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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49
영으로 살자(골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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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종기
 조회 : 4,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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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라.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 구주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위에 있는 것을 잠깐 생각해 봅시다.
첫째, 위에 있는 것
위에 있는 것은 영광의 세계요, 생명의 세계요, 땅에 있는 것은 육의 세상, 물질의 세상이요, 죽음의 세상입니다. 위에 있는 것은 의와 사랑의 세계요, 평화와 즐거움의 세계입니다.
아래에 있는 것은 불의, 미움, 싸움이 있는 곳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위에 있는 것은 영원무궁의 세계요, 아래에 있는 것은 잠시 잠깐 후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세계입니다.
하잘 것 없는 세상에 덧없는 생명을 가진 인간이 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땅에 있는 것만 취하다가는 영원히 헤엄쳐 나올 수 없는 죽음의 바다에 잠기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 보십시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무리들, 동녘에 떠오르는 밝은 달, 만물을 소생케 하는 태양, 이 모든 천체들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옛날의 유명한 대 철학자들도 위에 있는 천체들을 바라보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천국백성들이 위에 있는 세계 즉 영계를 바라보지 아니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깊이 상고하면서, 위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곳에는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의 있을 곳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둘째, 영으로 살 이유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창조물 중에 오직 사람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어 하나님을 알게 하고, 영의 세계와 통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친구가 되게 하시고, 우주 만물을 다스리며 에덴동산의 동산지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 외에 그 무엇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동무가 되겠습니까? 산중의 왕이라고 칭하는 사자가 제아무리 용명스럽다 할지라도 영계의 일을 알 수 없는 것이며, 소나무가 아무리 장수한다 할지라도 가히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원숭이가 아무리 사람과 비슷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만물 사이에 오직 사람이 있어 만물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시편 8장 5-8절에,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영계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창세기 5장 24절 이하에 보면,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데려 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친구가 되어 영적 생활을 한 증거가 아닙니까? 비단 에녹뿐 아니라, 구약시대의 모든 선지자와 신약 시대의 여러 사도들도 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적 세계를 위하여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성자들이 발휘한 영적 생활의 고귀함을 통하여서, 그리고 예수의 인격에서 나타난 영성을 통하여서 저 높은 곳, 하늘 나라를 늘 흠모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로 인하여서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오, 영의 세계는 우리의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나타내신 영의 광채, 영계의 영광을 바라보고 더욱 영적 생활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잃었던 영성을 회복할 것
이세상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부터 금일까지 사람으로서 마땅히 존중하여야 할 영성을 몰각하고 육을 존중시하며, 동물적 생활로 타락한 채, 진토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은 물론 영혼의 존재와 영계의 존재를 의심없이 믿을 줄 압니다. 제가 어느 땐가 어떤 이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했더니, 사람이 죽으면 그만 이지, 영혼이 어디 있으며, 내세가 어디에 있느냐고 하며, 영혼의 세계에 갔다 온 사람이 없으니, 그것은 터무니 없는 미신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사람과 동물을 분간치 못하고 다만 동물적 생활에 만족하는 불쌍한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 만 일생을 보내다가 인생을 마치는 자들이 수두룩하지만, 영혼의 존재를 생각하는 자는 심히도 적습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입니까?
물론 사람도 살다가 늙으면 그 마지막은 죽음이요, 공중에 나는 새도, 기어 다니는 버러지도, 숲속에 있는 온갖 짐슫들도 다같이 그 마지막은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렇다고 해서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육신의 죽음과 함께 그 영혼과 생명이 그치는 것이겠습니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 영혼이 불멸하는데 있으며,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이점에 있습니다. 내세의 존재를 안 믿고, 영혼의 불멸을 안 믿는 자는 사람의 형태는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 실상은 짐승과 방불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해도 가할 것입니다. 나는 이왕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짐승처럼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내세의 존재를 믿는 것이 결코 미신이 아니며, 영혼불멸을 믿는 것이 결코 황당무개한 망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하여 내세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확실히 나타내신 것입니다.
현세의 고통과 비애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내세의 행복문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약속하신 예수의 말씀을 여러분은 얼마만큼 강하게 확신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빌립보서 1장 23절에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고 한 내세관에 대한 바울의 믿음을 우리는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에 있어서 영혼이 먼저요, 육이 나중인데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생들은 먼저 것과 나중 것을 뒤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영광의 세계가 막혀 버리고, 사람의 마음속에는 암흑뿐이요, 그 길은 음부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잃어 버린 영성을 회복시키려고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영의 복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시었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주 예수 앞에 나와서 주의 복음으로서 잃어 버린 영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잃어 버린 영혼의 평화로운 본향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영성만 잃은 것이 아니라, 일곱 귀신의 포로가 되었으나 예수께 나아와 영성을 회복하였습니다.
베드로와 바울 같은 주의 제자들도 본래는 다 영성을 잃었던 자들이었으나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영성을 회복하고 하늘의 영광 자리에 오로지 아니 하였습니까?
예수께서는 영혼의 회복뿐만 아니라, 영혼의 양식과 영혼의 복락까지 가지고 오셨으니, 오늘날 우리도 다 예수께 나아와서 취생몽사하는 어리석은 자가되지 말고, 위에 있는 것을 찾도록 노력하여야 되겠습니다.
1953년 9월 23일 수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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