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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11
구원의 수단[롬 10장 9절-13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196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혹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그런데 이 때에 '구원' 혹은 '의롭다 하심'의 기초가 되는 믿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모두가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믿음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믿음의 종류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믿음의 종류에는 네 가지가 있다. '구원하는 믿음', '순종의 믿음', '은사의 믿음', 그리고 '교리의 믿음'이 있다.
먼저 '구원하는 믿음'은 마음으로 뜨겁게 믿어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와 머리로서 냉철하게 믿어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 또는 내용에 동의하는 것을 포함한다. 마음으로 뜨겁게 믿어지는 믿음은 주관적 신앙이고, 머리로서 냉철하게 믿어지는 믿음은 객관적 신앙이다. '구원하는 믿음'은 주관적 신앙과 객관적 신앙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이 '구원하는 믿음'은 초신자의 구원에 필요한 믿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을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드리는 감성적인 신앙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믿음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로 믿고 받아드리는 이성적인 신앙에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주정적인 신앙에 더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는 양적인 성장에 비해서 질적인 성장이 크게 미흡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이성적인 신앙, 머리로서 냉철하게 믿는 객관적인 신앙에는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면이 있다. 무엇을 얼마큼 어느 선까지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믿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리고 뒷부분에서 이야기되어질 신자들이 꼭 알아야 할 건전한 '교리의 믿음'과 어떻게 구분 지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 로마서 10장 9절의 말씀은 정확한 해답을 주는 것 같아 적어보겠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성서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구원의 조건은 입으로 예수를 구세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마음으로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머리로서 하나님을 창조주로 또 생명의 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성으로 창조와 부활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창조와 부활이 부정되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은 창조와 부활이다. 그래서 매주일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아주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신경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예배 중에 고백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성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한다.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혹시 아는가? 성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심을"(롬 4:17)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이나 사라가 신체적으로 너무 늙어서 자손을 가질 수 없음을 알고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죽었던 태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분에게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은 이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고 성서는 설명하고 있다(롬 4:18-22절). 따라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믿음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롬 4:24) 것이라고 말한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직후에 제자들이 다른 여러 나라의 말로 말할 때에 이를 기이히 여겨 몰려든 군중들을 향하여 베드로가 모든 사도들을 대표하여 행한 설교의 내용은 '예수 다시 사셨다'는 엄청난 선포였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이 예수를]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3-24)고 베드로는 말하였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신앙인의 공동체인 교회는 바로 이 부활의 기초 위에 세워졌고, 이 신앙 위에 의심 없이 선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점이다.
둘째, '순종의 믿음'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나 그 결과를 말한다. 이를테면, 그리스도인다운 아름다운 생활을 말한다.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을 순종의 믿음 또는 성화의 믿음이라고 말한다. 이 믿음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에게 요구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신앙인이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할 성화의 믿음이다. '구원하는 믿음'이 아무리 좋더라도 '순종의 믿음'이 나쁘면 신앙인은 소금과 빛의 역할을 못하고 만다. 이를 책망하고 있는 것이 야고보서 2장 14절에서 26절의 말씀이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 .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표준새번역).
셋째, '은사의 믿음'은 성령께서 특정인에게 특별사역을 위해서 주시는 남을 위한 믿음이다(고전 12:9; 13:2). 은사란 그 특성상 구원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실 때에 주시는 일시적인 선물이다. 따라서 이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이나 '순종의 믿음'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신앙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믿음은 아니다.
넷째, '교리의 믿음'은 앞에서 언급한 '구원하는 믿음' 속에 있는 머리로서 냉철하게 이루어지는 '동의의 믿음'을 좀더 구체화시킨 믿음의 내용을 말한다. 이 '동의의 믿음'은 '신앙의 내용' 또는 '신앙고백의 내용' 또는 '지식의 믿음'을 말한다. 건전한 기독교 교리가 여기에 속한다. 사도신경이나 니케아 신조와 같은 신앙고백서가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교리의 믿음'은 구원을 받는데 영향을 주기보다는 구원받은 사람이 이단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신앙을 유지하는데 크게 영향을 준다. 그러나 때때로 이 믿음은 신앙인에게 오히려 올무에 걸리게 하는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 구원받는데 반드시 필요한 본질적인 내용이 아닌 것까지 본질로 착각함으로써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단이기주의에 빠뜨리고 남을 쉽게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교만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단에 빠져드는 이유도 '교리의 믿음'에 치우친 때문이다.
'구원하는 믿음'은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를 나누는 분리대이고, '순종의 믿음'은 곡식의 등급을 매기는 저울이고, '은사의 믿음'은 그릇의 크기를 재는 잣대이고 '교리의 믿음'은 울타리와 같은 것이다. 울타리가 너무 넓으면 들어와서는 안될 사람들까지 들어오게 되고, 울타리가 너무 좁으면 들어가야 할 사람까지도 못 들어가는 문제가 있다. '교리의 믿음'이 가질 수 있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구원에 본질이 되는 부분은 통일시키고, 본질이 아닌 부분은 자유로이 하게 하며,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한다는 대원칙이 인정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주제는 '순종의 믿음'이나 '은사의 믿음' 또는 '교리의 믿음'이 아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참고로 언급했을 뿐이다. 여기서의 주제는 '구원하는 믿음'이다. 구원하는 믿음은 구원의 문으로 들어서는 유일한 수단이오, 통로이다. 지금부터 '구원하는 믿음'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음에서 난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에서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성서를 열심히 읽어야 한다. 예배 때마다 열심히 출석해야 한다. 열심히 듣고, 열심히 읽는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드리게 되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둘째, '구원하는 믿음'은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에 생긴다. 로마서 10장 13절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고 했다. 예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 예수님!"하고 불러야 한다. 그 분이 내 마음에 찾아오실 때에 회개의 눈물이 쏟아지고, 평안의 기쁨이 밀려온다.
셋째, '구원하는 믿음'은 마음으로 뜨겁게 예수를 영접할 때에 생긴다. 로마서 10장 10절에서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의 구주를 마음에 영접해야 한다. 예수가 우리 마음의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될 때에 모든 악한 생각이 물러가고, 근심과 걱정이 물러가고, 기쁨과 평안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넷째, '구원하는 믿음'은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할 때에 생긴다. 남녀가 결혼식 때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예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 로마서 10장 10절에서 바울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다. 또 9절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고 했다.
이렇게 예수의 말씀을 읽고, 예수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고, 예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구원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은 이루어진다. 에베소서 2장 8절의 말씀은 말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인간이 살길은 오직 한 길뿐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고 구원을 받는 길뿐이다.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는 믿음뿐이다. 믿음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처럼 믿음이 없이는 영원히 살 수 없다. 참만족을 누릴 수 없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심령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 갈등과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인간의 어떠한 문제도 해결 받을 수 없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를 빚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보내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잘 아시는 분이시다. 환자가 능력 있는 의사를 찾아가야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가야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