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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11
구원의 근원[엡 2장8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09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짧은 말씀 속에 아주 중요한 구원의 원리가 담겨있다.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물,' 이 세 마디 말은 우리가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다. 특히 '은혜를 인하여'와 '하나님의 선물,' 이 두 마디 말은 하나님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심을 설명하는 용어들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시다.'라는 주제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성서는 죄인이 구원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모든 법을 완전히 지켜 그 공로의 대가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첫째 방법은 '자력구원'이 되겠고, 둘째 방법은 '타력구원'이 되겠다. 자력구원은 '자기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사는 것이고, 타력구원은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자력구원은 전적으로 자기의 노력과 수련으로 남의 도움 없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고, 타력구원은 자기 노력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의존하는 것이다. 자력구원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가는 오르막길에 있고, 타력구원은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내려오는 내리막길에 있다.
어느 길에 가능성이 있을까? 자력구원일까, 아니면, 타력구원 일까?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종교들은 자력종교에 해당된다. 오르막길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타력종교에 해당된다. 내리막길을 택하고 있다.
자력과 타력을 단순 비교한다면, 자력이 타력보다 훨씬 더 매력이 있어 보이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타력에 의해서 조종이 되기보다는 자력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자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타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 훨씬 능력 있고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다. 구원은 자력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자력이란 말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구원에 있어서는 전혀 가치가 없는 말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창조주이신 데, 인간은 불완전하고 거룩치 못한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특징은 '거룩하다' 또는 '완전하다'에 있다. 그러나 피조물의 특징은 '부족하다' 또는 '죄인이다'에 있다. 하나님은 자기 노력 없이도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데에 비해서, 인간은 절대로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과 같은 완전성과 거룩성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거룩성이 피조물에게 요구하는 자력점수는 언제나 백 점 만점이다. 그러나 피조물은 결코 그렇게 높은 점수에 도달할 재간이 없다. 처음부터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기독교는 일찍부터 인간의 자기 노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존하도록 가르쳐 왔다.
하나님은 정의로 꾸중을 일삼은 아버지와 같은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언제나 감싸주시는 어머니와 같은 분이시다. 우리가 그 분을 찾아 백방으로 노력했을 때 그분이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푸근한 사랑으로 찾아오시는 그분을 마음으로 영접할 때에 그분이 만나진다. 어려운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쉬운 하나님의 방법으로 만나진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부족한 노력과 자구책으로는 거룩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이고 완전한 구원의 길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시한 구원의 길은 아주 쉽고 값이 없고 남녀노소나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완전한 구원의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 그분을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으로 찾아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력구원은 불가능하다.
자력구원은 이론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길은 인간의 죄로 인해서 누구도 통과할 수 없는 막힌 길이 되고 말았다고 로마서는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3장까지에서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을 피력했다. 첫째, 이방인들이 여러 형태의 신들을 섬기지만,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은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둘째, 도덕과 윤리를 지키며 성실하게 사는 도덕군자들도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은 구원에 도달할 수 없다. 셋째,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도 그들의 행위를 통해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 넷째, 모든 인간은 그들의 죄 때문에 자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이와 같이 바울은 인간들이 추구하는 구원을 위한 모든 행위들은 무용하다고 말한다. 모든 피조물은 죄인이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2장 10절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은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하였다. 또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19세기 덴마크의 실존철학자 키엘케고르도 사도 바울과 동일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비로소 거짓된 자아(自我) 안전의식에서 벗어나, 불안과 공포와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중병에 걸린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드림으로서 참다운 자아를 찾게 된다고 피력했다. 키엘케고르는 인간들의 구원을 위한 행위를 네 가지로 지적한 바 있다.
첫째, 굳어진 습성과 우유부단함 속에서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술잔을 손에 들고 가라오케 판을 벌린다. 그러나 그 잔치가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잔치에 참여한 자들은 이미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의 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쾌락은 절망과 권태와 불안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 갈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생뿐임'을 주장하면서, '죽으면 그만이다. 실컷 먹고 마시자.' 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하나님은 없다. 내세도 없다. 오직 이생뿐이다.' 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둘째, 높은 이상을 가지고 옳은 일을 위해서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의롭게 살기를 원하며, 주체성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간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불굴의 용기로 막아낸다. 맡겨진 책임을 성실히 수행한다. 삶의 허무에 맞서 고상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윤리적인 삶은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절망의 바다에서 결국 침몰되고 만다. 자력구원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도덕과 윤리를 지키며 성실하게 사는 도덕주의자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셋째, 수준 높은 삶을 살기 위해서 종교에 입문하여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에 입문한 사람들은 신 앞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세속적인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힘과 노력만으로 부와 명예와 권세와 건강과 같은 모든 세속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신 앞에 바로 서려고 하면 할 수록 마르틴 루터가 수도원에서 체험했던 것처럼 좌절감에 쓰러지고 만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의 삶이 이 범주에 속한다.
넷째, 불안과 공포와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중병에 걸린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겸손하게 받아드림으로서 참다운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셨고, 예수는 거룩한 사랑의 실천으로 하나님의 본성을 인간들에게 보여 주셨다. 예수는 인간이 불가능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한편,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를 무섭게 치리 하셨고,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 주셨다. 또 한편,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용서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셨으며 인간과 함께 하시는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는 자신을 발견함으로서 절망과 좌절을 극복하게 된다. 여기에 기독교인의 실존이 있다. 키엘케고르는 사람이 기독교의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될 때에 그는 참으로 자아이해를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구원을 의존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한 때 율법주의자요,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깨달은 바가 이것이오, 카톨릭의 수도승이었던 루터가 탑속 골방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계시록 13장에 성도를 괴롭히고 미혹하는 두 짐승이 등장한다. 첫째 짐승은 사탄에게 조종되는 권력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둘째 짐승은 사탄에게 조종되는 종교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첫째 짐승은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박해자의 상징이고, 둘째 짐승은 이단사설을 강요하는 종교가의 상징이다. 첫째 짐승을 적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적그리스도는 총칼로서 성도를 위협한다. 둘째 짐승을 거짓선지자라고 말한다. 거짓선지자는 거룩한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성도를 미혹한다.
지난 수천 년간 신앙인들은 외부로부터 물리적인 박해와 내부로부터 이단의 도전을 받아 왔다. 이 물리적인 박해는 언제나 적그리스도의 세력에서 비롯되었고, 이단의 도전은 언제나 거짓선지자의 세력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의 메시지는 언제나 두 가지 주제로 나타났다.
첫째,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승리자이시다. 하나님을 대항하여 이길 자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 구원의 반석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구원의 산성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구원의 깃발이시다.'가 주제였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자가 없다. 적그리스도의 무리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누리는 권세가 제한적이며, 장차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실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아무라도 권세를 가질 수 없다(롬 13:1). 세상에서의 권세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영원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권세를 빼앗아 그들을 무력하게 만드실 것이다.
둘째,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시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가 주제였다. 거짓선지자의 무리들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아무리 권세 있고 지혜가 많아도 하나님의 권세와 지혜에 비교될 수 없는 부족하고 거짓된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인간의 가르침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거짓 선지자의 수를 666으로 표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숫자는 '헛되다, 헛되다, 헛되다.'  또는 '부족하다, 부족하다, 부족하다.' 또는 '망하였도다, 망하였도다, 망하였도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수는 777로 표기한다. 이 숫자는 소위 상투스(sanctus)라 부르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라는 뜻이다. 이 '거룩하다'는 말은 '완전하다'는 말이다. 완전하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부족하다. 그리고 부족하기 때문에 남을 구원할 수가 없다. 예수의 수는 888로 표기한다. 인간을 구원하고도 '남는다,' 또는 '넘친다'는 뜻을 가진 숫자이다. 필요를 채우고도 남기 때문에 남을 도울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가진 세력이 그들의 것이 아니며, 그들의 가진 권세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짓선지자의 세력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주장이 거룩을 가장한 거짓 교리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의 무리들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은 마지막 날에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조차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과 유황과 연기로 타는 불 못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종교나 철학으로도 안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밖에 없다. 이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이 길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구원의 길이다. 이 길만이 죄인이 의지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유일한 근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