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8-11-05 06:06
출애굽기 3102.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를 중죄로 다룬 이유(출 31:12-17)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7  

3102.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를 중죄로 다룬 이유(출 31:12-17)

출애굽기 31장 14-15절과 35장 2절에는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를 사형에 해당되는 죄로 간주하고 있다.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와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되어있다. 이밖에도 모세오경에는 신성모독, 성소 또는 성직침입, 살인, 유괴, 부모저주, 강간, 간음, 수간, 접신 등이 사형에 해당되는 중죄로 취급되고 있는데,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가 또 다른 사형에 해당되는 중죄로 간주되고 있어서 충격적이다. 오늘날에는 엽기적 살인자조차도 사형에 처해서는 안 된다는 사형제 폐지론이 지배적이어서,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613개 토라계명들 가운데 사형시켜야할 만큼 큰 죄로 간주될만한 죄는 거의 없다. 하물며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를 사형에 처하라는 계명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토라에서 안식일을 더럽히거나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를 사형에 해당되는 중죄로 다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특히 이 안식일준수 계명을 성막건축을 시작하기 위한 31장과 35장에서 두 번 반복해서 아주 강한 어조로 말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성막건축을 이스라엘건국과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안식일 준수가 성막건축으로 묘사된 이스라엘건국 또는 이스라엘의 생사가 걸린 사안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들의 범주를 39가지 성막건축공정에서 찾았고, 이스라엘건국을 위해서 유대인들이 가장 유념해야할 일이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성막이나 성전을 우주의 축소판으로 본다. 또 이스라엘은 그 우주의 배꼽이라는 점에서 성막건축은 이스라엘건설에 맞물려있다.

안식일준수는 흩어진 떠돌이와 노예들인 유대인들을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 함께 모이게 하고, 민족의 믿음과 희망의 끈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게 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 그들을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힘이었다.

유대교인들에게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오늘날 유대교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하라”(출 20:8)는 계명대로 안식일을 ‘기억하기’(Zakhor) 위함이고, 둘째는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신 5:12)는 계명대로 안식일을 ‘지키기’(Shamor) 위함인데, 특히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여 창조의 일(Melachah)을 중단하고 노예와 유배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제2, 제3으로 이어지는 해방, 곧 이스라엘의 희망(Ha-Tikvah)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이로써 우리는 적어도 유대교인들이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이유가 사형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유대인들의 삶은 항상 전시와 같았다는 점이다. 전시에는 상사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하고, 만일 불복종할 시에는 사살시킬 수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전시법은 부대원들의 생존뿐 아니라 국가의 존망이 걸린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시와 같은 비상사태에 자주 처해있었다. 그 원형이 출애굽사건이고 땅과 나라를 얻기 위한 투쟁이 멈춘 적이 없다. 이처럼 모세오경은 백성이 한 사람처럼 단결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했던 생존을 위한 투쟁이 극심했던 상황들에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은 유대인들에게 3천년이 넘게 지속되어왔다.

그리고 출애굽직후 광야에서 펼쳐졌던 이야기는 일 년에 한 차례씩 모세오경을 완독하던 유대인들, 특히 바벨론유배에서 조상들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또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유배(광야)생활을 지속한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선포이후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고토에 돌아온 유대인들이 겪었던 이방인들의 핍박과 경제적 어려움은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바벨론(페르시아)탈출 세대가 고토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그들보다 900여 년 먼저 이집트탈출 세대가 광야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뒤지지 않았고, 그로부터 2500년 후에도 상황은 동일했다. 그러므로 떠돌이와 노예들인 조상들이 극한의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만들어가는 영웅적 광야시대의 이야기는 수천 년에 걸쳐 제2, 제3, 제4, 제5의 떠돌이 광야시대를 살아야했던 유대인들에게 ‘그 희망’(Ha-Tikvah) 자체였다.

전시법과 같은 토라 모세오경과 613개의 계명들은, 비록 오늘날에는 유대인들조차도 죽은 법으로 여기는 것들이 수백여 개나 되지만, 유대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원동력이다. 유대인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수천 년에 걸쳐 험하게 살아온 만큼 칭송과 아울러 멸시와 천대를 받기도 한다. 유대인들에 대한 칭송과 비난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유대인들의 삶이 고달팠다는 뜻이고, 생존을 위한 투쟁이 거칠면 거칠수록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크게 받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믿음과 신념이 강했고, 확신과 희망이 강했으며, 싸움닭처럼 거칠게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명한 인사들이 유대인들의 생존을 불가사의한 일로, 기적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마크 트윈(Mark Twain)은 “모든 것이 죽지만, 유대인은 죽지 않고, 모든 세력이 사라지지만 유대인은 살아남아있다. 무엇이 유대인의 불멸성의 비밀인가?”라고 피력하였고, 성공회 감독이자 시인인 토마스 뉴턴(Thomas Newton)은 “지상의 그 어떤 나라도 보존되지 못했는데, 초자연적인 힘이 아니고서 무엇이 유대인들을 보존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했으며, 수학자 파스칼은 “유대민족은 고대로부터 탁월성이 유일했던 것은 아니지만, 강력한 제왕들이 수백여 차례나 그들을 멸절시키려고 진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에 있어서만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독보적이다.”고 하였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는 “유대인은 영원성의 상징이다... 유대인은 예언의 말씀을 아주 오랫동안 보존하고 그것을 인류에게 전달한 민족이다. 이 같은 민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유대인은 영원하다. 유대인은 영원성의 구현이다.”고 피력하였다.

다른 한편, 유대인들은 사람들에게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70억 인구가운데 10억이 넘는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적대적이고,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히틀러의 유대인학살이 신화라고 주장하며, 지난 10년간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에서 최소 6만 건 이상, 매일 평균 17건의 반유대주의 행위들이 있었다. 19개국에서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의 44퍼센트가 유대인들은 거주하고 있는 나라보다 이스라엘에 더 충성한다; 38퍼센트가 유대인들은 비즈니스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29퍼센트가 유대인들은 자기들 이외에 일에는 관심도 없다; 15퍼센트가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전쟁들에 책임이 있다; 28퍼센트가 유대인들은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38퍼센트가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지나치게 떠들어댄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바가 있다. 역사가들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증오하는 이유를 여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는 그들의 경제력 때문이고, 둘째는 자신들이 선민이라며 오만을 떤다는 것이며, 셋째는 지상 모든 문제들의 책임을 뒤집어 씌워 희생양으로 삼기에 유대인들이 제격이라는 것이고, 넷째는 예수님 곧 신을 죽인 자들이란 것이며, 다섯째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고, 마지막 여섯째로는 유대인들이 열등한 민족이라서 증오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미디어를 장악하고 조작한다든지, 고리대금업자들이라든지, 그리스도인 아이들을 유괴 살인하여 그 피를 그들의 종교의식에 쓴다든지, 우물에 독약을 푼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난무하였다. 또 공산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자본주의자들이라고 욕하고, 자본주의자들은 공산주의를 창시했다고 비난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죽었다고 비난한다. 그밖에도 전쟁도발자, 겁쟁이, 인종주의자, 세계주의자, 줏대가 없는 자, 완고한자 등등 많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서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뜻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선민으로 택하신 이유를 세계를 고치는 자, 열방의 빛, 제사장의 나라가 되라는 뜻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폴 존슨(Paul Johnson)은 “역사에는 목적이 있고 인류는 운명을 타고난다고 그 어떤 민족도 일찍이 유대인들보다도 더 확고하게 주장한바가 없다. 유대인들은 민족형성 초기부터 그들이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탐지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사회가 일종의 조종사가 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고 믿었다.”라고 <유대인의 역사>라는 책에서 기술하였다. 마이클 레이트맨(Michael Laitman) 같은 유대인 학자는 유대인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할 책임이 있다고 믿고 있다.

2천 년 전 예수님도 일부 유대인들로부터 중상모략과 비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종국에는 하늘보좌에 앉는 영광을 누리시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영웅적 이야기는 삶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희망’ 자체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당대에 많은 비난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장렬하게 순교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1만여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동일한 이유로 순교하였고,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물리적 탄압이나 위해는 아닐지라도, 인격살인에 가까운 심한 모욕과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알아야할 사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수천 년에 걸쳐 이어오면서 칭송과 아울러 멸시와 천대를 받아왔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삶이 고달프면 고달픈 만큼, 생존을 위한 투쟁이 거칠면 거친 만큼, 믿음과 신념이 강하면 강한 만큼, 확신과 희망이 강하면 강한 만큼, 싸움닭처럼 거칠게 살면 산만큼 칭송이든 비난이든 그 수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에 믿음도 신념도 확신도 희망도 없다면, 비난받을 일도 없을 것이고 더더욱 칭송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과 같은 영광의 그날을 희망한다면,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힘겨운 삶이든, 비난이든,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