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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22 22:37
역사 배후의 큰손, 하나님[계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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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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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에서 계시록 1-3장을 중심으로 '풍랑을 잔잔케 하실 예수'와 '죽도록 충성하여 이기는 자가 되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다. 앞글에 이어서 계시록 4-6장을 중심으로 '역사 배후의 큰손,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큰 손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장영자 사건이다. 장영자 여인은 두 차례나 거액의 금융 사기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생활을 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일컬어 큰손이라고 말한다. 큰손이란 통이 크다는 뜻도 있겠지만, 특히 어떤 사건의 배후에서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은 채 조종하고 또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조작해 가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장영자와 같은 큰손은 사탄의 손이요, 파괴의 손이다.
'거장의 손이 닿을 때'(Touch of the Master's Hand)라는 영시가 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경매장에 낡은 바이올린이 있었다. 3불까지 부르는 사람이 있었고 더 이상은 없었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바이올린의 먼지를 털고 보물을 다루듯 자기의 손수건을 꺼내 구석구석을 닦았다. 그리고 줄을 조여 음을 맞춘 다음 연주를 시작하였다. 노인의 연주는 아름다운 천사의 음악처럼 청중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한 곡을 끝내고 노인은 감회 깊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잘 있었느냐, 내 사랑하는 아들아, 40년만에 너를 만져보는구나."하고는 다시 연주를 시작하였다. 경매는 갑자기 활기를 띠게 되었고, 결국 이 바이올린은 3천불에 낙찰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시에서 노인의 손은 분명 큰손이다. 이 노인과 같은 손이 바로 하나님의 손이다. 하나님의 손은 건설의 손이오, 치유의 손이오, 구원의 손이다. 우리 인간들의 삶을 조종하는 손이다.
시편 99장 1절은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 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고 노래하고 있고, 시편 103장 19절은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고 노래하고 있다. 시편 기자의 이 노래가 바로 요한이 계시록을 통해서 독자에게 하고 싶어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시고, 우주를 통치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최선책이다.'고 말한다. 이것이 압축된 계시록 전체의 메시지이다. 특히 계시록 4-6장은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위엄을 강조한 내용이다.
백발의 노인이 두 팔로 지구를 감싸고 있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과 같이 하나님은 온 우주를 두 팔로 감싸 앉고 온 관심으로 지켜보고 계신다. 이 그림이 바로 보좌방의 환상을 설명하는 그림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이끌고 계시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입고,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아름답게 결말지어 주신다. 로마서 8장 28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고 하였고, 전도서 9장 1절은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만이 최선책인 것이다.
'역사 배후의 큰 손, 하나님' 이것이 계시록 4-6장의 주제이다. 계시록 1-3장이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좁은 범주의 틀 속에서 다루어진 것이라 한다면, 계시록 4-6장은 하나님과 우주라는 보다 큰 틀 속에서 다루어졌으며, 고난 당하는 성도에게 보다 넓은 안목의 세계관을 심어 주고 있다. 이 세계관은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하심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다. '세계는 보다 큰 하나님의 뜻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극한 시련 속에서도 좌절할 수 없다.'는 역설적인 암시가 담겨 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그분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 속에는 연단과 훈련이 있을 뿐이지, 결코 실패나 패배가 없다. 고린도전서 15장 57-58절의 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며, 우리의 수고가 주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고 하였다.
계시록 4장에는 하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하나님에 관한 환상이 나타나 있다. 이 환상을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윌리암 헨드릭센은 계시록 4장의 하늘 보좌 방과 그 주변 전경의 위치 그리고 온 우주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격 표적지 모양의 그림을 사용한다. 중심의 가장 작은 원에서부터 바깥쪽 가장 큰 원에 이르기까지 일곱 개의 원을 그려서 4장에 나오는 인물과 가구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계시록 4장 3절을 보면, 가장 작은 중심 원 중앙에 보좌가 놓여 있고, 그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 계신데, 그 앉은 모습이 푸른 보석 재스퍼(jasper)와 붉은 보석 루비(ruby) 같고, 그 보좌 둘레에는 에메랄드(emerald) 같은 무지개가 있다. 윌리암 헨드릭센의 설명에 의하면, 이 장면은 중앙에 보좌가 있고, 그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 계신데, 하나님을 둘러싼 중심 원에 재스퍼가, 두 번째 원에 루비가, 세 번째 원에 에메랄드 같은 무지개가 놓여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재스퍼와 루비와 에메랄드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세 겹으로 보호망을 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 4장 6-9절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네 번째 원에는 스랍(seraph)으로 알려진 네 생물이 동서남북에 위치하고 있다. 첫째 생물은 사자와 같이 생기고, 둘째 생물은 황소와 같이 생기고,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과 같이 생기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와 같이 생겼다. 이 네 생물은 각각 날개 여섯 개씩 가졌는데, 날개 둘레와 그 안쪽에는 눈이 가득 달려 있다. 그리고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다. 또 장차 오실 분이시다!"고 외치고 있다. 이 장면은 이사야 6장 1-3절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 생물 또는 천사들이 부르는 노래는, 오늘날의 개신교 예배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상투스(sanctus) 또는 삼성창(三聖唱)이라 하여 4세기 초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부터 기독교 예배의식에 첨가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보좌가 놓여 있는 정사각형의 단상의 모습이다. 이 단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여러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시록 4장 4절과 10-11절을 보면, 단상 아래에 다섯 번째 원이 있고, 그 원에는 보좌 스물 네 개가 있고, 그 보좌에는 장로 스물 네 명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다. 이들 스물 네 장로는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향해서 엎드려 영원무궁하도록 살아 계신 분께 경배 드리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내놓으면서 "우리의 주이신 하나님,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만물은 주의 뜻을 따라 생겨났고 또 창조되었습니다."고 외치고 있다.
계시록 5장 11-12절을 보면, 여섯 번째 원에는 수를 알 수 없는 수천 수만의 천사들이 있고, 그들은 큰소리로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어린 양 예수를 찬양하고 있다.
계시록 5장 13절을 보면, 마지막 일곱 번째 원에는 우주와 모든 생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도 큰소리로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서는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하도록 받으십시오."라고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우주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데, 그 모습이 마치 재스퍼와 루비와 같고, 에메랄드 같은 무지개가 보좌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 영광이 매우 찬란하고, 높은 위엄과 존귀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 하나님을 향해서 네 스랍들은 상투스를, 24장로들은 존귀를 찬양하고 있고, 수천 수만의 천사들은 어린양 예수에게 존귀를 찬양하고 있고,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하나님과 예수 모두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리며 경배하고 있다.
우리는 이 대열에 포함되어야 한다. 요한처럼 우리도 믿음의 눈을 뜨고서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함을 볼 수 있어야겠고, 헨델처럼 믿음의 귀를 열어서 온 우주에 울러 퍼지는 장엄한 찬송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알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고 이 거룩한 대열에 참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이시며,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시작하신 분이요, 간섭하시는 분이요, 끝을 낼 분이시다. 또 하나님은 인간의 삶과 죽음과 행복과 불행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폭풍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폭풍을 벗어나 안전한 포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계시록 1장에서 본 인자의 환상이 5장에서는 어린양의 환상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계시록 4장 5-6절을 보면,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을 켠 촛대와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계시록 5장 6절을 보면, 어린양 예수는 보좌와 네 짐승과 장로들 사이에 서 있다. 이 어린 양 예수는 승리하신 자요, 일곱 매듭으로 묶고 봉인한 책을 펴거나 읽기에 합당한 분이요, 피로서 성도를 사신 분이요,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또 어린양에게 뿔 일곱과 눈 일곱이 있는데, 그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일곱이란 숫자는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이므로 결단코 문자적인 일곱으로 해석될 수 없다. 따라서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하나님의 일곱 영은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할 것이 없는 전지전능하신 성령을 말한 것이다. 뿔은 고대 근동세계에서 힘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뿔 가진 송아지를 금으로 만들어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고, 제단에도 뿔로 장식을 했다. 그리고 일곱 눈은 완전한 지혜와 지식을 상징한다. 그래서 어린양에게 뿔 일곱과 눈 일곱이 있다는 말은 부활 승천한 예수에게 전지전능한 성령이 계시다는 뜻이다.
1장의 인자의 모습과 5장의 어린양의 모습은 겉보기에 큰 차이가 있어 보이나 결국 이 두 모습은 '폭풍을 잔잔케 하실 능력의 예수'를 각기 다르게 표현했을 다름이다.
계시록 6장에서는 하나님이 이 예수를 통해서 일곱 매듭을 묶고 봉인한 책을 펼쳐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보여준다. 이 일곱 봉인의 비밀을 '인 재앙'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네 가지 색의 말이 등장을 하는데, 첫째 인에 나오는 흰말은 승리, 둘째 인에 나오는 붉은 말은 전쟁의 파괴, 셋째 인에 나오는 검은 말은 기근의 피해, 넷째 인에 나오는 청황색 말은 죽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다섯째 인은 신앙인의 순교, 여섯째 인은 천재지변, 일곱째 인은 평화를 말하는 것으로써, 이들은 지상에서 펼쳐지는 역사의 악순환을 회화적(繪畵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있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 본 대로, 계시록 4-5장은 인류의 역사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 즉 천상의 청와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만물을 통치하신다. 그가 만물을 만드셨고 만물을 다스리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는 시작이 있었고, 끝이 있다. 따라서 이 우주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섭리아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목적 없이 진행될 수 없고, 돌고 도는 윤회의 역사일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지배아래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역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막이 내리게되고, 새로운 인류를 위한 역사의 막이 오르게 된다.
IMF시대를 사는 우리 신앙인들은 폭풍의 위험이나 엄동설한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라도 요한처럼 믿음의 눈을 떠서 역사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요한은 박해라는 무서운 폭풍 속에서 그 폭풍을 잔잔케 하실 능력의 예수를 보았다. 요한은 지진, 전쟁, 기근, 순교, 천재지변과 같은 악순환이 거듭되는 비극적인 역사의 중심 속에서도 굴절된 역사를 바로 잡아줄 능력의 하나님을 보았다. 요한은 칠흑처럼 어두운 현실에서 빛을 보았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보았으며, 죽음에서 생명을 보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요한이 창조신앙의 소유자였으며, 성경의 해석자였으며, 환상을 보는 종말론자였으며, 역사의식이 뚜렷한 신학자였으며, 소명의식을 가진 목회자였기 때문이다. 계시록에 실린 요한의 환상은 칠흑 같은 어둠과 좌절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박해라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절망 속에서 믿음의 눈을 뜨고 박해의 폭풍을 잔잔케 하실 예수와 악순환이 거듭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바로 잡아줄 하나님을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각자의 삶에 몰아쳐 오는 폭풍을 잔잔케 하실 예수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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