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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10
피조물 인간[ 창1장 26-31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159  
기독교의 인간론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신앙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든 분이시고, 사람은 만들어진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피조물 됨을 깨닫게 될 때 그 사람은 비로소 사람다운 바른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 '창조신앙의 장점,' '부활의 주 예수 신앙,' 그리고 '임마누엘 성령의 신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창조신앙의 마지막 주제로써 '피조물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다. 그밖에 것들은 다 만들어진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마귀나 그 세력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된다. 마귀이든지 귀신이든지 모두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 만들어진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예배와 경배의 대상이 되거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존재가 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마귀나 귀신들에게 음식을 장만해서 제사를 드린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귀나 귀신들에게 제사를 바치지 않는다.
혹시 마귀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마귀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귀를 통해서 나타나는 악한 모습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1993년에 미국 텍사스주에서 데이빗교라는 사이비 종교집단이 단체로 불에 타죽은 사건이 있었다. 데이빗이라는 교주가 선량한 신도들을 속이고 나쁜 일을 일삼다가 경찰에 발각이 되었다. 교주는 연방경찰과 대치한 상태에서 건물에 불을 질러 90여명의 신도를 불에 타 죽게 한 악마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건물이 불에 타면서 내 뿜는 연기 속에 악마의 얼굴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난 사실이 사진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솟아오르는 연기가 악마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청소년들의 우상인 헤비메탈 가수들 사이에서도 악마적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사탄 숭배자임을 자랑스럽게 노래하기도 하고 행동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일부 헤비메탈 록음악 가수들은 마귀 분장을 하고 나와서 노래를 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김종서라는 가수는 한때 이 음악에 빠져서 정신분열증세를 보인 적이 있다. 이로 인해서 그는 군복무를 면제받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요즘 학교 주변에 야쿠자 빰치는 폭력서클이 설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중학생 10명중 6명이 매를 맞고 돈과 옷과 운동화를 빼앗긴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힘센 아이들이 가방을 들게 하거나 물고문까지 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런 폭력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폭력서클은 선량한 학생들을 괴롭히는 악마의 모습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프란츠 크로마로부터 심하게 시달림을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소설에서 프란츠 크로마는 적어도 싱클레어에게 있어서는 악마나 다름없는 놈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런 저런 상황 속에서 악마의 모습들을 보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것들로부터 많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유혹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말려 들어가 비참하게 되는 것을 본다. 우리는 마귀의 유혹들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이겨야 될 줄 믿는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가출, 마약, 본드 흡입, 부탄가스 흡입, 약물사용, 음주, 흡연, 폭력 등은 마귀의 유혹이다. 이런 것들은 청소년들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병들게 하고 장래를 망치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런 유혹을 받을 때마다 과감히 '안돼,'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서는 우리 신앙인들이 마귀의 세력과 싸워 필경은 이긴다고 말하고 있다. 마귀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이기는 것 같지만, 싸움의 결국은 신앙인들의 승리로 끝나도록 계획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승리자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마귀와의 싸움은 처음부터 그 결말이 예견된 싸움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귀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결단코 창조주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 마귀가 아무리 힘이 세고 지혜로워도 하나님을 당할 수는 없다. 마귀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에게 도전 하지만 결단코 승자가 될 수 없다. 그가 성도들을 이길 수 없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편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둘째, 마귀가 가진 권세는 일시적이다. 그의 권세는 하나님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또 제한적으로 허락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서 권세를 빼앗아 그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셋째, 마귀의 운명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의 운명은 영원히 유황으로 불타는 지옥에 갇히는 것이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피조물이다. 넷째, 마귀의 속삭임은 모두가 거짓이다. 마귀는 성도를 유혹하기 위해서 거짓을 말한다. 마귀의 가르침은 사람으로 멸망에 이르게 한다. 마귀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이 같은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마귀의 유혹과 악한 세력에 믿음으로 담대하게 대항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에게 예배드려야할 의무를 지닌다. '인간이 피조물이다'라는 사실은 인간이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며,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위치에 서야 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예배를 위한 기초이다. 우리는 항상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드셨다. 이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되게 하며, 하나님과 닮게 하는 어떤 것이다. 하나님이 소유한 것을 인간이 가진 것으로는 단 한가지 인성 또는 인격(personality)일 것이다. 인격에는 지성(혹은 이성), 감성, 의지, 그리고 관계성이 있다. 그리고 이 인격성은 하나님과 천사와 인간만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일 것이다. 물론 동물들에게도 다소의 지능과 감정과 의지와 관계성이 있지만, 인간처럼 그 지성으로 학문을 창출할 수 없고, 그 감성을 음악, 무용, 미술과 같은 문화 예술로 승화시킬 수 없으며, 본능 말고는 의지적 결단을 기대할 수 없다. 관계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동물들도 사회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인간들이 가진 도시문명과 같은 복잡한 형태의 사회구조나 관계형성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인성의 요소는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하나님의 형상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에게는 예배자로서, 만물에게는 청지기로서, 예배와 찬양, 관리와 보전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의 예배자로서 우리 인간은 지성과 감성적인 활동보다는 옳은 삶의 결단과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성에 크게 관심 한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예배와 신뢰의 관계이다.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와 섬김의 의무를 가진다. 인간끼리의 관계는 사랑과 섬김의 관계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관리와 보전의 관계이다. 인간은 자연만물에 대해서 청지기의 사명을 갖는다. 그리고 이 모든 관계는 신뢰와 책임이 우선되어야 할 약속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예배와 경배를 드려야 할 관계, 인간이 동료 인간에게 사랑과 섬김을 베풀어야 할 관계,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고 보전해야 할 관계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는 신뢰와 책임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악은 책임적 존재인 우리 인간이 이런 약속과 책임을 다 하지 않는 데서부터 발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조물로써 하나님께 예배와 경배를 드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올바른 삶의 태도이다.
셋째, 우리 인간은 다 부족한 죄인이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문을 통과하는 꿈을 꾸었다. 그는 '죄인'이라고 쓴 딱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가지고서는 천국문을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밑에 '그러나 그다지 큰 악인은 아니다.' 라고 써넣었다. 그러나 그는 천국문 앞에서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딱지에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라고 고쳐 썼다. 그러나 그는 또 천국문 앞에서 입장을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구원받을 수 없는 쓸모 없는 죄인이다.' 라고 다시 고쳐 썼다. 그러나 그는 다시 거절당했다. 그는 결국 여러 가지 심사숙고한 끝에 '죄인'이라고 써 있는 그대로 제출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천국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사람 앞에서도 부족한 존재이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으로써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창조는 인간이 부족한 존재임을 가르친다. 창조는 인간이 죄인임을 가르친다. 창조는 인간에게 겸손과 용서와 인내와 사랑의 필요성을 가르친다. 창조는 또한 모든 인간에게 스스로 노력해야 할 존재임을 가르친다. 인간은 부족을 채워 가는 존재이지 이미 채워진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게 지음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죄인이란 결국 하나님이 바라시는 점수에 미치지 못한 자를 말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용서한다. 형의 허물을 용서한다. 동생의 허물을 용서한다. 친구의 허물을 용서한다. 부인의 허물을 용서한다. 남편의 허물을 용서한다. 자녀의 부족함을 용납한다. 오히려 자녀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로하며 권면하고 용기를 북돋우어 준다.
나는 누군가?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허물을 용서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새 출발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내게는 창조와 부활의 신앙이 있기에 언제나 새 출발이 가능하다. 내게는 연약한 나 자신을 도우실 성령이 계시기에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늘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언제나 다시 일어난다. 내 곁에는 언제나 임마누엘의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 죄를 대신해서 한 분밖에 없는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넷째,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양주(楊朱)라는 사상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니오 자연의 것이다. 하지만 이미 태어난 몸이라 그것을 온전케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내가 가진 물건은 나의 것이 아니요 자연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내가 얻어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 그것을 내버릴 수는 없다. 몸은 본디 생명의 주인이요 물건도 몸을 키우는 주인이다. 비록 태어난 자기 몸을 온전케 한다해도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비록 얻어 가진 물건을 내버리지 않는다 해도 그 물건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직 성인만이 몸과 물건을 자연의 것으로 알고 공유의 것으로 생각한다."
양주의 이 사상은 우리의 몸이나 소유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자연 즉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의 것이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므로 잘 가꾸고 돌보되 내 것이라는 욕심을 버리고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지식이든지, 자신의 능력이든지, 자신의 재물이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류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바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창조자의 권리로서 모든 것을 소유하신다. 우리가 소유한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심지어 나의 몸도 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맡은 청지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한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것이다. 창조는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겸허한 자세로 살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세계를 만드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물된 우리 인간은 통치자 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만물을 맡아 잘 관리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신앙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은 창조신앙에서 출발한다. 성서 시대를 살아간 믿음의 조상들은 이 창조신앙 속에서 부활의 신앙과 인간은 죄인이며 부족한 자라는 인간론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 신앙 속에서 재창조의 정신과 확고한 역사의식과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성서 속에 나타난 신앙인들은 또한 이 창조신앙 속에서 과학과 학문의 가능성을 발견하였고, 믿음과 실천의 규범을 발견하였다. 이 뿐 아니라, 성서 속에 나타난 신앙인들은 이 창조신앙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과 임무와 책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창조신앙 속에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