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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4 17:02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인[수6:1-7]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407  
왕은 한 나라의 통치자로써 평화롭고 정의로운 국가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다스리는 일에 헌신한다. 그러나 예언자는 왕의 독재와 횡포를 견제하고 사회의 각종 부조리와 죄악상을 고발하는데 헌신한다. 그리고 제사장은 평화를 위해서 헌신한다. 왕이 정의와 평화 모두를 위해서 헌신할 때에 예언자는 왕의 정의로운 통치를 감시하게되고, 제사장은 왕의 평화로운 통치를 위해서 헌신한다. 예언자는 정의에 제사장은 평화에 더 많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서서 고난의 시기에는 언약궤를 메는 일에, 투쟁의 시기에는 나팔을 부는 일에, 평화의 시기에는 세상 죄를 짊어지는 제사 바치는 일에 헌신한다. 예언자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사람에게 전하는 자라면, 제사장은 사람 편에 서서 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는 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귀중한 일이 어느 특정인에 국한되어있지 않고 우리 모두의 일이란 점이다.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중요한 일을 감당해야할 사명자이기 때문이다.
후안까를로스 오르띠즈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제사장이다}(김귀탁 옮김. 도서출판 만나)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 제사장이다. 그것도 왕 같은 제사장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과 제사장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제사장이다. . . . 더구나 아직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제사장이 되지 못하고, 세상에 속해 있는 불신자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킬 사명을 받은 제사장이다.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을 화목케 하는 자는 누구나 화해자이며 제사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세상 사람들을 제사장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후안까를로스 오르띠즈의 이런 시각에 동의하면서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관해서 몇 가지 살펴보겠다.
첫째, 제사장은 배달부이다.
98년 6월 15일 미국 프로농구(NBA) 챔피언결정 6차전에서 시카고 불스가 유타 재즈를 87대 86 한 점차로 승리를 거두고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농구의 황제에서 일약 농구의 신으로 격상된 마이클 조던이 승리를 거둔 후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좋아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었다. 그런데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서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에게 아쉬운 패배를 맛보아야했던 유타 재즈의 칼 말론은 'mailman' 즉 '우편배달부'란 별명을 갖고 있다. 팀 동료 존 스탁턴의 패스를 받아 어김없이 득점으로 연결하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말론이 배달부 역할을 잘하는 시합은 유타 재즈가 이기고, 배달부 역할을 잘 못하는 시합은 지게된데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제사장도 마찬가지이다. 제사장의 일은 다름 아닌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께 배달하는 배달부의 일이다. 인간으로부터 사정과 형편을 전달받아 하나님께 배달하는 우편배달부의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제대로 해낸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이다. 다른 많은 제사장들은 인간의 문제를 완벽하게 하나님께 전달하는데 실패를 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께 전하였고, 지금도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전하여 해결하시는 해결사의 일을 하신다. 그러니 우리가 다른 누구에게 우리의 문제를 아뢸 수 있겠는가? 오직 예수뿐이다. 그분은 자신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말 그대로 헌신적인 해결사이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처럼 완벽하게 배달부의 일은 못한다할지라도 예수를 본받아 우리 자신의 문제는 물론이고, 남의 문제까지라도 하나님께 전달하는 중보의 기도를 많이 올려야겠다.
둘째, 제사장은 화해자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죄지은 자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바치는 자이다. 제사장의 일은 하나님과 사람사이 또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화평케 하는 일이다.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화해자(peacemaker)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9절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시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화해시키셨으며, 인간과 인간이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해한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을 불러 화해시키며, 사람과 사람의 원수된 관계를 화해시키는 사명을 맡겨 주셨다.
민수기 16장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할 때에 레위인들 가운데 250명이 모세를 대적하고 반역을 꾀했던 일이 있었다. 그 일로 인해서 반란자 250명이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타 죽었고, 그들의 가족과 재산도 큰 지진이 일어나 삼켜버렸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스라엘 민중이 폭동을 일으켜 모세와 아론을 해하려하자 염병이 순식간에 번져 무려 14,7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 제사장 아론은 신속히 향로에 제단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워 민중사이에서 속죄예배를 올렸다. 그러자 재앙이 그치고 염병이 사라졌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 아론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 또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화해자의 사명을 잘 수행해야겠다. 이 일이 곧 전도하는 일이고 싸움을 말리는 일이다.
셋째, 제사장은 남을 축복하는 자이다.
민수기 6장 22-27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제사장인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축복하도록 하였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신다고 하셨다.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인 성도들도 항상 남을 축복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남편은 부인을 축복하고, 부인은 남편을 축복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축복하고, 자녀들은 부모를 축복하고, 목사는 성도들을 축복하고, 성도들은 목사를 축복하고, 서로 서로 축복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로 여러분을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 향하여 드사 평화 주시기를 원합니다."
넷째, 제사장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앞장서는 자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무려 40년을 떠돌이 천막생활을 했다. 배고픔과 목마름과 먼지와 불볕 더위 속에서 끝없이 옮겨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역경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추호도 의심 없이 굳게 믿었다. 그 증거가 바로 언약궤이다. 그들은 이동할 때마다 또 전쟁할 때마다 제사장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메고 앞장서게 하였다. 언약궤 속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후에 시내산에 모여서 하나님과 맺은 약속의 상징인 돌비가 들어있었다. 이 돌비가 바로 십계명이자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다.
여호수아서 3장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에 가나안 땅을 강 건너편에 두고 요단강을 건널 때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앞장을 섰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주로 겨울에 비가 내린다. 또 봄에는 헤르몬 산에 쌓였던 많은 눈이 녹아 내린다. 그래서 요단강은 봄철에 물이 가장 많이 흐른다. 이 때가 되면, 강폭도 넓어지고 수심도 깊어진다.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넌 때가 바로 이 때였다.
제사장들은 물이 불어나 넘실거리는 요단강의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높이 받들고 앞장을 섰던 것이다. 그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닿자마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마치 소양강이 댐에 막힌 것처럼 더 이상 아래로 흐르지를 못하고 멈춰서고 말았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앞장서 나아갈 때에 이런 놀란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요단강은 북쪽 갈릴리 호수로부터 남쪽 사해에 이르는 좁고 낙차가 큰 강이다. 하나님이 요단강의 흐름을 막으셨을 때에 잠깐 동안 높은 댐이 형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강폭이 매우 좁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너는 데 걸린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든 중요한 것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맺은 약속의 상징물이 들어있는 언약궤를 메고 믿음으로 강물에 들어섰을 때에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제사장들의 믿음의 행동은 분명히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요단강 물에 제일 먼저 들어선 자들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무사히 건널 때까지 언약궤를 멘 채 요단강 가운데서 굳게 서 있다가 맨 나중에 나온 가장 용기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를 메고 민중 앞에서 행진한 것처럼 아무리 힘겨운 역경이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장 세워 난간을 헤쳐 가야겠다.
다섯째, 제사장은 나팔을 부는 자이다.
제사장은 영적 전쟁에 나가 싸우는 성도들을 독려하고 적진을 놀라 무너지게 하는 힘찬 나팔수이다. 제사장은 영적 시합에 나가 싸우는 성도들을 응원하는 치어리더(cheerleader)이다.
여호수아서 6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여리고성 전투가 나온다.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가 이 성을 함락시킨 것은 칼과 활과 창이 아니라, 제사장들의 힘차고 긴 나팔소리였다.
여호수아는 행렬 맨 앞줄에 무장한 군인들을 세웠고, 그 뒤를 제사장 일곱 명으로 하여금 양 뿔로 만든 나팔을 불면서 따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제사장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메고 따르게 하였고, 그 뒤를 무장한 군인들이 따르게 하였다. 나머지 민중들은 군인들의 뒤를 말없이 침묵하며 따랐다. 들리는 것은 오로지 제사장들이 부는 나팔소리와 행진하는 발자국 소리뿐이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나팔수와 언약궤를 앞세우고 육일 동안 매일 한 차례씩 성 주위를 돈후에 마지막 칠일 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았다. 마지막 한바퀴를 남겨 놓을 때까지도 아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번째 바퀴를 돌고 나서 언약궤 앞에서 행진하던 제사장들이 길고 힘차게 나팔을 불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소리로 함성을 질렀다. 나팔을 힘차게 불고 함성밖에 지르지 않았는데 그 견고하던 여리고성이 힘없이 무너져버렸다.
계시록을 보면, 적그리스도의 무리들이 나팔재앙을 만나 큰 고통을 겪는 장면이 나오지만,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은 지치고 힘들어 낙심한 자들에게 복음의 나팔을 힘차게 불어 용기를 북돋우어주고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악의 세력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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