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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2 01:37
잘못 쓰는 도끼(마 3:5)
 글쓴이 : 김종기
조회 : 2,787  
구약의 에언자는 말라기까지 끝을 맺고, 예수님이 나시기 전 약 400년 간은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의 연결자로서 세례 요한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 사람도 예수와 같이 이적적으로 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이후에 광야에 나가서 메뚜기와 석청같은 자연 식물을 먹으면서 가죽 옷을 입고, 옛날 아담의 형상을 하고 다니면서 요단강 근처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아무에게나 세례를 베풀지 아니했습니다(마 3:7이하). 그리고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전할 때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대하여는 몹시도 공격적인 언사로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오랫동안 그쳤다가 모처럼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라 그들은 세례 요한의 이러한 공격적 태도에도 반감을 두지 아니하고 그의 말을 그대로 순종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의 그 사람들은 교만심과 자만심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것은 즉 자기 네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니 자연히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너희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생각지 말아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아름다운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어서 불에 던지운다"고 그들에게 공격하였으며, 또 예수를 증거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신과 불로 세례를 주리라 하고 자기는 그의 신들메도 감당키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신 세례는 곧 볼 수 있는 것이라 설명을 하지 아니 하였으나, 불세례는 당시에 볼 수 없는 것임으로 선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에 던지우리라 고 불세례에 대하여 특별히 설명한 것입니다.

첫째, 정의의 도끼(마 3:10)

1) 정의의 도끼는 어떠한 때에 사용하는가?

본문에 기록된 바와 같이 도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데 사용되는 무기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라 함은 성신의 열매를 의미합니다(갈 5:22).

지금 우리는 칼을 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신의 날선 검으로 사람들의 죄악을 해부할 때인 것입니다.

마귀는 지혜가 많아서 신자에게는 성경으로 유혹하고 정치가에게는 정치적으로 유혹합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저의 말로 유혹하지 아니하고 각각 색다른 사상으로 유혹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처음에는 성경을 기초로 진리대로 세웠으나 성경을 가지고 유혹하는 마귀에게 넘어간 때문에 여러 가지 교파로 분열되어 구원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빠져 있어, 이들 교파의 위에는 진리의 도끼가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마침내는 꺼지지 않는 불에 심판 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례 요한은 이 진리의 도끼를 사용했습니다.

2) 세례 요한이 쓴 도끼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며 증거할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한 이것이 즉 요한이 쓴 도끼입니다. 헤롯 안디바가 자기의 제수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취한 죄를 담대히 지적하므로 결국은 헤롯에게 목이 짤리었으나 요한은 끝끝내 진리를 위해 굴하지 아니하고 책망의 도끼를 사용했습니다.

초대시대에는 성령을 속이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행 5:1-11).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이 그 예입니다. 현재는 즉각적으로 죽지는 아니하나 마침내는 유황불에 던지우고 마는 것입니다. 교역자된 우리는 항상 진리의 도끼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정의의 도끼를 사용한 연고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바울도 이 도끼를 여러 번 썼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의 말을 바울이 전할 때, 제사장이 사람더러 "그의 입을 치라" 할 때,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친다"(향 23:1-5)라고 하였습니다.

3) 나단이 쓴 도끼

다윗이 선지자의 책임을 저 버리고 유부녀를 강탈할 때, 하나님이 나단을 시켜서 정의의 도끼를 쓰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나단이 왕인 다윗에게 "죄인은 바로 당신이다." 할 때 그는 엎드러져 울면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쳐 회개하였습니다. 엘리야도 아합을 대하여 정의의 도끼를 사용하였습니다(왕상 18:18). 도끼라는 것은 바른 말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정정 당당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끼리 또는 성도가 교역자에게 덮어놓고 공격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송사하는 것은 성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딤전 5:19). 잘못을 권면하는 것은 신자로서의 마땅한 일입니다.

둘째, 잘못 쓰는 도끼

1) 신명기 19장 5절에 보면, 두 사람이 벌목하러 가서 도끼를 쓰다가 잘못하여 이웃 사람을 찍어 죽인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도 정의의 도끼를 잘못사용하면 큰 일입니다. 죄를 대하여 찍어야지 죄인인 사람을 찍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되 죄인은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고 죄를 미워함으로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못이해하면 정의의 도끼를 잘못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밝히 연구하고 깨달아서 구원의 도리를 바로 선포하고 잘못된 비진리는 단호히 찍어 버려야 합니다.

2) 엘리사는 신학교 제3세의 교장입니다(왕하 6:5). 이때 학생들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도끼가 빠져 물 속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교장에게 고하여 "바로 여기에서 도끼를 잊었습니다." 하고 그곳을 지적할 때 도끼가 올라와서 즉시 찾았습니다. 만일 도끼 날이 빠지고 나무 자루만 가지고는 나무를 할 수가 없는 것 같이 성경이 없는 전도와 진리가 없는 신앙은 도끼 날이 없는 자루와 같이 무효한 것입니다. 우리는 도끼 즉 진리를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3) 삼손의 잃은 도끼. 장발장군 삼손이도 여자의 유혹에 빠져서 자기의 귀중한 도끼를 잃었습니다. 적국 스파이 여인에게 넘어가서 자기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눈알이 빠지고 맷돌을 돌리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곁에는 항상 마귀가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눈이 어두우면 마귀는 곧 우리의 심령 속에 침입하고 지옥으로 끌고 가게 됩니다.

셋째, 무딘 도끼(전도서 10:19)

아무리 좋은 도끼라도 오랫동안 사용하면 날이 무디어 들지 않게 됩니다. 이는 쓸 때마다 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의의 도끼도 갈지 않고 오래 쓰면 무디어서 들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경을 상고하여 진리에서 어그러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진 성신의 칼날이 얼마나 무딘지 얼마나 날카로운지 살펴 봅시다. 무디었으면 다시 갈아야 하며 연마해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다시 공부해서 능하고 완전한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수양이 필요하고 교역자에게는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성경대로 구원의 교리를 모르고서 어떻게 교파를 환원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선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넷째, 무딘 도끼는 이방에 가서 갈아 오지 말 것(삼상 13:21-22)

이스라엘의 대장장이가 불레셋 사람에게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그곳에는 대장장이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장을 갈러 불레셋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도끼도 자주 갈아서 쓰면 벌릴 필요가 없으려니와 오랫동안 갈지 않고 그대로 쓰면 아주 무디어 결국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방나라에 가서 연장을 갈아오면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이방에 가서 도끼를 갈아오는 경우가 더러 있고, 교회도 이방의 대장장이를 불러다가 도끼를 가는 예가 더러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즉 성경을 두고 교파 교회의 목사, 강사, 전도사를 불러다가 기도회, 부흥회 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마귀는 이 틈을 타서 침입하고 진리를 떠나게 만듭니다.

어디까지나 성경에 입각한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은 성경을 깊이 상고하여 성경의 진리인 구원의 토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능의 도끼를 성경에서 연마하고 초대교회 환원운동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끼를 잘 응용하여야 합니다. (1)잘 쓸 것, (2)자주 갈아서 쓸 것, (3)성경을 토대로 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옳은 진리의 등대를 높이 들고 나가서 싸울 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조금도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뒤에는 하나님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를 위해서는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백절불굴하는 정신으로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까지 진리를 전했습니다.

 

1953년 3월 7일 주일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