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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20
변화의 원리속에 변치않는 생존의 법칙1[롬12:1-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788  
변화의 원리 속에 변치 않는 생존의 법칙은 변화 그 자체입니다. 변화의 원리 속에 변치 않는 법칙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BC 540?∼?)는 '로고스' 즉 '법칙' 또는 '도리'라 했고, 헤겔(G. W. F. Hegel, 1770~1831)은 '절대정신' 또는 '세계정신'이라 했고,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물질'이라고 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장하는 변치 않는 법칙이란 끝없이 변하면서 진화한다는 변증법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기서 변증법은 발전을 향한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변화를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에 근거해서 '계급투쟁'으로 보았고,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은 생물들의 생존경쟁에 근거해서 '강자'가 이끌어 가는 '진화'라고 했고,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했고, 성경은 '회개' 또는 '회심'이라고 했습니다.
표현은 달라도 그 뜻은 한결같이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변화 무쌍한 세계 속에 변치 않는 생존의 법칙이 변화라는 아이러니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98) 크리스마스 시즌에 "'건달'들의 선행"이란 제목의 글이 조선일보에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 글에 의하면, 몸에 딱 달라붙는 소매 없는 검은 러닝 셔츠 차림에 험악한 인상과 울퉁불퉁한 근육, 팔뚝과 어깨에 온통 흉측한 문신을 새긴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도쿄시의 한 철도역주변 횡단보도 한쪽에서 쌀쌀한 겨울 바람도 아랑곳없이 십자가를 어깨에 둘러멘 채 기타 반주에 맞춰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퇴근길 시민들에게, "등에 날개는 없지만, 문신(이래즈미)이 있는 천사들이 오늘 여러분에게 기쁨을 전하러 왔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전직 야쿠자 깡패출신으로 구성된 전도단 '미션 바라바'의 회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전도단의 대표, 스즈키 히로유키는 오사카 출신으로 남에게 상해(傷害)를 입히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17세에 폭력단에 들어가 두 차례나 감옥살이를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10년 전 조직분규로 동료들의 칼을 피해 가족을 버리고 도쿄에서 피신생활을 하던 중, 원인불명의 병에 걸렸습니다. 매일 매일 죽음의 공포 속에 신음하다가 찾은 곳이 신주쿠에 있는 한 교회당이었습니다. "나의 눈에는 모두가 존귀하며,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는 이사야 43장 4절의 말씀을 읽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쾌락과 이기주의에 젖어 제멋대로 살아온 인생인데, 존귀하다니, 사랑한다니…" 그 후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였고,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미션 바라바'는 성경에 나오는 강도 바라바의 이름을 따서 스즈키가 비슷한 과거를 가진 건달들을 모아 96년에 결성한 단체입니다. "몸에 문신을 새겼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주님의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젊어 한때 실수로 주먹 세계에 휩쓸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 싶습니다."고 스즈키 목사는 말했습니다.
"주님의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변화의 원리 속에 변치 않는 생존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변화'입니다.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인생관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고, 세계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바꿔야 산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했고,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재림주로 오실 예수께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경고는 한결같이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계시록 2장 5절에서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셨고, 3장 3절에서는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면 망합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6권 서문에서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고 말한 시저의 말을 소개하였습니다. 나나미는 이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대개 변화를 거부합니다.
{로마인 이야기} 7권을 보면, 이런 말도 있습니다. "그리스인이 생각한 '시민권'은 자신들과 피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로마인이 생각한 '시민권'은 자신들과 정신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피를 공유'한다는 말과 '정신을 공유'한다는 말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만 보는 사람들'이 바로 피를 공유했느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고, 이런 사람들이 십중팔구 변화를 거부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정치나 기업이나 교육사업에 뛰어들면 족벌체제를 구축하게되고, 장기집권을 하게되며, 변화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면 망합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입니다.
헬라제국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로마제국에 정복된 것이나 로마제국이 수세기 동안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태평성세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피의 공유'와 '정신의 공유'의 차이에 있었던 것입니다.
헬라제국의 멸망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들 가운데 안티오코스 4세가 유대교를 탄압한 정책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레이시 볼드윈 스미스가 쓴 {바보들, 순교자들, 반역자들}이란 책을 보면, 안티오코스 4세는 제우스 숭배를 종교적인 초점으로 삼아 그의 전 영토들을 헬라화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 셀레우코스 왕국에 편지를 보내 모두가 한 백성이 되어야 하며, 각 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습들을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선왕 안티오코스 3세가 인정했던 모세의 율법을 폐지시켰고, 할례와 안식일과 식사법을 불법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제우스제단을 만들고,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돼지고기로 제물을 바치도록 하였고, 더 이상 유대인이란 사실을 고백하지 못하도록 사형으로 금지시켰습니다. 
반면에 로마제국의 번영이 변화를 수용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들 가운데 유대교에 대한 정책과 노예정책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로마는 세계정복이 진행됨에 따라 자신의 패권 밑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여러 민족의 고유한 신들을 거부하지 않았고, 그 종교를 믿는 자들이 예배당이나 신전을 짓는 것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유대교도는 외국에 살더라도 매년 십일조를 예루살렘 성전에 바칠 의무가 있었는데, 그것도 금하지 않았습니다. 유대교도는 병역도 면제받고 있었는데, 이것은 군대에 들어가면 최고사령관인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기 때문에 유대교의 유일신에게만 충성을 바치겠다는 맹세와 모순된다는 그들의 주장을 인정한 결과였습니다. 그 반대로 유대인이라도 유대교를 버리면 아무런 차별 없이 병역을 비롯하여 로마의 공직에 임용될 수 있었고, 실제로 이집트 장관까지 된 유대인도 있었습니다. 로마는 유대인 사이에는 유대식 재판이 있으니까 사법권을 인정해달라는 그들의 요망을 받아들여, 유대 땅만이 아니라, 오리엔트 일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유대인 공동체에까지 사법권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바울이 예수 믿기 전에 기독교인을 잡아드린다고 외국인 시리아에까지 박해의 손을 뻗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명한 유대인 학자 필로는 유대인이면서도 로마제국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였습니다. "제국의 동서남북 모든 땅과 바다는 로마제국의 이름 아래 조화로운 통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제국 내부에서는 야만족도 문명인과 뒤섞이고, 정복자는 피정복자와 뒤섞이고, 양쪽 모두의 소망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고 했습니다.
노예가 없는 로마인 가정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로마인 유력자의 가정은 역할에 따라 조직화된 노예나 해방노예들이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네로의 선임자였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비서관 3인방을 거느렸는데, 이들이 모두 해방노예들이었습니다. 로마사회에도 원로원 계급, 기사계급, 평민, 해방노예, 그리고 노예로 계층이 나뉘어 있었지만, 이들 계층은 한평생 지속되는 계급이 아니라, 언제라도 자기 노력여하에 따라서 신분상승이 보장되어 있었고, 자격을 갖추면 로마 시민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당시 로마에는 노예를 수백 명씩 거느린 사람들이 수 없이 많았지만, 노예반란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출신성분이 아니라, 능력과 기능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인 플루타르코스는 로마를 강대하게 만든 요인을 패자조차 자기들과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생활방식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 플루타르코스의 고국 그리스에는 노예계급은 존재했었지만, 소크라테스가 살았고, 페리클레스가 활약한 전성기에도 해방노예라는 사회계급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때 변화를 수용하여 번영을 누렸던 로마가 기독교라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탄압함으로써 휘청거리고 있을 때,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수용함으로써 비잔틴 제국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도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변화를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라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탄압함으로써 결국 수난의 민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 [제4편 문명의 쇠퇴]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시적인 자아를 우상화하는 가장 유명한 역사적 사례는 신약성경에 폭로된 유대인의 과오이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시리아 문명의 요람기에 시작하여 예언자 시대가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스라엘과 유대의 백성은 일신교의 종교사상에 도달함으로써, 그 주위에 사는 시리아 사회의 다른 민족들보다 단연 뛰어나게 되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정신적 보물을 강하게 의식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당연하였으나, 그 정신적 성장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단계이기는 하였지만, 하나의 과도적인 단계에 불과한 것을 우상화하는 과오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은 확실히 무상(無上)의 정신적 통찰력을 타고난 민족이었지만,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진리를 발견한 후에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절반진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들은 '유일한 참신'을 이스라엘이 발견한 것은 이스라엘 자체가 신의 선민임을 계시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절반진리는, 그들이 가까스로 도달한 일시적인 정신적 탁월성을 신이 자기들에게 영원한 성스런 약속으로써 부여한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과오에 빠지게 하였던 것이다. 그 천부의 재능을 어리석게도 땅에 숨겨둠으로써 그것을 활용할 줄 몰랐던 그들은 신이 나사렛 예수의 강림을 통하여 자기들에게 제공한 한층 더 큰 보물을 거절하였던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1549년 7월에 일본 큐우슈우(九州)에 상륙한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와 함께 서양문명을 받아들여 변화를 꾀하였습니다. 일본은 1854년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은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네덜란드 등 서양 제국과 차례로 통상조약을 맺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이룩하였습니다.
중국도 당나라 때에 이미 한차례 기독교(景敎)를 수용한 경험이 있고, 또 1583년 9월, 중국 광동성에 도착한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와 함께 서양문명을 받아들여 변화를 꾀하였습니다.
이 두 나라가 유럽의 발전된 과학학문을 받아드렸다는 것은 변화를 받아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동서양학문이 결합된 변증법적 진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어떠했습니까? 유럽의 각종 문물과 번역서들이 해마다 북경에 파견되는 사절들에 의해서 유입되었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들을 접하고도 배척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들은 천주교인들을 '사학죄인'으로 몰아 1만여 명이나 죽었는가하면, 쇄국정책을 펼쳐 서양학문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였고, 실학자들을 정치적으로 크게 탄압하였습니다.
이 당시 성리학에 바탕을 둔 양반세력들은 평등사상에 바탕을 둔 기독교 정신에 위기의식을 느껴 변화를 거부했습니다. 특히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은 청(淸)나라를 제외한 다른 외국과의 통상 및 교류를 꺼려 강경한 쇄국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근세 들어 겪게되는 엄청난 외세에 대응할 만한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국제무대에서 고립되는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함석헌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피력한 것처럼, 우리 나라는 중국을 섬기고 중국이 되려한 사대주의 모화사상에다 변화를 거부한 쇄국주의와 현상유지주의로 인해서 당나라의 엎누름을 당했고, 거란의 도둑질을 당했고, 몽고의 짓밟음을 당했고, 여진의 시달림을 당했고, 임진란, 병자란을 거쳐 일제에 강점 당하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면 망합니다. 변화를 거부해서 망하는 것이 국가만은 아닙니다. 개인도 마찬가집니다. 변화의 시대를 맞아서 변화의 도전에 적절하게 응전하여 발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잘못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자기만족, 자기도취, 자아 우상화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