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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0 15:09
역사는 정신에 지배된다[누가복음 12장 16-21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454  
그리스 신화에 미다스(Midas)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미다스는 브루기아의 왕으로써 황금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손으로 만지는 것은 모두 황금이 되게 해달라고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빌었다. 그런데 그만 소원이 성취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미다스는 혼쭐났다.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는 것은 좋은데, 사랑하는 딸의 손을 잡자 딸까지도 황금으로 변했고, 사과를 먹으려고 손을 대자 사과마저도 황금으로 변하는 바람에 쫄쫄 굶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최대의 가치를 두고 탐하는 물질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함정에 빠지게 한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이다.
누가복음 12장 16-20절에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예수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어떤 부자가 기름진 농토를 가지고 있었는데 풍년이 들었다. 거두어들인 곡식은 곡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더 넣어 둘 데가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속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야겠군. 그러면 충분히 쌓아 둘 수 있겠지. 그리고 내 영혼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물건을 몇 해 동안 쓰고도 남을 만큼 쌓아 두었다. 이제는 편안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밤에 내가 네 영혼을 찾아가리라. 그러고 나면 네가 모은 재산이 다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재물에다 최대의 가치를 두고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에 안주하려는 사람은 결코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실패자가 되고 만다는 교훈이다.
기원전 336년에 그리스 본토 도시국가의 왕들은 페르시아 원정을 앞두고 고린도에 모여 군사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20세에 불과한 젊은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가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뽑혔다. 그러자 내노라하는 정치가, 장군, 철학자들이 고린도에 몰려와 축하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총사령관이 기다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알렉산더는 당시 시노페 출신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고린도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는 디오게네스가 축하 인사하러 와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였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몸소 이 철학자를 찾아갔다. 디오게네스는 나무통 속에서 초라하게 살았는데, 일광욕을 즐기던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를 보자 일어나 앉았다. 알렉산더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후에 물었다. "뭐 도와드릴 일이 없겠습니까?"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사령관께서 햇살을 가리고 계시니, 조금만 비켜 서 주십시오."
알렉산더는 그리스 원정군 총사령관을 본 체도 하지 않는 철학자의 배포에 질려 다음 질문을 내놓지도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동행했던 장군들이 디오게네스의 퉁명스러움을 비웃었지만, 알렉산더는 오히려 "내가 만일 오늘의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라고 중얼거렸다.
디오게네스는 거칠게 먹고 험하게 입고 산 사람으로 유명하다. 형편이 어려워 고기를 사먹을 수 없었던 그는 값싼 야채를 구해 깨끗이 씻어 먹고는 했다. 그가 시냇가에서 푸성귀를 씻고 있는 것을 본 한 유복한 친구가 지나가다가 안타깝다는 듯이 충고를 했다. "고개 수그리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호의호식할 수 있을 텐데, 자네 왜 그 모양인가?" 유복한 친구를 돌아다보면서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거칠게 먹고 험하게 입고 사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고개를 수그리지 않아도 될텐데 자네는 왜 그 모양인가?"
무기력한 거지나 다름없지만 디오게네스는 사기 충천한 그리스 원정군 총사령관 알렉산더를 지배했던 것이다. 디오게네스의 정신이 알렉산더의 무력을 지배한 것이다. 디오게네스의 청빈함과 초탈함이 물질과 명예와 권세에 끌러 다니는 아류들을 지배한 것이다.
페르시아 원정을 앞두고 알렉산더는 델포이(Delphi)로 올라갔다. 델포이는 예언의 신 아폴론의 신전이 있는 곳이다. 신전의 문 상인방에는 "그노티 세아우톤" 즉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는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알렉산더는 아폴론 신이 그 신전에 맡겨놓았다는 뜻을 받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신전에 이른 날은 공교롭게도 액일 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부하를 신전에 들여보내 여사제(제니 혹은 퓌티아)에게 총사령관이 탁선, 곧 신이 맡겨놓은 뜻을 받으러 왔다는 사실을 알리게 했다. 잠시 후 부하가 나와 이런 말을 전했다. "여사제는 신전의 법에 따라 액일 에는 신이 맡겨 놓은 뜻을 전해줄 수 없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부하를 다시 들여보내 우격다짐으로 여사제를 끌어내게 했다. 끌려나온 여사제는 사령관 앞에서도 탁선을 전할 수 없다고 버티었다. 알렉산더는 여사제를 끌고 신전으로 들어가 다리가 세 개인 걸상에 앉혔다. 델포이 신전 중앙에는 연기가 솟아오르는 조그만 구멍이 있었는데, 여사제가 연기 구멍 위에 이 세 다리 의자(Tripous)를 올려놓고, 그 위에 앉아서 연기를 들이마신 후에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여사제는 알렉산더의 열성에 감복했다는 듯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참으로 질 줄 모르는 사람이군요." 탁선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셈이 된 알렉산더가 응수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받고 싶어하던 신의 뜻이오."
세계 정복의 꿈을 가졌던 알렉산더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역사는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배된다. 역사는 물질이 아닌 정신에 의해서 지배된다.
알렉산더의 원정군은, 역사가에 따라 주장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3만 5천명의 보병과, 3천 5백 명 정도의 기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알렉산더는 변변치 못한 군자금으로 원정에 나서면서도 왕실 재산을 군자금에 보탤 생각은 하지 않고 참모의 가족들에게 고루 나누어주고는 손을 털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귀족 출신의 참모 페르디카스(Perdiccas)가 알렉산더에게 물었다. "아니, 전하께서는 빈털터리가 되시지 않았습니까?" 알렉산더가 대답했다. "천만에, 아직도 내게는 희망이 있소." "그렇다면 저도 재산대신에 그 희망이라는 것을 좀 나누어 받겠습니다." 페르디카스는 왕이 하사한 재산을 반납했다. 그러자 왕은 페르디카스가 반납한 돈을 더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마저 나누어주고는 다시 손을 털었다.
후일 페르디카스는 알렉산더가 죽은 후 대 헬라제국의 섭정이 되었다. 그가 나누어 받은 희망의 열매가 어찌 어리석은 사람들이 받은 한 상자의 돈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알렉산더와 페르디카스는 눈에 보이는 작은 재물에 가치를 두지 아니하고, 꿈을 가지고 멀리 내다보면서 보다 큰 성공에다 가치를 두었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젊은 나이에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 그의 이름을 역사에 깊이 새겨 수천 년이 흘러도 지울 수 없게 만든 것, 그것은 바로 현실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큰 꿈과 기상을 품고 미래를 내다 본 정신에 있었다.
소인과 대인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은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작은 것을 따르는 자를 소인이라고 하고, 큰 것을 따르는 자를 대인이라고 한다." 영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미국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이렇게 대답했다.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이지요." 이렇게 대인이나 영웅은 자기보다 큰 것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한 시대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이다.
영웅을 헬라어로 '헤로스'(heros)라고 한다. 이 말은 반신반인(demigod)을 뜻한다. 헤라클레스, 디오니소스, 테세우스와 같은 영웅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보다 큰 것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마침내 자기 시대의 주인공들이 되었고, 인간의 한계인 죽음까지도 뛰어넘어 부활 승천하여 영원한 존재인 신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와 같은 불멸의 존재가 있는가하면, 이들 영웅처럼 영원한 존재가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영웅들의 삶은 한 귀퉁이가 모자란 채로 태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의 삶이 영웅이 되는 필요조건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타고난 한계와 고난의 세월을 경험하지 아니한 영웅의 이름을 신화는 별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단 그리스의 신화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의 생애가 그렇고, 예수와 바울의 생애가 그렇다. 이들은 모두가 타고난 한계와 고난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위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무리 역사에 기리 남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할지라도 삶의 가치를 정신과 신앙에 두지 아니하고, 물질과 명예와 권세에 두었던 사람들의 업적은 오래가지 못했다. 칼과 창으로 세운 헬라제국이 채 3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고, 300년 가깝게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제국도 역사에 그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물질보다는 정신을, 명예보다는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원했던 예수의 나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고 가르쳤던 예수의 나라, 매를 맞고 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의 나라는 그 엄청난 박해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인한 나라로 2천년 가깝게 역사를 지배하며 역사 위에 우뚝 서 있다. 물질보다 더 강한 것은 정신이다. 정신보다 더 강한 것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에 꿈을 버리고, 이상을 버리고, 미래를 버린 사람의 결국은 그가 비록 당장은 재산을 모아 잘살지는 몰라도 그의 삶은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희망이 없는 삶이요, 미래가 없는 삶이요, 존재가치가 없는 삶이다.
유대인 라비 가운데 요한나 벤 자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요한나는 유대민족이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큰 위기에 직면하여 좌절하고 있을 때에 유대주의를 발전시켜 크게 보급한 라비이다.
주후 68-70년 사이에 유대인 열심당원들이 로마군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일으켰을 당시 요한나는 온건파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강경파였던 열심당원들이 군사적으로 크게 열세한데도 불구하고 로마군에 대항하자, 요한나는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유대민족이 역사에 길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는지를 깊이 묵상하였다. 마침내 그는 로마군의 총사령관을 만나기로 작정하고 강경파들의 감시망을 뚫고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갈 길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이 죽은 자의 시체를 부정하게 여겨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지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꾀병을 앓기 시작했다. 요한나는 유명한 라비였으므로 그가 병을 앓는다는 소문과 결국 죽었다는 소문이 온 성에 퍼지게 되었다.
요한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안에는 묘지가 없었으므로 그를 성밖에 묻을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열심당원들에게 강경하게 요청하였다. 열심당원들은 요한나의 관에다 칼을 찌르려고 했지만, 라비의 시신에 칼을 대는 것은 그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제자들의 항변에 부딪쳐 성문통과를 허락하고 말았다. 성안을 빠져 나온 요한나는 성곽을 포위하고 있는 로마군의 총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를 만날 수 있었다. 요한나는 베스파시아누스를 처음 본 순간 그가 네로를 이어 차기 황제가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황제의 예를 표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중요한 부탁을 했다. "방 한 칸이라도 좋으니, 10명 정도의 라비들이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하나 만들어 주되, 이 학교만은 절대로 파괴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요한나는 조만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점령당하여 대량파괴와 학살이 이루어질 것을 알았다. 그렇게 되면, 성전이 훼파되어 다시는 성전에서 예배할 수 없게 되고,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세계를 떠도는 나그네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만 있다면 유대전통을 변함없이 전승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것이다. 로마의 사령관은 요한나의 예언대로 68년에 황제로 등극되었고, 요한나의 요청대로 지중해 서안에 위치한 욥바 근처 야브네에 세워진 요한나의 학교를 파괴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비록 국가는 망해버렸고 성전은 파괴되었지만, 그 때 그 학교에 남아 있던 라비들은 살상을 면하여 유대 지식과 유대 전통을 지키고 가르칠 수 있었다. 그 결과 팔레스틴을 지배했던 강한 나라들은 하나 둘씩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가장 힘없는 나라 이스라엘은 오히려 그 어렵고 지루한 역경과 시련을 딛고 굳세게 살아남아 결국 1948년에 국가를 재건하는 강인한 신앙과 정신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꿈 있는 한 사람의 라비가 가르친 민족정신과 신앙이 역사에 이어지면서 보이는 나라가 없이도 수천 년을 견딜 수 있었다. 탈무드를 요약하여 출판한 마빈 토케이어는 유대인의 저력을 '학문에의 집착,' '권위에의 도전,' '불굴의 정신,' 그리고 '자기 확립'이라고 분석하면서, 국토 없는 떠돌이 민족으로서의 설움 속에서 수천 년을 보내는 동안 유대인들로 하여금 굳건한 인고의 정신으로 그 역경을 헤쳐나가게 한 유대인 특유의 근본사상은 바로 성경과 탈무드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이면, 고난과 가난의 상징인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면서 기도하기를, "금년에는 우리가 여기서 이것을 먹지만,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먹게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하였다. 이 꿈이 바로 오늘의 유대인이 있게 한 저력이다. 역사는 정신에 지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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