은 ‘산당’을 뜻하는 아세라(Asherah)한테서 바알(Baal)과 아스다롯(Ashtoreth)과 아낫(Anath)을 낳았습니다. 아세라와 아스다롯은 모녀간이지만 동일시되기도 합니다. 풍요와 사랑의 여신 아스다롯과 전쟁의 여신 아낫은 자매로서 오빠인 바알의 부인들이었습니다. 바알은 ‘주인’ 또는 ‘소유주’를 의미하며, 하늘의 폭풍, 비, 기후를 다스리는 신이자, 비를 뿌리는 신이었습니다. 반면에 아스다롯은 바알로부터 비를 받아 땅을 풍요롭게 만드는 신이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이 성생활을 많이 할수록 비가 많이 오고 풍년이 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배자들은 아스다롯 신전(산당)에서 사제(성창)들과 살을 섞곤 하였는데, 그것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자극하여 더 많은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이 북왕국 이스라엘에 도모한 종교혁명이 바로 이 바알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여호와의 종 엘리야에 고군분투로 인해서 초토화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아합에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왕상 19:2)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겁을 먹고 크게 낙심하여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왕 앞에서 하나님의 불을 토하며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단칼에 멸했던 엘리야는 왕후 앞에서는 겁을 먹고 유다왕국으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야에 들어가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스스로 죽기를 소원할 만큼 지치고 탈진하여 쓰러졌습니다. 그런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고, 엘리야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여러 날을 먹이시고 마시게 하시며 쉬고 잠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치고 탈진한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천사의 도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죽은 우상처럼 사람이 손으로 세운 장소에 꽂혀 있지 않으시고, 엘리야와 동행하시며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도움을 주셨습니다.

2.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14절).

엘리야는 스스로 죽기를 바랐지만, 여러 날 먹고 마시고 쉰 후에 기력이 회복되었고, 무려 사십일 밤낮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이 호렙산은 모세가 엘리야보다 630년쯤 먼저 하나님께 세미한 음성을 들었던 곳이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후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그들에게 전달했던 신성한 장소입니다.

호렙산의 한 동굴에서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10절).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11절). 그래서 엘리야는 동굴 밖으로 나가서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엄청난 광경을 목격되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크고 강한 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바람 후에 일어난 큰 지진 속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진 후에 일어난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강풍이 불고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는 소동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호렙산으로 피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했고, 강풍처럼 달렸으며, 850인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처단함으로써 천지를 진동시켰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까지는 이세벨을 두려워했고, 암담한 현실에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란이 있고난 다음 고요 속에서, 동굴 어귀에 서서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 엘리야는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3절)라고 묻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3.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15-21절).

그리고 모세에게 특명을 내리셨던 하나님이 동일한 산에서 엘리야에게 새로운 특명을 내리셨습니다. 특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엘리야야, 너는 하사엘에게 가서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 둘째, “엘리야야, 너는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셋째, “엘리야야, 너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가가 되게 하라!”(15-17절).

오늘날 우리는 엘리야처럼 여러 형태의 시련과 시험을 만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엘리야처럼 실패자란 생각이 들 때,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때 필요합니다. 그밖에도 실패했을 때, 난관에 부딪혔을 때, 소망이 사라졌을 때, 두려움이 엄습할 때, 시험을 당했을 때, 마음이 저며 올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미래가 불확실 할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엄청난 문제가 앞을 가로 막을 때,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느낄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종교박해시대에 활동했던 엘리야와 엘리사는 옛 언약시대와 새 언약시대로 구분되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예표였습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숭배정책에 대항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보다 두 배의 능력을 받았던 엘리사는 쿠데타로 아합 정권을 무너뜨리고, 백성에게 평화와 여호와 신앙을 되찾아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영토와 나라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모세의 역할이 제한적이었던 것처럼, 무너진 나라와 신앙을 다시 세우는 일에 있어서 엘리야의 역할도 제한적이어서 여호수아처럼 마무리작업은 엘리사가 처리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월등한 능력으로 희년 곧 새 언약시대와 평화의 복음시대를 선포하셨습니다. 엘리사의 취임으로 엘리야가 퇴임했듯이 예수님의 취임은 세례 요한의 퇴임으로 이어졌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왜 우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려야할까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은 피조물이지만, 스스로 계신 여호와는 유일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만, 스스로 계신 여호와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은 말 못하는 거짓 신이지만, 스스로 계신 여호와는 살아서 말씀하시는 참 신이십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은 자연법칙에 따라 부서지고 썩어 없어지지만, 스스로 계신 여호와는 영원히 살아계셔서 자자손손 믿음의 자녀들에게 찾아오시고 자비를 베푸시며 위로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묵상의 시간을 갖고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려야합니다.

말씀을 새기며

1.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도움을 주셨던 경험들을 나눠봅시다.

2.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지 그 경험들을 나눠봅시다.

3. 남은 자 7천명은 누구인지 말해봅시다. (참조: 마 10:22, 24:13, 히 3:14, 계 2:26)

 

제3과 여호와는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상 20장 1-43절

찬송: 357장(통397장), 358장(통400장)

간직할 말씀 :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왕상 20:28)

주제 : 여호와 그분은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서

열왕기상 20장에는 “너는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는 말씀이 13절과 28절에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40절)는 말씀에 이어서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42절)는 말씀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쟁의 승패가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고, 약속의 땅 가나안은 사람의 능력으로 지켜지지 않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함으로 지켜진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강조는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써 구약성경 저자들이 자기 민족의 고질병을 고치려고 반복해서 강조한 처방전이었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1-21절).

열왕기상 20장은 아람의 왕 벤하닷 2세가 1,2차 사마리아를 침략한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제1차 사마리아 포위 때 벤하닷은 아합에게 사자를 보내어 은금과 예쁜 여인들을 모두 자기에게 넘기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아합은 장로들을 소집하여 벤하닷의 요구를 전하며, 자신이 이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로들은 아합에게 벤하닷의 요구를 거절하고 전쟁을 치를 것을 권하였습니다. 이에 아합은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첫 번째 요구는 다 들어주겠지만, 두 번째 것은 들어줄 수 없다고 통보했고, 이 말을 들은 벤하닷은 사마리아를 산산조각 내버리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처럼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하였습니다. 이는 아합이 만약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면 승리하여 갑옷을 벗지 못하고, 갑옷을 입은 채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벤하닷은 군대에 사마리아를 공격할 채비를 갖추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때 무명의 한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찾아와서 말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13절). 이에 아합은 그 선지자에게 누구를 통해서 그렇게 하실 것이며, 누가 먼저 공격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선지자는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이 전쟁에 나갈 것이고, 아합이 먼저 공격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합이 지방 고관의 청년들의 수를 세어보니 230명이었고, 백성의 수가 7,000명이었습니다. 여기서 청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아르’(???)는 군인 혹은 용사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군대는 아람의 군대보다 수적으로 크게 열세였지만, 여호와께서 이 전쟁에 동행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이 싸움에 나가서 아람의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의 군인들을 쳐서 크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21절).

2.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22-34절).

열왕기상 20장 22-34절은 아람의 왕 벤하닷 2세의 두 번째 사마리아 공격에 관한 기록입니다. 아람 군대는 갈릴리 호수 동편의 아벡(Aphek)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었습니다. 이는 이미 22절에서 선지자가 예견한 일로써 그는 아합에게 “해가 바뀌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올 것이니”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께서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라고 충고한 대로였습니다. 23절에서는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말하기를,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와 한 가지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한 가지 의미는 고대의 전쟁이 신들의 전쟁이었다는 것입니다. 유일신을 믿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고대의 왕들은 신의 아들 혹은 신의 현현이자 백성의 수호신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왕이 나가 싸운다는 것은 그들의 수호신이 나가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 아람 사람들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산의 신으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부분 산지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한 교훈은 여호와가 산과 평지뿐 아니라 무소부재하신 우주의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치 7일째 날에 접전하여 아람 보병 10만 명이 죽고, 남은 2만 7천명이 아벡 성벽에 깔려 죽은 것은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28절)는 말씀이 이뤄진 여호와가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아람군대가 대패하자 아람의 신하들은 벤하닷에게 이스라엘의 왕에게 투항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아람의 왕과 신하들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아합에게 나가 왕의 종 벤하닷을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아합은 마음이 여리고 나약한 사람인지라 벤하닷을 “내 형제”라고 칭하면서 영접하였습니다. “내 형제”란 동맹국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아합은 아람에게 빼앗긴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되돌려 받고, 다메섹에 자신을 위한 거리를 만든다는 조약을 맺고 벤하닷을 풀어주었습니다.

3.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35-43절).

열왕기상 20:35-43절은 아람과 조약을 체결한 아합을 책망한 내용입니다. 아합이 이방나라와 조약을 맺고 형제관계를 유지한 것은 율법을 어긴 행동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42절) 놓아준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수천 명의 군사로 십삼만의 대군을 무찌른 기적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아합의 군대가 막강했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참전하셨기 때문에 이긴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아합이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살려준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월권이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안위를 위태롭게 한 처사였습니다. 따라서 선지자는 38-40절에서 왕에게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음으로써 아합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벤하닷을 살려준 것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처사였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였습니다. 42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가 멸하기로 작정한 벤하닷을 아합이 놓아 주었기 때문에 아합의 목숨이 벤하닷의 목숨을 대신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아람의 백성을 대신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선포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왕하 10:32)에서 현실화되어 이스라엘 영토가 줄어들고 급기야는 나라가 망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이에 아합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근심이 가득하여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이는 전쟁의 승패가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고, 약속의 땅 가나안은 사람의 능력이나 이웃나라와의 평화조약으로 지켜지지 않으며,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계명과 율법 혹은 규례와 법도)대로” 행함으로써 지켜진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같은 표현은 창세기로부터 역대기상까지에서 130여 차례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뼈아픈 역사적 경험에서 얻은 교훈으로써 구약성경 저자들이 자기 민족의 고질병인 떠돌이와 노예(유배)의 삶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에서 자자손손 기업을 물리며 안식하기 위한 처방전이었습니다. 그 처방의 효력이 대단히 컸다는 사실이 유대인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새기며

1.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는 말씀처럼 어느 때에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게 되었는지 그 체험을 이야기 해봅시다.

2.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처럼 어느 때에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 때문에 힘겨운 일을 겪게 되었는지 그 경험을 이야기해봅시다.

3.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함으로써 받은 은혜와 복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고 이야기해봅시다.

 

제4과 여호와는 보응하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상 21장 1-29절

찬송: 254장(통186장), 255장(통187장)

간직할 말씀 :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왕상 21:29)

주제 : 여호와 그분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서

열왕기상 21장은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이 이스르엘(Jezreel)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한 사건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오므리 집안이 멸족을 당한 하나의 원인으로써 소탐대실의 전형이었습니다. 옛 언약시대의 특징은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7)고 한 말씀처럼 연대책임에 있습니다. 열왕기를 쓴 신명기 역사가의 사관은 세 가지인데, 첫째는 옛 언약시대에서는 단체기합처럼 연대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회개하기만 하면 미쁘신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자자손손 기업을 무르며 안식하려면 “여호와의 말씀대로” 따라야한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나 이방인과의 결혼 또는 적국의 왕을 살려 보낸 아합의 행위들은 모두 약속의 땅 가나안과 왕권을 빼앗기는 원인이었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1-16절).

지중해연안세계에서의 왕은 신의 아들, 신의 현현 혹은 백성의 수호신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백성은 왕의 안식을 위해 일하는 노예에 불과했고, 왕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언약법(율법)에 묶인 유일신 여호와의 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라 해도 율법에 어긋난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7절)라는 이방여자 이세벨의 말은 왕의 신적 혹은 절대권위를 염두에 둔 율법에 어긋나는 발언이었습니다. 계명의 아들들인 이스라엘 백성 특히 왕이 이방여인과 혼인하지 말았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편 나봇(Naboth)은 왕의 요구라 할지라도 자신이 소유한 이스르엘의 포도원을 팔수가 없었습니다.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3절)는 말씀에서 보듯이 나봇으로서는 그 땅을 소중히 지켜야할 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이방여자의 치마폭에 휘둘리는 왕이었을지라도 아합은 율법을 아는 자였으므로 나봇에게서 포도원을 강제로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합이 나봇의 거절에 심히 상심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합이 상심해하는 이유를 안 이세벨은 “왕인 당신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냐?”며 나봇의 포도원을 아합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때 아합은 이세벨의 계략을 말렸어야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말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세벨은 나봇이 사는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국새가 찍힌 서신을 보내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9-10절)고 명령하였습니다.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은 이세벨의 지시대로 이행하여 나봇을 처형하였고, 나봇이 죽자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이스르엘로 내려갔습니다(16절).

2.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17-26절).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고, 엘리야는 아합에게 여호와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19절)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또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다.”(20-24절)고 전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이 선포는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25-26절은 그 이유를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다.”고 했고,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조상이 지은 죄의 벌이 후손에게 미친 이유는 여호와와 맺은 언약(율법)이 가나안땅을 두고 전체적으로 맺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일은 나라의 운명(생사)이 걸린 일입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는 뜻이 바로 이 연대책임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연대책임이 개인책임으로 바뀌게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는 예레미야입니다(렘 31:29).

3.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27-29절).

엘리야의 선포를 듣고 아합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녔다.”(27절)고 했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다시 임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29절)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상하서, 열왕기상하서를 쓴 신명기 역사가의 사관은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옛 언약시대에서는 단체기합처럼 연대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회개하기만 하면 미쁘신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자자손손 기업을 무르며 안식하려면 “여호와의 말씀대로” 따라야한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나 이방인과의 결혼 또는 적국의 왕을 살려 보낸 아합의 행위들은 모두 약속의 땅 가나안과 왕권을 빼앗기는 원인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집이나 바아사의 집의 죄는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황금송아지를 여호와의 발등상으로 섬기게 한 데 있습니다. 솔로몬 사후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열왕기상 15장에 기록된 대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사이에 전쟁이 쉬지 않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의 법궤를 대신할 황금송아지를 단과 벧엘 성소들에 세웠습니다. 이것이 남왕국 유다의 관점에서 볼 때는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첫째는 유일하신 여호와의 임재장소가 예루살렘성전 지성소 안의 법궤덮개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황금송아지가 가나안의 최고신 엘(El)과 그의 아들 바알의 형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황금송아지는 그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제1,2계명을 어긴 것이요, 여호와(야훼)의 이미지를 훼손한 행위였습니다. 여로보암과 바아사와 아합의 집에 재앙이 닥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열왕기상 21장은 신명기 역사가의 세 가지 관점이 나타난 곳입니다. 첫째는 옛 언약시대에서는 단체기합처럼 연대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회개하기만 하면 미쁘신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자자손손 기업을 무르며 안식하려면 “여호와의 말씀대로” 준행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나 이방여인과의 결혼 또는 적국인 아람 왕을 살려 보낸 아합의 행위와 같은 것들은 모두 약속의 땅 가나안의 주권과 왕권을 빼앗긴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새기며

1. 구약시대에는 연대책임이었는데, 신약시대에는 왜 개인책임인지 그 이유를 알아봅시다(렘 31:29). 참고로 문자적 광야시대에 히브리인들은 전체적으로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아 가나안땅으로 향했지만, 영적 광야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개개인의 심령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하늘 가나안땅을 향합니다.

2.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은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회복시키는지 토의해봅시다.

3. 신약시대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준행해야하는지 토의해봅시다.

 

제5과 여호와는 말씀대로 행하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상 22장 1-53절

찬송: 287장(통205장), 290장(통412장)

간직할 말씀 :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왕상 22:14)

주제 : 여호와는 그분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를 원합니다. 반대로 사람들은 현실(현재 사실로 존재하고 있는 일이나 상태)을 직시하거나 쓴 소리를 거부합니다. 또 사람들은 자신들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뤄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뜻이 이뤄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하곤 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아람(시리아)에게 빼앗긴 성읍을 되찾고 싶어 했습니다. 아합은 전쟁을 원했고, 400여 선지자들은 왕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같다고 말했습니다. 왕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 선지자는 한명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한 명은 왕에게 불길한 일까지 예언했습니다. 만일 왕이 그 선지자의 말을 듣고 전쟁에 나가지 않았다면 죽음을 피했을까요? 아니면 왕이 전쟁에 나가 싸우다가 죽은 것이 예언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는 신명기 역사가가 강조하는 ‘회개’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1-28절).

열왕기상 21장 27-29절에서 아합은 엘리야를 통해 선포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 떨며 회개의 심정으로 자신을 낮춘바가 있습니다. 비록 아합이 여호와(야훼) 신앙을 탄압한 자였지만, 그가 취한 겸비한 태도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아합의 가문에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그의 아들 대에로 늦추셨습니다.

반면에 열왕기상 22장 1-28절(대하 18장)은 아합이 소수의견인 참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다수의견인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었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를 필두로 선지자 400여명이 아합 왕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 여호와의 말씀이라며 아첨하였습니다. 11-12절에서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고 하였고, 400여명의 선지자들도 일제히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실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는 아합 왕이 반드시 들어야하지만, 듣기 싫은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에 아합은 미가야를 옥에 가둬두고 군사를 일으켜 출전하였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열왕기를 쓴 신명기 역사가의 두 가지 강조점이 드러나 있습니다. 첫째는 죄와 허물을 피하지 못하는 인간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면 미쁘신 하나님은 그 회개를 귀히 여기시고 벌을 유예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개인이든 국가든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느냐 혹은 거슬리느냐에 따라서 운명(생사)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특히 열왕기상 22장은 결정권을 가진 다수의견의 허점 곧 정치계든 종교계든 인기영합에 의한 폐해나 다수의견에 의한 그릇된 판단이 가져다줄 재앙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2.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29-38절).

열왕기상 22장 29-40절(대하 18장)은 아합의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아합은 아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의사가 분명했지만,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뜻을 분명히 알고자했습니다. 따라서 여호사밧은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여명의 선지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예언했지만, 아합이 싫어한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의 예언까지 들어보자고 하였습니다.

아합이 여호사밧에게는 왕복을 입게 하고 자신은 병사복장으로 변장하고 전쟁터에 들어간 것은(30절) 여호사밧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한 술수였습니다(31-33절). 32명의 지휘관들이 이끄는 아람의 병거대가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인 줄 알고 추격하였고, 놀란 여호사밧은 소리를 질러서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란 점을 알렸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을 방문하여 친교하고 아합이 일으킨 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은 결혼동맹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두 왕국은 솔로몬 사후 줄곧 전쟁을 해왔는데 아합과 여호사밧의 때에는 양국이 화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44절).

아합의 죽음은 자기가 자초한 면도 있고 예언대로 된 면도 없지 않지만, 신명기 역사가는 그의 죽음을 여호와의 심판에 의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34-36절은 아합이 사망한 과정을 설명한 부분입니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 것이 부상으로 이어졌고, 맹렬한 싸움판에 갇혀 치료도 못 받고 빠져나오지도 못해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합은 장사되고, 그가 탔던 병거는 그가 흘린 피로 흥건하였는데, 38절은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또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바알숭배자였던 아합은 창기나 다름없었습니다.  

3.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39-53절).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이라고 표현한 39절은 아합이 솔로몬 못지않은 건축가였음을 말해줍니다. 또 그의 부친 오므리와 아합의 통치기간 동안 북왕국 이스라엘은 통일왕국시대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버금갔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그가 건축한 상아궁”(베이트 하쉔)은 상아로 지은 궁전이란 의미가 아니라 상아로 벽을 장식한 궁전이란 의미입니다. 또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많은 성읍을 요새화시켰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오므리와 아합 부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국제사회에 알린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으로 매우 뛰어난 왕들이었습니다.

살만에셀 3세의 비문에 의하면, 아합은 주전 853년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의 12명의 왕들과 연합하여 수리아 안디옥 아래쪽에 소재한 카르카르(Qarqar)에서 앗시리아의 군대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때 아합은 2천승의 병거와 1만 명의 보병을 이끌고 참가했는데, 그 군사력이 연합국들 가운데 아람과 하맛에 이어 세 번째였습니다. 이처럼 오므리와 아합 부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국력을 신장시킨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으로 역량이 매우 큰 왕들이었으나 외교차원에서 결혼동맹을 맺고, 이방여자 이세벨을 통해서 여호와(야훼) 신앙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바알신앙을 앉히려 했습니다. 가뜩이나 북왕국 이스라엘은 단과 벧엘의 성소들에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으로 황금송아지를 세운 국가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시조인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때부터 여호와(야훼)와 바알을 혼합해서 사용함으로써 여호와 신앙의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린 나라였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국가의 운명(생사)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준행하느냐 준행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굳게 믿었던 신명기 역사로서는 아합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신명기 역사가는 아합의 전봇대만한 업적을 바늘만큼만 기술하였던 것입니다. 구약성경역사가들은 인물의 평가기준을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능력에 두지 않고 여호와(야훼) 신앙의 충실도에 두었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오므리와 아합이 여호와 신앙에 충실했던 다윗을 추종하지 않고,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여 국력을 키웠고 주변국들과 결혼동맹을 맺어 예루살렘에 많은 이방여자들과 이방신들을 끌어들인 솔로몬의 전철을 밟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역사가들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였기 때문에 그가 많은 이방여자들과 이방신들을 예루살렘에 끌어들인 잘못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과도하게 토목공사를 벌림으로써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고, 젊은 부인들이 초청한 이방신 축제에까지 참가하곤 했습니다. 그 결과가 왕국의 분열이었듯이, 여호와 신앙을 위태롭게 만들고 회개하지 아니한 아합의 왕가는 엘리사와 예후가 일으킨 쿠데타로 멸문을 당하고 맙니다.

말씀을 새기며

1.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후 약 4천년 역사 가운데 약 3천년 가까이 약속의 땅을 빼앗긴 채 고질병처럼 떠돌이와 노예로 살았습니다. 구약성경역사가들은 그 고질병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진단했는지, 또 민족에게 어떤 처방을 내렸는지 “여호와의 말씀대로”라는 구절을 통해서 말해봅시다.

2. 주후 70년 이후 1948년까지 1878년간 지구상에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유대인들은 남의 나라에 얹혀살면서 온갖 멸시와 박해를 받아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스라엘은 대한민국보다 강하고 잘사는 나라로 버젓이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 힘은 바로 구약성경역사가들의 처방전(“여호와의 말씀대로”)에서 나왔습니다.

3. 그리스도인들의 삶 또한 그리 녹록치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이, 비록 가냘팠지만, 우리를 어떻게 기막힌 수렁에서 건져냈는지,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게 했는지를 이야기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