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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10-17 19:55
창세기 055: 여인들의 종족보존의무의 짐(창 38:1-3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573  
창세기 055: 여인들의 종족보존의무의 짐(창 38:1-30)

조선시대에 우리네 여인들은 시집에 아들을 낳아주지 못하면 칠거지악의 하나로 간주되어 무거운 한의 응어리를 달고 살아가야했습니다. 2005년 10월 3일 개막된 제3회 대한민국 여성축제에서 조선시대 여성을 억압해왔던 ‘삼종지도’(三從之道), 곧 여자가 지켜야 했던 세 가지 도리와 ‘칠거지악’(七去之惡), 곧 아내를 내쫓는 일곱 가지 허물을 유쾌하게 비튼 ‘신(新) 삼종지도’와 ‘신(新) 칠거지악’이 공개되었습니다.
‘남편을 버릴 수 있는 일곱 가지 경우’로 패러디된 신 칠거지악은 명절 때 시부모는 30만원, 친정부모는 10만원 줄 때, 딸을 낳았는데 남자가 아들 타령할 때, 섹시한 아내의 눈빛을 외면할 때, 아내가 직장동료와 회식하는 걸 알고도 자꾸 전화할 때, 의처증, 아내구타, 알코올 중독 등에 걸렸을 때, 반찬 투정할 때, 아내 지갑 속 비상금을 집어가고 시치미 뗄 때 등이며 이때 아내는 남편을 ‘엄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 삼종지도’는 또 “어려선 아비와 어미의 뜻을 함께 따르고, 시집가면 지아비를 가르쳐서 평등한 가정을 만들며,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에 연연하지 말며 나의 길을 간다.”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시대 우리네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근동지방에 살던 여인들도 시집에 아들을 낳아 가문을 잇게 하는 것이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롯의 두 딸들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 종족을 이어가려고 했던 것이나 다말이 시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 가문을 이어가려고 했던 것이 다 시대는 달라도 이브의 후예들인 여인들이 껴안고 살아야했던 무거운 짐을 덜고자 했던 것들입니다.
구약 족장시대에 여자들은 혼인함으로써 남편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남편이 처를 집으로 데려와 자기소유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여자들에게 있어서 혼인은 남편의 일부가 되는 것이며, 남편의 아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혼인함으로써 여자는 남편가족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자는 남편의 집에 귀속되는 동시에 또한 남편에게 귀속됩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가장인 시아버지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하며, 남편의 죽은 후에도 따라야 하는 규범이었습니다. 여자는 혼인 전에는 아버지의 재산으로 간주되고, 혼인 후에는 남편의 재산으로 간주됩니다. 남편은 자기의 처에게 지배권을 행사하며 종교적 행위에 대하여 제약을 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히브리 사회에서 가장은 자기 가정의 모든 것을 소유할 권리를 가졌으며, 처를 비롯한 자녀 자부들과 자손들이 모두 그에게 속하였습니다.
대를 이어간다는 의미의 계대(繼代)결혼제도 또는 형수와 결혼한다는 의미의 형사취수(兄死取嫂, levirate law) 또는 수혼(嫂婚)제도는 고대 중근동의 결혼풍습으로써 결혼한 형제가 자식 없이 죽으면 다른 형제 또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 형수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게 해줌으로써 죽은 형제의 대를 잇는 제도입니다. 만일 죽은 형제가 아들 대신 딸이라도 두었으면 그 딸이 대신 아비의 기업을 이을 수 있기 때문에 수혼(계대결혼)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수혼의 풍습이 고대근동지방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첫째 재산의 유출을 막는 농지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며, 둘째 자식이 없는 과부를 여전히 남편 가족의 일원으로 남게 하려는 보호 측면에서 생겼다고 봅니다. 그리고 셋째 죽은 자의 이름을 유지시키며 죽은 사람의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수혼은 남편의 형제가 이행해야 했으나 형제가 없으면 가까운 친척이 그 의무를 맡아야 했습니다. 보아스가 과부 룻에게 장가든 것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만일 수혼 의무자가 수혼을 거절할 경우에는 미망인이 이 사실을 성읍 장로에게 고발합니다. 고발을 접수한 장로는 법정을 열고 그 남자를 소환합니다. 장로는 그에게 수혼의 취지와 목적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명해 줍니다. 그래도 끝까지 수혼을 거절하면 그의 신발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음으로써 그 의무가 다른 가까운 친척에게로 이양되었음을 알립니다.
수혼을 통해서 낳은 첫아들은 죽은 남편의 아들로 간주되어 그의 기업을 상속할 뿐 아니라 족보에도 이름이 오릅니다. 이런 방식으로 대가 끊이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혼은 죽은 형제나 친족을 대신하여 자식을 낳아줌으로써 그 형제의 이름과 기업을 보존시켜 주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또 유대인 여성이 이방 남자와 결혼하여 신앙을 잃는 것을 방지하고, 홀로 남아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보살펴 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수혼을 통해서 출생한 아이는 죽은 자의 대를 이을 뿐 아니라, 수혼 자인 아버지로부터도 재산의 일부를 상속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오난은 형 엘의 뒤를 잇지 않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혼을 이을 자가 전혀 없는 경우에는 상복을 벗은 후에는 친정으로 돌아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가 있었습니다.
‘다말’이란 이름은 종려나무란 뜻으로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셋째 시동생인 셀라가 장성했지만, 남편으로 주지 않으려 하는 시아버지의 뜻을 안 다말은 비상수단으로 시아버지에게서 자식을 얻을 계획을 세웁니다. 다말이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된 배경에는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시집에 붙들어 두려고 하는 한, 과부라 할지라도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자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계대결혼의 관습상 후사를 이을 수 있는 후계가자 있는 한 다른 집으로 개가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다말보다는 며느리에게 아들을 남편으로 주지 아니한 유다에게 더 큰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유다도 이 점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26절).
유다가 다말과 더불어 행위를 가진 곳은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이었습니다. ‘에나임’은 ‘두 우물’이란 뜻이며, ‘에나임 문’은 가나안 종교인 바알신전이나 아스다롯신전의 문이었을 것입니다. 다말이 이곳에 있었던 것은 그녀가 신전의 여사제 곧 성창으로 분장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농경생활중심이었던 가나안 원주민들에게는 다산이 중요한 축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산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며, 그 제사의식의 하나로써 신전에서 성행위를 가졌습니다.
이로써 유다는 두 가지 죄를 범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 가지는 이방인의 신전제의에 참석한 영적 음행이고, 다른 한 가지는 다말을 범한 음행이었습니다. 다말의 행위가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정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당한 자기 권리를 스스로의 노력으로 찾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유다의 행포를 사회적으로 고발한 것이며, 셋째는 홀아비가 된 시아버지를 통해서 자식을 낳음으로써 아직 젊은 셀라의 수혼의 의무를 면케 해준 것이며, 넷째는 끝까지 자기 의무를 다함으로써 남편의 가문을 살렸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신앙적인 면으로써 가나안 여인이었던 다말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식시키려고 결심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자손번성에 대한 약속’의 성취라는 구속사의 연속선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이방여인이고, 부정한 행위로 자식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여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며,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실린 다섯 명의 여인 중 한 사람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가문의 대를 잇겠다는 그녀의 노력을 하나님께서는 크게 보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말은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확장한 전도자의 본보기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말과는 달리 유다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다와 그의 아들들은 이방 여인이었던 다말보다도 정신세계나 신앙세계에서 볼 때 훨씬 뒤떨어진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있어서 대를 잇는다는 것은 단순히 혈통을 잇는다는 것 이상의 신앙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즉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민족으로 성장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맏아들 엘은 하나님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 악한 자였습니다. 성경은 엘에 대하여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7절)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로 보아 엘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불성실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엘의 동생 오난 역시 엘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당시의 혼인 관습인 수혼법에 따라 오난은 엘의 가계를 잇기 위하여 형수와 혼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형수가 잉태하여 아들을 생산한다 할지라도 그 아들은 자신의 유업을 잇는 것이 아니라, 엘의 가계를 잇는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쉽게 그 일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죽어버린 엘의 가계를 잇기 위하여 자신이 형수와 혼인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난은 땅에 배설함으로써 형수가 임신할 수 없도록 수단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엘의 자손이 번성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은 오난의 행위가 명백히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반역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9, 10절).
엘과 오난을 잃은 유다는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여 대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왜 여호와께서 엘과 오난을 죽게 하셨는가에 대한 문제를 살피지 않고 오히려 수혼법에 따라 셀라가 다말과 혼인할 경우 셀라마저 죽지 않을까 하는 인간적인 우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11절). 유다는 문제의 본질을 놓쳐 버린 채 단지 일어난 현상을 어떻게든지 무마해 보려는 소극적인 해결책만을 찾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다말의 행동은 매우 적극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다는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무관심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다른 형제들과 더불어 야곱의 정통성을 이어야 한다는 의식을 분명하게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후에 유다는 야곱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다른 누구보다도 바른 견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사명은 야곱 이후에는 열두 아들들에게 계승되었고, 유다와 다말에게서 출생한 베레스를 통해서 다윗과 그리스도에게로 계승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말은 유다를 통해서 쌍둥이 아들을 보았습니다. 베레스와 세라인데, 베레스가 맏아들이고, 세라가 둘째입니다.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경우에서는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왔고, 둘째였지만, 야곱이 에서를 제치고 하나님의 약속의 대를 이어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인 유다는 다말을 통해서 쌍둥이인 베레스와 세라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이들이 아예 어머니 배속에서 순서를 바꿔가지고 나왔습니다. 먼저 나오던 세라를 어머니 뱃속으로 끌어들이고 베레스가 먼저 나왔던 것입니다. 베레스는 다윗과 메시아인 예수님 가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창 25:23, 롬 9:12)이라는 하나의 큰 원칙이 창세기 38장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1장 12절에서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는데, 이런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혈통이나 서열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있다는 성경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을 자들의 계보는 혈통이나 서열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믿음과 그 사람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성도님들이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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