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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09
임마누엘 성령의 신앙[요 14장 16-20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407  
우리 주님에게는 예수라는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이 있었다. 그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이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마 1:23)는 뜻이다. 또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에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마 28:20)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다. 이 천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분이 어떻게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는가? 예수의 이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었다. 요한복음 14장 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6-20).
이 약속은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해서 예언되었던 성부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주후 30년 오순절 날 성령께서 오심으로 이루어 졌다. 이 성령이 바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믿는 모든 이들의 마음의 성전에 계시면서 구원을 이루시고, 마음에 평화를 심어 주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큰 축복을 보증하시며 약속하시며 앞당겨 미리 맛보게 하시며 천국생활을 누리게 하신다(고후 1:22; 엡 1:13-14). 또한 성령은 우리 마음과 가정과 교회와 신앙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시며 인간 공동체에 변혁과 개혁의 능력을 심어 주신다.
성령께서는 우리 죄인에게 찾아 오셔서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딛 3:5) 하시며, 점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며,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며(롬 8:16),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며, 말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롬 8:26),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언제나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 주신다(롬 8:28).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미리 맛보며 체험하며 복되게 산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선취신앙이라고 말한다. 선취란 성령의 능력으로 미리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맛본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첫째는 우리 구원을 이루시는 일이오,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기는 일이다. 우리 희망을 앞당기는 일이오, 우리의 소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 가게 하시는 일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먼 옛날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성전에만 계신 것으로 잘못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 후로 유대인들은 남의 나라의 침략을 받고 성전이 약탈당하는 아픔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성전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온 우주에 편만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 마음속에 내주 하시고 동거하실 것에 대한 기대는 성전이 멸망당하고 난 다음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에 의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전체 민족과 함께 하셨어도 개개인의 마음속에는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예언자들의 예언은 주후 30년 오순절 날 성령의 오심으로 이루어졌고 성령의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인 교회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때부터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신앙인의 마음속에 함께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가기보다는 불행하게 살아간다. 천국과 같은 삶보다는 지옥과 같은 삶을 살 때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인생살이를 '고(苦)'라고 말한다. 백팔번뇌와 여덟 가지 고통 즉 출생의 고통, 노화의 고통, 질병의 고통, 죽음의 고통, 얻지 못하는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 원수 덩어리와 함께 살아야 하는 고통, 기타 수만 가지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생활이 복잡해진 요즘에는 입시지옥이니, 교통지옥이니, 취업경쟁이니, 예전에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각종 질병의 발생으로 예전의 백팔번뇌나 여덟 가지 고통보다는 훨씬 더 많고 강도 높은 번뇌나 고통으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이러한 삶을 복된 삶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이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이 험한 세상에 살면서도, 이 타락한 육체를 가지고 살면서도 매일 매일 영생을 맛보며 산다. 실질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삶을 맛보며, 누리며, 체험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구원의 기쁨이요, 축복이다. 찬송가 493장 3절에 이런 가사가 있다. "산천도 초목도 새 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임마누엘 성령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는 것이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북군의 패배 소식이 각지에서 들려왔다. 이 때 노예출신의 유명한 흑인 웅변가 더글러스는 많은 회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중이었다. 이 패배의 소식이 연설장에 전해졌을 때 그를 비롯한 흑인 청중들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흑인 노예폐지를 위해 싸우고 있던 북군의 패배는 자기들이 역경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기회가 없어진 것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실망과 낙담으로 침울해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까?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까?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 소리는 어느 늙은 노파에게서 나온 외침이었다. 사람들은 무엇인지 모르는 감동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 노파는 다시 말했다. "하나님은 아직도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약자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큰 용기를 얻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남북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다.
예수와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널 때에 큰 폭풍을 만난 적이 있었다. 강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서 배에 물이 차고 기울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몹시 당황해 하면서 주무시던 예수께 도움을 청했다. 이 때 예수께서 깨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고 고요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잔잔하여졌다.
복음서에 나오는 이 광풍진압 이야기는 신앙인의 삶의 이야기이다. 갈릴리 호수는 세상이다. 우리가 건너야할 세상이다. 배는 교회를 말한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때때로 불어닥치는 돌풍에 큰 위기를 맞기도 한다. 호수 저편은 안전한 장소, 우리가 가기를 소원하는 축복의 땅이다. 그런데 그 곳에 갈려다보면 때때로 폭풍을 만나 고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 이 배에 예수께서 타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수께서 함께 타고 계셨던 것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계셨던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풍은 닥쳤다는 점이다. 예수를 잘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세상을 살다보면 광풍을 만날 때가 있고 소나기를 만날 때가 있고 장애물에 부딪힐 때가 있다. 셋째,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은 광풍을 만나 몹시 당황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모습일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피곤해 주무시는 예수를 깨우지 않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폭풍을 헤쳐 나가 보려고 했을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갈릴리 호수에 익숙한 어부출신들이었다. 자신들의 힘과 경험을 살려 어떻게든 예수를 안전하게 모시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 그 엄청난 폭풍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절망감이 감돌았다. 여기서 우리가 죽게 되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우리가 망하고 마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우리가 멈춰서고 마는 것이 아니냐? 이런 좌절과 실망감이 그들을 짓누를 그 때에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에게 늘 함께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 계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때서야 그들은 예수를 서둘러 깨웠다. "주님,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으시렵니까? 주님, 일어나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그들은 주님을 깨웠다. 이 때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향하여 명령했다. "잠잠 하라. 고요 하라." 신기하게도 예수의 이 명령에 폭풍이 그치고 파도가 잔잔하여 졌다(막 4:40). 폭풍 치고 파도일어 혼란스럽던 상황이 갑자기 고요하고 잔잔해 지면서 제자들은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전에 느꼈던 성난 파도처럼 혼란스럽던 마음이 사라지고 어느새 평화롭고 잔잔한 본래의 아름다운 갈릴리 호수의 모습처럼 아늑함을 마음에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시대적인 정황으로 볼 때, 외부로부터 불어오는 박해의 돌풍으로 인해서 초대교회가 위태로움에 처한 모습을 묘사한 이야기이다. 초기 교회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갈릴리 호수에 제자들을 태운 작은 배가 돌풍에 위기를 만난 것처럼 이들 교회들도 박해로 인해서 전복할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박해와 고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혹은 "하나님, 당신은 살아 계십니까?"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십니까?"라고 외치면서 당황해 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신앙을 버리기도 하고 예수를 배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은 무서운 박해와 고난과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능히 극복할 수 있었다. 승리할 수 있었다.
한 젊은이가 불확실한 장래와 안정되지 못한 생활로 인해서 참으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 때 그는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믿음을 키우기 위해서 성경 안쪽에 다음과 같은 글들을 적어 놓고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읽곤 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잘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 '무엇인가 좋은 일이 내게 생길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생활 중심에 계신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내게 좋은 것을 예비해 두고 계신다.' 그 때마다 그는 큰 용기를 얻곤 했다. 이와 같이 임마누엘의 신앙은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어떻게 보면, 훈련에 의해서 크게 자란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마음속에 좋은 그림을 그리고 좋은 일이 생길 것을 기대하고 좋은 일을 위해서 노력할 때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따라서 불안을 떨쳐 버리고 나쁜 일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언제나 내 곁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이 내게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키워야 할 것이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울 때에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다윗의 믿음은 어느 누구보다도 강했다. 다윗이 사울 왕 앞에 불려나갔을 때에 다윗은 사울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삼상 17:34-37).
또 다윗은 골리앗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칼과 창과 단 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5-47).
다윗의 이 믿음이 바로 임마누엘 신앙이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이 자신에게 함께 하심을 믿는 이 신앙이 있었기에 다윗은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골리앗을 상대하여 이길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