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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7-17 08:39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롬 3:21-2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35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롬 3:21-26)

오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일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주관적으로 믿는 하나님 또는 자기 경험에 의한 하나님에 대해서 강조하곤 합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자기-고백적인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위험한 신앙에 빠지기 쉽습니다. 통일교의 문선명, 천부교의 박태선, 영생교의 조희성과 같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사례가 될 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단이나 학파의 가르침에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옳다 여기며 주장합니다. 16세기에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독일 에어푸르트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중에 뜻하지 않은 체험으로 수도사가 되기를 결심하고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정죄함을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구원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로 심각한 열병을 앓았습니다. 따라서 루터는 수도원의 모든 규율을 필요 이상으로 철저하게 지켰고, 완벽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얻고자 혼신의 힘을 쏟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의로우시고 준엄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설 수 있겠는가? 이것이 수도사로서 갖는 루터의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매일 고해성사를 바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날은 신부님을 붙들고 하루에 여섯 시간이나 고해성사를 바쳤다고 합니다. 루터가 이렇게 되게 된 까닭은 당대의 가톨릭교회가 하나님을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연계시에 따른 신의 존재입증과 같이 철학적-신학논증에 의해서 하나님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매우 부정적인 언급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자연계시를 통해서 신의 존재가 입증된다 해도, 그 신이 곧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르트의 이 말은 신존재입증과 같이 철학적-신학논증에 의한 하나님이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르트가 말하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 곧 성서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을 알지 않고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바르트의 주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믿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19세기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포이에르바하는 종교를 인간의 자기분열 현상이라고 말하면서 신을 만든 것은 인간인데, 오히려 인간들은 자기들이 만든 신에게 지배당한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흙과 나무와 돌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에 부여된 신율에 지배를 받는다는 식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종교가 고통당하는 인민의 한숨을 대변하는 것이고, 무정한 세계에 주는 감정이며, 영혼 없는 세계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또한 아편처럼 인민을 중독에 빠지게 하는 독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이런 소리를 들어 마땅한 종교집단들이 널려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바르트가 언급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바르트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모든 인간이 서야 할 죽음과 저주의 자리에 대신 설 자로 선택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배반하고 죄 범한 인간에게 영생의 축복을 마련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습니다.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오히려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셨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자신에게는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인간의 몫을 당신께서 받는 대신에 당신의 몫, 곧 축복과 생명을 인간에게 주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인간을 높이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우리 인간과 같은 고등한 동물을 만드시고 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야했을까요? 피조물은 아무리 지혜와 지식이 많고 능력이 많아도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뜻이고, 부족하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나 결정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을 가진 고등한 인간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고, 부족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또 실수나 오류를 범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고등한 인간의 배반과 도전을 모르셨을 리 없습니다. 하나님이외에 고등한 피조물이 존재한다는 것, 이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모독이 되고 대항세력이 된다는 것을 모르셨을 리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특권, 이 특권은 하나님만이 가져야할 권한입니다. 그런데 그 권한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든 분이시고, 그러한 권한의 소유주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누구라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권한을 인간에게 주셨고, 그리될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당신이 만드신 인간들로부터 모독을 당하시고 배반을 당하시고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그러한 인간들이 받아야 할 죽음과 저주를 대신 받을 자로 자기 자신을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배반하고 대항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오히려 영생의 축복을 마련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죽음에까지 낮춤으로써 죄 범한 우리 인간을 오히려 높이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리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이런 독특한 희생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진정한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이고, 둘째는 올바르게 누리는 자유와 그에 대한 책임, 그리고 셋째는 참된 감사와 예배에 대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우리는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아가페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줍니다. 그것은 자기제한의 사랑이고, 내리사랑이며,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웃사랑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당신만이 누려야할 이성과 지성과 감성과 자유의지와 같은 특권을 인간과 함께 나누셨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를 낮춰 인간이 되어 인간을 대신해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을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 같은 기계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인격적인 관계가 가능한 고등한 동물로 만드셨습니다. 당신의 권한을 제한하면, 그것을 나눠받은 자들이 끊임없이 배신하고 도전하고 모독할 것을 불을 보듯 하시면서도 하나님은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스스로의 권한을 제한하시며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어떻습니까? 하찮은 것 하나도 손에 쥔 것을 내놓지 않으려 것이 우리 인간들의 원초적인 모습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이성과 자유의지와 같은 특권은 마음껏 누리면서도 특권에 따른 책임을 망각하고 삽니다. 아니 망각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그 책임을 회피하며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지고, 인간들의 관계도 깨지고, 이로 인해서 이 세상에 악이 유입되고, 죄와 질병과 가난과 고통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이 겪는 생로병사 108번뇌의 고통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자기 권한의 제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비록 우리가 지금 고통과 고난 속에서 살아간다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극한 하나님의 자기제한의 사랑, 내리사랑, 이웃사랑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로마서 3장 23-25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리하셨을까요?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뜻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나려 하신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생하고, 당신의 고유한 축복과 생명을 배반자 인간들의 것으로 예정하시고, 자기제한의 사랑, 내리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신 것이 자기 의로우심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기 의로우심은 정의로운 사랑을 말합니다.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실천하신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꿔서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인간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이 되실 뿐 아니라, 죗값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정의로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긴 하지만, 동시에 친히 벌을 받아 십자가에 죽기까지 벌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고통을 체험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회개치 않는 인간들을 무서운 형벌로 벌하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회개치 않는 죄인들을 벌주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도 아니고, 정의로운 하나님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무서운 지옥의 형벌을 마련해 놓고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들에게는 영원토록 축복 속에서 살 천국을 마련해 놓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에 조상(祖上)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들이나 손자가 법도에 어긋난 짓을 하거나 못된 짓을 하면 야밤에 그놈을 데리고 조상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무덤 앞에 엎드려 “불초한 소치로 자식을 못 가르치고 못 보살펴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조상 앞에서 매를 맞겠습니다.”고 말하고는 자식에게 매를 베어오도록 시킵니다. 그리고는 상돌 위에 올라 종아리를 걷고 서서 잘못을 저지른 아들이나 손자에게 힘껏 치도록 시킵니다. 조상매는 그 죄과의 정도에 따라 다리가 부러지도록 치게 하는 것이 관례였고, 피가 낭자하여 걷지 못하여 업혀오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 인간들의 바른 삶과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잘못을 고치고자한 정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실 뿐 아니라, 또한 정의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지은 인간을 벌함으로써 나타나지 아니하고, 인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친히 죽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정의를 일컬어 성서는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보여주신 사랑이 아가페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정의로운 사랑입니다. 이 정의로운 사랑에 결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에는 남녀의 차별도 신분의 차별도 연령의 차별도 빈부의 차별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2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정의로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옵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또 2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지금 이 때에 자기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하여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고등한 인간을 만드신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빚어 가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권리와 권한을 제한하는 분이십니다. 인간들의 끊임없는 배신과 도전과 모독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래 참으시면서, 인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서야 할 죽음과 저주의 자리에 대신 설 자로 선택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시고, 자신에게는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기로 결정하신 분이십니다.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시고 인간을 높이기로 결정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벌을 받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과 더불어 우리 죄인들을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관을 쓰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으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대신 흘린 보혈이었습니다. 우리 죄를 속하시려고 우리를 대신해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영생의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