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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19
죄를 회개하고[누가복음 18장 10절-14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004  
회개는 인간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신앙인의 덕목이다.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죄 뿐아니라,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선생님과 제자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의 회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다. '내 탓이오' 라고 말하는 회개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아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국회에서, 사회 곳곳에서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깝게는 현재 내 안에, 또는 내 주변에 있고, 멀리는 미래의 천국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현재이든 미래이든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하지 않고서 경험되어질 수 없고 들어갈 수 없다.
회개와 반대되는 말로서 용서라는 말이 있다. 용서는 회개의 범주에 속한 것이면서도 묘한 뉘앙스를 지닌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전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회개 쪽보다는 용서 쪽에다 비중을 두고 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이번에 한번만 봐주겠습니다. 용서해 주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살기를 원하고 있다. 또 그런 기분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해 주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생활의 변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제멋대로 사는 삶은 회개한 사람의 삶이 아니다. 절제되고 통제된 삶, 성결된 삶을 사는 것이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의 삶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남을 돕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회개이다. 주일을 잘 지키고, 기도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하는 것도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회개를 통해서 생활의 변화, 삶의 변화, 의식의 변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거듭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교인은 많아도 회개한 신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에게 어느 무엇에 있어서도 지지 않으려는 신자, 신령한 은사와 물질적인 축복에 대한 욕심은 많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기를 거부하는 신자, 성서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사회에 부덕을 끼치고 있고, 천국 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회개는 겸손에서 비롯된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남의 허물을 들추기에 앞서 먼저 자기 자신의 허물을 시인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겸손한 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받게 됨은 물론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사람들과 화평을 누린다.
모든 싸움과 분쟁이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된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시인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의 가정은 화목된 가정이고, 회개하는 사람들의 교회는 화목된 교회이며, 회개하는 사람들의 직장은 행복한 직장이다. 오늘날 우리가 듣고, 보고, 겪는 그 많은 다툼은 결국 아무도 회개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런 우화가 있다. 한 마을에 옹고집과 자린고비가 이웃에 살았는데, 옹고집은 샘이 많았고, 자린고비는 탐이 많았다.
옹고집과 자린고비는 각기 한 섬지기 논을 나란히 하여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 이 둘의 논 사이에 있는 논둑이 장마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자 자린고비가 옹고집에게 논둑을 같이 손질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옹고집은 자신의 논은 위쪽에 있으니 아쉬운 쪽에서 고치라고 말했다. 그러자 자린고비는 웬일인지 아무 말 없이 둑을 고쳐놓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옹고집은 자기 논이 먹혀 들어갔다고 우겼고, 자린고비는 그전과 같다고 우겼다. 결국은 한 뼘도 못되는 논을 가지고 서로 송사를 벌려서 3년을 끌었다. 서로 감정을 돋워 다투다 보니 이겨야겠고, 그러다 보니 그 고을 원님에게 뇌물을 줘야 했다. 결국은 한 섬지기 땅을 모두가 잃게 되었다. 한 뼘의 자투리땅을 찾으려다 옹고집은 망했고, 한 뼘의 남의 땅을 가로채려다 역시 자린고비도 망해 버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철천지원수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법원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재판에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옹고집과 자린고비에게 필요했던 것은 한쪽이 다른 쪽을 용서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누가복음 18장 10-14절을 보면, 바리새인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는 곳에 서서 자기의 의를 들어내는 기도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런 사람의 행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속은 썩어 있는 사람들이다. 교만하고 회개할 줄 모르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약간의 의로운 행위로서 구원에 이를 자는 아무도 없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세상의 어느 인간도 자신의 행위로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분명한 어조로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자는 교만한 자이다. 하나님은 결코 이런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아무리 헌금을 많이 내고,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의 부족과 허물과 죄악을 회개하지 아니 하고 용서를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결단코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세리는 어떠했는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멀찌감치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통회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비록 부족하고 허물 많고 죄 많고 천하고 가난하다 할지라도 회개하는 세리와 같은 자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한 자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회개하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성경말씀은 강한 어조로 오늘도 우리들에게 회개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에스겔 18장 30절: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마가복음 1장 15절: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5장 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사도행전 2장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3장 19절: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고린도후서 7장 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러시아에 일흔 살 먹은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한평생을 죄악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병을 앓게 되었다. 그러나 뉘우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주여! 당신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도 낙원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 죽었다. 그가 죽고 난 후에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천국 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문 뒤에서 베드로가 말했다. "천국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군가? 그는 살아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가?" 이 물음에 천국의 고발인은 노인이 저질은 온갖 죄악을 낱낱이 아뢰었다. 반면 착한 일은 한 가지도 없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썩 물러가라." 노인이 말했다. "베드로 사도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인간은 약한 자이며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괴롭게 기도하실 때에 당신은 눈까풀이 무거워 잠을 자고 말았고, 예수는 세 번씩이나 졸고 있는 당신을 깨우시며 기도하라고 일렀습니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당신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그가 대제사장들에게 심문을 받고 있을 때에 그가 보는 앞에서 그를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당신은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서 그곳을 떠나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셨지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천국에 들여보내 주세요."
그러자 베드로는 잠잠해 버렸다. 노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천국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문 뒤에서 다윗이 말했다. "천국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군가? 그는 살아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가?" 이 물음에 천국의 고발인은 노인이 저질은 온갖 죄악을 낱낱이 아뢰었다. 반면 착한 일은 한 가지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윗이 말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썩 물러가라." 노인이 말했다. "다윗 왕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리고 인간의 허약함과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셨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옥상에서 가난한 자의 아내를 보시고 마음속에 죄가 싹터 가난한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암몬 자손의 칼로 그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자의 손에서 마지막 양을 빼앗고 충성을 다하는 군인을 죽였던 것입니다. 나도 당신과 똑같은 짓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일로 하나님께 통회하며 회개하고 용서를 빌었을 때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나를 천국에 들여보내 주세요."
그러자 다윗은 잠잠해 버렸다. 노인은 다시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천국 문을 마구 두드리며 들여보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문 뒤에서 요한이 말했다. "천국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군가? 그는 살아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가?" 이 물음에 천국의 고발인은 노인이 저질은 온갖 죄악을 낱낱이 아뢰었다. 반면 착한 일은 한 가지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요한이 말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썩 물러가라." 노인이 말했다. "이제야 말로 나를 천국에 들여 넣어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다윗은 인간의 허약함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를 들여 넣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사도 요한이여, 당신은 당신 속에 있는 많은 사랑 때문에 나를 천국에 들여 넣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쓰신 글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형제들이여, 서로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당신이 지금에 와서 어떻게 나를 미워하고 나를 몰아 내시겠습니까?" 그러자 천국의 문이 열리고 요한이 회개한 죄인을 끌어안으며 그를 천국 안으로 맞아 들였다.
이 에피소드는 톨스토이가 쓴 민화집에 나오는 [회개한 죄인]이란 이야기이다. 비록 착한 일을 하지 못했고 나쁜 일만 했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천국에 들여보내 주신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회개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사랑하신다. 아무리 죄가 많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부족과 허물과 죄악을 먼저는 하나님께 기도로서 회개하고, 둘째로는 사람에게 회개해야 한다. 우리 마음에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 가정에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가정에 화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부부관계가 나빠지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가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남만을 탓하고 자신의 탓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용서를 빌 줄 아는 신자, 남편에게 또는 부인에게 용서를 빌 줄 아는 부부, 부모가 자식에게 또는 자식이 부모에게 용서를 빌 줄 아는 가정,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친구, 용서를 구할 줄 아는 형제,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이웃이 될 적에 우리의 삶 가운데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 질 것이다. 회개의 운동을 일으키자.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