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바다를
육지처럼 지나가다(출
14:1-31)
이스라엘
민족이 바다를 육지처럼 지나가게 한 홍해사건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자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되게 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 민족은 야훼 용사가 자기 민족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노예였던 자신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홍해를 건너게 하셨으며,
홍해를
육지처럼 지나가게 하셨고,
떠돌이였던
자신들에게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다는 위대한 신앙을 자손대대로 고백하게 되었다.
본문 말씀 1-4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막다른 골목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한 이유를 설명한다.
마음이
완악한 바로와 이집트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길을 잃고 이리 저리 헤매는 것으로 오해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만들고,
하나님은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어 이집트인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다신들은 인간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들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하셨다.
5-9절은
바로의 추격과 이스라엘 민족의 탈출을 보여준다.
바로의
특수전차부대가 추격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이스라엘 백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여 담대히 이집트를 탈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탈출자들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인원도
많고 짐도 많았으며,
끌고
가야할 가축들도 있었다.
그러나
추격자들의 속도는 신속하고 빨랐다.
이집트의
특수부대가 쌍두마차를 타고 추격하였기 때문이다.
8, 10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의 추격에 기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고
했고,
10절에서는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그분의 강한 팔에 의지하여 사는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강풍
때에도 순풍 때처럼 한 점 흩뜨려지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군대 앞에서 혼비백산하여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기 때문이다.
10-14절은
위기에 노출된 이스라엘 민족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위기나 시련 앞에서 본래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이때에 믿음의 깊고 얕은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사람은
난관에 부딪힐 때와 극한 상황에 도달했을 때 감춰뒀던 속내를 드러낸다.
영화나
소설에서도 이 점을 잘 묘사하고 있다.
고미가와
준빼이의 소설 <인간의
조건>에서도
그렇고,
한국영화
<남극일기>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사람은 용광로로 표현되는 시련이나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품성이 금인지,
은인지,
철인지,
나무인지,
풀인지가
드러난다.
순교자들의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만일
내가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인해서 박해를 받아 악랄한 수법의 고문을 당한다면,
과연
나는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극한
상황에 처한 나 자신의 처참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순간,
배교자를
향한 분노나 치켜세웠던 손가락은 어느새 꼬리를 내렸음을 깨닫게 된다.
순탄한
때에 목에 핏줄을 곧추세우는 사람일수록 곧잘 위기 때에 변절자가 되거나 더욱 악랄한 박해자가 된다는 풍성한 사례들이 역사기록에
담겨있다.
시련을
겪으면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욥의
고백처럼,
시련으로
단련한 후에는 찬란한 정금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다(욥
23:10).
본문은 모세가 가진 믿음의 크기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믿음의 크기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애굽하기
전부터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자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그것이
10-12절의
말씀이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러나 모세는 어떠했는가?
모세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였고,
백성의
우겨다짐에도 굴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세는
13-14절에서
이렇게 백성에게 말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5-30절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의 역할이 구분되고 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시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들이 과연 하나님이 하신 일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결국
사람의 일이 개입될 때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일로써 드러난다고 본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신인협력 곧 신과 인간의 협력으로 이뤄지는 시너지라고 말한다.
15-16절을
보면,
모세는
어려움에 직면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었으며,
21-28절을
보면,
모세의
믿음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은 큰 동풍을 동원하여 홍해를 갈라놓으셨다.
하나님은
이집트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고,
그
전차바퀴를 벗겨서 달릴 수 없게 하셨다.
또
모세의 믿음의 행동,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 때,
갈라졌던
바닷물이 세력을 회복하여 도망하는 이집트인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셨다.
29절을
보면,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고
했다.
이뿐
아니라,
19-20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과 이집트인들을 갈라놓아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넉넉하게 건널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스라엘 진영 앞에서 인도하던 하나님의 사자와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진영 뒤로 위치이동을 하였다.
하나님은
이집트인들의 진영에 구름기둥이 가려 흑암이 있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에는 불기둥이 덮어 광명처럼 밝게 하셨다.
모세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기도로 간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이런
엄청난 구원의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에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우리가 믿음의 행위를 보이지 않을 때는 하나님도 역사하지 않으신다.
31절은
기적의 목적을 설명한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다.”고
하였다.
기적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모세가
위대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는 일이 없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