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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07
부활의 주 예수 신앙[롬 10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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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8,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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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를 살펴 볼 때, 교회는 박해와 시련 속에서 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창설자이신 예수는 소외되고 불쌍한 민중의 편에 있었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당국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무덤에 갇혔다. 만일 예수께서 무덤에 갇혀 영원토록 나오지 못하셨다면 기독교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덤을 박차고 나오셨다. 다시 살아나셨다. 부활하셨다. 살아나신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그리고 승천하셨다.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을 받고 계신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탄생할 수가 있었다.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무덤에 갇혔지만, 고난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무덤을 박차고 나온 부활의 주 예수 신앙의 기초 위에 기독교가 세워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기독교인들은 예수와 같이 미움받고 배척 당하고, 맹수들에게 찢겨 죽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면서도 부활의 주 예수 신앙으로 언제나 새 힘을 얻고 새 출발할 수 있었으며 예수처럼 승리와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활의 주 예수 신앙'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기독교는 처음부터 박해와 배척이라는 엄청난 악조건에서 출발했다. 기독교는 주후 30년 예루살렘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리고 처음 삼 백년 동안은 로마제국으로부터 약 십여 차례에 걸쳐서 엄청난 박해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들 고난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온 유럽을 기독교 나라로 정복하고 말았다. 이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왔을까?
초대교회 신앙인들은 처음부터 유대인들의 박해를 감당해야 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 사도 바울이 살아 생전에 여러 번 감옥에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한 것이 유대인들 때문이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아(고후 11:23-25) 죽었다가 산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박해자들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정복당했다. 이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왔을까?
초대교회 신앙인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당시에 로마제국은 황제를 신격화시켜 예배하도록 강요했다. 율리우스 시저, 아우구스투스, 글라우디우스,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황제가 사후 로마 상원에 의해서 신으로 선포되었다. 네로는 자신을 신으로 착각한 황제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주화에 신이란 단어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큰 도시들에서는 이 황제숭배를 위해서 신전을 짓고 제사를 바쳤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제사를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신론자라는 누명을 쓰고 사나운 맹수들에 찢겨 죽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도 하고 투기장에 끌려나가 대중이 보는 앞에서 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해자들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정복당했다. 이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왔을까?
둘째, 신앙인들은 박해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주 예수 신앙으로 이 모든 시련을 극복했다. 그들에게는 죽어도 다시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을 절망으로 생각지 않았고, 죽음을 죽음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밝아오는 하나님의 승리와 영광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오,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이와 같은 믿음은 부활의 주 예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신앙이 바로 모든 시련과 역경을 이길 수 있는 엄청난 힘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주후 44년에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예수의 제자들을 잡아죽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야고보를 잡아 죽었다. 야고보의 순교에 대해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야고보를 법정으로 끌고 가던 호송원이 야고보의 믿음을 보고 감동이 되어 자기도 예수를 믿겠다고 결심하였다. 도중에 호송원이 야고보에게 자기도 예수를 믿겠다고 말하고 자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이에 야고보는 잠시 생각하더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평안히 당신에게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입맞추었다. 이 같은 대화가 오고 간 다음에 두 사람은 사형장으로 끌러가 함께 목베임을 당하였다. 죽음을 불사하는 야고보의 큰 믿음이 박해로 인해서 꺾이기보다는 오히려 호송원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주후 51년 바울과 실라는 마게도냐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옷이 찢기고 실신하도록 매를 맞고 손발이 묶인 채로 깊은 옥에 갇혔다. 그러나 이런 시련도 바울과 실라의 믿음을 꺾지 못했다. 그들은 밤중쯤 되어 정신이 들었다. 그들은 곧 기도하고 찬송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손발이 풀렸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했다. 이 때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말하기를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당신의 몸을 상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간수가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묻기를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집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바울은 말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다. 복음을 듣고 난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맞은 자리를 씻겨주고 자기와 모든 가족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데려가 음식을 차려주었다. 이 후로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 일행의 선교에 헌금으로 적극 동참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박해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주 예수 신앙인들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박해자에게 꺾이기보다는 오히려 박해자들을 개종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이 놀라운 능력이 부활의 주 예수 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초대교회의 순교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107년에 순교한 이그나티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나 때문에 타협하지 말라. 또는 내가 석방되기를 바라지도 말라. 나는 밀알이 되고 짐승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하나님의 깨끗한 빵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자유를 얻을 것을 나는 믿는다.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다면 불 가운데나 십자가 위에나 짐승의 아가리나 뼈가 가루가 되어도, 손과 발을 잘리더라도,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가 있을 뿐이다."
우리 나라에도 로마제국의 황제숭배 때와 비슷한 박해가 있었다. 일제시대에 많은 신앙인들이 일본이 강요했던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가혹한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살해되기도 하였다.
일본은 옛날의 천황이나 무사들의 영을 섬기는 신사(神社)라는 것을 조선에 만들고 전 국민을 참배케 하였다. 이는 조선인의 충성을 시험하고, 군국주의의 정신적 단결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이 신사는 읍 면 단위에까지도 세워졌다. 합병 후 일본은 천황의 사진에 경축일마다 절을 하게 하였고, 1925년 1월에는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만들어 천조대신(天照大神)과 명치천황(明治天皇)을 제신(祭神)으로 모시고 참배케 하였다. 1924년 11월 강경에서는 신사참배에 불응한 여선생과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 둔 사태가 벌어졌고, 1935년에는 평양의 기독교 학교들에게 강력하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목회자들과 신도들은 구속되었고 무진 매를 맞고 가혹한 고문을 당하며 엄청난 굴욕을 겪었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해서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였다.
우리 나라 순교사를 보면, 신앙 때문에 박해받아 순교한 사람이 일제시대나 6.25동란 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에도 있었다. 이 때에 수 차례에 걸친 조정의 박해 때문에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200년 전 처음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성균관의 몇몇 유생들을 포함한 유학자들이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남인 시파에 속한 이 벽, 이승훈,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권철신 등과 같은 실학파 유생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정약종과 그의 부인 유소사 그리고 그의 아들 정하상을 비롯한 자녀들이 각각 다른 시기에 순교를 당하였다. 어느 날 유소사가 꿈을 꾸었는데 순교한 남편이 말하기를 "나는 천국에 방 여덟 개가 있는 집을 마련하였는데 다섯은 벌써 찼고 셋만 남았소. 그러니 생활의 곤궁함을 잘 참고 견디시오. 그리고 꼭 우리 곁으로 오도록 하시오."라고 하였다.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유소사의 조카가 시골로 피난하여 오라고 집까지 마련해주었으나 그녀는 "나는 늘 순교하기를 원했는데 이제 그 기회가 왔으니 아들 정하상과 함께 순교할 생각이다."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녀는 1839년 7월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문초를 다섯 번 당하는 동안에도 타오르는 믿음의 열정으로 예수의 고초 당하심과 죽으심을 이야기하고 자기의 문초 당함에 대해서 감사하였다. 당시 국법에는 노인을 목베어 죽이는 것을 금하였으므로 그는 마침내 매맞아 죽었다.
이런 엄청난 박해들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부활의 주 예수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활의 주 예수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 한국인 신자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멈추고 미래에 대한 희망 속에서 언제나 성실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뿌린 순교의 피가 씨앗이 되어 오늘날 전국 방방곡곡에 십자가가 세워지지 아니한 곳이 없다. 우리 나라와 비슷한 문화를 가진 일본은 우리 보다 200년이나 앞선 1549년 7월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라는 예수회 신부의 선교로 기독교를 받아 드렸고, 당시의 통치자였던 오다 노부나가와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때에도 자유로운 포교활동이 허락되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일본은 당연히 기독교 국이 되었어야 마땅한데도 일본의 기독교인 인구는 아주 적은 수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 나라는 선교사도 없이 중국에서 들여온 신앙서적들을 통해서 기독교를 접했던 신앙인들은 처음부터 모진 박해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남한 인구의 사 분의 일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로 발전을 했다. 이토록 한국에서 기독교가 발전하는 것은 초기 신자들이 흘린 순교의 피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도들의 순교는 부활을 믿는 신앙을 말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신비이다.
셋째, 우리 신앙인들도 부활의 주 예수 신앙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말한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하심에 근거해서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부활이다.
기독교의 구원하는 믿음도 예수를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동의하고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또한 부활 할 것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의 기초 위에 기독교가 세워졌다. 그래서 로마서 10장 9절은 "네가 말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부활이란 말은 죽음에서의 새 생명을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죽음의 세계와 같아서 온갖 죄악과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하다. 예수께서 무덤 속에 갇혔던 것처럼 우리도 때때로 냄새나고 썩고 침침하고 답답한 무덤 같은 현실 속에 갇힐 때가 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도에 따르면, 우리 나라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가 스트레스로 인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시험 때문에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까지도 스트레스 받는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연세대학교에서 행한 설문조사에서 서울시내 초 중 고등학생 중 상당수가 학업성적이 떨어질 경우 자살이나 가출 등 극단적인 행위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서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우리 갖자는 나름대로 좌절과 실패와 번민과 시련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부활의 주 예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낙심에도 불구하고, 좌절에도 불구하고, 시련에도 불구하고, 거듭거듭 재기하고 새로 시작하는 능력을 이 부활의 신앙 속에서 갖는다. 부활의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시련도 죽음도 가혹한 고문도 사자굴도 십자가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 앞서간 신앙인들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이 믿음 가지면 우리도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있다. 언제나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언제나 재기할 수 있다.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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