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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15
협동사역[롬16:3-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46  
성공한 사람들의 배후에는 대개가 희생적인 부모나 부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성장하는 교회들도 대부분 그 배후에는 희생적인 성도들의 기도와 봉사와 물질이 있었다는 간증도 종종 듣는다. "한 알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는 성경 말씀 그대로 우리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지 아니하면 결코 어느 인간 공동체도 그렇게 쉽게는 발전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맹자나 한석봉도 어머니의 지성으로 훌륭한 인물이 된 고전적인 사례들이다. 포항제철 부사장을 역임하셨던 여상환 선생를 한성신학대학에 두 차례 초청해서 말씀을 듣고 신앙적인 교제를 나눈 적이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포항제철은 세계에서 세 번째 가는 철강공장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해 내는 철강이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 생산을 비롯한 공업의 발달이 가능했다는 것과 포항제철이 오늘날 세계 굴지의 철강공장으로 성장하게 된 배후에는 신들린 사람처럼 자기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일했던 초창기 산업전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자서전을 펴낸 정주영씨가 이끌었던 현대그룹도 비슷한 전철을 밟은 것으로 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처럼 대교회가 많은 나라도 없고, 한국처럼 교회가 급성장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가없이 이루어진 우연한 기적만은 아니다. 성장하는 교회의 배후에는 반드시 기도와 봉사와 물질로 희생한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헌신적인 협동사역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 바울을 말하지 않고서는 기독교를 말할 수 없으리 만큼 그의 선교사역과 가르침은 일세기 중엽 지중해 연안의 전 유럽을 발칵 뒤집기에 족한 것이었다. 바울은 시리아, 키프러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전 유럽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였고, 신약성경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주옥같은 13편의 서신서를 남겼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헌신적인 섬김과 사역이 없었다면, 바울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이 과연 가능했을까 라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들 부부 이외에도 디모데, 디도, 실라, 마가, 누가, 에바브로와 같은 많은 동역자들이 바울을 도와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해서 사역했지만, 성서에 나타난 가장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 부부로서는 아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이상의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처음 만난 곳은 제 2차 선교여행 중이었던 주후 51년 경 그리스 남단에 위치한 아가야 지역의 대도시 고린도에서 였다(행 18:1-2, 26). 바울은 제 1차 선교 여행 중에 중앙 터키 지역에서 박해와 고난을 무릅쓰고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했다(딤후 3:10-11; 행 14; 갈 4:13-15). 바울 자신이 고백한대로 바울에게는 성도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만큼 심각한 신체적 결함이 있었는데, 그의 신체적 장애가 바로 이곳 터키에서 받은 박해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지방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몰매를 맞고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이 도시가 바로 디모데의 고향이자 갈라디아도에 있었다. 이 지방에 사는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서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 4:13-14). 이 말씀은 갈라디아 지방의 성도들이 바울에게 육체적인 시험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눈물겹도록 사랑했다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방에서 바울은 결코 정착하지 못했다. 유대인들의 박해가 겉으로 나타난 이유였지만,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난 제 2차 유럽선교 때부터는 큰 어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그 지방의 유력한 동역자를 찾지 못한 것이 바울 일행이 터키 지방에 정착하지 못한 숨겨진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천막을 만드는 가죽 세공업자였다(행 18:3). 바울의 직업도 천막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곧바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바울 일행은 이들 부부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고린도에서 18개월간 장기 체류하게 되었다. 경제적인 안정기반과 신체적인 보호는 바울 일행으로 하여금 온 고린도에 힘써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동역자가 되는 것은 결코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개입되어 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로마에서 살다가 주후 49년경에 고린도로 추방되어 온 사람들이다. 아굴라는 흑해에 가까운 터키 북부 본도지역 출신의 유대인이었지만,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상류계층의 귀부인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브리스길라의 영향력이다. 가부장제도의 전통을 깨고 여성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성인 아굴라의 이름보다 앞에 나오는 경우가 총 여섯 번 가운데 네 번이나 된다. 성경에 보면, 동생의 이름이 형들의 이름보다 언제나 앞에 놓여서 형동생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셈과 함과 야벳,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 이삭과 이스마엘, 모세와 아론, 야곱의 아들 가운데 네 번째인 유다도 마찬가지이다. 셈은 함과 야벳의 동생이며, 아브라함은 나홀과 하란의 동생이고, 이삭은 이스마엘의 동생이며, 모세는 아론의 동생이지만, 이 동생들의 영향력 때문에 형들보다도 그들의 이름이 언제나 앞에 온다. 마찬가지로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편인 아굴라보다 앞에 쓰인 경우가 많은 것은 브리스길라의 영향력이 아굴라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온 것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쯤에 바울 일행은 터키 동북부 지역인 흑해남단의 비두니아에서 제 2차 선교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성령께서 이를 허락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밤에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는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써 유럽선교를 시작하게 하셨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해주셨고, 그들과 함께 18개월 동안 사역하게 해주셨으며, 그 후로도 계속해서 협동사역자로 동역하게 해주셨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서 18개월의 제 2차 선교사역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서, 다음 선교 지역을 바울이 수년 전에 선교하기를 원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터키의 해안지방에 위치한 종교도시 에베소로 결정하고 선교단 전원이 고린도를 떠났다. 이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로 이주했고, 바울과 다른 동역자들은 바울의 파송교회인 안디옥교회와 사도들의 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차례대로 방문했다. 그리고 나서 에베소로 가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합류했다. 고린도를 떠나서 에베소에 도착하는데 2년은 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에서 2년 남직한 이 기간에 선교기반을 닦고 있었고, 바울 일행이 도착하면 언제라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수년 전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 일행보다 2년 남직 먼저 고린도에 이주해서 정착하고 있었다. 바울이 가는 곳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먼저 가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울 일행이 에베소에 체류한 것은 2년 3개월 동안이었다. 이 기간동안 제 3차 선교를 성공리에 마친 바울은 이제 로마와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파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행 18:18이하; 고전 16:19). 그런데 로마서 16장 3-4절에 보면, 바울의 다음 선교지인 로마에 이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먼저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린도에서도 그랬고, 에베소에서도 그랬고, 로마에서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보다 먼저 다음 선교지에 가 있는 것을 본다.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사업가로서(행 18:3), 전도자로서(행 18:26), 바울의 동역자로서(롬 16:3), 혹은 주의 종 바울을 목숨 바쳐 섬긴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롬 16:4)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 봉사했으며, 그들의 집을 사업장으로, 선교를 위한 전진기지로, 교회로(롬 16:4; 고전 16:19), 혹은 선교사들의 합숙소로서 제공하였고, 바울의 말년에는 이들 부부가 에베소 교회를 직접 맡아 사역하기도 했다(딤후 4:19). 또 로마서 16장 4절에 기록된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한다."는 바울의 고백으로 보아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헌신적으로 바울을 도운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바울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의 배후에는 헌신적인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있었고, 디모데와 디도와 같은 동역자들이 많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혼자의 힘만으로 또는 몇 사람의 힘만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는 몇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봉사와 헌금으로 이루어진다. 목사의 설교만으로 교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휘자의 노력만으로 성가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도사의 힘만으로 주일학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회는 많은 일꾼들의 기도와 참여와 봉사와 땀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모두가 협동사역하는 동역자라는 마음으로 각자가 맡은 직분과 부서에서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봉사자가 되어야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훌륭했던 것은 그들이 스타 같은 바울, 영웅 같은 바울을 우상처럼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는 보잘것없지만,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주의 종 바울을 도왔기 때문이다. 바울은 흔히 생각되어지는 것처럼 마술사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은 문벌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많이 배웠다는 것 말고는 인간적으로 남 앞에 내놓을게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바울에게는 "사탄의 사자"라고도 하고, "육체의 가시"라고도 하는 신체적 장애가 있었는데, 이는 그의 선교사역에 아주 치명적인 장애요인이었다. 바울의 외모 또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못생긴 인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체구는 작았고, 양미간은 맞닿았으며, 약간 매부리코와 대머리에다 다리까지 오자로 휜 사람이었다. 바울은 언변도 그리 좋지 못했다. 바울은 지혜가 충만하고 말씀의 능력은 살아있었지만, 결코 능변가가 아니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후 10:10)고 바울을 비방했다. 그러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의 언변이나 외모를 보지 아니 하고, 바울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은혜의 충만함과 몸을 아끼지 아니하는 성실함을 본 받아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겼다. 적어도 바울에게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그 사람 미남이다'라는 인상을 줄만한 외모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발적으로 또 헌신적으로 바울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에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