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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7-21 07:26
고객의 발길을 끊게 하는 맹견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516  
사도신경
찬송가 376장
성경 : 요한삼서 1:9-11
제목 : 고객의 발길을 끊게 하는 맹견
일자 : 2004년 9월

중국 전국시대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업주가 있었습니다. 술맛이 일품이었고, 고객에게도 무척 친절하였지만, 술이 팔리지 않아 만들어 놓은 술은 모두 변질되어버렸습니다. 업주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웃에 사는 양청(楊靑)이란 사람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자네 집에 사나운 개(猛犬)가 있지 않는가? 술을 사러간 고객에게 으르렁대고 사정없이 물려고 덤비니, 누가 자네 집으로 술을 사러 가겠는가?”고 했다고 합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회사든, 교회든, 국가든, 어느 크고 작은 집단이든 간에 사나운 개가 버티고 있으면 고객의 발걸음은 끊기게 되고, 결국은 문을 닫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약성서 요한삼서에 디오드레베란 인물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사람이 바로 교회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전도의 문을 가로막는 사나운 개였습니다. 디오드레베란 ‘양육 받음“이란 뜻인데, 그는 양육을 받은 자가 아니라, 양육을 받아야할 자였던 셈입니다. 이런 사실에 우려를 금치 못한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를 써서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고 말하면서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본받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 권면이 요한삼서의 기록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디오드레베란 사람이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렇듯 본받지 말아야할 기피인물이 되고 말았을까요?
첫째, 디오드레베는 으뜸되기를 좋아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9절에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라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으뜸되기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동기나 방법이 나빴을 경우일 것입니다. 고객이나 동료를 향해서 으르렁대고 물어뜯으려고 사정없이 덤비는 사나운 개와 같은 경우일 때가 으뜸되기가 나쁜 경우입니다. 요즘 경영에서의 화두는 ‘최고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이든 회사이든 대학이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고가 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최고가 되지 못하면 도태되는 양육강식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디오드레베와 같은 최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디오드레베는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0절에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 도다”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공동체든 실력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입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처럼 별다른 실력이나 재능이 없으면서도 단지 고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윗사람의 신뢰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고객의 발길을 끊게 하는 사나운 개입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란 것이 있지요? 금화와 은화가 쓰이던 시절에 함량이 모자란 나쁜 돈만 시중에서 거래되고, 함량이 정량인 양화는 집안 장롱으로 숨어버리는 그래서 시중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곧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몰아낸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사나운 개가 고객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것이 바로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입니다.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디오드레베와 같은 악화가 공동체 내의 가이오나 데메드리오와 같은 양화를 몰아냄으로써 공동체가 쇠퇴와 해체의 길을 걷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삼서의 저자가 디오드레베의 해악성을 지적한 것처럼 훌륭한 지도자는 자기 공동체내에 혹 있을지도 모를 사나운 개를 찾아내 뒤뜰로 옮겨놓거나 처분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번영하고 못하는 것은 지도자의 이런 능력에 달렸다고 말들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0장 26-27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섬기는 자’는 최고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자신의 것과 싸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남이나 남의 것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섬기는 자’는 항상 자신이나 자신의 것에 대해서 부족을 느끼고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만에 빠지지 않고 부단히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남 앞에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남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익은 곡식은 머리를 숙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익은 곡식 사이에서 고개를 쳐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쭉정이거나 가라지일 것입니다. 가짜가 언제나 큰소리 치고 가짜가 언제나 고개를 쳐드는 법이니까요. 따라서 참 지도자의 모습은 겸손히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유쾌한 심리학󰡕이란 책을 보면, “무능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능력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유능한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다. 대부분의 무능한 사람은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조차 모른다.”고 적고 있고, “코넬 대학의 더닝 박사팀의 연구에 의하면, 테스트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얻은 학생일수록 대체로 자신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크고, 가장 유능한 그룹에 속하는 학생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셋째, 디오드레베는 반드시 그의 악행에 대해서 심판을 받아야할 자였습니다. 본문 10-11절에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이 교회 안에 있으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회사에 있으면, 회사를 떠나는 인재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신약성서 요한삼서에 나오는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처럼 선한 것을 본 받는 자가 되고, 참되신 하나님을 부단히 찾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란 말을 들을 뿐 아니라,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축복도 받게 될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육신이 건강하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이런 삼박자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