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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2 00:43
세속문화의 정신과 기독교인의 과제(골 2:6-10; 딤전 4:7-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03  
새로운 학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입학식과 개강예배에 적절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면서 고민하다가 '세속문화의 정신과 기독교인의 과제'란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다가오는 21세기를 짊어지고 나가야할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과제는 과연 무엇일까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정신 또는 현대인들의 왜곡된 삶의 뿌리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18세기경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이 때부터 영국에서는 자연신론이, 독일에서는 계몽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신앙보다는 이성을, 성경보다는 과학을 중시하는 합리주의를 시대사조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성서가 주장하는 계시나 기적과 같은 초능력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대신 인간의 이성을 떠받들기 시작했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신이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한다고 믿지는 않았습니다. 영국의 존 로크(1632-1704)가 그랬고, 미국의 대통령이였던 존 아담스, 토마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이 그랬습니다.

계몽주의자들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영감, 동정녀 탄생, 부활, 그리고 초자연적인 행위들을 미신으로 단정했습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이성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능력을 만능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들 자연신론이나 계몽주의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하나님없이 살라.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성서의 가르침에 크게 위배되는 것입니다. 성서는 "인간은 죄인이다. 인간은 피조물이다. 인간은 부족하다." 고 가르칩니다. 그렇다고 성서가 "인간은 무능하다.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는 오히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말합니다.

자연신론과 계몽주의가 인간을 높이 평가한 점과 인간을 왜곡된 종교적 교리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킨 점에 있어서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누구인가를 왜곡시킨 점에 있어서는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자연신론과 계몽주의가 피조물인 인간에게, 죄인인 인간에게, 부족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인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게 한 행위이며, 바벨탑을 쌓게 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신론은 하나님 없는 역사를 강조했습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홀로서기를 강조했습니다. 19세기에는 이런 사상적 바탕과 헤겔의 변증법적 철학의 기초 위에 진화론이 더해졌습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고귀한 인간을 하나님 없는 동물로, 하나님없이 살아가야 하는 고독한 짐승으로, 죽음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거대한 인간 조직의 톱니바퀴 정도로 인간을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위한 폭력과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시켰고,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유물론적이고 기계론적이며, 숙명론적이고 인과론적인 동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19세기에는 무신론이 더해졌습니다. 포이에르바하는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고, 인간은 자기가 만든 신에게 스스로 지배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종교폐기론을 내세웠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종교를 억압당하는 민중들의 한숨이며 마약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니체는 신 없이도 죽음에 이룰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극복하는 '초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로이드는 종교를 원시시대 인류의 오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된 강박관념의 신경증세이며 소원성취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무시하고 인과율만을 인정하는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교육철학자인 존 듀이를 중심으로 세속인문주의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들은 신과 종교에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는 데 이들 세속인문주의자들의 사상은 그들이 1933년과 1973년에 각각 발표한 인문주의자 성명서(Humanist Manifesto)에 매우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성명서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세계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다.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이나 지옥은 없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 이성과 지성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성인들 사이에 피차 동의된 성행위나 성적표현은 금지되지 말아야 한다. 인공유산은 허락되어야 한다. 이혼할 권리는 인정되어야 한다. 안락사로 품위 있게 죽을 개인의 권리도 인정되어야 한다. 유전공학, 시험관 아기와 같은 과학연구는 윤리, 정치,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서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이와 같이 세속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맹신 또는 과신하고 있으며,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성서에 나타난 신앙인들의 것과 극명하게 대립된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 차렸을 것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이 과연 하나님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사슴은 언제나 자기 머리에 있는 뿔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가늘고 홀쭉한 다리는 늘 불만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슴은 샘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자가 나타나 사슴에게로 달려들었습니다. 사슴은 눈치를 채고 얼른 도망을 쳤습니다. 사슴은 탁 트인 초원을 달리기에 아주 훌륭한 다리 덕분에 쉽게 사자를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풀에 이르자 뿔이 나뭇가지에 걸렸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슴은 따라오는 사자를 피할 수 없어 결국 사자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사자에게 잡힌 사슴은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말했습니다. "아, 내게 큰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다리는 나를 살려 주었는데,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뿔이 나를 죽이는구나."

인간도 이와 같이 죽음과 같은 극한 상황의 문턱에 이르러서 큰 쓸모 없다고 생각한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을 아쉬워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이성의 뿔 때문에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세속문화의 정신적 바탕 위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세속화의 문제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도시화로 인해서 세속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1965년에 출간한 {세속도시}에서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기술과학과 정보통신의 발달, 귀납적 추리와 합리적 분석 사고, 반권위, 반전통, 반문화, 다원화, 다중가치, 주체적 사고 속에서 현대인들은 기동성, 익명성, 실용성, 불경성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현대인들은 경박한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사로잡혀 생명의 근원을 외면하고 있고, 향락과 욕망충족에 사로잡혀 정신세계가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인과율의 법칙에 갇혀 신앙의 신비현상을 미신으로 간주해 버립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자 융은 신앙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과 경시현상이 과학기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정신적 질병을 낳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을 기계론적인 인과율로만 설명하려 할 때, 인간의 정신세계는 깊이의 차원을 상실하게 되고, 내면의 정신세계는 공허하게 되며, 그 빈 공간 속을 배금주의, 향락주의, 기술만능주의로 채우게 됩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돈과 향락과 과학과 같은 강한 힘들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현대인들이 물량적이고 피상적인 삶만을 추구함으로서 삶의 의미와 목적과 깊이의 차원을 상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과 깊이의 차원을 상실한 현대인들은 내면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와 조직, 매우 기계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생활 방식,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그 돌파구를 엉뚱한 곳에서 찾습니다. 현대인들의 상당수가 일본의 경우 옴교, 남미의 인민사원, 북미 유럽의 경우 데이빗교에서, 우리 나라 경우 오대양교, 다미선교, 승리제단, 통일교, 천부교와 같은 사이비 종교들에서 찾거나 뉴에이지 운동, UFO현상, 신나찌운동, 히피운동, 헤비메탈 록뮤직과 같은 많은 형태의 종교현상들에서 자신들의 삶의 의미와 존재가치를 찾고 있음을 봅니다. 또 다른 한편의 현대인들은 비단 종교현상들에서뿐만 아니라, 증산도, 대순진리회와 같은 민족종교나 요가수행과 같은 심신의 수련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의 이런 병리현상들을 점검해 보았을 때, 기독교인들의 사명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늘진 곳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목회자들의 신앙지도는 물론이고 복지사들의 봉사의 손길을 애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비 콕스는 기술과학의 발달과 세속화로 인해서 종교가 없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현대사회와 문화는 종교적 지배와 폐쇄적인 형이상학적 세계관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술과학이 인간을 억압하는 엄청난 부조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기계기술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겪는 정신적 인격적 억압을 무시해버렸습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실업과 걸인, 교통체증, 만성피로, 스트레스, 각종산재(産災), 교통사고, 가치관의 혼란, 소외감과 불안, 배금주의, 비인간화, 인간의 상품화와 부품화, 청소년범죄, 가정파괴, 각종 폭행과 살인 행위 등을 간과해버렸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현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내면 문제에 직면한 현대인들에게 자아상실을 극복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사는 신앙화의 길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영국의 카톨릭 문화사학자인 크리스토퍼 도오슨(Christopher Dawson)은 현대인이 문명의 위기에서 극복하는 길은 현대문명의 상실된 영역들인 신령한 체험, 종교적 신념과 환상, 높은 차원의 윤리적인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영적인 환상을 회복시킬 때 가능할 수 있다고 피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은 과학기술주의가 인간을 궁극적으로 해방 또는 구원할 것이라는 허위의 인본주의적 메시아주의에 빠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다가오는 21세기를 짊어지고 나가야할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과제에 대해서 몇 가지로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현대사회와 같이 관점이 다원화되고, 가치가 다중화되고, 신앙이 다중화되는 사회에서는 바른 '가치관의 선택'이 우리 믿는 신앙인들의 과제입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도전을 받으면서 신세대의 특징인 다양한 가치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옳고 그릇된 가치를 분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신앙인들은 성서와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 바탕을 둔 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야겠고, 하나님 없는 대중문화에 끌러 가서는 안되겠습니다.

둘째, 고도로 기술이 문명화되고, 정보, 통신, 교통이 극대화되면서 그늘진 곳이 늘어나는 인간상실의 사회에서는 바른 '인간형성'이 우리 믿는 신앙인들의 과제입니다. 기계문명 사회에서의 인간은 거대한 조직으로된 기계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상품화되고, 부품화 되기 때문에 쓸모 없을 때에는 가차없이 대체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신앙과 문화생활을 통해서 전인적인 인간성 회복과 인격형성에 힘써야 합니다.

셋째, 사회가 전문화되고, 분업화되고, 획일화되는 종파주의의 사회에서는 바른 '공동생활'이 과제입니다. 분업화와 자동화의 심화로 인간은 평생을 나사만 조이는 단순 노동을 위한 존재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이웃과 사랑과 관심으로 연대하는 공동체 정신과 연대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타자 속에 특히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 속에 계신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넷째, 상황이 급변화되고, 인간해방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에서는 바른 '역사이해'가 과제입니다. 급변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지성과 감성과 의지와 인간 상호관계에서 균형 잡힌 삶의 과정이 요구됩니다. 균형 잡힌 삶에는 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이 필수적입니다. 바른 가치관과 세계관 또는 인간관 속에서 인간은 성숙하게 홀로 설 수 있고,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 갈 수 있으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 자신을 결단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바른 가치 선택으로 가는 인간화의 길, 자아상실을 극복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사는 신앙화의 길,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의 문화화의 길, 새 결단을 위한 역사화의 길은 우리 신앙인들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신앙인들은 세속문화의 어두운 부분을 밝은 빛에로 이끌어내고, 혼돈된 부분을 바로 잡아 주고, 죽어 있거나 죽어 가는 부분을 삶의 부분으로 또는 생명에로 이끌어 내는 즉 그것을 정죄하기 보다는 창조적으로 변혁시켜 가는 주역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재창조의 정신이 강조될 때입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흑암에 쌓인 세계를 빛과 질서의 세계로 재창조하셨고, 멀지 않은 장래에 현재의 타락한 세계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죽을 목숨도, 죄로 인해서 타락해 버린 우리의 몸도, 새롭고 영화로운 몸으로 덧입혀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새롭게 하셨고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이 추하고 더러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삶의 방식은 버리거나 정죄하거나 징계하거나 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하시고, 회개케 하시고, 고치게 하시는 창조적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그것이 비록 현재는 타락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것을 징계하거나 멸망시키기보다는 새롭게 고쳐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에로 바꾸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타락을 회복으로, 죄를 용서로, 멸망을 구원으로 바꾸어 놓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태도에서 볼 때, 비록 세상문화가 타락문화라 할지라도, 이를 적대적인 감정으로 보거나, 기독교문화로 착각하거나, 대립관계로 보기보다는 부패된 곳에 소금을 뿌려주고, 음침한 곳에 빛을 비추어 줌으로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로 잡아가는 자세가 바람직한 기독교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세속문화를 정죄하기 보다는 창조적으로 변혁시켜 가는 재창조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될 때입니다. 복음의 씨란 결국 대중문화이든지 타락문화이든지 세상이라는 텃밭에 뿌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적이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반자도 될 수도 없습니다. 세속문화를 주도하고 개혁해 나가는 기독교 문화창달의 역군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로 시작되는 학기가 신입생이나 재학생 모두에게 창조신앙을 바탕으로 새롭게 가치관을 확립하고, 인격을 형성하며, 공동생활을 익히고, 역사관을 바로 세우는 유익한 출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금번 학기가 인간화, 신앙화, 문화화, 역사화의 길을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는 유익한 시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