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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4 17:18
풍랑만난 제자들을 돌보신 예수[막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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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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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에는 전체 661절 가운데 약 25%에 해당되는 18개의 예수의 기적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기적들을 처음 교회에 소개한 마가는 두 개의 바다에서 이루어진 기적과(4:35-41; 6:45-51) 두 개의 광야에서 이루어진 급식기적과(6:35-44; 8:1-10) 두 개의 신체장애자 치유를(7:31-37; 8:22-26) 읽은 이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배열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두 개의 바다에서 이루어진 기적을 한 절 한 절 함께 살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두 개의 바다에서 이루어진 기적은 예수께서 폭풍을 만나 배 안에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기적과 폭풍 중에서 고난 당하는 제자들에게 물위로 걸어 오셔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기적을 말합니다. 이 두 기적의 특징은 고통 당하는 제자들과 함께 배 안에 계시면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 것과 고난 당하는 제자들에게 다가오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 점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고난 중에 함께 계시기도 하고,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시기도 합니다. 예수는 늘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함께 있든지 떠나 있든지 예수는 언제나 우리의 삶의 중앙에 계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거친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와 같고, 우리 자신은 망망 대해에 떠가는 교회라는 배에 올라탄 제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의 말씀에 의하면, "저녁때가 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무리를 그대로 남겨 둔 채 예수를 모시고 배를 저어 갔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편'이란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 하나님의 나라, 반드시 가야할 목적지, 성공의 장소, 혹은 꿈의 장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가 저녁이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때를 우리가 주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때가 바로 어둠이 짙어 가는 악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바로 바다 건너 저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일러주신 약속의 땅을 향하여 여행길을 떠난 것처럼(창 12:1),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아래 노예 생활을 버리고 이집트를 떠난 것처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길을 홀로서 가듯, 신앙인들은 장차 망할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순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6절에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의 삶이 예수를 모시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배 안에 예수를 모셨다는 것은 예수를 머리로 한 교회, 예수 중심의 교회를 말합니다.
37절에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를 모신 배가 폭풍을 만난 것처럼 교회나 신앙인들도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서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환난은 교회나 신앙인 개인의 잘못으로 오는 경우도 있고, 욥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잘못과 관계없이 연단을 위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 로마제국의 기독교인 박해나 일제의 한국교회의 박해와 같이 악한 세상이나 악한 인간으로부터 오는 경우도 있고, 홍수, 가뭄, 태풍, 폭설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환난은 인간의 노력으로 피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들이 만나는 대부분의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던 것들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습니다.
사실 인간은 환난을 겪음으로서 환난을 피해 가는 경험과 지혜를 터득하고 환난을 대비하는 지혜를 터득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환난을 통해서 발전해온 역사입니다. 인류가 쌓은 문명은 인류가 겪은 환난을 긍정적으로 대처해 나간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환난은 예수를 모신 배에도 있었듯이 예수를 모시고 사는 신앙인들에게도 광풍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모신 신앙인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거친 바다와 같기 때문에 언제 광풍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환난이 전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가 믿는 사람에게만 내리거나 혹은 안 믿는 사람에게만 내린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또 햇빛이 믿는 사람에게만 혹은 안 믿는 사람에게만 내린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를 모시고 안 모신 상태의 차이는 환난이 닥치고 안 닥치는 차이가 아니라 환난에 부닥쳤을 때에 어떻게 그 환난을 피해가느냐에 있습니다.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은 예수를 모신 사람들은 예수를 모시지 않고 사는 사람들보다 개인적인 과실에 의한 환난을 훨씬 덜 당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를 모신 사람들의 생활이 절제되고 신실하고 진실된 신앙생활만큼 예상되는 과실이 방지되기 때문입니다.
38절에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배 안에 계신 예수는 물론 육신적으로 피곤하시기도 했겠지만, 제자들에게 잊혀진 인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나 세상적인 근심걱정 등으로 인해서 함께 계신 예수를 잊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잊혀진 예수입니다. 예수가 우리에게서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곁에 계신 예수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의 말씀처럼 때때로 우리는 예수없이 혹은 예수를 떠난 삶 속에서 제자들이 바람과 싸우며 괴로이 노 젓은 것처럼 환난을 만나 사투를 벌린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38절에는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환난이 좋은 한 가지 이유는 환난을 통해서 잊고 있던 예수를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도로표지판의 노랑색과 신호등의 노란색은 경고의 표시입니다. 도로표지판의 빨간 색과 신호등의 빨간색은 위험표시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환난은 경고 또는 위험표시입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음생활에서 뒷걸음질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 보고 반성해야할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 많으심을 인정해야할 때인 것입니다. 내 곁에서 할일없이 주무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깨워야할 때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광풍을 만나 어찌할 수 없을 때에 예수를 깨우며 도움을 청한 것처럼 우리도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분의 능력에 우리의 삶을 맡겨야 합니다.
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 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삶에 몰아닥친 광풍을 향하여 잠잠 하라 고요하라고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특징 중의 하나가 예수께서 귀신을 축출하실 때이든지, 광풍을 진압하실 때이든지(4:39), 적대자들을 대항하실 때이든지간에 언제나 '꾸짖으시고,' '잠잠케' 하셨으며, 그 결과 '즉각적'( s/1:42; 2:12; 5:29, 42; 7:35; 10:52)으로 '엎드려 지거나'( ) '잔잔하여' 졌다는 점입니다. 이는 예수와 사탄의 세력간의 투쟁의 측면에서 묘사된 것으로서 예수의 승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여집니다. 예수는 능력이 많은 분이시기 때문에 각종 질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까지도 살리시며(5:41-42), 자연을 지배하시고, 또 그를 시험하며 멸하려는 적대자들을 침묵케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들은 예수 앞에서 '엎드려 지거나'(3:11),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5:6). 이렇게 능력이 많으신 예수를 우리가 모시고 있고 또 그 분을 인정만 한다면 비록 우리의 삶이 시시 때때로 광풍에 휘말린다 할지라도 우리는 능히 그 광풍을 이기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40절의 말씀처럼 때때로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꾸중의 말씀처럼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줄 압니다.
우리에게 폭풍과 같은 시련이 몰아쳐 올 때에, 하나님이 죽고 계시지 아니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에, 사는 것이 지루하고 고달플 때에, 되는 일이 없고 답답할 때에, 악한 사람이 믿는 우리 신자들보다도 하는 일마다 더 잘된다는 생각이 들 때에, 우리는 말씀 한 마디로 폭풍을 잔잔케 하신 능력의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은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계시록 2장과 3장에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이 교회들은 박해로 인해서 바람 앞에 등불 같이 위기에 처해 있는 교회들 이였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제자들을 태운 작은 배가 돌풍에 위기를 만난 것처럼 이들 교회들도 박해로 인해서 전복될 위기에 놓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들 교회의 배후에는 교회의 목자와 신자들을 지키기에 능하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화려한 인자의 모습으로 버티고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배를 요동치게 하던 바람과 풍랑을 향하여 "잔잔하라"는 명령을 막 내리시려는 순간의 모습입니다. 요한이 환상으로 본 천상에 모습을 보이신 인자는 우리를 사랑하사 피로서 죄에서 해방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이 분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전능의 왕이십니다. 이 분은 힘있고 전능한 심판주요, 재림주이시며,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불꽃같은 눈과 단련된 발과 예리한 말씀의 검과 해처럼 빛나는 힘있는 모습을 하신 구원의 주시요, 교회의 목회자들을 장중에 붙으시고, 교회를 왕래하시며, 지키시는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이들 교회들에게 주님은 귀 있는 자가 들어야 할 칭찬과 책망과 또 끝까지 이기는 자가 받게 될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실 그리스도가 계신데,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승리는 우리의 것이니 두려워 말라고 권면 하십니다.
초대교회는 엄청난 배교의 위협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또한 엄청난 시련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신앙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받고, 채찍과 몽둥이로 매를 맞고, 사자굴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버렸습니다. 이 때에 주님께서는 교회들에게 "처음행위를 가지라"(2:5), "죽도록 충성하라"(2:10), "회개하라"(2:16), "굳게 잡으라"(2:25),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3:3), "네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3:11), "네가 열심을 내라"(3:19)는 말씀들로 권면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2:7),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1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주겠다"(2:17), "새벽별을 주리라"(2:28), "이기는 자는 . . .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3:5),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3:1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는 말씀으로 보상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구원을 상징하는 말들입니다. 능력의 주, 만왕의 왕이 계시니, 잠시 받는 환난을 견디고 참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이 계시록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만세 불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가감없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신앙의 어려움이 닥쳐 올 때, 우리는 승리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고, 결코 실패함이 없습니다. 환난 중에서도 부활하신 승리의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극한 환난과 시련 중에서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고 구원과 승리의 환상을 보았던 사람 가운데는 바울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이 죄 없이 로마로 끌려 갈 때에 지중해 큰 바다 가운데서 만난 여러 날 계속되는 태풍을 인해서 모든 사람이 희망을 버리고 좌절에 빠져 있을 때에 바울은 오히려 구원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기운을 내십시오. 배는 가라앉더라도 아무도 목숨을 잃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어젯밤에 나를 이끄시며 또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소. '무서워하지 말아라. 바울아, 너는 틀림없이 가이사 앞에서 재판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네 소원을 들으시고 너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 이제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소.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오. 우리는 반드시 어떤 섬에건 닿게 될 것이오"(행 27:21-26).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신앙을 저버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는 우리의 희망이요 승리의 지도자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결국 이기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도 하고,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시기도 합니다. 예수는 늘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함께 있든지 떠나 있든지 예수는 언제나 우리의 삶의 중앙에 계십니다. 이 예수를 통해서 반드시 승리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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