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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10 11:24
감사와 기쁨02: 바울의 빌립보 선교(2)(행 16:19-3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058  

감사와 기쁨02: 바울의 빌립보 선교(2)(16:19-34)

왕뱀 퓌톤과 사탄

노예 소녀에 붙었던 영은 왕뱀 퓌톤(Python)이었다. 그리스신화에는 예언과 치유와 관련된 왕뱀이야기가 있다. 이와 관련된 장소가 세계의 배꼽(옴팔로스)이라고 믿었던 델포이였다. 델포이는 주후 392년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 전까지 고린도에서 멀지 않은 파르나소스 산 남쪽 기슭에 있었다. 델포이의 직전 지명은 퓌톤이었다. 신화에 따르면, 이곳에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신탁소가 있었고, 가이아는 정자 없는 처녀임신으로 아들 퓌톤, 일명 왕뱀을 낳아 이 신탁소를 책임지게 하였다. 한편 여신 레토는 제우스의 씨를 받아 이란성 쌍둥이인 궁수의 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았는데, 아폴론은 출생과 동시에 퓌톤을 활로 쏴서 죽이고 신탁소를 장악하였다. 그리고 퓌톤의 아내인 퓌티아를 사람으로 만들어 신탁소의 제니(여사제)로 삼아 자신이 맡겨놓은 예언(신탁)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의 제니 퓌티아를 통해서 신의 뜻을 알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뱀이 인간에게 예언을 해주고 있었던 셈이다.

바울과 귀신의 대결은 참 하나님과 그리스의 거짓 3만여 신들과의 대결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델포이 신전 입구 상인방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새겨져 있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신들 앞에서 오만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왕뱀의 영을 몰아낸 바울은 모세가 광야에서 놋 뱀을 세운 것에 비교될 수 있다. 모세와 바울이 행한 일들은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일들이었다. 뱀은 약도 주고 병도 준다는 것이 당대의 생각이었다. 뱀한테서 예언의 능력을 받았던 고린도의 폴뤼이도스는 뱀에 물려 죽어가다가 다른 뱀이 물어다 준 약초로 인해서 살아났다는 신화가 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들에게 물려서 죽어갔다. 그 때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세워서 뱀에 물린 자들이 그 놋뱀을 보면 살게 하였다. 뱀이 병도 주고 약도 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기도와 찬송의 능력

그리스신화에서 뱀이 예언과 치유의 상징인 것에 반해서, 성경에서 뱀은 하나님의 일, 살림의 일, 빛의 일, 질서의 일, 생명의 일에 반대되는 죽임의 일, 어둠의 일, 혼돈의 일, 죽음의 일을 하는 사탄과 마귀로 상징된다. 노예 소녀의 주인들은 왕뱀의 영이 패배함으로써 수입원이 사라진 것을 원통히 여기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무리와 함께 관가로 데려가 소란을 피우며 고소하였다. 이에 빌립보의 상관들이 태형을 집행하는 릭토르(lictor)에게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친 후에 옥에 가두게 하였다. 바울은 제1차 선교지에서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이미 여러 번 매를 맞았지만, 이방인에게 매를 맞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대인들은 39대까지만 곤장을 치지만, 이방인들은 매질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또 로마인들은 죄인들의 두발을 찢어지도록 넓게 벌려 차꼬를 채워 토굴 같은 감옥에 가뒀다.

옥중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야 정신을 수습하였는지, 그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시작하였다. 죄도 없이 심한 매를 맞고 차꼬에 묶인 채 감옥에 갇혀 기도하고 찬송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과 실라에게는 이것이 적을 무찌르는 강력한 무기요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며 생명을 살리는 비밀병기였다. 실제로 기도와 찬송은 지진을 일으켜 옥터를 움직였고, 옥문이 저절로 열리고 차꼬가 저절로 풀리게 하였다. 또 기도와 찬송은 자결하려던 간수의 육체의 목숨을 살려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루디아와 노예 소녀가 침례를 받았던 간지테스(Gangites) 강에서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침례를 받아 영생에 이르게 하였고, 빌립보교회의 창립멤버가 되게 하였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태형을 맞고 감옥에 갇힌 위기를 통해서 주어졌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이 기도와 찬송에 있었다.

위기가 기회가 되다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들인 동시에 로마시민권자들이었기 때문에 이 고통을, 마음만 먹었으면, 굳이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권리를 쓰지 않았고, 그 결과 간수의 가족을 구원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빌립보교회가 강가에 있는 루디아의 집에 세워졌다. 창립멤버들로는 루디아의 가족, 노예 소녀, 간수 가족으로 이뤄졌다. 그들은 극심한 환란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힘에 넘치도록 바울의 선교를 지원하였다(고후 8:1-5). 산고가 컸던 만큼 건강한 옥동자를 보았던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태장을 맞고 초죽음이 되어 감옥에 갇혔고, 한밤중이 돼서야 정신을 수습하였다. 그들은 차꼬에 묶인 채로 기도하고 찬송하기 시작했다. 기도와 찬송은 아픔과 두려움을 잊게 하고,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후일 바울이 형편에 지나도록 선교헌금을 보내주고 감옥에 갇힌 자기를 위해 마음을 써준 빌립보교회에 쓴 편지를 보면, 기쁨이란 말이 들어간 단어가 16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빌립보에서 태장을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초죽음이 된 상태에서조차 기도하고 찬송했던 바울은 또 다른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기쁨을, 그것도 16번이나, 입에 올린 것이다. 바울은 기쁨을 명예나 권세나 재물에서 찾지 않고, 주 안에서 찾았고, 성도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에서 찾았다. 그의 기쁨은 철저히 이타에서 비롯되었다. 이타가 그로 하여금 옥중에서 기뻐할 수 있게 하였고, 모든 위기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게 하였으며, 태장을 맞고 감옥에 갇힌 원통함을 마음에 담기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세워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새 희망을 찾는 데서 솟아나는 기쁨을 맛보게 하였다.

바울의 감사와 기쁨은 마케도니아교회 성도들에게 그대로 잇대어졌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감사와 기쁨이 넘쳤고, 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구제와 선교에 있어서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 그들의 믿음은 바울의 믿음처럼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믿음이었고,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는 믿음이었으며,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는 믿음이었고, 베풀 수 없는 상황에서 후하게 베푸는 역설적인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