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교회질서29: 복음을 위한 고난(10)(딤후 4:1)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절에서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하였다. 바울이 최후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르네상스 시대이후
최후의 심판을 가장 잘 묘사한 예술가들에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아드리엔
콜레르트(Adriaen Collaert, c. 1560-1618) 그리고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 건축가, 화가와 시인이었고, 아드리엔 콜레르트는 플랑드르(Flanders, 벨기에 북부)의 디자이너 겸 판화
조각사였으며, 오귀스트 로댕은 프랑스의 조각가였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마친지 25년이 지난 1531년에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제단 벽을 장식할 그림을
부탁받았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작업은 교황 바오로3세 때인 1536년에 시작되어 67세 때인 1541년에 완성되었는데, 작품명이 그 유명한
‘최후의 심판’이다. 이 무렵 독일, 스위스,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는 반가톨릭운동인 종교개혁이 한창일 때였다.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를 미켈란젤로가 구상한 그림이 바로 이 ‘최후의 심판’이었다. 게다가 천장에는 자신이 30대 중반(1508-1512년)에 그린
‘천지창조’란 이름의 1만2천점의 그림이 있었다. 같은 공간에 ‘최후의 심판’을 추가한 것은 천재다운 발상이었다고 여겨진다. 이로써 알파에
오메가 곧 처음에 마지막이 추가되어 미완성이 완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 거작을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감상한 사람들이 받았을 인상이나 작품이
준 메시지가 얼마나 강렬했을지 상상이 된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의 지옥부분을 단테(Dante)의 <신곡>(La Divina Commedia)에 근거했다.
미켈란젤로는 391명의 인물들 가운데 성모를 뺀 모두를 나체로 그렸는데, 이는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와 히브리서 4장 13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는 말씀에 적절했다고 여겨진다.
“그의 나타나실 것과”
마지막 때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혼자만 알고 있는 내밀한
것조차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나 지옥문 앞에서는 계급장이 통하지 않는다, 계급이나 신분이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인물들을 나체로 그린 또 다른 이유는 그림보다는 조각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묘사된
인물들은 모두가 근육질의 조각상처럼 묘사되어 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삼층 구도로 되어 있다. 상층부는 천국으로써 그림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최고 상층부 좌우에는
예수님이 매달렸던 십자가, 머리에 쓰셨던 가시관, 예수님이 채찍질 당하셨던 기둥에 매달리거나 의지하고 있는 천사들 또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아래 상층부 중앙에 심판자이신 그리스도가 서계시고, 우측에 성모 마리아와 그 발밑에 3세기 중반에 뜨거운 석쇠
위에서 고문을 받고 순교했던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그리고 그 위 우측(독자의 좌측)에 사도들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운집해 있다.
그리스도와 얼굴을 마주한 자들 곧 그리스도의 좌측과 발아래에 옹위한 자들은 천국열쇠를 손에 쥔 베드로 (미켈란젤로는 베드로의 얼굴로 당시의 교황
바오로 3세의 용안을 그렸다고 한다.), 바울, 바돌로매, 막달라 마리아, 요셉, 니고데모, 사도요한, 그밖에 사도들과 심지어 모세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로마병사 롱기누스(혹은 론지노, Longinus), 그리고 3-4세기 성인들 곧 세바스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친
헬레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Catherine), 아르메니아의 성인 블라시오(Blaise)와 많은 수의 구원받은 성도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인도에서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기는 참형을 받고 순교한 바돌로매(나다나엘)가 오른손에 칼을 왼손에 벗겨진 자신의 살가죽을 들고 있는데,
미켈란젤로가 바돌로매의 그 인피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미켈란젤로는 자기 자신이 가톨릭당국에 의해서 살가죽이
벗겨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거나 살가죽처럼 일그러지고 처진 보좔 것 없는 자신이 순교성인의 손에 붙잡힌 한 가닥 구원의 가능성이나 희망을
묘사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
‘최후의 심판’ 상층부 중앙에 자리 잡은 재림주 그리스도께서 오른손을 높이 들어
내리치는듯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계신 곳은 좌측(독자들의 우측)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아니라, 그 아래 중간층 좌측 곧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들이다. 중간층 중앙에는 나팔을 부는 천사들과 생명책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마태복음 24장 31절,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와 계시록 20장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와 15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를 묘사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려다보고 계신 중간층 좌측의 사람들은 마귀들에 붙들려 꼼짝없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고, 하층부 좌측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혹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뱃사공 카론이 바닥이 없는 소가죽 배에 영혼들을 실어 날라 지옥의 수문장 미노스와
마귀들에게 넘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미노스는 당나귀 귀를, 마귀들은 뿔을 갖고 있다. 뱀이 미노스의 몸을 휘감은 채 그의 고추를 깨물고
있다. 카론이 배에서 내리지 않고 머뭇거리는 영혼들을 노로 내리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것은 “카론은 무섭게 불타는 눈초리로, 망령들을 배
안으로 불러 모아 머뭇대는 자는 가차 없이 노를 들어 내리쳤다”는 단테의 <신곡> 가운데 지옥편의 한 소절을 소재로 그린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뱀으로 몸을 휘감은 지옥의 수문장 미노스의 얼굴로 당시 교황의 의전관인 추기경 비아지오 체세나의 얼굴을 그렸다고 한다. 그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목욕탕에나 어울릴 것 같다”고 폄훼했기 때문이다. 추기경이 교황을 찾아가 벽화에 그려진 자신의 얼굴을 다른 얼굴로 바꿔
그리도록 지시해달라고 청원했지만, 교황은 “안됐지만 나도 지옥에 빠진 사람은 구해낼 수 없어요.”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23년 후인
1564년 트렌트 공의회는 그림의 나체부분을 수정하기로 결의하였다. 미켈란젤로가 89세의 나이로 죽기 1개월 전에 결정된 이 수정작업은
미켈란젤로의 제자 볼테라(Voltera)가 맡아 하였다. 그리고 4백여 년이 지난 후 이 프레스코는 복원을 거쳐 1994년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