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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06
창조 신앙의 장점들[히 11장 1절-3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659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생성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고, 둘째는 우연히 진화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생명 기원에 대한 창조론이나 진화론이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이 우주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과학적 사실로서 입증이 되기에는 우주는 시간적으로 너무 멀고, 공간적으로 너무 크다.
과학은 물체나 현상을 관측하고 관측된 현상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원인과 결과를 탐구한다. 과학자는 관측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추리와 가정을 세우고 이론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제안된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서 반복된 실험을 하게 되고 같은 결과가 반복해서 나오게 되면 그 이론을 과학적 사실과 법칙으로 삼게 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갈릴레오는 물체가 낙하할 때의 속도를 관찰하고 나서 무게가 다른 물체라도 낙하하는 시간이 같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당대에 제일 높은 건물인 피사의 탑에 올라가 여러 차례에 실험을 반복하였다. 그 실험 결과 그의 가설이 진실 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드렸다.
그러나 생명 기원에 대한 창조론이나 진화론이 이러한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창조나 진화과정을 반복해서 실험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 생성의 문제는 실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실험을 통해서 과학적 사실로서 입증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창조주에 의해서 만들어 졌거나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성서가 말하는 창조설은 과학으로 입증된 사실이기보다는 신앙의 관점에서 믿음으로 고백된 신앙의 내용이며, 일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진화설은 자연의 증거에 근거한 과학적인 결론이기보다는 자연에서 지지를 찾는 철학적 가설일 뿐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관점의 차이 또는 세계관의 차이가 있다. 신앙의 관점에서 믿음으로 기록된 성서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이 우주가 무에서 만들어졌으며, 흑암에서 생명이, 혼돈에서 질서가 주어졌다고 말한다. 이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말한다. 만물을 만드신 분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고 말한다. 창조의 주제는 한 마디로 생명이요, 삶의 목적이요, 구원이다.
그러나 진화적 관점에서 우주의 생성을 말하는 일부 과학자들은 이 우주가 대략 180억 년 전에 엄청난 폭발과 함께 갑작스럽게 생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우주는 매우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무질서와 큰 혼란의 상태로 죽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진화의 주제는 한 마디로 죽음이요, 우연이요, 멸망이다.
신앙인의 창조설이나 무신론자의 진화설은 과학의 문제이기보다는 오히려 관점이나 세계관의 문제요, 신앙과 선택의 문제이다. 그리고 신앙에 따라서 인간의 언행심사의 방향이 결정되며, 가치관에 따라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워싱톤 포스트지 95년 송년특집호에 지난 일 천년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과 가장 악한 인물들이 실렸다. 워싱톤 포스트지가 뽑은 가장 악한 사람은 찰스 다윈과 히틀러였다. 찰스 다윈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로 폭력과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했고, 히틀러는 이 이론에 따라 육 백만 유대인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세계대전의 발발은 바로 다윈의 적자생존의 논리에서 출발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세계관이 필요하다. 다음은 기독교 세계관의 핵인 창조신앙의 장점들이다.
첫째, 창조는 이 물질세계가 본래 좋은 것임을 말해준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는 악한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하고 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본래 나쁜 것은 아니다. 만일에 나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을 악하게 사용하는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인간도 본시 악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만들어졌다. 인간은 본시 하나님과, 인간과, 물질과 함께 계약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 이 계약이 이행되고 못되는 것은 인간의 선택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요, 인격체라는 점은 인간이 곧 책임적 존재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한 일에 쓰일 도구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주셨고 허락하셨다. 그러나 책임적 존재인 인간이 선하게 쓰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그것을 악하게 사용했을 때에 흉기로 변하여 악이 발생되고 죄가 인간세계에 유입이 되었다. 악은 하나님의 피조물의 좋은 것들을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욕망이 인간의 신이 될 때 발생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악한 것이 없다. 그 모든 것들은 선하게 사용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우리 신앙인들의 삶의 자세가 있다. 우리는 고대 헬라세계의 영지주의자들처럼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나누어 이원론적으로 살지 않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는 악한 것이 없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선용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악한 것을 정죄하기보다는 새롭게 하는 영으로 재창조해 가야 한다. 하나님은 죽어야 마땅한 인간들을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새사람으로 재창조하셨고, 타락한 이 우주도 멸하시기보다는 구속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롬 8:18-23; 벧후 3:10-1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재창조의 영이다.
둘째, 창조는 이 우주와 우주의 역사에 목적과 방향을 제시해 준다. 우연히 발생한 우주는 목적도 방향도 없다. 단지 죽음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그러나 인격자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의도적으로 만드셨다면, 반드시 이 우주는 그 목적과 가는 방향이 있을 것이다. 성서는 이 우주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말하며, 머지않아 전개될 새로운 세계 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믿고 사는 사람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이 결코 흩어짐이 없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엄청난 시련을 만나도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듣는 영적인 눈과 귀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창조신앙만이 참으로 뚜렷한 역사의식을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 줄 수 있다.
셋째, 창조는 인간의 삶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이 우연히 이 세상에 왔다가 사라지는 진화의 부산물이라면 삶에 목적이나 의미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신이 인간을 만드셨다면, 인간은 자기의 존재이유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셨고, 그것이 인간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돌려야 하며, 이 우주를 관리하고 보존해야 할 책임적 존재가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다면, 각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의 소명이 있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그 사람의 삶의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인간은 우연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운 좋은 혹은 운 나쁜 존재가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하나님이 주신 천직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부르심을 받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요, 또 장차 영화롭게 될 자들이다(롬 8:30).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롬 11:29)고 성서는 말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창조신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뚜렷한 소명의식과 직업의식을 심어 줄 수 있다.
넷째, 창조는 과학과 학문을 가능케 한다. 이 물질세계는 계획하시고 설계하시고 만드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게 되고 문제에 대한 예측과 진단과 처방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또한 만들어진 세계는 영원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기 때문에 인간이 믿고 의지하고 살 만한 곳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이성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드신 이 우주는 인간이 신뢰하고 살아 갈 만하며, 합리적이며, 예측이 가능하며, 과학과 학문이 가능한 곳이다. 이 우주에 질서와 법칙이 있다는 것은 곧 이 우주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운영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한다. 20세기를 사는 인간이 이루어낸 과학문명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이미 존재했던 것들을 발견해 낸 것에 불과하다. 과학과 학문이 발전되면 될수록 만드신 이의 놀라운 창조의 솜씨가 함께 드러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발견하고 조립할 뿐이다.
신앙에 관계없이 창조를 일종의 신비라고 말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물질이 만들어지면 똑 같은 양의 반물질이 함께 만들어지게 되고, 만들어진 물질과 반물질이 다시 만나게 되어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폭발과 함께 소멸해 버리기 때문에 창조되어 현재 존재하는 물질이 반물질과의 만남을 피하여 살아 남아 있다는 것과 반물질은 사라지고 물질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신비 중의 신비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폭발 이론을 믿는 과학자들 중에도 일부는 초자연적인 힘 또는 하나님 같은 분이 물리학의 법칙을 무시하고 반물질이 없는 상태로 현 물질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우주에 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신의 존재를 가장 잘 입증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진화론자들은 생물학적인 질서가 돌연변이와 자연도태에 의해서 발전되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우주의 질서가 맹목적인 우연에 의해서 생겼다고 말하지만, 우주를 하나의 사건으로 볼 때, 그것이 어느 정도의 질서를 가지고 생성될 확률은 마치 원숭이가 피아노 앞에서 마구잡이로 건반을 두들겨서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곡을 연주할 확률보다도 훨씬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사실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 현대과학은 이 우주가 마치 팽팽하게 태엽이 감긴 시계가 얼마 후 태엽이 풀리고 죽는 것과 같이 고도의 질서에서 출발해서 무질서를 향해 가고 있고 결국은 죽게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무질서한 상태에서 점차 고도의 질서로 옮겨간다고 말하는 진화론자들의 우주 생성에 관한 설명은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무기물질에서 단세포가 발생되는 화학진화나 단세포에서 고등생물로 진화되는 생물진화 가설은 열역학 제 2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창조는 윤리에 대한 기초를 제공한다. 오직 한 분 초월자이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절대적인 법칙과 옳고 그름의 표준을 세울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이 우주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만든 자이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지 청지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뜻을 우선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성서에 담겨져 있다. 성서는 믿음의 조상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뵙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생생한 삶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창조는 인간이 피조물임을 가르친다. 창조는 인간이 결코 신이 될 수 없음을 가르치며,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위치에 서야 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예배를 위한 기초이다. 우리는 항상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해야 한다.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인식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창조는 인간이 부족한 존재임을 가르친다. 창조는 인간이 죄인임을 가르친다. 창조는 인간에게 겸손과 용서와 인내와 사랑을 가르친다. 창조는 또한 모든 인간이 스스로 노력해야 할 존재임을 가르친다. 인간은 채워가는 존재이지 이미 채워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곱째, 창조는 인간에게 청지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가르친다. 하나님은 창조자의 권리로서 모든 것을 소유하신다. 우리가 소유한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맡은 청지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한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것이다. 만일 우리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되돌려 드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창조는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라는 겸허한 자세로 살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자유롭게 말씀 한마디로 무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 삶의 본질적인 중심이 되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물된 우리 인간은 통치자 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만물을 맡아 잘 관리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신앙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존재 방식이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은 창조신앙이란 큰 물줄기로 이어지고 있다. 성서 시대를 살아간 믿음의 조상들은 이 창조신앙 속에서 부활의 신앙과 인간은 죄인이며 피조물이라는 인간론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 신앙 속에서 재창조의 정신과 확고한 역사의식과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성서 속에 나타난 신앙인들은 또한 이 창조신앙 속에서 과학과 학문의 가능성을 발견하였고, 믿음과 실천의 규범을 발견하였다. 이 뿐 아니라, 성서 속에 나타난 신앙인들은 이 창조신앙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과 임무와 책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창조신앙 속에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