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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31 01:38
미약한 시작과 창대한 나중(마 13: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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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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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는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써 색깔이 검고 맨드라미 씨하고 비슷한 크기의 작은 씨앗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씨앗이 싹을 내고 다 자라면 그 키가 3-4m나 되고,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고 겨자씨를 쪼아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많은 새들에게 먹을 양식과 쉼터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겨자씨가 모든 씨 가운데 가장 작은 씨는 아닙니다. 그러나 씨가 아주 작은데 비해서 다 자라면 주변의 다른 모든 식물들보다 키가 월등히 크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는 작고 미미한 것이 나중에 크게 된다는 뜻으로 겨자씨와 같다는 관용어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라비들은 "겨자씨 같은 작은 점과 흠"이란 관용어를 썼고,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 예수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아랍사람들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의 무게'라는 관용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겨자씨 비유의 특징은 '가장 작은 것'과 '큰 것'에 대한 대조입니다. 욥기서 8장 7절에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 하리라"한 말씀처럼 미약한 시작과 창대한 나중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는 천국비유입니다. 겨자씨 비유에서 천국의 특성이 발전과 번영과 성공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작은 씨가 큰 나무가 되듯이 미약한 시작이 창대한 나중이 되는 것, 그것이 천국의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처음에는 미미하게 시작되었고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나중에는 전 세계로 확장된 거대한 기구가 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큰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과 미래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음악이 8도 음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시지요? 이 8도 옥타브에서 모든 찬송, 모든 가요, 모든 팝송, 모든 콘체르토, 모든 심포니, 모든 오라토리오가 나옵니다. 한글로 된 모든 아름다운 글들이 24자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시지요? 이 24자 한글 자모에서 모든 소설, 모든 시, 모든 논문, 모든 글들이 나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그저 크고 많은 것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하고, 아무리 크고, 아무리 많은 것도 지극히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지상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천국생활을 보장받는 것이고, 또 천국생활을 맛보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마치 ~과 같다."는 예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마치 ~과 같다." 또 "교회는 마치 ~과 같다."란 말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바꿔서 말하면, 겨자씨는 나 자신일수도 있고, 우리 교회일수도 있고, 또는 기독교 그 자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씨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처음 믿을 때엔 별 볼일 없는 것 같아도 나중엔 남에게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에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 나라 최초의 감리교 목사인 김창식은 1857년 황해도에서 농사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에서 농사를 짓다가 스물 한 살 되던 해에 엽전 두 냥을 가지고 집을 나왔습니다.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남의 집에 들어가 일정기간 머슴을 살기도 하고, 막노동을 하기도 하고, 마부로 일하였습니다. 이 당시 서울 장안에는 개혁에 반대하는 수구파 세력이 만들어낸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었습니다. 악질 서양인들이 조선 어린이들을 유괴하여 삶아먹고, 눈을 뽑아서 약으로 쓰거나 사진을 찍는데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문은 한 거름 더 나아가 늙은이는 잡아다 말에게 먹이고, 젊은이는 솥에 져서 먹으며, 아이들은 본국에 노예로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청년 김창식은 소문의 진위를 알아볼 겸 친구의 소개로 미국 감리교 선교사 올링거(F. Ohlinger)의 집에 사환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올링거의 집에서 김창식이 처음 한 일은 전통 조선사회에서 노복들이 맡아했던 문지기였습니다. 그 후에 한 일은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믿고 신앙을 갖게된 것은 올링거 부부의 고상한 인품과 인격 때문이었습니다. 소문과는 달리 서양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다 본받을만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스물 한 살에 집을 떠나 8년간 머슴과 마부노릇을 하였고, 올링거 목사의 집에 들어가 5년간 하인노릇을 하였고, 미국 감리교 의료 선교사 홀(W. J. Hall)의 집으로 옮겨 하인노릇을 계속하였지만, 이 때 김창식은 이미 미국 감리교 조선 선교회로부터 전도인의 칭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김창식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경험을 살려 전도인의 일을 탁월하게 수행하였고, 그 공로로 신학교육을 받고 목사가 되었으며, 평양과 평양이북 지역 선교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그는 44때인 1901년에 목사가 되어 1924년 은퇴하기까지 25년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사도 바울처럼 떠돌이 목회를 하였습니다.
스물 한 살에 집을 나와 목사가 되기까지 24년 동안 청장년기를 마부, 막노동꾼, 문지기, 요리사로 보냈던 '창식이'가 복음의 씨를 받고 변화를 받아 충성스런 그리스도의 종, 김창식 목사가 되었고, 조선의 바울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약한 시작이 창대한 나중이 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늘 했던 말 가운데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I am nothing.)가 있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연설을 할 때도 이 말을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키도 작고 인물도 별로 잘나지 못했습니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자신의 고백처럼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과 지내는 더럽고 하찮은 일에 매달리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인류의 가슴을 울리는 위대한 어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약한 시작이 창대한 나중이 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한 주일학교 교사는 골목길에서 놀고 있던 네 명의 코흘리개 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에 감명을 받은 네 명의 어린이는 교회에 출석해서 하찮게 여겨질 수 있는 작은 믿음을 조금씩 키워나갔습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이 교사는 생일을 맞아 축하전보 네 통을 받았습니다. 그 네 통의 전보는 과거 자신이 가르쳤던 골목길의 코흘리개 소년들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놀랍게도 한 사람은 중국선교사가 되어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연방정부은행총재가 되어있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미국대통령비서관이 되어있었고, 마지막 한 사람은 미국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클라크 후버(Herbert Clark Hoover/1874-1964)였습니다. 미약한 시작이 창대한 나중이 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전의 어느 봄날에 오하이오 주에 있는 테일러(Worthy Taylor)라는 사람의 큰 농장에 짐이라는 소년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찾아왔습니다. 주인은 짐에게 농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짐은 밥은 부엌에서 먹고 잠은 건초더미에서 잤습니다. 짐은 일년이 채 지나기 전에 농장 주인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농장 주인은 짐에게 돈도 장래성도 없는 너 같은 놈에게 딸을 줄 수 없다며 내쫓았습니다. 짐은 자기 물건을 싸들고 그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후 3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농장 주인이 건초 창고를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게 되었는데, 짐이 잠잤던 창고 기둥에 새겨진 글씨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A. 가필드(James Abram Garfield/1831-81)란 이름이었습니다. 제임스 A. 가필드, 이 이름은 다름 아닌 그 당시 미국 제20대 대통령의 이름이었습니다. 테일러씨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0년이 지난 다음 짐은 대통령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남의 농장에서 일했던 보잘것없던 작은 소년, 그가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제임스 A. 가필드는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미약한 시작이 창대한 나중이 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1839-1937)가 단골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종업원에게 항상 15센트의 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주머니에 5센트밖에 없어서 그것만 주었더니 평소에 불만을 갖고 있던 종업원이 투정을 부렸습니다. "내가 당신 같은 부자라면 단 10센트 가지고 그렇게 인색하게 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자 록펠러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종업원에게 말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졌으니까 자네는 종업원에 머무르고 있는 거야. 재벌인 나도 10센트를 아끼는데 어째서 자네는 10센트를 우습게 보는가?"
재벌은 이렇게 하찮은 동전 몇 닢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부자였던 록펠러가 단돈 10센트를 아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남에게 준 자선 사업가가 바로 록펠러였습니다.
록펠러는 세 가지 기적을 이룬 사람입니다. 첫째, 가장 가난했던 사람이 가장 돈 많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 그는 시간당 단 4센트의 적은 임금을 받으며 땡볕 아래에서 감자를 캐는 일을 했지만, 나중에는 세계 제일의 재벌이 된 것입니다. 그가 죽고 61년이 되는 지금까지 그가 남긴 재산은 3억불이나 되어 우리 나라 돈으로 하루에 약 1억 원의 이자가 발생된다고 합니다. 둘째, 가장 가난했던 사람이 역대 최고의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그가 남을 위해 쓴 돈의 액수는 7억 5천만 불(약 9,750억 원)로써 2000년 동안 매일 남에게 133만원씩 준 액수입니다. 사회사업에 투자한 금액으로 지금까지 최고의 금액을 기록한 것입니다. 셋째, 한 때 건강상태가 최악이던 사람이 98세까지 산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이빨 하나 썩지 않았다고 합니다. 록펠러의 이 세 가지 기적은 모두가 신앙생활에 근거한 바른 생활 태도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식사 때 반드시 기도를 했고, 매일 성경을 읽었습니다. 늙어서 눈이 어두워진 다음부터는 사람을 사서 성경책을 읽도록 했다고 합니다. 미약한 시작이 창대한 나중이 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지금은 겨자씨처럼 아주 작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자라갈 때에 나중에는 30배, 60배, 혹은 100배로 성장하는 큰 재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매우 작은 씨앗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뿌려지고 자라가게 되면, 나무에 새들이 깃들 듯이 큰 인물이 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성공적인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깃들 수 있는 큰 나무로 자라는 비밀, 이것이 바로 천국의 비밀입니다.
겨자씨는 비록 작고 검은 씨앗에 불과하지만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창대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과 미래성을 갖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 예수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겨자씨와 같이 작은 믿음만 가져도 놀라운 기적을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의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는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겨자씨와 같은 작고 미약한 믿음이라도 버리지 말고 잘 가꾸고 키워서 큰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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