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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3 06:07
성탄절01_생명의 빛 하나님(1)(창 1: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  

생명의 빛 하나님(1)(1:1-5)

우리의 삶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또한 매일의 삶에 필요한 빛을 주시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신다.

동식물이 살아가는 데는 태양빛과 열이 대단히 중요하다. 음지에서 식물을 키워보면, 모든 식물이 태양빛이 비치는 쪽으로 줄기를 뻗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동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부족한 일조량을 인공적으로 채워줄 요량으로 채소 하우스나 양계장에 불을 환하게 밝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바깥 날씨는 여전히 차지만 땅 속에서는 새싹이 아직 채 녹지도 않은 두꺼운 흙벽을 뚫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열 때문이다. 오래전만해도 싹 틔우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 묘판 바닥에 두엄을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 고운 흙을 덮은 후에 씨를 뿌리면 두엄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2월에도 싹을 틔울 수가 있었다. 이렇게 빛과 열은 싹을 틔우고 광합성 작용을 하는데 절대적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숲과 꽃들은 빛과 열이 만들어낸 걸작들이다.

학자들은 우주팽창과 허불법칙을 근거로 우주의 나이를 대략 137억년으로 계산한다. 또 운석에 든 납의 동위원소를 연구하여 태양계의 나이를 대략 45억년으로 계산한다. 지구가 용암을 뿜어내거나 화산재를 뿜어내는 것을 볼 때면, 45억년이나 된 지구가 어떻게 아직도 불덩어리를 뿜어낼 수 있는지, 45억년이나 된 태양은 무슨 조화로 아직도 식지 않고 외부온도가 6천도를 넘는 불덩어리로 남아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15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태양의 불가시광선이 지구에까지 도달하는 것도 신비롭지만, 지구표면에 부딪쳐 반사하거나 굴절함으로써 빛과 열을 만들어내는 것은 신비 중의 신비이다. 더구나 그 빛과 열을 받아야 동식물이 생육하고 번식할 수 있는 사실에 이르면 단순히 진화에 의한 것만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주에는 대략 1만 개 정도의 은하계가 있고, 은하계 하나에 대략 1백만에서 1조 개의 별이 있다고 하며, 별의 숫자가 세계의 모든 해변과 사막의 모래 알갱이보다 10배나 많은 700억 조 개에 이른다는데 왜 유독 태양만이 저토록 엄청난 생명의 불을 15천만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진 지구표면에까지 뿜어내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지 너무나 신비하고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자들은 대략 45억 년 전에 태어난 태양은 앞으로도 대략 45억년은 더 세월이 흘러야 빛을 잃고 소멸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가 되면 태양 주위를 도는 모든 행성은 빛이 없는 암흑세계를 맞게 될 것이고, 태양빛을 받지 못한 행성에는 더 이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태양의 죽음은 모든 것의 죽음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앞으로 45억 년쯤 후에 우주가 지금의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별들이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타죽게 되거나 태양의 죽음과 함께 꽁꽁 얼어 죽게 된다고 말한다. 태양의 빛과 열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햇볕을 너무 많이 쐬면 자외선에 과다 노출되어 피부에 질환이 생긴다. 따라서 볕이 좋다고 피부를 자외선에 너무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반대로 피부에 해롭다고 해서 햇볕을 너무 쐬지 않으면 정신건강과 뼈에 문제가 생긴다. 다리가 굽어 O자형이 되는 구루병은 비타민D의 결핍 때문에 생기는데 햇빛(자외선) 부족이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또 일광이 부족하면 항 우울 효과가 있는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드는 대신에 정신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멜라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증가하여 우울증이 유발된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하루에 30분 이상 햇빛(자외선)을 충분히 쐬어야 한다. 이처럼 적당한 햇빛은 육체와 정신건강 모두에 유익하다.

본문 창세기 11-5절을 볼 때, 하나님은 빛과 생명의 근원이시다.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될 빛을 만드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이 빛을 천지창조 첫날에 가장 먼저 만드셨다. 그만큼 빛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태양을 비롯한 행성들은 넷째 날에 만드셨다. 왜 그랬을까, 빛과 태양은 하나가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태양이 빛의 근원이 아니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이 빛을 가장 먼저 만드시고, 태양과 행성들을 멀찌감치 넷째 날에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만이 빛과 생명의 근원이 되심을 교훈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자칫 잘못 생각하면 태양빛이 생명의 근원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빛을 만드시고, 나중에 태양을 만듦으로써 태양광선으로 하여금 빛을 전달하게 하셨다.

우리는 아름다운 숲과 꽃들을 감상하면서 태양빛과 열이 생명체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한발 더 나가서 태양빛과 열을 있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빛은 절대적이다. 이 빛이 부족하면 사람의 영혼에 문제가 생긴다. 육체가 건강하다고 영혼까지 건강한 것은 아니다. 육체건강도 중요하지만, 영혼건강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외면적인 것보다 내면적인 것, 육체적인 것보다 영혼적인 것, 피상적인 것보다는 근본적인 것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숲과 화려한 꽃빛깔은 보면서 그 배후에 숨어계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면,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햇빛을 보지만, 그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 태양광선이 물체에 반사되었을 때 만들어진다. 우리는 태양열을 느끼지만, 그 열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태양광선이 물체에 닿아 굴절되었을 때 만들어진다. 우리는 태양광선에 빨주노초파남보의 아름다운 무지갯빛깔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종종 보지만, 그 아름다운 빛깔은 눈에 보이지 않는 태양광선이 공기 중의 물방울이나 프리즘을 통과할 때 만들어진다. 우리는 태양광선에 적외선이나 자외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그것들을 이용한 기술들의 혜택을 입고 살지만, 적외선이나 자외선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맑은 공기가 건강에 좋고, 그것 없이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바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나뭇잎이 흔들리거나 우리의 볼을 스치고 지나갈 때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물질의 중요성을 알지만, 영성과 같은 내적이고 심층적이며 정신적인 것들의 중요성을 모르는바가 아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일성을 발하시기 전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하나님의 존전에 펼쳐진 현실이었다. 하나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현실에 직면하신다는 증거이다. 문제는 당면한 문제를 어떤 눈으로 보고, 무엇을 인식하며,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있다. 이 문제해결방식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문제해결방식 곧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긍정의 언어이다. 하나님은 직면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현실 앞에서 당황하시거나 좌절하시지 않고, 당당하게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빛이 생겼고, 결과도 보시기에 좋았다. 그 이유는 흑암이 변하여 빛이 되었고, 혼돈이 변하여 질서가 되었으며,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명체에게 절대필수인 의 창조는 살림의 언어, 생명의 언어, 긍정의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살림의 언어, 생명의 언어, 긍정의 언어에 문제해결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적은 긍정의 언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런 언어습관을 본받아야 한다. 현실에 주눅 들고, 현실에 좌절하며, 현실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 당당하게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언어의 힘이 우리 성도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바울은 에베소서 51절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의 빛, 살림의 언어, 생명의 언어, 긍정의 언어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빛의 계절에 우리 성도들의 삶에 충만하기를 바란다.