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40: 아브라함의 복된 삶과 죽음(창 25:1-18)
창세기 11장에서 처음 등장한 아브라함은 25장에서 175세로 생을 마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 역시 파란만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은 복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포함한 여러 아랍민족들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수메르문화의 중심지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에블라문명의
중심지 하란에 잠시 거주하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고 75세가 된 때에 약속의 땅으로 이주하여 가나안 땅에서 175세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땅에서 꼭 100년을 거주한 셈입니다.
그는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끊임없이 길을 떠난 개척자였습니다. 그의 삶은 안주를 거부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서 끊임없이 이동했던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의 삶은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을 향해서 옮겨 다니는 삶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행동했다는 것은 그의 삶이 하나님을 향해서 집중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의 안주를 거부하고 저 천성을 향해서 끊임없이 옮겨가야하는 구도자의 삶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집중력이 신앙인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도 잊지 말고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삶은 분리의 삶이요, 떠나는 삶입니다. 흑암으로부터의 분리, 혼돈으로부터의 분리, 죽음으로부터의 분리,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분리, 그래서 빛에로, 질서에로, 생명에로, 구원에로 옮겨가는 구도자의 삶이요, 천성을 향해 집중하는 삶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삶은 믿고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옵니다. 아브람이 이 명령을 받은 것은 아마 갈대아 우르에서였을 것으로 봅니다. 이 명령은 세 가지 것으로부터 떠나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첫째는 고향으로부터, 둘째는 친족으로부터, 셋째는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안전한 항구에 정박한 배의 끈을
포구로부터 끊고 떠나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간 의지하고 살았던 세상 줄을 끊어버리라는 명령입니다. 여간한 모험심이 없이는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의 말씀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토대이며 근거이자
기반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들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귀소본능을 가진 연약한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는 가장 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에 버거운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할 경우가 있습니다.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셋째, 아브람의 삶은 제단을 쌓는 삶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곳에 하나님을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계시하셨던 곳이니 제단을
쌓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와 일행이 천막을 치고 거주하는 곳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제단을 쌓았고,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정성이 대단한 믿음의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정성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복을 받아 아랍민족들의 ‘존귀한 아버지’가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인간의 행위나 갸륵한 노력을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소치로 과소평가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가상한 노력을 하나님이 마다하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총을 자신의 노력의 대가로 생각한다거나 대가를 바라는 식의
믿음은 잘못된 율법주의 신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에 대한 증거를 보이지 않는다면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에 역사하는 힘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우리 믿음의 식구들은 아브라함을 본받아 하나님께 제단 쌓은 일에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십시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는
히브리서 10장 25절의 권면대로 성심을 다하는 신앙을 갖도록 하십시다.
넷째, 아브라함의 삶은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날로 깊어지는 삶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자신에게 나타나 장차 큰 민족을 이룰 조상으로 삼겠다는 축복을 주시고, 또 장차 주실 약속의 땅을 향해서
고향과 친족을 떠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14장 22절에 가서는 이 하나님이 ‘엘 엘르욘’ 곧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15장 1절에서는 이 하나님이 자신에게는 ‘방패’와 ‘큰 상급’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17장 1절에서는 ‘엘
샤다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은 21장 33절에서 ‘엘 올람’ 곧 ‘영원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며, 22장 14절에 가서는 ‘여호와이레’ 곧 ‘현현하시는(보이시는) 야훼’ 혹은 준비하시는 야훼’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보시는 하나님’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됩니다. 이뿐 아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언제나 내리 사랑으로
먼저 찾아오셔서 부족한 자신과 언약을 체결해주시고,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는 분으로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가지면 가질수록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6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해왔고, 50년 넘게
신학을 공부했지만, 제가 깨닫는 성서와 하나님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란 사실입니다. 그만큼 깊고 심오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신앙인들을 종종 봅니다. 그들의 그 자족이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신앙의 깊이를 더하여 그 깊고 새로운 맛에 매료되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섯째, 아브라함의 삶은 완벽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완벽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끔씩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16장에서 아브라함이 아이를 생산치 못하는 사라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인위적으로
이루려했던 충실치 못한 믿음에서 비롯된 실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가정의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비겁한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자기보다 세력이 강한 이집트왕과 블레셋의 아비멜렉왕을 두려워하여 부인인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실제로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였다고는 하나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성실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몇 차례에 걸쳐서 거짓을 말하고, 사라를 곤경에 빠뜨렸던 아브라함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를 도우시고
인정하신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거짓말을 인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로 인한 벌은 이미 아브라함이 받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대가없이 대접할 만큼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후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절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아브라함은 겸손한 처세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공정한 거래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의 인물들에게 감화력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은 이웃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성품과 진실을 아셨기에 언제나 아브라함의 편에 서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아브라함과 같은 복된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진실하고 성실한 자들에게, 신실하고 충성스런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잊지 아니하시고 복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 증거들을 저는 자주 체험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성도님들께도
함께 하셔서 복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