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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18
예수를 믿고[사도행전 16장 16-34절 ]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431  
'복음을 듣는 자가 복되다'에 이어서 '예수를 믿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성서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참으로 많다. 그 가운데 몇 개만 소개하겠다.
사도행전 16장 31절: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마가복음 16장 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에베소서 2장 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마태복음 9장 22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누가복음 17장 19절: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들 가운데 여섯 개를 소개하였다. 그런데 이들 말씀들을 잘 살펴보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의 뜻이 단순히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는 12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의 병을 고쳐주시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또 사마리아 출신의 문둥병 환자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영혼구원을 받는 것이나 병이 낫고 건강하여 지는 것이나 범사에 형통한 축복이 모두 구원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의 뜻 속에는 영혼의 구원은 물론이오 육체의 건강과 행복도 포함된다.
예수를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이솝우화'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하루를 즐겁게 놀았다. 저녁때가 되자 메뚜기는 아쉬움을 안고 하루살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얘, 하루살이야, 우리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놀자, 응?" 이렇게 말했다. "내일? 내일이 뭔데?" 하고 하루살이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메뚜기에게 물었다. "내일이란, 캄캄한 밤이 지나면 다시 오늘처럼 날이 밝아 오는 데 그게 바로 내일이야." "치! 오늘처럼 날이 밝아, 거짓말." "어어, 거짓말이 아니야." "세상에서 넘어가 버리고 있는 저 해를 보라고. 저게 어떻게 해서 다시 떠올라 밝아진다는 거냐." "내참, 얘, 하루살이야, 내일이란 건 정말 있어." "뭘 있어, 다 죽지! 그저 네가 날 놀려 보겠다는 거겠지." "어유, 답답하구나 정말." 메뚜기는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적인 내일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하루살이는 도무지 미덥지 못한 코웃음만 흘릴 뿐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메뚜기가 개구리와 함께 놀게 되었다. 그 풍요로운 자연의 낭만이 깃든 여름이 가고, 소슬바람 낙엽 지는 가을도 지나자 개구리는 메뚜기에게, "얘, 메뚝아! 우리 이젠 그만 놀아야 할까 보다. 날씨가 추워 오니까 우리 내년에나 다시 만나서 놀자."라고 말했다. "뭐라고?" "내 년에 다시 만나 놀자고. 내 년이 뭔데?"라고 메뚜기가 물었다. "내년이란 시냇물이 다시 졸졸 소리내어 흐르고, 새들도 다시 노래하구, 온 산과 들에 다시 꽃이 피는 새로운 해를 말하는 거야."라고 개구리가 말했다. 그러자 메뚜기가 이렇게 받아쳤다. "치! 거짓말. 시들은 꽃이 어떻게 다시 피어나니?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너 같은 개구리를 친구로 생각한 것이 후회막급이다. 새들이 다시 지저귀고 꽃들이 다시 핀다고, 웃기지 마라, 제발."
그렇다. 하루만 살다 죽는 하루살이는 내일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겨우 한 해만 살다 죽는 메뚜기는 내년을 이해할 수 없는, 넘을 수 없는 어떤 세계였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만일에 누가 본적도 없고 볼 수도 없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내일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하루살이나, 내년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메뚜기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의심하는 사람은 메뚜기나 하루살이와 같이 사후가 없는 사람이다. 하루살이가 내일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해서 내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메뚜기가 내년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해서 내년이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나 사후의 세계를 부인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거나 사후의 세계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새 사람이 된 사람은 참으로 많다. 우리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일부이다.
바울 서신 가운데 빌레몬서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겨우 한 장밖에 되지 않은 아주 짧은 글이다. 이 글은 골로새 교회의 신자이며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던 빌레몬에게 바울이 보낸 편지이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란 노예가 있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큰 피해를 주고 도망을 해 버렸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로마법에 의해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된 오네시모는 바울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일군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빌레몬에게 편지를 써서 오네시모를 돌려보내기로 하였던 것이다. 일단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어 사죄케 하고 손해를 끼친 액수만큼 바울이 갚아 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바울에게 되돌려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아들 오네시모를 두고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는 나의 마음입니다. 나는 그를 내 곁에 두어서, 내가 복음 때문에 갇혀 있는 동안에 그대를 대신하여 나에게 시중들게 하고 싶었으나,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대로 하여금 선한 일을 마지못해서 하지 않고, 자진해서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잠시 동안 그대를 떠난 것은 아마 그대로 하여금 영원히 그를 데리고 있게 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나에게 그렇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 안에서나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생각하면 나를 맞이하는 것과 같이, 그를 맞아 주십시오.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거든 그것을 내 앞으로 달아놓아 주십시오. 나 바울이 친필로 이것을 씁니다. 내가 그것을 갚아 주겠습니다. 그대가 내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몬 1:10-19).
천한 노예였던 오네시모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성공한 삶의 모습이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노예였던 오네시모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주인인 빌레몬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고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주인에게 불복종하여 재산 피해를 입혔고, 사람들에게 쓸모 없던 노예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후에는 새 사람이 되었고, 바울과 주인과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
일제 시대 항일 민족 운동의 본거지였던 만주 북간도 지역에 기독교 복음이 처음 들어간 것은 1907년이었다. 의식 있는 망명 기독교인들이 한인촌을 형성하고 조직적인 민족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일제에 항거하는 기독교 민족 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선구자'란 노래로 유명한 북간도에서도 용정은 항일 민족 운동의 구심점이었다. 박무림, 정재면, 김약연, 구춘선, 서춘, 문치정, 윤동주 등 기라성 같은 민족 운동가들을 배출한 간도의 용정촌, 그 곳에 복음을 들고 처음으로 찾아간 인물이 이화춘 목사이다.
이화춘은 1871년에 태어나 일곱 살 때에 부모형제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나루터에서 뱃꾼으로 일하던 덕보라는 나쁜 사람이 부모형제를 물에 빠져 죽게 한 후에 재산을 탈취해 갔기 때문이다. 어린 이화춘은 부모형제를 잃고 재산을 빼앗긴 채 할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할머니 마저 열 두 살 때에 돌아가셨다. 이 때 이화춘 목사는 외가댁에 살면서 가게의 점원으로 들어가 5년간 일을 배운 후에 열 여덟의 나이로 패물점을 차려 자립하였다. 그러나 보부상으로서의 그의 삶은 고생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가문을 멸망시킨 원수 덕보에게 복수하려다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었다 풀려났고, 보부상이 되어 중앙 정치에도 관여했으나 그것도 실패했고, 금광에 손을 댔다가 전염병으로 망하는 등 비운의 연속이었다. 스물 일곱에 결혼하여 생활의 안정을 되찾긴 했으나 스물 아홉 되던 1899년에 얻은 아들이 몸이 실하지 못하여 첫 돌이 되어도 그냥 갓난 아이 티를 벗지 못하고 늘 칭얼대며 보챘다. 걱정이 되어 동네 무당에게 물어보니 악귀가 들려서 그렇다며 돈 천냥을 들여 굿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돈 천냥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화춘은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화풀이할 곳만 찾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전부터 알고 지내던 개성 상인 방씨를 찾아 개성 장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방씨는 집에 있었는데 마당에 들어서면서 보니 방씨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무엇인가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이화춘이 가까이 가서 인사를 해도 모른 체 하고 한참 동안 중얼거리고 있다가 얼마 후에야 그는 이화춘을 맞으며 "노여워하지는 않았소?" 하며 손을 잡으면서 영접하였다. 이화춘도 마루 위로 오르면서 물었다. "자네 무엇을 믿는가?" 방씨가 하는 말이 "응, 요즈음 천주학을 배우고 그 도리가 훌륭하여 믿게 되었네." 하며 방씨는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방씨가 천주교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개성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천주교인이 있어 1866년 병인 교난 때 6명의 개성 교인이 순교 당하였다. 따라서 천주학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개성에 널리 알려져 있는 터에 친구 방씨가 천주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 천주학에 관한 것이었다. "천주학을 하면 죽어서도 눈을 빼간다."고 알고 있던 이화춘에게 방씨는 천주학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을 조목조목 들어 풀이해 주었다. 천주를 믿으면 인간이 복을 받고 또한 모든 악귀가 무서워 달아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악귀가 달아난다는 말에 귀가 번쩍 트였다. 천주교 교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괴롭히고 있는 악귀를 몰아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것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말이다. 이화춘은 천주학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방씨에게서 {인가귀도}란 책을 빌려 왔는데 그 책은 1894년에 감리교 출판사에서 낸 조그만 전도 책자로 내용은 타락했던 가장이 회개하고 온 가족을 교회로 인도한 후 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붙은 악귀를 쫓아낼 수 있다는 말에 부인도 믿기로 동의하였다. 마침 방씨를 만난 그 다음 주일은 고랑포에 천주교 공소가 완성되어 십자가를 꽂는 날이었다. 부부는 그날 미사에 참석하였다. 사흘 후옌가 집에서 기르던 돼지 새끼 다섯 마리와 검정개가 이유 없이 거품을 토하고 죽는 일이 일어난 후 아이의 병은 깨끗이 나았다. 이들 부부에겐 너무도 분명한 기적이었다.
이화춘은 좀더 신앙을 철저히 하고 싶은 생각에서 개성으로 다시 옮겼다. 북부 거리에 조그만 상점을 냈다. 당시 개성에는 병인 교난 때 순교한 교인의 집에 천주교 성당이 있었다. '은행나무집'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이 성당은 본래 서울의 약현 본당 관할 공소로 있다가 1901년 본당으로 독립되면서 프랑스인 루블레 신부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시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성으로 옮긴 후 오히려 이화춘은 신앙의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개성 성당 신부의 음주 때문에 시작되었다. 천주교 경문인 {12단}을 사려 갔다가 저녁 식사중인 신부가 소주를 많이 마시는 것을 보고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신앙의 결단으로 금주를 결심한 그로서는 술 마시는 신부를 보고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찾아간 곳이 개신교 예배당이었다. 개성에 있는 남감리회 예배당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삼재배용으로 쓰이던 움막을 개조한 교회였다. 이화춘은 여기서 세례를 받고 곧이어 성서를 파는 매서인이 되어 전에 장사 다녔던 지방을 전도하며 다니게 되었다. 이후 이화춘은 권사 직분을 받아 전도사로 일하다가 협성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한 후에 개신교 최초의 목사가 되었던 것이다. 부모 잃은 고아요, 천한 보부상에 지나지 않았던 이화춘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목사가 되어 한국 기독교회사에 족적을 남겼던 것이다.
우리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달라진다. 사람이 변화된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고, 보부상이 목사가 되고, 천한 삶을 살던 사람이 고결한 삶을 살게 된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다.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건강의 구원을 받는다. 범사가 형통하는 축복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