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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05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창 1장 1절-4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877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성서 66권을 주셨는데, 이 성서 66권은 성공한 사람들의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숱한 고난과 역경의 삶 속에서 시련과 억압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나그네와 떠돌이의 삶 속에서, 노예와 포로의 삶 속에서, 압제와 탄압의 삶 속에서, 십자가와 박해의 삶 속에서 재기와 승리를 경험한 생생한 삶의 증언들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연구해 보기로 하였다.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살았으며,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서 몇 가지 결론을 얻었다. 첫째, 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시련과 역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둘째,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었다. 셋째, 그들은 이 신앙으로 그들이 당면한 난관들을 극복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신앙이 참으로 위대한 것이로구나 라고 깨달았다.
한편 마음 한 구석에서 이 세상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신앙을 갖지 아니한 사람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 나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기 능력을 믿든지, 돈을 믿든지, 부모를 믿든지, 지식을 믿든지, 주먹을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유교를 믿든지, 미신을 믿든지,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의지하는 곳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들은 실패한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불행하다. 어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산다. 어떤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산다.
그런데 성서에 나오는 성공적인 삶을 산 신앙인들을 보니까, 그들은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매우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질문을 던져 보았다. 어떻게 그들은 성공적일 수 있었고, 행복할 수 있었으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일 수 있었는가? 그리고 얼마 후에 해답을 얻었다. 그것은 신앙 내용의 문제였다. 그들이 믿었던 신앙의 내용, 그것이 그들을 그렇게도 훌륭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다. 그래서 성서에 나타난 신앙의 내용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이면서 또한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내용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었다. 모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었다. 우리도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 우리가 믿는 신은 창조적인 하나님,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엘 샤다이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은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셨고, 흑암에서 빛을 있게 하셨고, 혼돈을 질서로 바꾸어 놓으셨다. 죽음의 상태에서 생명의 상태로 바꾸어 놓으셨다. 이 하나님을 믿었던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은 혼돈과 흑암의 세상에 살면서도, 죽음과 절망의 세상에 살면서도, 고난과 시련의 세상에 살면서도, 많은 장벽과 장애들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으며, 반석에서 솟아 나는 물을 마셨으며,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으며, 요단 강을 건넜으며,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은 가나안 정착에서 멈추지 않았다. 가나안 정착 이후에도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남과 북으로 갈리었고,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리아 제국에 의해서 점령당하였고, 남쪽 유다 왕국은 주전 605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처음으로 침략을 받은 후 짧게는 70년, 길게는 173년간의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이후로는 페르시아 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속국으로 지냈다. 그리고 1948년 5월 14일 새로 국가를 건국할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이 남의 나라에서 엄청난 수난을 겪으면서 살아야 했다. 남의 나라에 흩어져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은 지난 이 천년 동안 무려 1,200만 명 이상 살해되기도 했다. 아직도 이스라엘 민족은 아랍 여러 나라들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역사의 위대한 민족으로 남아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을 발휘하며 살고 있다.
이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창조와 회복의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이 믿었던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며,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분이었다. 이 하나님을 믿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혼돈과 흑암의 세상에 살면서도, 죽음과 절망의 세상에 살면서도, 고난과 시련의 세상에 살면서도, 많은 장벽과 장애들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으로 극복하고 이겨냈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가운데 골리앗과 소년 다윗의 이야기가 있다. 어린 소년 다윗이 물매 돌 다섯 개로 3미터 거인 골리앗 장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 민족이 골리앗과 같은 큰 나라들의 위협 속에서, 골리앗과 같은 커다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승리했던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으로 유대인들은 역사 속에서 고난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600만 유대인이 히틀러에 의해서 학살당했던 제 2차 대전 때에 나치의 학살을 피하여 성당 지하실에 숨어살던 무명의 어느 유대인은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성당 벽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밤이 아무리 캄캄해도 아침 동녘이 밝을 것을 믿노라. 나는 하나님이 아무리 잠잠해도 그가 살아 계심을 믿노라." 이런 내용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고백이다. 이 믿음이 결국 그를 죽음의 절망에서 살려내고 마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우리를 좌절과 시련에서 희망과 용기에로 끌어내고 마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한다. 이런 믿음이 두려움을 몰아낸다. 이런 믿음이 새 힘을 준다.
둘째,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의 내용은 세계가 하나님의 뜻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은 그 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은 어떠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결코 좌절하지 않는 것이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린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만물을 움직이신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섭리아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목적 없이 흘러갈 수 없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도는 역사일 수도 없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이 만들어 가는 역사이며, 하나님의 지배아래서 진행된다. 그리고 모든 결과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인간의 역사를 시작하신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이 세상에 마지막을 가져오실 분이시다. 마지막 때에 무서운 심판이 있을 예정이다. 착한 신앙인에게는 큰상을, 못된 불신자에게는 무서운 벌을 주실 예정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실천에는 결코 실패함이 없다. 하나님의 뜻 속에는 연단과 훈련이 있을 뿐이지 실패와 패배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절망과 좌절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반드시 승리한다.
신앙인들이 만들어 가는 역사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 속에서 활동하신다. 신앙인들을 돕고 계신다. 그들을 아주 그리고 영원토록 구원하실 뜻을 품고 계신다. 창조의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시다. 비록 이 우주가 인간들로 인해서 타락되었지만 하나님은 이 우주를 재창조하실 것이다. 비록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하여 타락하였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을 회복하시고 흑암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인도하셨다. 절망에서 희망에로 인도하셨다. 죽음에서 생명에로 인도하셨다.
초대교회 신앙인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도 하고, 사자들의 밥이 되기도 하고, 투기장에 전사로 끌러 가기도 하였다. 그들은 매맞고 감옥에 갇히고 먹지 못했지만,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의 주인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로마 군인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매맞고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 당시의 고난이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에 비교하면 짧은 것이요, 오히려 가벼운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들은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받기 위해서 고난받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라"고 고백했다(고후 4:17). 주후 107년에 순교한 안디옥 교회의 감독 이그나티우스는 순교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 몸에 불을 지르고 십자가를 지우며 사나운 맹수로 하여금 나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도록 하라. 나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기뻐하리라. 온 세상을 통치하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이 내게는 더 영광스럽다. 사탄의 공격과 유혹을 받을 때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라. 우리의 육신은 상처를 입겠지만, 결국은 승리로 끝날 전투의 한 부분인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어려움을 피해만 가려 하지 말고, 믿음으로 밀고 나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약간의 시련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참고 극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밀고 나가는 중에, 우리가 참고 인내하는 중에, 우리가 성실하게 노력하는 중에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좋은 방향으로 창조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파괴의 하나님이 아니라, 건설의 하나님이시다. 채찍으로 때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상처를 감싸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회복의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으로 승리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인물은 아마 1880년에 출생해서 1968년에 죽은 헬렌 켈러일 것이다.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만에 병으로 인해서 눈멀고, 귀먹고, 말 못하는 병신이 되어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헬렌은 불행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기쁨의 감정을 혼자 낄낄거림으로써 표현했고, 그 반대의 감정은 발로 차거나 할퀴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때로는 주위를 감싼 고요함으로 인해서 질식할 듯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거칠게 그리고 제멋대로 살고 있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헬렌을 변화시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앤 설리반이었다. 그녀 자신도 눈병으로 인해서 반쯤 실명한 상태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설리반은 하나님을 믿는 창조적 신앙을 가지고 끊임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일곱 살의 헬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설리반은 헬렌의 손에 사물을 느끼게 하고는 그녀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그 사물의 이름을 적어 주는 방식으로 헬렌에게 단어부터 한가지씩 가르쳤다. 설리반 선생의 불굴의 신앙과 용기 그리고 헌신적인 지도의 결과로 헬렌은 삼 년 안에 점자로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열 여섯 살이 되었을 때에는 사립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을 만큼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헬렌은 설리반의 헌신적인 교육과 지도는 물론 자기 자신의 불굴의 투지로써 장애를 극복하였고, 1904년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삼중의 장애를 가지고서도 세계에서 가장 좋다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던 것이다. 그녀의 노력과 정신력은 세계의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평생을 눈멀고 귀먼 사람들을 돕는데 바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빛의 천사'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헬렌 켈러는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냈고, 흑암에서 참 빛을 찾았고, 혼돈을 질서로 바꿨다. 앞 못보던 소경이 감촉으로 사물을 파악하였고, 듣지 못하던 귀머거리가 촉각으로 듣게 되었고, 말못하던 벙어리가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연설을 해냈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을 가졌던 두 여인의 장애자들이 만들어낸 인간 승리였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은 이와 같이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신앙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