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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20 08:50
창세기 015: 의인 노아(창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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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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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15: 의인 노아(창 7:1-5)
구약의 인물 가운데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노아와 다니엘 그리고 욥입니다(겔 14:14). 하나님께서 이들 세 사람을 의인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은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겪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자세를 한 순간도 흐트러뜨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7장의 주인공인 노아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 믿음의 사람입니다. 말이 그렇지,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짧은 생각과 지혜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순종하기도 힘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와 명령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여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방주를 건조(建造)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 무려 120년이나 되었습니다(6:3).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했을 때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선생님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고 한 것과 동일한 믿음입니다. 이렇게 노아는 “말씀에 의지하여” 성실하게 방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는 노아를 가리켜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히 11:7)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노아의 삶과 순종의 믿음은 성서에 약속된 구원이 이뤄질 때인 주의 재림의 날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본받고 따라야할 실천의 귀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노아에 대해서 함께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노아는 보지 않고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히 11:7) 실천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복된 것은 예수님께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홍수심판은 그 당시에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홍수’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마불’은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 넘쳐 모든 만물을 덮쳐 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시 90:5). 천지창조이후 노아의 때까지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홍수’란 말이 머리 속에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을 게 뻔합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6장 22절에 보니까,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6:22)고 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아 자신은 장차 나타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 곧 보지 못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반드시 성취하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최후의 심판과 새롭게 전개될 신천신지의 세계를 노아처럼 믿고 그 때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할 줄로 믿습니다. 창조이후 오늘날까지 아직 그와 같은 전례가 없었으므로 그 때의 일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자신들도 노아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말고, 굳게 믿고서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할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에서 말하기를, 노아가 오직 ‘의’(義)를 전파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벧후 2:5). 베드로의 이 말씀은 노아가 타락하고 불법이 횡행하는 당시의 사회에서 하나님의 의를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전도인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홍수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믿었을 뿐 아니라, 그 사실을 이웃에게 열심히 전파하여 그들도 믿고 멸망 받지 않고 구원받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우리 안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주머니 속의 아홉 드라크마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노아는 깊이 헤아렸던 것일까요? 그는 무려 120년간을 홍수심판이 있을 것에 관해서 당대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힘들게 일한만큼의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가족들만큼은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과 연기로 타는 불바다에 침몰될 때에 롯은 천사의 경고를 받고서도 두 딸밖에는 건지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큰 성과였던 것입니다.
둘째, 노아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의 여덟 식구와 동물 한 쌍씩이 들어가고, 그들이 먹을 식량이 들어갈 커다란 방주를 건조하였습니다(6:13-21).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방주는 포유류 3,500 종류, 조류 8,600 종류, 파충류와 양서류 5,000 종류의 각 쌍을 합한 35,000 마리의 세배인 105,000 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용적률을 갖고 있었고, 높이가 14미터, 5층높이이고, 길이가 137미터, 축구장보다 훨씬 크고, 폭이 23미터, 그리고 용적량이 14,000톤 배수량이 20,000톤이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엄청나게 큰 화물선의 규모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주를 지어야 할 노아의 가족은 총 여덟 명뿐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대형 화물선은 당대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를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120년간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전 가족이 전 재산을 쏟아 부어서 건조했을 이 엄청난 대역사를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그것도 120년 동안이나 해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헌신적인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방주를 교회의 모형 또는 예표로 볼 때, 노아는 머리되는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그의 가족들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군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신 한 가족이 되는 셈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를 오랜 기간에 걸쳐 건조하였다는 것은 에베소서 4장 11-12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대로 방주 곧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에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 바로 우리 모두가 본 받아야할 점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에 동물들을 들이되 정해진 수에 따라 암수를 짝지어서 들였습니다(2,3절). 그 동물들 중에는 깨끗한 것도 있었고, 더러운 것도 있었을 것이며, 진귀한 것도 있었고, 길들이기 힘든 야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는 동물들에 대해서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구원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방주를 교회의 모형 또는 예표로 볼 때, 교회의 머리되신 우리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성도들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신분차별, 인종차별, 성별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은혜로 값없이 차별 없이 구원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노아의 식구들은 방주에 들인 각종 동물들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극심한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불평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들의 일은 생명을 살리고 종족을 보존하는 값진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방주를 교회의 모형 또는 예표로 볼 때, 목회와 전도사역은 생명을 살리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입니다. 이 일에 우리가 소홀히 하거나 불평으로 할 수 없고, 오로지 기쁨과 감사함으로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여덟 식구와 한 쌍씩의 동물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든 것을 바쳐 일궈낸 수고와 인내의 소산물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빛과 생명의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셋째,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인내하였습니다(6:3).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홍수가 6절에서 드디어 시작되고 있습니다. 홍수가 시작된 때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 지시하신 날로부터 무려 120년이 지난 후이며, 노아의 나이 600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그 긴 기간동안 노아와 그 가족들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과정들을 겪었을 것입니다. 당대의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받았을 것이고(벧후 3:4-6), 심신이 고달프고 지친 적이 많았을 것이며, 셀 수없이 많은 시련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믿음과 순종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홍수가 시작되자마자 곧장 방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철저하게 방주를 관리했으며, 하나님께서 들이라고 지시하신 동물들을 한 마리도 빠짐없이 다 챙겨서 실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일에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홍수심판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120년 동안이나 오래도록 지연시키신 데에는 나름의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내용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신 것이요. 둘째, 한 사람이라도 더 노아의 전도를 받고 회개한 후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오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때가 있는데, 그 시기를 지연하시는 가장 큰 이유는 로마서 11장 25절의 말씀처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참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다 감당할 때까지 한 명이라도 더 복음을 듣고 주님께 돌아와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9)고 하였습니다. 계시록은 홍수심판의 때처럼 반드시 주의 재림의 때가 임할 것이며, 그 때까지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고 괴롭더라도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신앙을 지킬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믿음과 인내가 필요한 것은 홍수심판의 때처럼, 또 소돔과 고모라가 불바다에 침몰된 때처럼, 반드시 최후의 심판의 때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계 13:10).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의 재림의 때까지 우리 각자가 맡은 소임들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하십시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보여준 신실한 믿음의 자세를 본받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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