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09-05-07 09:21
부모와 자식의 관계 회복(엡 6:1-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300  
부모와 자식의 관계 회복(엡 6:1-4)

컴퓨터를 쓰는 사람은 종종 기억장치인 디스크를 정리해주거나 조각난 파일들을 한 곳에 모와 줘야 한다. 이것들을 ‘디스크 정리’와 ‘디스크 조각모음’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도 기억을 정리시키고 조각난 기억을 모와 주는 ‘기억 조각모음’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는 사물과 사물을 연결해서 새로운 정보를 분류하기도 하고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일을 ‘해마’(Hippocampus)가 한다. 그래서 해마를 '기억의 제조공장'이라 부른다. 해마는 대뇌피질 속에 있는 신경세포 다발로 길이가 5cm, 지름이 1cm 크기로 성인의 새끼손가락만 하다. 바다짐승인 해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마에서 만들어진 기억은 ‘시냅스(synapse)'에 저장된다. 시냅스는 대뇌피질 속에 있는 거미줄(네트워크)처럼 뻗어있는 약 140-150억 개의 신경세포들을 이어주는 부위로써 최고 100조 개에 이른다.
그러나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뇌는 스스로 혼란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사물을 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독단적인 기관이다. 따라서 해마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이 시냅스에 저장되지 않고 버려진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수많은 것들이 기억장치에 저장되지 않는다. 역사책이 역사가의 경향과 의도에 따라 엄격히 선별된 이야기들의 기록인 것처럼, 뇌에 저장된 기억도 사람의 경향과 감정에 따라 엄격히 선별된 것들이다. 똑 같은 일과 말을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았더라도 나중에 그 일과 말로 인해 다투게 되는 이유가 저장된 기억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기억제조공장인 해마가 기억장치인 시냅스에 중요정보를 보내더라도 그것을 걸러내는 일은 편도체가 한다. 편도체는 해마의 바로 옆에 붙여 있는 감정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해마와 편도체는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기억장치인 시냅스에 정보를 보내는데, 생존에 필요한 정보가 가장 우선적으로 기억되고, 좋아하는 것들도 기억된다.
좋아하는 것은 생존과 유사성이 크지 않다. 생존의 문제는 필수적이고, 좋아하는 것은 선택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은 추억보다 나쁜 추억들을 더 많이 기억해 내고 회상하는 이유는 나쁜 추억이 기억에 미치는 생존문제와 감정에 더 많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뇌는 또 이해하지 못하면 거짓말을 꾸민다. 뇌는 이치에 맞지 않으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해마가 손상되어 자신의 기억이 희미해지면 없어진 기억을 조리에 맞게 만들어내고,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런 뇌의 성질 때문에 우리는 평상시 대화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일단 하나의 일을 결정하고 나면 계속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자신이 미리 단정 지어서 말한 것을 그대로 믿어버린다. 좋은 말을 하면 그대로 된다. 나쁜 말을 하면 그대로 된다. 말이 씨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뇌는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부모와 장성한 자식 간에 있기 쉬운 애증과 갈등은 기억차이가 원인일 수 있다. 부모들은 젊은 시절에 자녀들에게 썼던 나쁜 말씨와 불친절한 태도를 대부분 뇌의 기억장치에 저장시키지 않는 대신에 자녀들에게 잘해준 일들을 많이 기억시켜 놓고 있다. 그러나 자식들의 뇌 속에는 부모가 저장한 기억들과는 반대의 것들, 즉 나쁜 기억들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기억이 만들어질 당시에 서로가 느낀 생존의식과 감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의외로 충돌이 많은 것은 바로 이 서로 다른 기억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의 저장장치인 디스크와 같아서 오래 쓰면, 불필요한 쓰레기 기억들이 쌓이고, 저장된 기억들에 조각이 나서 판단이 둔해질 수 있다. 이럴 때는, 마치 컴퓨터의 디스크를 정리해주고 조각난 파일들을 모아주듯이 좋은 기억의 습관을 통해서 나쁜 기억들을 지워버리는 꾸준한 기억정리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고 율리우스 시저가 말했는데, 인간의 뇌가 바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기억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준 것만을 기억하고, 자식은 부모가 나쁘게 한 것만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의 뇌의 기억장치 속에 전혀 그 반대의 기억들이 저장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저장은 되어 있는데,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에게 해줬던 좋은 추억만을, 자식은 부모에게 받았던 나쁜 추억만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뇌는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가장 우선적으로 기억하지만, 좋아하는 것들도 기억장치에 저장한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끔찍하고 두렵고 위험했던 순간들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했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순간들도 기억장치에 담아두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모와 자식들이 서로 상반된 추억들을 떠올리는 것은 뇌의 기억장치가 그런 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가 그렇게 추억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의 기억장치 속에는 회상되지 못한 수많은 기억들이, 마치 골방에 처박힌 잡동사니들처럼, 쓸쓸이 처박혀 있다. 그 잊힌 기억들을, 다시 말해서,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 주지 못한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반성할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고, 자식들은 부모가 자기에게 베풀어준 좋은 추억들을 끄집어내서 감사할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
갈등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기억하고 있고,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가감 없이 반박하지 않고 깎아내리지 않고 비참하게 만들지 않고 인정해 주는데 있다. 상대방이 자기감정이 받아드려지고 있고, 배려 받고 있고, 존경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진심으로 경청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좋았던 추억, 행복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들은 사랑과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자식으로서의 기억에는 나쁜 추억이 많다. 매를 맞고 컸다거나 구박덩이로 컸다거나 부모의 화풀이 대상이었다는 등의 기억들이 많다. 그래서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맞고 자란 이야기, 구박당한 이야기 등이 많다. 지난날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았던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줄 만큼의 물질도 마음도 시간의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런 반면에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완전하게 독립하지를 못한다. 상당수의 부모와 자식들의 관계가 애증의 관계인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사랑과 미움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있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부모님과 자주 트러블을 일으킨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따뜻하게 해주고픈 마음이 있지만, 자식들의 효도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생각들을 자주 하시게 된다. 그러나 서운한 감정은 부모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남편은 부인에게, 부인은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이 항상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서운한 감정의 폭발이 트러블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서운한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고마움을 표시하고, 너그러움과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 책망은 사람을 고치기보다는 오히려 성질을 더 내게 만들고, 두 번 볼 것을 한 번 보게 만들고, 열 번 잘할 것을 다섯 번만하게 만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감사와 칭찬이야말로 존경과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부모자식 간의 트러블은 서로에게 거는 기대와 무관하지 않다. 부모는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너희들이 그럴 수가 있느냐는 식으로 자식들을 대하기가 싶고, 자식들은 부모님이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생각하기 싶다. 이전 세대의 부모님들은 노후를 자식들에게 맡기고 사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식에게 투자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형편이 닿지 못해서 못해 준 것이지 마음이 없어서 안 해준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맏아들에게 특별대우를 했던 것은 형편이 어렵다보니 늙어서 몸을 의탁할 자가 맏아들이라 생각돼서 잘 해줄 수밖에 없었던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는가? 정도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는 다 같다.
그러므로 자식들은 부모님에게 걸었던 기대가 양에 차지 않았더라도 항상 행복했던 기억들만을 되살려내야 한다. 좋은 기억만을 되살려내는 습관이 만들어지면, 나빴던 순간들보다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들, 나쁜 대우를 받았던 순간들보다 사랑받았던 순간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치를 한껏 낮추고 그 서운한 마음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존경과 사랑과 효도를 받으실 수 있다. 기대치를 낮추면 낮출수록, 줄이면 줄일수록 사랑과 효성은 더 커진다. 자녀들은 부모님에 대한 좋은 추억들을 더 많이 회상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나쁜 추억들은 기억하지 않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기억도 습관이다. 좋은 기억을 회상하는 습관을 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올 것이다. 이런 기억의 습관은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남편과 부인 사이에 관계가 좋고 나쁜 것은 무엇을 회상하고 기억하느냐에 달려있다. 자기는 배우자에게 항상 좋게 해준 것만 기억해내고, 배우자가 자기에게 나쁘게 한 일만 기억해내기 때문에, 자주 배우자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우게 된다. 그 결과는 다툼이다. 그리고 그 다툼이 더 큰 상처를 만들어낸다.
부모와 자식 간의 애증을 그린 소설 가운데 조창인 씨가 쓴 󰡔등대지기󰡕란 소설이 있다. 주인공 재우는 어려서부터 막내라는 이유로 형과는 너무나 다른 차별대우를 받으며 자랐다. 그 차별을 참지 못해 집을 나와 등대지기가 되고, 8년을 등대에서 보내다가 가족들을 만나지만, 그렇게 어머니가 정성을 들었던 큰 형은 IMF와 함께 회사를 떠나게 돼 이민을 결심하고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동생인 자신에게 남겨두고 떠나버린다. 그렇게도 미워했던 어머니인데다가 치매까지 앓는 어머니를 외딴 섬 등대지기인 재우가 모시게 된 것이다. 어머니를 미워해서 집을 나왔던 재우로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한없이 짐스럽기만 하다. 날마다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소리치시지, 대소변 못 가리시지, 여간 고통스런 것이 아니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밤 등대에 정전이 되어서 불을 밝히려고 나가는데, 치매로 정신이 없는 어머니가 자꾸만 가지 말라고 말리신다. 그것을 뿌리치고, 등대에 올라가서 끊어진 퓨즈를 갈아 끼우고, 전기를 다시 연결시키는 순간 재우는 감전되어 쓰러지고 만다. 의식을 찾았을 때 내장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고 몸은 점점 오그라들었다. 순간 “이제 죽는구나.”고 생각하는데,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수많은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올라오면 감전되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더러 내려가라고 외쳐보지만 힘이 없다. 어머니가 다가와서 하는 말이 “너 왜 밥 안주고 여기 있어. 밥 줘!” 그러시면서 “너 힘드니, 내가 너를 살려줄게.” 무릎에 아들을 눕히고는 빗물을 떠서 아들의 입에 넣어주신다. 타던 속이 시원해졌다. “어머니 돌아가세요! 여기 있으면 죽어요. 어머니, 돌아가세요.” “아니야,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아들을 돌봐야 한다는 모성본능이 어머니에게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어머니는 속옷을 벗어서 빗물에 적셔 아들 입에 넣어준다. 나흘 뒤에야 구조대가 왔는데,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들을 살리고 어머니는 죽었던 것이다. 재우는 비록 하반신 마비가 되고 말았지만, 그제야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 간에는 사랑과 미움이 혼재되어 있는 것을 본다. 가장 가깝게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서로가 주고받은 사랑과 미움의 기억들도 많다. 우리의 기억에서 이 미움을 지워내고 흩어졌던 조각들을 한 곳으로 모우는 노력이 진정한 사랑을 회복하는 길이 된다. 어버이날에 용돈 드리고, 선물 사드리는 것만으로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지 않는다. 어린이날에 선물사주고 한번 같이 놀아줬다고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지 않는다. 부모 자식이 마련한 선물이 아무리 큼직해도 사랑이 빠진 어버이날 어린이날의 의미는 크지 않다. 마음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감사를 주고받지 않으면 그것들은 일순간의 즐거움으로 끝나고 만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1-4).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며,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할 때 가화만사성, 먼저는 가정이 잘되고, 둘째는 범사가 잘되며, 셋째는 영육간의 건강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축복이 어버이주일을 맞이한 우리 부모님들께 충만하기를 축복하고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