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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14
준비된 그릇[행9: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591  
요즘 수돗물에 대한 불신 때문에 너나할 것없이 집집마다 생수를 떠다 먹는다. 그런데 샘에 물을 받으러 온 사람이 물통을 가져오지 않으면 어떻게 물을 받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많은 물이 펑펑 쏟아진다 해도 그 물을 받을 통이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라도 그 물을 받아다 먹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복을 쏟아 부어 주시려고 해도 받을 사람의 그릇이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그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고, 또 아무리 많은 일자리가 있고, 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도와주고 싶어한다 해도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자리도 내 자리가 될 수 없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사람도 도와 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준비된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디엔 가에는 내가 차지할 자리는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한다. 우리 자신을 준비된 그릇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준비된 그릇을 사용하신다.
열왕기하 4장 1-7절을 보면, 요즘의 신학교와 비슷한 선지학교에 다니던 학생의 부인과 그녀의 자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선지 생도는 죽고 돈벌이는 없는 데다가 빚쟁이들이 몰려와 두 아들을 종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이런 딱한 사정을 들은 엘리사는 부인에게 물었다. "당신의 집에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부인이 대답했다. "저희 집에는 기름 한 병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말했다. "마을에 나가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빈 그릇들을 빌려 오십시오.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그릇을 빌려다가 방에다 채우십시오. 그리고 그 빈 그릇에다 기름을 부어 가득 채우십시오." 학생의 부인은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했다. 방안에는 빈 그릇들이 가득 찼고, 그 그릇들은 기름으로 가득 채워졌다. 신비한 일이 발생했다. 한 병의 기름이 온 그릇을 가득 채울 때까지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듯 멈추지 않고 펑펑 쏟아졌다. 그러나 빌려온 그릇이 다 채워졌을 때에는 기름도 멈추고 말았다.
이들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준비된 기름 한 병과 준비된 그릇들만이 한 가난한 부인의 기도응답과 하나님이 쓰시는 축복의 도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 누가복음 5장 1-7절에 보면, "무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께로 밀려왔을 때에 예수께서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가 보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 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서,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놓으라고 하신 다음에, 배에 앉으시어 무리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깊은 데로 나가거라. 너희는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기를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들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배 두 척이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곳에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를 예수께서 천국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셨으며, 말씀이 끝난 후에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게 하여 그물이 찢어지고 두 배에 가득 찰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하셨다는 것이다.
또 요한복음 2장 1-10절을 보면,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의 잔칫집에 참석하여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에도 사용된 것이 이미 그곳에 준비되어 있던 돌 항아리 여섯 개가 축복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예수는 마태복음 25장에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에 관해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열 처녀 중 신랑이 더디 올 것을 대비해서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한 다섯은 지혜로운 처녀라 했고,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다섯은 미련한 처녀라 하셨다. 그런데 실제로 신랑이 더디 오게 되었고, 처녀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신랑이 오니 마중 나가라는 전갈이 왔다. 처녀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 일어나 제각기 등불을 챙겨들었다. 그러나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의 등불은 꺼져가고 있었다. 그제야 그들은 위기를 느끼고 급하게 기름가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신랑은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도착하였고,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처녀들만이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예수는 이 비유를 끝내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이 말씀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를 놓친다는 말씀이다. 최후의 순간에 너무 늦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찾아온다는 말씀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도 자기를 대신해줄 수 없고, 빌릴 수도 없는 것이 있다는 교훈이다. 기회란 이마에만 긴 머리털이 있고, 뒤통수는 대머리인 사람과 같아서 앞에서 잡아채지 못하면 때를 놓친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줄 안다.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 같은 장군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순신은 1545년에 태어나서 28세에 무과에 올랐다. 그러나 임진란이 일어난 것은 그가 47세 때였다. 그가 무과에 오른 지 20년만의 일이다. 만일에 이순신이 이 20년 세월을 착실히 준비하지 아니하고 허송세월을 했다면 우리 조선이 어찌 되었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준비된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당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축복의 도구로 쓰신다.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는 예수의 열 두 제자들처럼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서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본토출생의 유대인들이 있었고, 또 바울과 바나바 또는 스데반과 빌립처럼 외국에서 태어나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 교회를 세우는데는 제자들과 같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출생의 유대인들을 들어 쓰셨지만, 안디옥과 같이 해외에 교회를 세우는데 에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외국태생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들어 쓰셨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주연인물들을 살펴보면,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들어 쓰셨지만, 사마리아지방에서는 빌립을 들어 쓰셨고, 해외선교는 바울과 바나바 등의 인물을 들어 쓰셨다.
왜 그랬을까? 왜 하나님은 베드로나 요한 또는 야고보 등을 보내어 해외선교를 하지 않고 박해자였던 바울이 필요했을까? 왜 하나님은 기독교를 세우는데 그리스말을 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필요했을까? 왜 하나님은 기독교를 세우는데 이 천년 전 로마제국시대를 택해야 했을까? 그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고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첫째, 해외선교는 무엇보다도 선교지역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빌립, 스데반, 바나바, 바울, 실라 등은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이미 세계화가 이루어진 사람들이었다. 많은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방문화에 익숙하였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처럼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본토출생의 유대인들은 배움도 짧을 뿐 아니라,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말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에게는 준비된 그릇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본격적인 박해가 스데반이나 바울과 같은 이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스데반의 순교이후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외국에 흩어지면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는데, 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도구로 쓰인 준비된 그릇들이었다.
둘째, 이 천년 전 로마제국시대는 지중해 연안의 모든 국가들이 로마제국에 속해 있었고, 알렉산더 대왕시절부터 발달되기 시작한 도로와 항만이 있었고, 무역과 여행이 자유로웠다.
유대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외국에 나가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이들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말한다. 이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회당을 건립하여 예배당과 학교와 민족회관으로 쓰고 있었는데, 많은 이방인들이 유대교에 개종하여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할례 받지 아니한 문의 개종자들이었는데, 사도행전은 이들을 일컬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바울 선교팀은 어느 도시에서나 유대인 회당을 찾아 들어가 전도를 했는데, 일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복음을 받아 드려 기독교에 개종했지만, 대부분의 개종자들은 이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God-fearer)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 의해서 세계 선교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 가운데 유대교에 개종한 자들을 '의의 개종자'(Proselyte of righteousness)와 '문의 개종자'(Proselyte of the gate)로 나누어 구분하였는데, '의의 개종자'는 유대교의 모든 율법과 의식을 준수하는 완전히 개종한 자를 말하고, '문의 개종자'는 율법과 유대교 의식에 제재 당하지 않고, 유대교 회당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다. 이런 이방인들이 외국에 많았다. 지금의 터키 서해안에서 동쪽으로 1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에서 1977년에 발굴된 2세기경 회당건립 후원자 명단이 적힌 기념비에는 유대인이 69명인데 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무려 54명이나 되었고, 개종자도 3명이나 새겨져 있었다. 이 기념비는 초대교회 당시 회당을 출입하면서 유대교 신앙을 받아 드린 이방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알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이들이 바로 기독교 복음을 받아드릴 준비된 축복의 그릇들이었다. 하나님은 이들을 불러 축복하시고 구원하셨다.
기독교 복음은 처음에 하나님을 아는 유대인들에서 시작하여 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 의해서 완전 불신자들인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전파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세계 선교를 위한 그릇으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출신 베드로를 택하지 않고, 그리스말을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바울을 택한 이유가 바로 그가 준비된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준비된 그릇으로 우리 자신을 예비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크게 쓰실 것이다.
우리가 맞게될 새로운 천년 시대는 바울과 바나바가 활동했던 2천년 전 지중해 연안 세계에 이루어졌던 그레코로만시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전 세계를 빠른 속도로 같은 마을에서 함께 사는 생활로 만들어 갈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외국어와 전자정보통신망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새로운 천년 시대에 쓰임 받는 큰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세계화가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생활은 기본이고, 외국어에 능통하고, 컴퓨터와 전자정보통신에 익숙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