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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1:03
새 시대를 위한 세상의 빛[요 9:1-7]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18  
요한복음 9장 1절 이하의 말씀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예수께서 침으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른 후에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게 하여 고친 기적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8장 12절에서 예수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맹인의 눈을 고쳐서 빛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서 빛을 볼 수 있게된 맹인은 예수를 "선지자"(9:17),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9:33)과 "주님"(9:38)으로 믿고 고백하였습니다.
"세상의 빛"에 관한 말씀은 이미 1장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빛은 생명을 주는 "사람들의 빛"(1:4)인데,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한다."(1:5)고 하였습니다. 빛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빛을 볼 수 없는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학 종교음악과에 시각장애자로써 피아노를 전공하는 여학생이 있습니다. 시신경(視神經)이 끊어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정안(正眼)이었지만, 소경이 된 지금은 빛조차도 전혀 느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눈이 어두워지면 사물은 고사하고 빛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둠에 거하는 사람들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예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을 떠 볼 수 있게 되면 본문에 등장하는 맹인처럼 예수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9:33)과 "주님"(9:38)으로 고백할 수 있게됩니다. 맹인이 눈을 뜬 후에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예수를 '사람'(9:11)이라고 부르더니, 그 다음에는 '선지자'(9:17), 그 다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9:33),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주님'(9:35-38)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삶에서 어두움이 걷히고 광명이 찾아왔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러나 눈을 떴다고 생각했던 자들, 즉 바리새인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이야기 마지막에서 눈 먼 자들로 지적 당하고 맙니다. 이는 9장 39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한 말씀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을 떠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1:12)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3장에서는 "세상의 빛"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 밝혀지고 있고,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3:16)고 하였으며,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 하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다른 복음서에 없는 두 개의 신체장애자 치유 기적이 나오는데, 한 사람은 귀먹고 어눌한 벙어리였고(7:31-37), 다른 사람은 벳새다 장님(8:22-26)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예수를 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장애자를 고치기 전에 예수는 제자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너희가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치 못하느냐? ···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 8:17-21).
제자들은 진리가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였고, 귀가 있어도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보고 듣는 것은 피상적이고 표피적인 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고 듣는 것은 물질과 명예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보고 듣는 것 가운데는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받을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누릴 명예와 권세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는 죽음을 앞두고 번민하며 기도하셨는데, 제자들은 높은 지위를 누리는 단꿈을 꾸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의 그 많은 기적과 권위 있는 말씀을 듣고도 확실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귀먹고 어눌한 자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을 때에, 또 소경의 눈이 뜨였을 때에 제자들의 대표자격인 베드로가 비로소 참 진리를 깨닫고 볼 수 있었고,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요한복음 9장에서도 소경의 눈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열리고, 정신의 눈이 열리고, 마음의 눈이 열릴 때에 참 빛을 볼 수가 있고, 참 빛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동굴비유]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굴 속에 묶인 채로 그림자가 비취는 벽만 바라보고 수십 년씩 살았던 죄수들은 벽에 비취는 그림자가 실재인줄 알고 믿었지만, 결박에서 풀려난 다음, 벽에 그림자를 만드는 참 빛을 볼 수 있었고, 그 순간 그 동안 자신이 알고 믿었던 것이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된다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참 빛이신 예수를 믿고 영접하게 되면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진리가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장 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고, 36절에서는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 하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을 38년 동안 앉은뱅이로 고통받게 하였고, 날 때부터 장성하도록 장님으로 어둠 속에서 헤매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영의 눈을 뜨고 예수를 바로 보아야 그분으로부터 세상의 빛을 받을 수가 있고, 그분으로부터 빛을 받아야 우리 안에 짙게 내린 어둠의 그늘, 죄악의 그늘을 몰아 낼 수가 있습니다. 또 예수를 바로 믿어야 참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고, 진리 가운데서 자유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의 소경치유이야기를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치유와 비교해보면, 몇 가지 비슷한 점들이 발견됩니다. 이 두 장애인이 모두 안식일 날에 연못에서 고침을 받고 있고, 이 일로 예수와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납니다. 또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치유에서는 예수가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실로암 연못의 맹인치유에서는 "빛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두 개의 기적이 모두 침례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눈먼 청년이 실로암의 물을 통해 그의 시력을 되찾았듯이 침례를 받은 사람은 침례의 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도, 즉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냄을 받은 예수를 통해 참 빛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냄을 받았다"는 뜻을 가진 실로암 물에 눈을 씻음으로 시력을 되찾은 맹인은 침례에 의해서 빛을 찾은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려 엘리사를 찾아온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것은 그가 싣고 온 많은 재물 때문이 아니었고, 그가 누린 명예나 권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고침을 받은 것은 엘리사의 말을 믿고 요단강에 내려가 엘리사가 시킨 대로 요단강 물에 일곱 번 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우리 죄로 인해 천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었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고 침례를 받아 영혼의 눈이 뜨이고 영혼의 병이 고쳐지는 줄 믿습니다.
빛 생명 진리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모세의 흑암재앙(출 10:21-29)과 예수의 맹인치유에 관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0장 22-23절에 보면,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었다."고 했는데, 결국 모세의 기적은 온 땅을 어둡게 만듦으로써 눈을 가지고도 볼 수 없게 만든 재앙이었지만, 예수의 기적은 어두움 속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을 고쳐서 볼 수 있게 만든 기적이었습니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진실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서도 율법주의의 형식과 논리에 빠져 페인트칠한 무덤처럼 겉은 멀쩡했지만 속에서는 썩어 냄새나는 자신들을 볼 수 없었던 소경들이었습니다. 그들 자신은 진실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따르는 멀쩡한 사람들까지도 우매한 율법주의에 빠져들게 하는 눈먼 인도자들이었습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참아 눈뜨고 볼 수 없는 형국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는 분노를 금치 못하셨고 외식하는 자들을 저주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민중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 자기들은 손가락도 까닥하지 않으며 명예와 권세를 탐하고 거짓이 가득한 위선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마 23:1-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 23:2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오늘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바로 이런 눈뜬 소경 또는 외식하는 위선자가 아닌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복음에 눈뜨지 못한 사람들은 다 영적으로 소경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그분으로부터 구원의 빛을 받은 사람들과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악령의 어둠을 몰아내고 마음의 병을 고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 5:1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 같이 밝은 세상에 어둠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어둔 세상에 빛을 밝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잘못된 율법의 해석으로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진리에서 벗어나 흑암에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복음과 진리의 밝은 빛 아래로 인도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낮의 태양은 하나뿐이지만, 온 세상을 아주 밝게 비췹니다. 그러나 밤의 등불들은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도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등불이 있는 일부분만 빛이 있음을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은 태양처럼 넓은 세상을 밝게 비출 수 있는 큰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의의 태양이신 예수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희미하게나마 비추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와 같은 작은 불빛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의 어둠은 그만큼 더 크게 물러가게 됩니다. 예수는 새 시대를 위한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세상에 비추셨습니다. 우리는 이 빛을 받은 또 다른 작은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 모두가 등불을 밝혀 높이 처들 때에 옛 시대의 상징인 어둠은 물러가고 새 시대의 상징인 밝은 빛이 비쳐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마음과 영혼에 짙게 드리운 어둠의 권세를 몰아내고 영혼의 눈을 밝게 뜨는 것입니다. 누가 과연 소경입니까? 육신의 눈이 멀었다고 해서 영혼까지 혹은 정신까지 혹은 그 마음까지 소경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던 우리 대학 종교음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맹인 여학생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이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매우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소개해드렸던 강영우 박사도 그렇고, 안요한 목사도 그렇고, 피아니스트 오은경 자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이 멀쩡한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혼에 눈이 멀고, 진실에 눈이 멀고, 참된 가치에 눈이 멀고, 복음과 진리에 눈이 멀었는지 모릅니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 보면, 우리도 전에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안에서 또 다른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했습니다. 빛 속에 살고, 빛을 밝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